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5:1-11, 비어 있는 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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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5:1-11, 비어있는 그물 2024-7-10, 천광교회 수요기도회
갈릴리 호수
오늘은 여러분과 함께 본문 속 배경인 갈리리 땅을 함께 여행하고자 합니다. 이번 설교는 본문에서 몇가지 교훈을 뽑아서 전달하기 보다는 성경 속 삶의 자리인 갈릴리를 천천히 산책하듯, 상상력을 발휘하여 읽어보려고 합니다.
여러분 갈릴리 바다에 가보신적 있으십니까? 갈릴리 바다는 엄밀히 말해, 흔히 생각하는 지중해처럼 크고, 염분이 많은 그런 바다는 아닙니다. 유대인들에게는 물이 모인 곳은 호수이든지, 바다이든지 구분하지 않고 ‘얌’이라는 말을 쓰는데요, 그래서 대부분의 복음서 기자들은 헬라어로 ‘바다’를 지칭하는 ‘달라싸’라는 단어를 사용해 ‘갈릴리 바다’라고 표현했습니다.
하지만 누가복음을 작성한 ‘누가’는 유대인이 아닙니다. 헬라인 ‘의사‘입니다. 이곳 저것 여행을 많이 다녀서 견문이 넓었던 사람입니다. 세상 보는 스케일이 남달랐을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복음서 기자와는 달리 갈릴리 바다를 그저 ’바다‘라고 부르지 않고, 정확한 명칭인 ‘호수’(헬라어 ‘림네’)를 사용했습니다.
성지순례 가셔서 ‘갈리리 호수’에서 배를 타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그곳은 ‘호수’라기보다는 갈리리 ‘바다’라는 이름이 여전히 어울리는 듯합니다. 한 번씩 파도가 칠 때마다, 바다 못지않게 물결이 심하게 요동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잔잔한 호수라기보단 바다라고 하는 것이 자연스럽기도 합니다.
또한 이 갈릴리 바다는 ‘긴네렛 바다’로 알려져 있습니다. 오늘 본문1절에 등장한 ‘게네사렛 호수’와 같은 말인데요, 여러분 ‘긴네렛’은 히브리어 ‘키노르’ 에서 나온 말입니다. 키노르는 다윗이 즐겨서 연주했던 ‘하프’라는 악기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갈릴리 호수는 배가 둥근 하프 모양이라서 그렇게 이름이 지어졌다고 생각한다면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긴네렛 바다는 이 하프 악기처럼 고운 모양이고 이쁜 이름을 가졌습니다.
갈릴리의 어부, 시몬
자 예수님은 이 아름다운 ‘게네사렛 호수가’에 지금 서 계십니다. 파도 소리가 들리고, 싱그런 바람도 느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저기 어부들이 보입니다. 2절 말씀 읽어보겠습니다.
누가복음 5:2
“2 호숫가에 배 두 척이 있는 것을 보시니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는지라”
밤새 고기잡이를 하고 아침나절에야 돌아온 어부들일 것입니다. 분명히 피곤한 기색이 역력합니다. 왜냐하면, 어부들은 고기를 낚기 위해서 가버나움에서 남서쪽으로 약5km 떨어진 게네사렛까지 자주 장거리 이동을 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여기 등장하는 갈릴리 어부들은 어떤 사람일까요? 화이트칼라의 멀끔한 전문직 회사원과는 다른 분명 사람들입니다.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부들은 파도를 제치고, 광풍과 싸워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밤낮 1년 내내 물 위에서 쉼 없이 일하는 사람들이기에 몸이 마를 날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몸은 항상 물에 젖어 있을 것입니다.
또한, 팔레스타인 지역은 일교차가 크기 때문에, 그들은 이른 아침과 늦은 저녁의 젖은 몸 때문에 쌀쌀한 추위를 견뎌 내야 했습니다. 어부들에게 가까이 다가갈수록 비릿한 내음이 더 강하게 날 것입니다.
어부들의 일반적인 성격은 어떨까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방향 감각을 잃지 않고, 민첩한 판단력으로 바닷길을 찾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시련에 쉽게 굴복하지 않는 사람들, 물고기를 잡기 위해서라면 목숨을 걸 만한 그런 투철한 직업적 사명감이 있는 사람들이 바로 갈릴리 어부일 것입니다.
