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칭찬받는 삶을 이룹시다.
Notes
Transcript
성경본문 : 누가복음 6:26(신약 99쪽)
설교제목 : 하나님께 칭찬받는 삶을 이룹시다.
26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그들의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반갑습니다.
오늘도 은혜의 자리에 나오신 분들을 축복합니다.
대부분 아시겠지만, 저의 아내는 현재 이리신광교회에서 전도사로 사역합니다. 그 덕분에 저는 이리신광교회의 여러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그곳에서 행하는 세미나나 기도회와 같은 것을 아내를 통해 듣게 됩니다. 종종 아내는 제게 이리신광교회의 그러한 활동에 같이 참가할 것을 권합니다. 물론 그것은 제가 시간을 낼 수 있는 경우에 한해서 그리고 우리 신황등교회의 사역에 영향을 주지 않은 범위에서 말입니다.
이러한 아내의 권유는 사실 이리신광교회의 사역을 홍보할 목적보다는 저를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제 생각에는 아마 아내는 저와 함께 있기를 원해서 제게 같이 가자고 권유를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대체로는 그 시간이 제가 우리 교회에서 하루 일과를 마친 저녁시간이거나 또는 쉬는 날인 월요일에 있는 경우가 있어서요. 제는 피곤하다는 이유로 또는 다음날 해야할 일들로 시간을 잘 못내곤 했습니다. 그래도 너그러운 아내는 그것에 개의치 않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내심 아쉬운 마음이 있는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제게 물어보곤 합니다.
지난 주 금요일도 그랬습니다. 이리신광교회에서는 매달 1번씩 금요일에 이른바 ‘금요성령집회’라는 것을 가집니다. 오후 8시에 시작해서 10시가 넘어서 끝나는 기도모임입니다. 그동안 아내의 요구를 계속 거절한 것이 미안하기도 했고 또 모처럼 아내에게 칭찬받고 점수도 따려고 참석하기로 했습니다. 모처럼 예배 인도자로 또는 예배를 돕는 자로 예배의 자리에 나오지 않고 오로시 예배를 드리는 자로 회중석에 앉아 예배드리는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습니다. 내가 여기에 온 것은 어쩌면 하나님을 위해 또는 하나님께 예배드리러 온 것이 아니겠다는 생각 말입니다. 예배를 드리겠다고 왔지만 나의 관심은 아내에게 칭찬받고 점수딸 생각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목사잖아요. 문득 그런 섬뜩한 마음이 몰려오는 거예요. 만약 오늘 내 삶이 끝이나 하나님 앞에 서게 된다면 하나님은 내게 무어라 말씀하실까 하고 말입니다. 저는 나름 변명을 한답시고 그렇게 얘기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주님, 저는 목사로써 주님의 일을 하고자 나름 힘써왔습니다. 예배를 잘 드리기 위해서 애써왔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 증거하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그 말을 듣고서 ‘잘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말씀하실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나는 너를 모른다, 대체 너는 누구를 위해 살아 왔니?’라고 물으시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사실 교회에서 사역을 하면서 마음이 상하거나 힘든 순간들이 더러 있어요. 그것은 내 열심과 노력들이 인정받지 못하거나 어떤 비판을 받게 될 때 힘들곤 합니다. 더군다나 그들이 같이 사역하는 사람이거나 내가 담당하는 영역에 속한 분일때 더욱더 마음이 쓰이고 신경이 쓰입니다. 그래서 대체로는 이렇게 가까운 관계에서는 갈등을 일으키지 않으려고 또는 내가 상대의 칭찬을 받으려고 행동하게 되더라구요.
제가 목사로써 제일 심혈을 기울여서 애쓰는 사역이 있는데요. 그것은 바로 설교입니다. 언제나 이를 잘하고자 여러 노력을 기울이는데요. 제가 이와 같은 노력을 기울여 설교를 하는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 보니까요. 어쩌면 저는 설교 잘하고자 하는 것이 하나님을 위해서라기 보다는 저를 위해서 인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꼭 칭찬까지는 아니더라도 욕 안먹으려고 설교를 열심히 준비하게 되는데요. 그러다보니깐 설교를 준비하면서 계속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돼요. 이런 말을 하면 혹시라도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또는 이런 말을 하면 누가 불편해하지 않을까 하는 등의 생각을요. 물론 설교를 듣는 회중들을 고려해서 설교를 준비하는 것은 맞지만요.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인데, 하나님의 뜻을 전하려 하기보다는 계속해서 듣는 사람들에게 칭찬받거나 욕 안먹으려고 하는 저를 발견하게 되느 거예요.
