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것에도 주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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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사도행전 10:11-15(신약 204쪽)
설교제목 : 평범한 것에도 주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11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
12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종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더라
13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어라 하거늘
14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내가 결코 먹지 아니하였나이다 한대
15 또 두 번째 소리가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
반갑습니다.
오늘도 은혜의 자리에 나오신 분들을 축복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구절은 베드로가 본 환상입니다. 이 환상은 베드로가 유대인이 아닌 고넬료를 만나기 전에 주님께서 보여주신 환상입니다. 하나님은 환상 중에서 베드로에게 여러 동물들을 보이시며 그것을 잡아먹으라고 명령하십니다. 아마도 그 동물들은 레위기 11장에서 부정하다고 일컬어지는 동물들로 보여집니다. 참고로 레위기 11장은 먹어도 되는 정결한 동물과 먹어서는 안 되는 부정한 동물을 구분해서 알려줍니다. 해서 베드로는 그 부정한 동물들을 먹을 수 없다고 거부합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베드로에게 깨끗하게 하신 것을 부정하다고 말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베드로에게 이와 같은 환상을 보여주신 것은 당시 베드로를 비롯한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던 편견 때문이었습니다. 복음은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만 주신 것이라고 여기는 편견입니다. 하나님은 베드로에게 환상을 통해 하나님의 뜻은 유대인들의 편견과 다름을 일깨워주십니다. 더 나아가 이방인 보다 정확하게는 고넬료에게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뜻으로 베드로에게 그 환상을 보여주셨습니다. 저는 이 장면을 통해서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때때로 틀에 박힌 생각으로 인해 하나님의 뜻을 오해하게 되는 경우가 생기지 않는가 하고 말입니다.
저는 최근에 CBS의 ‘새롭게 하소서’라는 프로그램을 유튜브로 보면서 참으로 많은 분들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그 간증을 듣다보면 대체 어떻게 저렇게 힘든 삶의 순간들을 견뎌내고 지금의 신앙을 지킬 수 있었을까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특별히 최근에 들었던 김유비 목사님이란 분의 간증을 소개하자면 이렇습니다. 이 분은 자기 생애의 첫 기억을 이렇게 가지고 있습니다. 5살 무렵에 어둔 방안에서 아버지가 담배를 피고 있는 장면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아버지가 아들을 구타하다가 힘에 부쳐서 담배를 피며 잠깐 쉬고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술에 취해서 들어오는 날이면 아들인 자신을 구타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정신을 잃을 정도로 심한 구타가 이어졌고 잠깐 정신이 들었을 때, 아버지가 담배를 피고 있는 장면은 엄청난 공포로 다가왔다고 합니다. 담배 불이 꺼지면 또 다시 자신을 향한 구타가 이어질 것을 너무나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여동생이 그런 얘기를 했다고 합니다. 그 어린 시절 오빠가 이불에 둘둘 말려 축 늘어져 있는 모습을 보고 학교를 갔는데, 학교를 다녀와서도 여전히 축늘여 있는 모습을 보고 너무나 큰 절망을 느꼈다고 말입니다.
그토록 폭력에 시달리던 삶을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고등학교를 기숙사가 있는 학교로 진학하면서부터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곳에서의 생활은 더욱더 낙담하게 했다고 합니다. 그 학교는 기독교 대안학교로 전국에서 공부잘하는 학생들이 몰려들었는데, 자신은 도무지 그들을 따라 잡을 수도 없고 그들과 비교되는 자신의 삶이 너무 초라해서 견딜 수 없었답니다. 친구들은 주말이나 방학이 되면 집으로 다녀와서 행복한 모습으로 학교로 돌아오는데, 자신은 집을 피해 달아났기 때문에 전기마져 끊어진 기숙사에 홀로 숨어 주말과 방학을 지내야 했답니다. 그러한 시간이 1년이 지나고 너무 큰 우울감과 분노가 극에 달하게 되었답니다.
그러다 죽을 결심을 하고 죽으러 갔다가 하나님을 극적으로 만나는 은혜를 체험하게 됩니다. 그로부터 변화된 그는 새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공부를 하게 되었고 신학교에 입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신학교를 다니던 중에 전도에 관한 도전을 받고 지하철 전도를 하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한다는 것이 너무 힘들었답니다. 첫 시도를 하던 날 지하철 첫 칸에서 마지막 칸으로 이어지는 칸을 통과하면서 한 마디 말도 못하고 지하철 마지막 칸에 이르렀을 때 좌괴감에 몸부림 쳤답니다.