다소 투박하고 거칠게만 보이는 어부들. 그들에게도 물론 섬세함도 필요합니다. 우선 고기잡이를 나가려면 먼저 촘촘하게 짜인 그물망을 정성껏 다루는 일을 해야 했습니다. 그물을 씻고, 찢어진 곳을 깁고 말리는 그러한 일은 ‘세밀함’과 ‘성실함’을 요구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이미지는 이제 그들이 들고 온 ‘그물’입니다. 밤새 고기잡이를 하고 아침에야 돌아오는 길이지만, 그들의 그물은 터무니없이 가벼워 보입니다. 자세히 보십시요. 물고기 한 마리도 없습니다. 그물이 텅텅 비어 돌아오는 길임이 틀림없습니다.
여러분, 어부가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는 건 무엇을 의미할까요? (침묵) 당장 오늘 먹을 거리가 없다는 것을 말할 것입니다. 늘 가난한 어부들. 그들의 배가 더 주리게 되는 것이이지요. 비어 있는 그물은 어부들의 허망함과 간절함을 나타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만나 주실 사람은 갈릴리의 간절한 영혼입니다. 이 어부들 중 한 명입니다. 유난히 얼굴이 붉고 입술을 굳게 다물고 있는 사람, 무뚝뚝해 보이지만 약간의 섬세함도 가지고 있을 듯한 어부 시몬입니다.
시몬 베드로에게 갈릴리 바다는 어떤 의미일까요? 그의 삶 전부입니다. 바다가 물고기를 많이 안겨 주면 그의 인생은 성공하는 것이고, 바다가 물고기를 주지 않으면 실패하는 삶입니다. 그러니까 물고기는 그의 행복을 좌지우지하는 아주 중대한 요인이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그저 ‘고기를 잘 잡는 능숙한 어부’라고 칭찬할 때, 제일 기쁘고 보람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시몬에게 다가가 뭔가를 요청하십니다.
누가복음 5:3
“3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떼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시몬에게 다가선 예수님은 그에게 물고기에 관한 것은 한마디로 묻지 않으시고, 시몬의 배를 물에 띄워주기만을 부탁하실 뿐입니다. 어부 시몬은 예수님의 이 부탁을 거절하지 않았습니다. 시몬은 예수님께서 전에 장모를 고쳐 주신 사건이 생각났을 것이고, 그분을 권능자로 깊이 존경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이 이렇게 배를 물에 띄워달라고 시몬에게 요청한 것은, 물을 사이에 두고 말씀을 전하면 소리가 효율적으로 전달되고, 멀리 선 사람들도 예수님을 잘 볼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수님의 그물에 포획된 베드로
어느덧 예수님은 시몬의 배에 올라 말씀을 다 마치셨습니다. 이제 시몬은 얼른 집으로 돌아가서 얼마동안 눈을 붙이려고 하는데 갑자기 예수님이 시몬을 보시며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4절 말씀입니다.
누가복음 5:4 (NKRV)
4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이 말씀을 들은 시몬은 어안이 벙벙해졌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갈릴리 지역의 고기잡이는 밤에 하는 것이 상책이기 때문입니다. 대체로 더운 낮에는 물고기들이 바위틈에서 잠을 자고, 밤이 되어야지만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먹이를 찾아다니기 때문입니다. 그뿐 아니라, 갈릴리 바다에서는 얕은 물가에서 물고리를 잡아야 잘 잡히는 법입니다. 갈릴리 바다에서는 산소 공급이 얕은 물가에 원활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물고기들이 많이 몰립니다.
더군다나 시몬은 어젯밤에도 동료들과 내내 고기를 잡으러 다녔습니다. 하지만 아무 소득이 없었지 않습니까?
마침내 시몬은 예수님을 이렇게 부릅니다. “선생님”
예수님께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시몬은 잠시 뜸을 들입니다. 선생은 헬라어로 ‘에피스타테스’라고 하는데 이것은 문자 그대로 가르치는 자라는 뜻보다는 존경하는 인물이라는 의미가 더 강합니다. 우리 사업하시는 분들끼리 서로가 사장님 사장님 이렇게 부르곤 하지 않습니까? 존경의 의미입니다.
