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이 이방 민족들 가운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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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일부터 저희 교회는 이제 더이상 예배하지 않습니다. 다음주 1시에 오시더라도 사딬 할아버지가 문을 열어주지 않을 것입니다. 찬양, 기도, 말씀선포도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지 않으실 뿐더러 더이상 할 필요도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냥 집에 있는게 낫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께 우리의 온전치 못한 마음을 들켜 버렸기 때문입니다.
지난주 본문 10절이 바로 이런 말씀이었습니다. (10절) 마음과 제물 모두 온전치 못하게 드렸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대표한 제사장들의 예배,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시고, 좋게 보지도 않으시고, 오히려 싫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진정한 예배가 무엇인가를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모시지 않는 마음에도 없는 화려한 제사가 아닌, JX의 죽음과 부활로 새롭게 된 참된 마음으로 하나님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예배가 참예배다!
(다같이 롬 12:1-2) ‘형제자매 여러분,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힘입어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이 드릴 합당한 예배입니다. 여러분은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도록 하십시오’
(다같이 히13:15-16) ‘그러니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끊임없이 하나님께 찬미의 제사를 드립시다. 이것은 곧 그의 이름을 고백하는 입술의 열매입니다. 선을 행함과 가진 것을 나눠주기를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이런 제사를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예배는 예수의 피로 힘입어 나가는 것이다! 예수 없는 예배는 있을 수 없다! 예수 때문에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기뻐하실 만한 24-7 하나님 사랑하고 이웃 사랑하는 살아있는 삶의 예배! 이것이 지난주 말씀의 요지였습니다. 오늘 말씀도 지난주 본문에 이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하지 않은 제사장들을 향한 경고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예배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회개와 회복의 말씀 되길 바랍니다.
(11절) 오늘 말씀의 핵심구절입니다. 1:5에서 하나님은 같은 말씀을 하셨지요. ‘주님은 이스라엘 나라 밖에서도 높임을 받으신다’ 하고 고백할 것이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해 뜨는 데부터 해 지는 데까지! 시50:1 ‘전능하신 분, 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어, 해가 돋는 데서부터 해 지는 데까지, 온 세상을 불러모으신다’ 사45:6 ‘해가 뜨는 곳에서나, 해가 지는 곳에서나, 나 밖에 다른 신이 없음을 사람들이 알게 하겠다. 나는 주다. 나 밖에는 다른 이가 없다’
모든 세상에서 높임 받으시는 하나님! 오직 하나밈 만이 누리실 수 있는, 누리셔야만 하는 영광입니다. 곳곳마다! 모든 민족을 포함한 우주 만물 가운데 높임을 받으시는 예배! 하나님의 창조하신 범위가 하나님의 우리를 사랑하신 사랑의 범위이며, 그 사랑으로 지음받은 우리의 사랑의 범위이자 예배의 범위이고 찬양의 범위입니다.
이방 민족들 가운데서 높임을 받으신다 하셨습니다. 사2:2-4 이제는 더이상 이스라엘이 침략 당하거나 서로 전쟁을 일으키지 않고,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어 모든 민족이 평화를 누리며 창조주 하나님을 예배하는 날! 결국 영원히 하나님 예배하는 하나님 나라의 비전! 이 날을 위해 하나님은 일하고 계셨고 일하고 계십니다. 이것을 우리는 하나님의 선교라고 하는 것이죠. 하나님 이름으로 그분 앞에 당당히 나아갈 수 있고, 예수라는 깨끗한 제물로 하나님을 예배하게 하셨죠. 모든 민족에게! 지금도 교회를 통하여 그 일을 하게 하십니다.
자, 이렇게 이방 민족도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며 예배할 것이다! 이 말씀을 듣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바벨론에서 풀려나서 고향으로 돌아온지 얼마나 되었다고, 지금도 다른 민족에게 간섭받고 있는데 무슨 말씀이세요! 우리를 힘들게 한 이방민족이 수두룩한데! 아니, 우리는 하나님 백성인데 우리 예배는 싫다 하시고 이방인들한테 예배를 받으신다고요? 너무하시는거 아니세요?
선민이라 자처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듣기 힘든 선지자의 목소리였을 것입니다. 지금도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이기도 하죠. 왜 힘들까요? 질투입니다. 우리만 하나님 자녀인줄 알았는데! 이것은 옛적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되돌이키시려는 방법 중 하나였습니다.