물론 낯선 사람들 앞에서 복음을 전하는 일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답니다. 어린 시절에 아버지에게서 받은 학대로 인해서 자존감이 떨어져 대인기피층에 말더듬이 증상이 있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그 증상이 심해져 가까운 이들과는 말을 할 수 있어서도 낯선 이들에게는 아예 말을 할 수 없는 일종의 실어증 증세까지 나타납니다. 자신에게 일어난 이러한 모든 일들에 너무나 괴롭고 힘든 나날이었습니다.
그런데 참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김유비 목사님을 들어쓰기 시작하는데요. 계속되던 그의 노력이 빛을 바래는 순간이 왔답니다. 지하철 막차를 탔는데 사람들이 대부분 취해서 헤롱헤롱 거리고 있었답니다. 그때 사람들에게 복음을 외치기 시작했는데, 정신이 없는 사람들이 그 소리에 아무런 대구가 없자 오히려 자신감이 붙어서 기차 처음 칸부터 끝 칸까지 복음을 전하게 되었답니다. 그렇게 힘겨운 노력 끝에 사람들 앞에서 복음을 증거할 수 있게 되었답니다.
그 외에도 여러 우여곡절이 많이 있는데, 제가 이야기를 접하면서 이런 깨달음이 왔습니다. 어쩌면 오늘 나의 삶이 참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사실 앞서 소개드린 김유비 목사님처럼 힘겹게 목사가 되지 않았고요.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다고 해도 아버지에게 학대를 당한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제가 내성적이긴 하지만 설교가 어려울 정도로 말을 더듬거나 사람들 앞에서 말을 못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것이 그냥 평범한 삶이라고 생각했는데요. 다시 생각해보니 내게 주어진 이 평범함이 얼마나 귀하고 값진 것인지를 생각하게 됐습니다.
제가 ‘새롭게 하소서’라는 프로그램과 같이 누군가 대단한 간증의 이야기를 들으면 종종 부러웠습니다. 뭔가 그들의 삶이 특별해 보이고 그에 따른 사역이 또 굉장히 의미있어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음한켠에 이런 생각이 있었습니다. 나에게도 저렇게 멋진 간증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 말입니다. 주님 은혜로 삶이 극적으로 변화되고 주님만으로 온전한 삶을 살아온 증거가 되는 자랑할 만한 간증거리 말입니다. 그런데 제가 김유비 목사님 얘기를 들으면서 참 어리석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만약 나라면, 저렇게 고통스러운 삶을 진정으로 원했을까 혹은 나는 정말 저렇게 살고 싶을까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간혹 우리는 성공한 사람들의 그 성공에만 집중해서 관심을 가질지도 모릅니다. 그가 이룬 성공이 너무 대단해 보이고 멋있어 보여서 그러한 성공을 나도 이루고 싶다는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 성공의 시간까지 그 성공 이룬 사람에게는 적잖은 고통의 시간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결국 피땀어린 시간을 통과하지 않으면 대단한 열매를 얻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 다르게 생각해 보자면 오늘 우리가 누리는 일상은 고통의 시간에 놓인 사람들이 얻고자 애썼던 순간일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평범함이라고 부르는 일상을 소홀히 여기거나 가볍게 바라볼지 모르지만 사실 그와 같은 일상을 누리 못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잘 아는 ‘은혜’라는 찬양에 이러한 가사가 나옵니다. ‘내 삶에 당연한것 하나도 없었던 것을 모든 것이 은혜, 은혜였소’ 오늘 평범하기 짝이없어 보이는 내 삶이 사실은 하나님께 받은 참으로 귀한 은혜의 순간이라는 것입니다. 돌이켜 보면 그렇지 않습니까?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이렇게 무탈하게 이 순간을 살아내고 있기까지 내게 주어진 삶은 하나님의 은혜로 이룩되어져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오늘 우리 안에 깨어지고 변화되어야 할 편견이 아닌가 합니다.
베드로는 편견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이방인도 구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어쩌면 우리도 우리 안에 있는 편견들로 인해서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합니다. 오늘 내 삶은 참으로 복되고 귀한 삶인데 우리는 그것을 평범하다고 별거아니라고 착각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세상에서 흔히 잘 나가고 성공했다는 사람들처럼 삐까번쩍한 삶을 누리지 못한 것에 아쉬워하면서 오늘 우리에게 주신 선물같은 삶을 귀하고 소중하게 여기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편견입니다. 오늘 우리의 평범한 삶은 누군가가 그렇게도 소망했던 삶의 시간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해주신 아주 특별하고 의미있는 삶의 시간입니다. 그리하여 바라건대 우리에게 주어진 오늘을 잘 살아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어제와 같은 삶을 우리에게 허락해 주셨습니다. 큰 탈 없도록 큰 문제 없도록 오늘 하루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 은혜를 베풀어주신 주님께 오늘도 감사와 찬양을 드릴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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