사무엘상 33 순환 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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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33강
범위: 삼상 7:17-
지난시간 끝부분 다시 복습
(삼상7:16) 그가 해마다 벧엘과 길갈과 미스바로 순회하며 그 모든 곳에서 이스라엘을 재판하고
And he went from year to year in circuit to Bethel, and Gilgal, and Mizpeh, and judged Israel in all those places.
(삼상7:17) 라마로 돌아왔더라. 그의 집은 거기 있더라. 그가 거기서 이스라엘을 재판하였고 또 거기서 주께 제단을 쌓았더라.
And his return was to Ramah; for there was his house; and there he judged Israel; and there he built an altar unto the LORD.
벧엘
하나님의 집이라는 의미
신약 성경에서 벧엘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믿는 성도들이 함께 모여있는 곳입니다.
성경은 교회를 하나님의 진리의 기둥과 터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모든 참된 하나님의 일들은 지역 교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여러분 중에 자신이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말을 하면서
소속된 지역교회가 없이
뭔가 하고 있다면 그가 하는 일은 기본 부터가 잘못된 것입니다.
바로 교회 이곳이 여러분과 저의 삶의 근본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의 첫 번째 장소는 하나님이 집인 교회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각자 알아서 신앙 생활을 하도록 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준비한 일꾼을 여러분의 지도자로 세워서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 앞에서 선포되도록 하셨다는 것입니다.
치료와 위로가 있는 곳이 벧엘입니다.
여러분이 교회를 벗어나서 각자 하나님을 위해서
무슨 일인가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하나님의 일을 하고 뒤돌아서
위로받고 상처받은 마음을 치료받는 일들이 필요합니다.
그런 위로와 치유를 받은 수 있는 곳이 바로 벧엘입니다.
벧엘은 기독교인들의 순환적인 삶에 첫번째 정거장 이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하나님의 집에서 성도와의 교제가 이루어져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고, 서로를 격려하는 곳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독립적인 기독교인의 삶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지 않은 삶이란 그리스도인에게 존재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집에서 모든 삶이 시작되어야 하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된 삶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교회가 아닌 곳에서 하나님이 세우지 않은 일꾼과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하나님이 허락한 그리스도인의 삶이 아닌 것입니다.
오늘 진도>>
길갈
길갈은 흥미로운 곳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특별한 언약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할례를 받도록 하셨습니다.
그것은 유대인들만이 행했던 일이고,
하나님 앞에서의 이스라엘 백성의 상징과 표식이었습니다.
여호수아가 가나안 정복전쟁을 시작할 당시 진을 치고
전쟁의 베이스 진영으로 삼았던 도시입니다.
요르단 강을 건넌 후 강에서 취한 열두 개의 돌을 길갈에 세웠습니다.
(수4:20) 여호수아가 그들이 요르단에서 취한 그 열두 개의 돌을 길갈에 세우고
And those twelve stones, which they took out of Jordan, did Joshua pitch in Gilgal.
여호수아 당시 다시 할례를 행한 곳입니다.
(수5:2) ¶ 그때에 주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예리한 칼을 만들어 다시 이스라엘 자손에게 두 번째 할례를 행하라, 하시매
¶ At that time the LORD said unto Joshua, Make thee sharp knives, and circumcise again the children of Israel the second time.
이집트에서 나온 뒤 태어난 아이들에게 할례가 행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수5:5) 이제 거기서 나온 온 백성은 할례를 받았으나 그들이 이집트에서 나온 뒤 광야에서 길에서 태어난 온 백성에게는 할례를 행하지 아니하였더라.
Now all the people that came out were circumcised: but all the people that were born in the wilderness by the way as they came forth out of Egypt, them they had not circumcised.
여러분은 앞으로의 신앙 생활을 위해서
잠시 숨을 고르고 예리한 칼을 꺼내서 자신의 포피를 베어 버리시기 바랍니다.
포피를 베어버리지 않고 가아난 땅으로 들어가게 된다면,
여러분의 영적 전쟁은 백전 백패가 될 것입니다.
육신이 아니라 영으로 걸으시기 바랍니다.
자신이 의지하던 모든 것들을 쏟아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지금까지 여러분 방식으로 살았지만
좋았던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여러분이 구원을 받고 난뒤에
여전히 여러분의 생각을 붙잡아서는 안됩니다.
여러분은 자꾸 여러분의 생각에 하나님이 함께하신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의 힘을 의지해서도 안됩니다.
여러분은 자꾸 여러분의 힘에 하나님이 함께하신다고 말을 합니다.
여러분의 지식을 의지해서도 안됩니다.
여러분은 자꾸 여러분의 지식에 하나님이 함께 한다고 말을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돕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의 모든 것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바울은 육체안에 신뢰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빌3:3) 영으로 하나님께 경배하고 그리스도 예수님을 기뻐하며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자니라.