신32:20, 21 ‘그들에게 나의 얼굴을 숨기겠다. 그들이 마침내는 어떻게 되는지, 두고 보겠다. 그들은 타락한 세대, 진실이라고는 털끝만큼도 없는 자들이다. 우상을 섬겨서 나를 격분시켰고, 신이 아닌 것들을 신이라고 섬겨서 나의 질투에 불을 붙였다. 그러니 이제 나도, 내 백성이 아닌 딴 백성을 내 백성으로 삼아서, 그들의 질투심에 불을 붙이고, 어리석은 민족을 내 백성으로 만들어 그들을 격분시키겠다’
이 말씀을 바울이 살짝 인용한 듯 합니다. 롬 11:13, 14 ‘이제 나는 이방 사람인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내가 이방 사람에게 보내심을 받은 사도이니만큼, 나는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나는 아무쪼록, 내 동족에게 질투심을 일으켜서, 그 가운데서 몇 사람만이라도 구원하고 싶습니다’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여 하나님 백성 되게 할 것인데, 이렇게라도 이스라엘 동족들을 구원하고 싶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입니다.
여기서 질투는 열심이라는 뜻과도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즉, 질투를 일으키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열심을 북돋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왜 선지자들을 통해서 여러 경고를 하시고, 무서운 말씀도 하십니까? 사랑해서 입니다.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냥 내어버려 두시면 됩니다. 그런데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 사랑은 신실하고 변치 않는 헤세드 사랑, 그 하나님의 열심으로 자신의 백성들이 정신차리고 돌아오기를 간절히 원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경고는 곧 사랑입니다.
예배가 무엇입니까? 뉴커신에서 저자는 이렇게 정의합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향한 피조물의 가장 완전한 순종적 표현’이고, ‘피조물이 삼위 하나님을 사랑하는 가장 적극적인 행위’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예배가 무너졌으니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와 위대하심을 잊는 것도 당연한 결과입니다. 그 하나님을 잊으니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어떻게 예배해야 는지도 잊는 것 또한 당연합니다. 이것이 말라기 시대에 혹은 전 시대에 걸쳐 이스라엘이 실패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 공동체가 예배하며 나아가는 순간을 결코 소홀히 여겨서는 안됩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를 잊지 않았습니까? 나 만의 하나님, 나 만의 구원을 이루신 하나님으로만 여기지 않습니까? 개인구원만 강조하다보니 이웃구원을 잊고 살지는 않습니까?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해내신 JX를 의지하여 창조주 하나님을 예배하며, 그분이 누구이신지를 확인하고, 그 분의 성품대로 신실하고 적극적으로 삶의 예배 드리시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12절) 자기들도 먹지 못하는 음식을 바칩니다. 집에 오는 손님한테도 이런 식으로는 안합니다. 그렇지 않나요? 물 한 잔을 건네도 정성을 다하는게 상식입니다. 지금 이 제사장들은 하나님을 대하는 자세가 전혀 되어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 이름을 더럽힌다는 말은 곧 그 존재를 무시한다는 말이죠.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 때문에 산 제사로 예배하는 자들이라고 말씀드렸지요? 우리 자신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 제물입니다. 일상의 말과 행동에서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며 예배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더러는 우리 자신이 하나님 받으시기 기뻐하시는 모습을 위해 열심을 내지 않습니다. 내 죄와 연약함을 언제든지 꺼내어놓고 하나님의 용서와 도우심을 구하지 않습니다. 대신 ‘난 어차피 부족해, 어차피 우리는 연약해’ 하면서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지 돌아다 볼 문제입니다.
좋은게 좋은거 아니냐, 현재 상황에 만족할 수 없습니다. 자기 만족에는 발전이 있을 수 없습니다. 난 여전히 부족하다는 현재 상황과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며 마음을 놔버리면 결코 변할 수 없습니다. 어제 보다도 더 나은 오늘의 구원의 여정을 위해 우리가 구할 것은 은혜입니다. 나의 아직 온전치 못한 모습을 주의 손으로 다듬어 주셔서 예수 닮게 해주세요 은혜를 구하며 날마다 새로운 영생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13절) ‘이 얼마나 싫증나는 일인가!’ 이 구절은 개정으로 보면 좋겠습니다. ‘이 일이 얼마나 번거로운고 하며 코웃음친다!’ 이게 하나님 앞에서 할 말입니까? 이런 마음으로 제물을 준비해서 예배하는데, 그 제물이 온전한 제물이었겠습니까? 어떤 제물을 바쳤다고 하십니까? 훔친 짐승이라 하십니다. 아마도 소나 양을 기르는 목축업자 백성들로부터 부당하게 압력했거나 착취한 제물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절뚝거리거나 병든 짐승이라 하십니다. 흠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도 않고 그냥 귀찮은 겁니다. 그리고 그런 동물은 구입가격이 얼마였을까요? 값싸게 흥정했을 것입니다. 이런 제물을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셨을까요?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이 다 망가진 예배자들의 모습을 봅니다.
왜 싫증이 납니까? 평생 하나님을 위해 해왔던 일들이 왜 번거롭게 느껴집니까? 전에는 열과 성을 다했던 일들인데 이제 왜 우스운 일이 되고 맙니까? 직장에서 일할 때도 얼마나 기도 많이 하고 들어갔습니까? 결혼도 얼마나 기대를 많이 했습니까?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도 얼마나 원했던 일이었습니까? 기쁨과 설레임은 잠시, 모든 것이 싫증나고 번거롭고 그냥 대충하는 일상의 반복 아닙니까? 왜 그럴까요?