시몬에게 예수님은 그저 존경하는 인물 ‘에피스타테스’입니다. 이 예수님께 시몬은 어부로서 할 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낮은 목소리로 예수님을 ‘선생님’하고 불렀던 것입니다.
어부로서 시몬이 할 말은 무엇입니까? 5절 상반절 말씀입니다.
누가복음 5:5 (NKRV)
5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습니다.
시몬이 선생님이라고 부를 때. 아마 이런 어조일 것입니다. 선생님~~
그렇습니다. 시몬은 아무리 존경하는 에피스타테스라고 해도 물고기 잡는 일만큼은 자기가 더 잘 안다고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 직업은 어부가 아니라 ‘테크톤’ 목수이시기 때문입니다. 수학을 전공하는 사람이 영어를 전공한 사람에게 영어 발음을 지적하는 것과 같은 이치일 것입니다.
그러나, 참 이상합니다. 시몬은 왠지 거부하지 못할 경외감을 느꼈습니다. 이어서 조용히 시몬은 대답하게 됩니다. 5장 5절 하반절입니다.
“어제 밤새 잡은 것은 없지만 말씀에 의지하여 제가 그물을 내리겠나이다”
시몬은 어부로서 자기 상식으로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지만, 존경하는 선생님의 권유이기 때문에 깊은 물로 나아가기로 마음먹는 듯합니다. 방금 그물을 씻었기에 다시 바다로 간다는 것은 무척 번거로운 일일 것입니다. 그래도 시몬은 말씀에 의지하여 노를 저어 그쪽으로 가 봅니다. 시몬이 큰 기대감이 없이 가져온 빈 그물을 그 깊은 물속으로 내립니다. 그런데 시몬의 그물 안으로 수많은 물고기가 몰려들기 시작합니다. ‘여기에 이런 황금 어장이 숨어 있었나?’ 시몬은 깜짝 놀랍니다. 이제 그물을 들어 올리려는데 너무 무거워서, 그물이 찢어집니다.
6절-7절 입니다.
누가복음 5:6–7 (NKRV)
6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7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그들이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여러분이 시몬이라고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싱글벙글하는 시몬의 얼굴이 그려지십니까? 시몬의 배는 길이가 8미터, 폭은 2.5미터 정도나 되는 꽤 큰 배입니다. 이런 배 두 척에 물고기가 가득 쌓였으니, 시몬은 온몸에 짜릿함을 느낍니다. 새로 집도 집고 든든하고 값비싼 겉옷도 장만하고 맛있는 음식과 좋은 포도주를 마음껏 먹고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몰려듭니다. 배도 몇 척 더 늘리고, 그물로 마련해서, 갈릴리 업계를 주름잡아 보리라 생각합니다.
그물 안에서 파닥거리는 수많은 물고기가 번쩍거리는 은화처럼 보입니다. 시몬은 그동안의 ‘간절함’이 드디어 이루어졌다는 생각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넋 놓고 즐거워 하는 모습이 보이십니까?
그런데 물고기를 한참 만지다가 배에 계신 예수님을 잠시 잊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내내 시몬을 응시하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이 시몬을 바라보는 눈은 어떻습니까? 시몬이 지금 물고기를 바라보는 눈과는 전혀 다른 눈입니다. 시몬은 물고기를 한 마리, 한 마리 상품 가치로만 계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시몬의 쓸모나 어떤 가치를 따져 보시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그를 긍휼히 여기시면서 소중히 내려다보고 계십니다.
