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4장 10-13절(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빌립보서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204 views
Notes
Transcript
빌립보서는 크게 세 주제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번째는, 성육신에 관한 교리적 내용을 설명하고,
두번째는 동역자의 관계를 설명합니다.
그리고 세번째가 기쁨의 언어 입니다.
빌립보서에는 약 16회의 기쁨에 관한 어휘가 등장을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빌립보 교인들을 향하여 크게 기뻐한다고 전합니다.
본문 10절 입니다.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다시 싹이 난다 라는 이 말은 자신을 생각하는 빌립보 교회의 마음이 다시 살아나고 있음을 내가 너무 잘 느끼고 있다, 잘 알고 있다 라는 뜻입니다.
특히 빌립보 교회는 로마에서 가택 구금 상태였던 바울을 돕기 위하여 / 어려운 상황 에서도 최선을 다해 구제비를 모아 에바브로디도를 통해 전달하였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가 주 안에서 기쁜 이유를 물론 구제헌금을 전달하려는 교인들의 마음 때문이기도 하지만
진짜 중요한 기쁨의 이유는 물질의 후원이나 풍족함 때문이 아니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자족하는 방법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교인들을 향하여 감사와 기쁨을 전하면서,
그럼에도 그리스도를 믿는 자로써의 믿음, 가치, 목적이 무엇인지를 가르치고, 권면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습니다.
바울은 12절에서 자신이 그리스도를 믿고 난 이후에 배우고 경험한 것이 무엇인지를 설명합니다.
12절 입니다.
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바울은 자신의 살아온 인생을 통해 배운 중요한 것을 가르쳐줍니다.
그리고 그것을 요약하면 두 단어만 남는데 그것은 비천과 풍부 입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풍부함은 통장 잔고가 아닙니다.
복음을 전하고, 교회가 세워지고, 수 많은 동역자들이 복음을 향해 함께 달려가는 것이
그에게 있어서 가장 큰 기쁨이고 풍요로움 입니다.
그래서 14절 이하에서 내가 왜 너희를 보면서 기쁜지 아니? 너희가 그리스도의 복음의 일에 참여하고 감당하기 때문이야 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의 삶은 비천하기도 했습니다.
비천하다는 것은 자신의 삶이 너무나도 초라하다 는 뜻이기도 합니다.
왜 바울이 자신의 삶을 비천하고 초라하다고 이야기 합니까?
첫번째 이유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너무나도 위대한 것인데, 이 복음에 참여하는 자가 너무 적기 때문 입니다.
빌립보서 2장 21절 입니다.
21. 그들이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
자신과 함께 한 동역자들 중에서도 복음의 일, 예수의 길을 걷기 보다는 자신의 유익과 만족을 위해 신앙을 택하고, 하나님과 세상에 양다리를 걸치는 자들이 너무나도 많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자신의 유익과 만족을 위해 사용하는 변하지 않는 자들을 보며 복음을 전하는 자로써의 부족함과 한계를 느끼고 낙심한다는 뜻 입니다.
두번째 이유는, 바울의 사역 때문 입니다.
그나마 빌립보 교회에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은 그다지 큰 문제가 없는 교회 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사역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너무나도 힘든 사역자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예전에 바울 서신을 공부하면서 바울이 사역자로써 어떠한가를 생각한 적이 있는데,
결과적으로는 좋은 사역자 였지만,
오늘날 기준으로 사역의 성공 이라고 했을 때 바울은 실패한 사역자 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이 기준은 하나님의 기준 보다는 소위 교회의 성장과 사역자로써의 성공이라고 이야기 되는 것들을 기준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예를 들면 바울이 열심을 다하여 복음을 전하고 세워진 교회들 가운데 문제가 없는 교회가 없습니다.
그 중 대표적으로 고린도 교회는 파벌 싸움과 은사로 사람을 판단하고 급을 나누는 일들이 파다했습니다.
바울이 진정시키고 권면하기 위해 서신을 보냈지만, 오히려 바울의 편지를 보고 더 교회가 분열되고 나눠졌습니다.
고린도교회 뿐만 아니라 다른 교회들도 마찬가지로 유대교와 거짓선지자들로 인해 구원관이 흔들리고,
사도성을 의심받기도 하고, 복음을 듣고 회심했다가 배신한 자들로 인해 공경에 처하고, 목숨을 잃을 뻔한 일들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기준에서는 닮고 싶지 않는 사역자, 굳이 유난떨며 저렇게 신앙생활을 해야 하냐 라는 비아냥을 들을 삶을 살았습니다.