For we are the circumcision, which worship God in the spirit, and rejoice in Christ Jesus, and have no confidence in the flesh.
예수님도 우리가 주님이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고 내가 그 안에 거하면 바로 그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나니 나 없이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느니라.
I am the vine, ye are the branches: He that abideth in me, and I in him, the same bringeth forth much fruit: for without me ye can do nothing.
바울은 내가 원하는 것은 선을 행하는 것인데,
내 안에는 선을 행할 줄 아는 것이 없다고 말을 합니다.
(롬7:18) 내 안에 (곧 내 육신 안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내가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한 그것을 어떻게 행할지는 내가 찾지 못하노라.
For I know that in me (that is, in my flesh,) dwelleth no good thing: for to will is present with me; but how to perform that which is good I find not.
(롬7:19) 이는 내가 원하는 선은 내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내가 원치 아니하는 악을 곧 그것을 내가 행하기 때문이라.
For the good that I would I do not: but the evil which I would not, that I do.
(롬7:20) 이제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내가 행하면 그것을 행하는 자가 더 이상 내가 아니요 내 안에 거하는 죄니라.
Now if I do that I would not, it is no more I that do it, but sin that dwelleth in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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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7:24) 오 나는 비참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O wretched man that I am! who shall deliver me from the body of this death?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이렇게 말을 합니다.
(갈3:3) 너희가 그렇게 어리석으냐? 너희가 성령 안에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완전해지고자 하느냐?
Are ye so foolish? having begun in the Spirit, are ye now made perfect by the flesh?
당신이 구원받기 전에 예수 그리스도께 왔을 때,
당신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내 자신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나는 내 자신을 깨끗하게 할 수 없습니다. 내 삶을 바꿀 수 없습니다.
나는 이를 하기 위해 예수를 필요로 합니다.”
어떻게 하면 깨끗하게 유지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강하게 유지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며 과거의 방식과 습관에 빠지지 않고
과거의 모임에 다시 빠지지 않을까요?
그것은 당신의 힘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힘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었고,
여러분의 힘으로는 구원을 유지할 수 없으며,
여러분의 힘으로는 올바르게 살 수 없었습니다.
그 힘으로는 올바르게 살 수 없습니다.
당신은 벧엘 만큼이나 길갈이 필요합니다.
거기서 그 육신에게 말할 때가 왔습니다.
"너를 끊어내겠다. 나는 더 이상 너를 믿지 않을 것이다.
나는 더 이상 너에게 의지하지 않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그의 말씀을 내 삶의 방향으로 삼을 것이고,
그의 백성을 내 친구로 삼을 것이고,
그의 뜻을 내 인생의 열망으로 삼을 것이다.
하나님이 원하는 것, 그것이 내가 할 것입니다.”
그 육신이 원하는 것, 그 오래된 삶이 원하는 것,
그 과거의 모임이 원하는 것들은 내가 끊어 내겠다.
이제 그것들은 내게서 사라졌습니다.
그것이 사무엘의 순회 사역이었습니다.
벧엘, -> 길갈,
하나님의 집, 그리고 육신을 잘라내고 부인하는 곳입니다.
미스바
미스바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에 백성에게 승리의 기쁨을 안겨준 곳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그들을 파괴하고자 했습니다.
그들은 한 때 이스라엘의 노예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곳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이 의지하던 모든 것을 벗어버리고,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인해서 승리를 만끽했던 곳입니다.
우리 모두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우리 신상의 순환 경로에 미스바를 설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미스바는 하나님의 집인 벧엘이 아닙니다.
육신의 것들을 잘래내었던 길갈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승리로 이끌어 주셨던 시간과 장소를 기록해 놓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여러분의 원수를 쫓아내 주신 때와 장소를
찾아보기 쉬운 곳에 기록해야 합니다.
마귀가 여러분을 괴롭히기 시작하고, 그래서 뭔가가 잘못되기 시작면,
하나님이 당신을 잊었다는 생각이 들고 기분이 좋지 않게 됩니다.
그때 그 일을 꺼내어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이 순회에 참여할 것이다.
나는 하나님의 집에 가서 말씀으로 힘을 얻고 육신을 부인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하나님이 과거에 나에게 행하신 일들을 기억하고
미스바로 가 볼 것이다.
하나님께서 내 혼을 구원하셨던 날, 하나님이 나를 절망으로부터 구해주신 날,
하나님이 내 기도에 응답하고 내 아들을 치유하신 날,
하나님이 내 형제를 구원하신 날,
하나님이 교회에서 그 문제를 내쫓아 주셨던 날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좋은 일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429장 세상 모든 풍파 너를 흔들어
당신이 아는 바와 같이,
우리는 ‘받은 복을 세어보라라”라는 가사가 있는 찬송가를 알 것입니다.