시몬은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많은 물고기가 몰려 있는 곳을 한 번에 아시는 분인데, 물고기가 남길 이윤에 관해선 관심도 없으신가? 이걸 다 내다 팔면 상당히 부자가 될 텐데 말인데.. ’ 시몬은 혼란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시몬은 갑자기 예수님 앞에서 무릎을 꿇어 버립니다. 이 깊은 곳에서 시몬이 물고기를 낚은 것이 아니라, 시몬이 예수님의 그물망 안에 포획되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시몬이 건져 올린 물고기는 그가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렸을 때 얻은 소산물에 불과했습니다. 시몬은 자신의 능력으로 이렇게 많은 물고기를 절대 잡아 낼 수 없음을 알았지요. 예수님의 말씀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시몬의 배에 잡혀 온 물고기들은 ‘물’이 없기에 모두 죽어야 할 운명에 놓였습니다. 그렇다면 시몬은 어떻습니까?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그물에 걸려 있는 시몬은 예수님의 ‘말씀’을 얻지 못하면 ‘생명의 물‘을 얻지 못한 물고기처럼 죽어 가게 될 것입니다. ’말씀‘만이 시몬을 살리고, 말씀만이 시몬의 인생을 다스리신다는 것을 말합니다.
시몬이 사실 간절히 원하는 것은 물고기와 물고기가 남겨 줄 번쩍거리는 은화입니다 당장 생명의 말씀보다는 손에 잡히는 돈이 더 좋습니다.
시몬뿐 아니라 함께한 동업자 야고보와 요한도 ’놀라움‘에 사로잡힙니다. 9절부터 10절 상반절 말씀입니다.
누가복음 5:9 (NKRV)
9이는 자기 및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이 고기 잡힌 것으로 말미암아 놀라고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여기서 놀랐다는 말이 두 번 반복됩니다. 놀라움은 그냥 기뻐하며 감격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흔치 않은 일을 경험한 후에 전율과 함께 느끼는 무서운 공포를 나타내는 명사입니다. 너무 충격을 받아 몸을 움직일 수도 없는 섬뜩하고 두려운 상태입니다.
시몬은 속으로 이렇게 절규합니다.
누가복음 5:8 (NKRV)
8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당신은 누구십니까? 떠나가소서. 저는 죄인입니다 저는 물질을 더 사랑하고 죄 가운데 살다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저는 제게 풍부한 재물을 가져다줄 이 물고기를 만지는 것이 훨씬 좋은 사람입니다. 거룩한 당신의 손을 잡는 것은 준비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배에 당신을 모시고 있기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제게서 그물망을 거두고 떠나소서. 저는 당신의 그물에 걸릴 수 없는 사람입니다!
시몬은 여기서 예수님을 전에 불렀듯이 선생님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주여라고 부릅니다. 헬라어로는 퀴리오스입니다.
그런데 퀴리에 하고 부르는 순간, 그의 가슴에 오랫동안 응어리진 눈물이 봇물 터지듯 터졌던 것 같습니다. 갈릴리 어부는 아무리 힘들어도 눈물을 보이면 약한 사람이 될까 울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시몬은 지금 눈물을 억제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시몬이 그동안 얼마나 많은 순간 이 바다에 그물을 던지고 또 던지며 물고기를 기대했을까요? 시몬은 이 갈릴리 바다만이 자신의 운명이라고 생각하며 포기하지 않고 희망을 걸어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닙니다. ’갈릴리 바다‘가 나의 퀴리오스가 아니라, 여기 내 앞에 서 계시는 이분이 진정한 퀴리오스이시다!라고 고백하며 시몬은 고꾸라지며 인정합니다.
시몬이 자신의 배에 예수님을 모셨던 순간부터, 시몬의 삶은 ’갈릴리 바다‘가 아니라 ’주님‘이 주관하시는 인생으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시몬의 퀴리오스되신 예수님은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0절 하반절입니다.
누가복음 5:10 (NKRV)
10 예수께서 시몬에게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여러분, 사람을 취한다는 말은 사람을 낚는다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취하리라라고 말씀하실 때 예수님은 헬라어 ’조그레오‘라는 동사를 사용하셨습니다. 그것은 그냥 낚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채‘로 낚는 것입니다. 포로로 삼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죽이려고 낚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사로잡힌 바되어, 포획되어 영생의 삶을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사람을 취하리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지금 시몬에게 떨어졌습니다. 시몬은 생명을 주시는 말씀의 그물에 이미 포획된 상태입니다. 살아있는 채로 낚임을 당했습니다.