그렇지만 바울의 고백은 단호합니다.
풍부와 비천에 적응 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 모든 비결을 내가 배웠기에 절대로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절대로 흔들리지 않는 굳건함과 강함의 근원이 어디서 나오는 것입니까?
13절 입니다.
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바울에게 능력을 주시는 자가 누구이십니까?
그의 사역에 가장 큰 조력자이며 능력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입니다.
그가 사역에 실패한 것 처럼 교회가 흔들리고, 복음이 무너져 가는 상황 속에서도 애를 쓰며 다시 복음으로 세울 수 있게 힘을 주시고,
때로는 돌에 맞고 배신을 당해도 이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는 가장 큰 능력이
나의 주 나의 예수 그리스도 이시다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말씀을 유리한데로 해석 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만 잘 믿으면 우리에게 불가능은 없다, 하나님은 내 빽이니까 나는 어떤 일을 해도 다 해낼 수 있다 라는 뜻으로 오해 합니다.
한때 한국교회를 휩쓸었던 조엘 오스틴이 쓴 긍정의 힘이라는 책이 그 증거 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긍정적으로 살면 우리 삶이 다 잘된다 는 이 말이 한국교회의 주류를 이룬 적이 있습니다.
또 이 말씀 때문에 어느 한 선교 단체는 길을 가다가 어떤 빌딩을 보고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우리가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이 빌딩을 달라고 기도합시다. 믿습니까? 아멘~
이라고 했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소위 신앙이 좋다, 믿음이 좋다는 이 기준을 / 세상의 성공과 개인의 성공와 긍정에 맞춰 생각합니다.
하나님께 기도요청하면 언제나 내 기도는 다 들어주십니까? 하나님께 요청하면 언제나 내가 성공 합니까? 아니 성공해야 됩니까?
교회가 커지면, 내가 성공하면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것입니까?
북이스라엘의 역사상 가장 부요하고 땅이 넓었을 때가 여로보암 2세가 왕이었던 때 입니다.
그런데 그 왕은 이스라엘의 역사상 가장 악한 왕 중 한 사람 입니다.
교회가 커졌다고, 내가 성공했다고 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신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오히려 가장 타락하기 좋은 조건 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나라가 부흥하고 승리한다는 사실을 확신해야 하지만,
모든 것을 나 자신에게 초점을 맞추는 긍정은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께 무슨 능력을 간구하고 있습니까?
세상의 성공과 나의 만족과 유익을 위한 능력과 긍정적 사고를 해야 한다는 말씀 입니까?
바울의 이 고백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빌립보서 1장 29절 입니다. (함께)
29.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위하여,
복음을 위하여 고난의 길도 기쁨으로 걸어 가겠다는 삶의 고백 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세상의 모든 능력과 지혜와 길과 방법과 삶을 배설물로 여긴다고 고백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푯대를 향하여 달려 가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우리 중고등부 학생들 가운데 복음의 확신이 없고 흔들리면서 살아가는 아이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물론 이런 모습이 아마 중고등학생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난달에 3주간 구원이란 무엇인지, 구원의 확신과 구원의 점진성에 대하여 설교를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의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우리들에게서 여전히 하나님보다 세상의 가치가 더 중요하다고 보고 배우는 우리 중고등부 아이들이 생각이 나서 너무나도 마음이 아팠습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히브리서 6장 1-2절 입니다.
1.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2.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가 무엇입니까?
구원을 받았나, 받지 않았나, 예수 믿으면 복을 받나 안받나, 예수는 날 위해 뭘 해줄 수 있나
이런 복음의 초보를 넘어서서 완전한 곳으로, 완전한 순종과 모든 기준이 그리스도인 것이 당연한 자의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바울의 이런 고백과 삶이 특별하게 느껴지고, 내가 할 수 없는 너무나도 먼 당신의 고백과 같이 생각되는 것은
우리는 아직도 여전히 하나님과 세상, 구원과 세상의 욕망 사이에서 무엇이 나에게 더 큰 이득인지를 고민하고 저울질 하기 때문입니다.
구원 받은 그리스도인, 주님만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은 훨씬 고차원적인 삶 입니다.
주님을 위해 나의 하나를 내어주고 다른 하나나 아니면 두개를 받는 것,
그래서 인생의 큰 위험성을 주님을 위해 감수한다는 결단 정도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의 틀을 닦고, 세우면서 교회를 개척하고, 복음을 전하면서 겪는 수많은 고난을 감당한 바울 입니다.