그 가사처럼 하나씩 주님이 주신 복을 적어 보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기독교인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대부분 받은 복을 세어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힘들었던 순간을 세어 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짐이 늘어났던 순간을
우리의 마음이 아팠던 순간이 몇번인지 세어보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첫 번째로,
나는 소말리아의 굶주린 어머니에게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의료 보험이 있는 나라에 태어난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북한이 아니라 자유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냉장고를 열면 먹을 것이 있는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옷장에 입을 옷이 있는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매일 샤워를 할 수 있는 집에서 살 수 있는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볼 수 있는 눈과 들을 수 있는 귀가 있는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지옥에 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여러분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가 있고, 성경이 있고
여러분 안에는 건전한 생각이 주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주님이 피값으로 만들어 주신 교회에
모이기를 힘쓰라고 하신 주님의 명령을 소홀히 생각하고
피곤해서 못가겠어요. 바빠서 못가겠어요.
더워서 못있겠어요. 추워서 못있겠어요.
무릎이 아파서 못가겠어요. 밥을 안줘서 못가겠어요..
제가 여러분에게 금 1kg을 준다고 하면,
피곤하다고 안오겠습니까?
바빠서 못오실 겁니까?
더워서 2시간 여기 앉아 있지 못하실까요?
추어서 여기서 2시간 앉아 있지 못할까요?
무릎이 아파서 금1kg을 포가하실 겁니까?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여러분을 위해서 해주시는 일들이
금 1킬로그램 보다 못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여러분에게 지구만한 금이 있으면 영원한 생명을 사실 수 있으신가요?
미스바의 승리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미스바의 승리가 없었다면 여러분이 어떤 삶을 살고 있었을지?
여러분의 삶의 끝이 어떠했을지 기억하고 판단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나에게는 아무 일도 해주지 않았다고 생각하시나요?
절대로 그럴리가 없습니다.
1. 여러분은 첫 번째로 하나님의 집에 있어야 합니다.
2. 그리고 여러분 육신을 부인해야 합니다.
3. 그리고 일이 힘들어지고 어려운 고난이 생기게 될때 미스바로 달려가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준 모든 승리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들이 여러분에게 힘을 주어 삶의 어려움을 견디게 해줄 것입니다.
라마
사무엘이 이스라엘을 재판하고 돌아온 곳이 라마입니다.
라마는 사무엘의 집입니다. 사무엘은 이 곳에서 죽음을 맞이 했습니다.
(삼상25:1) 사무엘이 죽으매 모든 이스라엘 사람이 함께 모여 그를 위해 애곡하며 라마에 있던 그의 집에 그를 묻으니 다윗이 일어나서 바란 광야로 내려가니라.
And Samuel died; and all the Israelites were gathered together, and lamented him, and buried him in his house at Ramah. And David arose, and went down to the wilderness of Paran.
집에서 제단을 쌓은 사무엘
사무엘은 벧엘에서 이스라엘을 재판 했습니다.
사무엘은 길갈에서도 이스라엘을 재판 했습니다.
사무엘은 미스바에서도 이스라엘을 재판 했습니다.
사무엘은 라마에 돌아와서도 이스라엘을 재판했고
하나님의 제단을 쌓았습니다.
집은 밖에서 처럼 자신을 대우해 주는 사람이 없는 곳입니다.
그가 자신의 집으로 돌아오면 그곳에서는
누구도 자신을 알아주고 대우해주는 사람이 없는 곳입니다.
그는 그저 평범한 한 사람의 죄인으로 돌아 온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렇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가 자기 집에서 하는 모습이
마치 하나님의 집에 있는 것과 같았다는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집에서 찬양하는 모습이
집에서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가 사역지에서 주님을 섬기는 모습이
그의 집에서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집에서는 존중받지 못하는 목사들
많은 목사들이 순회 사역을 하면 가는 곳 마다 존경을 받고
위대한 목사라고 칭송을 받습니다.
친구들과 아웃들 사이에서 친절하고 훌륭한 예수님의 대변인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집에 돌아오면 가족들에게는 존중받지 못합니다.
가족들이 그와 함께 있는 시간을 힘들어 합니다.
라마에서 사무엘의 모습
사무엘이 벧엘과 길갈 그리고 미스바에서만 주님의 사역을 감당하고,
집에서는 더이상 주님의 사역을 감당하지 않았다면,
그는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무엘은 벧엘, 길갈, 미스바에서 보여준 모습 보다도
그의 집에서 주님을 더 열심히 섬겼던 것입니다.