생명의 그물에 걸린 시몬은 더 이상 죽음의 낚시, 욕망의 낚시를 할 수 없습니다. 살아 있는 생명만 낚아야 합니다. 죽음의 낚시는 그에게 일확천금을 안겨 줄지 몰라도, 그 넘치는 물질과 더불어 언젠가는 허무하게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살아있는 생명의 낚시는 그로 하여금 영원하신 그리스도와 더불어 살아가는 길을 열 것입니다.
회귀, 그리고 회심
여러분, 깊은 물에서 예수님과의 대화는 이렇게 끝이 납니다. 여기서 시몬은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해 죽음을 낚는 어부가 아니라 생명을 낚는 어부로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이제 시몬은 예수님을 모시고 힘차게 노를 저어 돌아갑니다. 배가 육지에 닿았습니다. 그러나 그 땅은 물고기 떼를 쫓아 헤매는 어부의 땅이 아닙니다. 생명을 찾아 예수님을 쫓아 따라가는 제자의 땅입니다. 이전에 시몬은 비어 있는 배, 비어 있는 그물 때문에 사람들 앞에 민망해하고 허무해했지만, 지금의 시몬은 전과 다른 모습입니다.
해변가에는 번쩍이거리는 은화 같은 물고기들, 그토록 아끼면서 씻고 깁고 손질했던 그물, 날마다 관리하던 고기잡이 배 모두가 그냥 놓여 있습니다.
더 이상 시몬은 이런 것들에 간절하지 않습니다. 시몬은 깊은 물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가장 간절한 것이 생명, 생명을 낚는 것임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나를 따라오너라‘ 라는 이 예수님의 음성이 오늘 게네사렛 호숫가에 잔잔히 울립니다. 그리고 이 음성이 2024년 하반기를 시작하는 저와 여러분에게도 들립니다.
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물고기를 잡고자 오늘도 그물을 손질하고 배를 띄우며 열심히 나아갑니다. 번쩍거리는 은화같은 물고리를 배에 가득 싣고 오는 꿈을 꿉니다. 어디가 황금 어장인지 알고 싶어서 경쟁하고 그것만이 행복인 줄 알고 온갖 정신이 빼앗겼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생명을 낚을 줄 아는 어부를 찾으십니다.
우리 스스로에게 질문해 봅시면 좋겠습니다. 혹시 나의 삶에 ’비어 있는 그물‘이 있는지, 무엇 때문에 그토록 비어 있게 되어 있는지 말입니다. 우리에게는 각자 텅텅 비어있는 허무한 그물이 다 있습니다. 깊은 노력과 분투에도 여전히 비어있는 그물이 삶 가운데 존재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너의의 ’비어 있음‘은 결코 비극이나 절망이 아니다. 그 비어 있는 공간에 내가 찾아가겠다. 그리고 너에게 참된 삶의 생기를 주고 그 생명을 건져올리는 어부로 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외로움과 절망와 낙망의 자리에 주님이 찾아오실 때 이렇게 반응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여 저를 주님의 말씀으로 저를 불러 주십시오. 생명의 그물에 제가 산 채로 포획되기를 갈망합니다. 주님의 제자로 주님 뒤를 바짝 쫒아가겠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저와 여러분 한분 한분을 생명의 말씀으로 끌어올려 주셔서, 빈 그물에 미련을 뒤로하고, 주님이 부르시고 이끄시는 곳으로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따라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부르심의 여정 가운데 주위에 죽어가는 생명들 낚아 올리는 어부로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도 2024년 하반기를 시작하며 주님 우리 에게 귀한 말씀 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는 물고기 떼를 주님 보다 더 사랑하고 죄 가운데 살다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였습니다. 우리를 주님의 말씀으로 불려주시사 제자로 살아가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시몬이 바다에 그물을 던지고 그것에 진정한 행복과 두었지만 이제는 주님, 퀴리오스이신 주님을 만나 갈릴리바다나 물고기나 그물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이 주관하시는 인생으로 변하게 된 것을 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도 주님을 만나 죽음의 낚시를 내려놓고 사람낚는 생명의 낚시를 주님과 더불
물고기 떼를 쫓아 헤매는 삶이 아니라 생명을 찾아 예수님을 쫓아 따라가는 참된 제자되게 하소서. 우리에게 비어있는 그물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허무한 것에 주목하지 않고 그곳에 주님이 오셔서 기쁨과 감사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