혹시 주일예배나 교회 봉사도 그렇지 않을까요? 함께 모이는 몇 시간 잘 버티자, 그저 친구들 만나서 수다 떠는 시간인가요? 교회생활에 은혜가 있습니까? 배움이 있습니까? 성장이 있습니까? 기쁨이 있습니까? JX의 죽음과 부활이 내게 감사가 되는 감동이 있습니까? 뭐, 이렇게라도 오는게 좋은거다에서 그치지 말고 우리가 여기 모이고 또 흩어지는 궁극적인 목적와 원인을 생각하고 돌이켜서서 예수라는 본질을 계속 회복해야합니다.
여러분, 본질이 망가지면 모든 것이 형식이 됩니다. 예수라는 본질이 망가지면 모든 것이 습관이 된다. 예수라는 본질이 망가져서 내 안에 사랑이 없다면 모든 것이 형식이 되고, 습관이 되고, 의무가 되어버립니다. 지루한 의무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이 아닌, 오직 살아계시는 JX의 복음의 기쁨에 푹 젖어 그 예수의 삶을 살아내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마지막 구절입니다. (14절) 너무 코미디 같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전혀 모를거라고 생각하는 것인가요? 속이고 나서 하나님께 약속한 그 좋은 동물은 어디로 갔을까요? 사56:11 ‘지도자라는 것들은 굶주린 개처럼 그렇게 먹고도 만족할 줄을 모른다. 백성을 지키는 지도자가 되어서도 분별력이 없다. 모두들 저 좋을 대로만 하고 저마다 제 배만 채운다’
우리도 모두 다 드리리, 맘다해 예배합니다라고 고백하지 않습니까? 영원히 찬양하리라 찬양하고나서 하나님이 아닌 한 주 간 내가 받고 싶은 나의 칭송을 더 사모하지는 않습니까? 하나님께 인정받기 보다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승진하는 것을 더 갈망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마음보다는 나의 킹덤을 가꿔가기 바쁘지 않습니까?
우리가 하나님 앞에 다짐하고 약속하고 고백하는 것, 실천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바램과 기도, 하나도 땅에 떨어뜨리지 않으십니다. 계11:17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신 전능하신 주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은 큰 능력을 가지고 다스리는 왕이십니다’ 과거형 ‘전에도’ 보다 ‘지금도’라는 현재형이 먼저 와있습니다. 큰 능력을 가지고 지금 나를 다스리시는 오늘의 하나님을 만나고, 오늘의 하나님을 알아가며, 오늘의 하나님을 예배하는게 중요합니다. 그때 비로소 과거에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인도하셨으며, 앞으로 어떻게 인도하시는지 알면 더욱 감사찬송할 수 있습니다. 우리 실천해 봅시다. 이번 한 주 간 우리가 올려드리는 찬양 가사대로 주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는 시간을 따로 가져 봅시다. 의무적이 아닌 거룩한 습관으로 계속 실천하며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드러내는 예배자들 되시길 바랍니다!
맺는말:
넷플릭스 돌풍. 설경구. ‘선을 넘은 자에게 한계는 없어’ 죄>하나님 나라의 삶
다 아시는 하나님
우리 죄, 연약함 모두
오히려 하나님이 우리에게 최고의 것을 주셨습니다. JX!
한치의 빈틈 없이 예배받으시는 하나님
한치의 흠이 없는 거룩하신 하나님은 그런 마음을 원하신다.
죄가 섞인 예배는 절대 받지 않으신다.
죄와 섞일 수 없는 분이다.
제사장 역할을 한 이스라엘
우리도 교회로서 세상을 섬기는 제사장 역할
은혜 입은 자들의 자세!
정말로 그 은혜를 아는가? 그 은혜에 합당하게 살아갑니까?
높임 받으실 이름 - 거룩히 여김을 받으셔야 하는데.
JX의 비전/사명.
곧 우리의 사명.
얼마나 크신 하나님이신지!
교회 밖으로 좀 보자!
하나님의 처소와 성령의 전 > 땅에서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유일한 천국의 전초기지, 하나님의 영광을 땅에서 드러내는 공동체 = 그래서 교회는 선교적!
위대한 명령 – 복음전파
위대한 계명 –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예수를 높여드림 = 예수의 생각대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으로 파송 받는 시간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데, 어떻게 하나님 경외하라고 외칠 수 있는가?
구원받지 못했는데, 그래서 삶의 변화가 없는데 어찌 구원받으라고 선포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여기지 않는데, 어떻게 하나님 믿으라고 말할 수 있는가?
우리가 예수를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데, 어찌 예수 믿으라고 할 수 있는가?
예수처럼 살지 않는데, 예수 믿으라고 자신있게 권할 수 있습니까?
설교후찬양: 날 위해 이 땅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