벧엘과 길갈과 미스바에서 주께 제단을 쌓았다는 내용은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이 집에서 주께 제단을 쌓았다는 기록을 보게 됩니다.
사무엘은 밖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행했던 공적인 사역 이상으로
자신의 집에서 거룩하고 경건하게 생활을 한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이 교회에 나온 것은 여러분이 선택해서
스스로의 의지로 나온 것입니다.
여러분이 교회에 들어온 순간
여러분은 교회에대한 책임감과 열정으로 공적인 사역을 수행 할 것입니다.
다른 형제자매들에게 인사하고 섬기고 말씀을 나누고 교제를 하거나
자신에게 맡겨진 봉사를 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곳은 여러분의 가정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소유하거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닙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집은 여러분의 것입니다.
여러분의 책임아래 있는 여러분 자신의 통제아래 있는 집이고 가정입니다.
여러분이 밖에서 섬기고 보이는 것 이상으로
가정에서도 주님의 일로 섬기고 경건하게 제단을 쌓아야 하는 곳입니다.
가정에서도 여러분이 판단과 재판을 하고
주님께 경건한 삶을 살도록 관리해야 합니다.
많은 분들이 집에서 재판관이 되어서
가족들에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면서 군림하기는 하지만
스스로를 희생하며 가족을 주님께 인도하려는
경건한 삶의 주체가 되는 데는 게으른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집에서도 주께 제단을 쌓아야 합니다.
가정에서 제단을 쌓는 일이 중요함을 알 수 있습니다.
사무엘의 꾸준한 말씀 선포가 낳은 결과
사무엘도 아직은 이스라엘 전역을 돌며
통치하지는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벧엘과 길갈 그리고 미스바를 순회하고 있는 것입니다.
법궤를 숭배하던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사모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삼상7:2) 그 궤가 기럇여아림에 거하되 그 기간이 길어 이십 년이 되었으므로 이스라엘의 온 집이 주를 구하며 애곡하니라.
And it came to pass, while the ark abode in Kirjathjearim, that the time was long; for it was twenty years: and all the house of Israel lamented after the LORD.
이십년 동안 사무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계속된 설교를 한 결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 것입니다.
법궤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사무엘이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사무엘은 3장에서 주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삼상3:3) 주의 성전 안에 있던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아니하였는데 그곳에 하나님의 궤가 있더라. 사무엘이 잠자려고 누웠는데
And ere the lamp of God went out in the temple of the LORD, where the ark of God was, and Samuel was laid down to sleep;
(삼상3:4) 주께서 사무엘을 부르시니 그가 응답하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고
That the LORD called Samuel: and he answered, Here am I.
사무엘에게 임한 말씀을 그대로 엘리에게 전하게 됩니다.
그리고 4장에서 언약궤가 등장하면서 사무엘 이야기는 사라지게 됩니다.
사무엘의 이야기를 사라졌다가
7장에서 다시 등장할때는 지도자로 인정받고 등장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20년 이상을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전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이 주 하나님을 사모할 수 있게 된 것은
사무엘이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지속적으로 전해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7장 4절의 역사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결국 7장 2절과 4절 사이에서
(삼상7:3) ¶ 사무엘이 이스라엘의 온 집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가 마음을 다해 주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가운데서 제거하고 너희 마음을 예비하여 주께로 향하게 하며 그분만 섬기라. 그분께서 너희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건져 내시리라, 하니
¶ And Samuel spake unto all the house of Israel, saying, If ye do return unto the LORD with all your hearts, then put away the strange gods and Ashtaroth from among you, and prepare your hearts unto the LORD, and serve him only: and he will deliver you out of the hand of the Philistines
3절 사무엘의 말씀 선포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문제가 생기고, 미스바에 모이고, 사무엘의 설교를 듣고
어린양을 바라보고, 승리를 얻는 결과를 얻게되고
삶에 화평이 주어집니다.
3장에서 말씀이 임하고
4장에서 언약궤가 등장합니다.
7장에서 다시 말씀이 등장합니다.
4장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언약궤를 신성시 하며
언약궤를 자기 방식으로 사용했습니다.
언약궤만 있으면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전쟁에 패하고 언약궤를 블레셋에게 빼았깁니다.
5장에서 언약궤는 이방민족인 블레셋 사람들에 의해서도
함부로 취급을 받았습니다.
6장에서 언약궤가 이스라엘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적당한 방법으로 언약궤를 취급하다가 많은 사람들이 죽고
기럇여아림에 20년간 방치되어 있다시피 했습니다.
그 사이에 사무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도 섬기고 바알도 섬기는
이중적 자세를 취해왔습니다
결국 사무엘을 통해 말씀이 작동하게 함으로 모든 문제가 정리가 되고
하나님 말씀으로 정리된 삶은 승리의 열매를 맛보게 하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