주님은 유대교에 심취해 교회를 멸망시키러 오는 바울을 다메섹 도상에서 만나주시고 그의 인생을 완전히 변화 시키셨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 때문에 유대교 지도자의 명예와 가족과 가문을 버렸고 로마의 시민권 조차도 버린 자 입니다.
가만히 있어도 누릴 수 있는 부와 명예와 명성과 모든 것들을 인정받지 못하고 거부당하는 예수 라는 이름 때문에 모든 것을 포기한 자가 바울 입니다.
이렇게 주님을 만나는 삶은 완전한 변화를 의미 합니다.
또한 그 변화를 위해 나아가는 것이 믿음이며, 신앙입니다.
단순히 순종해야지 라는 결단을 넘어서 주님은 완전한 순종과 복종이 당연한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 입니다. (함께)
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자,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살아계심을 알기에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에 순종하는 것은 선택과 특별한 결단이 아닌 당연한 것 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에게 있어서 명확한 기준점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내 안에 내가 죽고 그리스도께서 살아계십니까?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을 위해 나의 자아가 죽고, 오직 주를 위해 살아가기를 결단하며 그 길을 걷고 계십니까?
아니면 여전히 내 삶의 안위와 만족을 위해 주님께 떼를 쓰는 어린아이와 같습니까?
때로는 내 삶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비천하고 궁핍하여도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을 위한 삶에 감사가 넘치고 계십니까?
아니면 여전히 내 입에는 채워지지 않는 세상의 것들로 인해 불평과 불만과 시기와 질투가 가득차 있습니까?
주께서 보내신 우리 교회 공동체를 세우기 위해 기도와 헌신의 섬김을 감당하고 계십니까?
아니면 여전히 기도하기 보다는 교회의 불만을 품고, 복음이 아닌 불만을 전하는 자로 살고 계십니까?
우리 모두가 순종의 결단을 넘어서는 완전한 주님 앞에서의 복종이 당연한 삶,
주님을 위해서는 고난도 기쁨으로 감당하며
우리 주님을 누구보다도 가장 가깝게 닮아가는 것이 우리의 가장 큰 기쁨이며 자랑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 합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항상 우리는 ‘ 내 삶에 그리스도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가? 주를 위해 내가 가장 아끼는 돈, 건강, 삶, 명예, 자존심, 인정, 가족, 자녀 등을 포기할 수 있는가? 를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한번씩 페이스북에 8년전 추억입니다 하고 그 때 올린 저희 아들의 어릴 때 사진이 뜰 때가 있습니다.
그 사진을 보면서 참..이때는 귀여웠는데 지금은…이라고 이야기 하다가 아들 눈치를 한번 보고 지금은 멋지네 라고 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 두, 세살 때가 귀엽고 좋았다고 8년이 지난 지금도 자라지 않고 여전히 그 모습이라면, 똑같은 모습이지만 너무 마음이 아프고, 힘들고, 고민이 될 것입니다.
비록 다시 볼 수 는 없지만 그 시기를 거쳤기 때문에 지금의 모습과 삶이 있고, 예전의 모습이 추억이 될 수 있습니다.
변화와 순종과 결단은 성장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 성장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믿음의 성장은 나 스스로가 의지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내게 능력주시는 자를 알고, 그를 더욱 의지하고, 의존하며, 그 분을 위해 살아가는 것입니다.
언제까지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에 머물러, 그것들을 고민하면서 사시겠습니까?
이제는 구원의 확신과 신앙과 삶의 순종의 결단을 뛰어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바울이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지? 를 아무리 고민해봐도 결국 답은 예수 그리스도 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모든 기준은 또한 오직 그리스도 입니다.
바울은 고난과 핍박이 있고, 오해와 절망의 상황 속에서도,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하여지고, 다시 회복되고 성장하는 교회를 보며
참된 기쁨과 행복을 누린다고 합니다.
우리는 무엇에 참된 기쁨과 행복을 누리고 있습니까?
때로는 좁은 길과 고난의 길을 걸어도, 그 길을 주와 함께 손을 잡고 걸어가기에
그 길이 두렵지 않고, 오히려 행복과 기쁨을 누리는
세상이 이해할 수 없는 참 은혜를 누리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의 입술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 안에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가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라고 고백하며 살아가는
사랑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 합니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