그러면서 깨달아 지는 거예요. 내가 이렇게 계속 사역하면 안 되겠다고요. 진정으로 내가 하나님을 믿고 그분을 의지해서 사역을 한다면,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께 칭찬받는 사역을 해야겠다고요. 그래야 부지불식간에 죽음에 이르게 되었을 때, 다시 말해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부끄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면서 드는 마음이 무엇이냐면, 사람에게 상처받고 마음 상하는 일 그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왜냐하면, 내가 상처받고 마음 상하는 것이 어쩌면 그 사람을 하나님보다 더 신경쓰고 있기 때문에 생겨나는 문제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하나님께 더 관심을 향한다면 그분을 더 믿고 의지한다면 사람들의 반응이나 칭찬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깨달음이 왔어요.
놀랍게도 성경도 그와 같은 가르침을 우리에게 주고 있는데요.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성경 구절이 바로 그것입니다. 다시 한번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누가복음 6:26(신약 99쪽)
26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그들의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우리가 방금 읽은 성경구절은 마태복음 5장에서 7장까지 나오는 이른바 산상수훈이라는 예수님의 설교와 평행을 이루는 이른바 평지설교라는 거예요. 쉽게 말하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들려주신 말씀을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서 모두가 기록했는데요. 같은 내용을 마태복음에서는 산에서 행하신 설교로 길게 기록하고 누가복음에서도 산이 아닌 그냥 평지에서 행하신 설교로 짧게 기록하고 있다는 거예요. 특별히 우리가 읽은 성경구절은 마태복음 5장에 나오는 여덟가지 복 곧 8복에 관한 것을 누가복에서 짧게 요약해서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우리의 생각으로는 잘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을 하시죠. 가난한 사람에게 복이 있다고 하시고 우는 자에게 박해 받는 자에게 복이 있다고 말씀하세요. 또 이와는 반대로 부요한자 웃는자 칭찬받는 자에게 화가 있다고 말씀하세요. 우리 생각에는 그 반대가 맞는것 같은데, 예수님은 이상하게도 세상에서 이른바 비천하다고 여겨질 만한 사람들에게 복이 있다고 말씀하세요.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은 자칫 이런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어요.
옛날에는 계급이 있었잖아요. 왕과 양반과 같은 높은 계급이 있고 천민과 백정과 같은 낮은 계급이 있었어요. 이들은 계급에 따라 차별을 받았는데, 낮은 계급의 사람들은 결코 높은 계급의 사람이 될 수가 없었죠. 높은 계급이 될려면 나라의 관리로 등요되거나 해야하는데, 낮은 계급의 사람에게는 그러한 기회가 왠만해선 불가능한 것이었으니까요. 마치 예수님의 말씀은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이치고 복이니까 그냥 그렇게 주어진 삶을 억울해 말고 잘 살라는 뜻으로 오해할 수 있어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세상에서 소외받고 천대받는 사람들에게 복이 있다고 말씀하신 것은 그들이 그 자리에 계속 머물러 살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에요. 가진 자들에게는 거의 없지만 가지지 못한 자들에게 대부분 있는 것을 말씀하시는 건데요. 많은 것을 가진 사람들은 그것에 의존하다보니 하나님을 찾거나 하나님께 의존하지 않아요. 반대로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은 하나님 밖에 의존할 대상이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은 가난하고 소외된 것이 복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게 된 것이 복이라는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다시 말해 하나님이 복이라는 얘기를 하시는 거예요.
좀 말이 길어졌지만 그래서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은 모든 사람에게 칭찬받는 사람에게 화가 임하게 된다고 얘기하고 있어요. 왜냐하면 그 사람은 그 칭찬에 의지하여 하나님을 찾지 않거나 하나님보다 그 칭찬을 더 의지하게 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오히려 칭찬받는 사람보다 박해 받는 사람이 더 복이 있다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저는 이 말씀 안에서 깨닫게 되는 거예요. 언젠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려면 또는 하나님께 칭찬받는 삶을 살려면요. 세상의 어떤 것을 의지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이지요.
저는 지난 금요일 이리신광교회의 ‘금요성령집회’를 다녀와서요. 다음에 또 기회가 되면 와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것은 물론 제가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에게 칭찬을 받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요. 그것보다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가 그와 같은 예배의 자리인데,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힘써야하는 것이 내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일이고 더 나아가서 하나님께 칭찬받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지난 주는 아내를 위해서 그 집회에 참석했지만, 앞으로는 하나님을 위해서 그와 같은 예배의 자리에 또는 기도의 자리에 나아가야겠다는 다짐을 했어요.
일전에 담임목사님이 이 새벽기도회 설교 중에 그런 얘기를 하셨어요. ‘제가 목사라서 새벽기도회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 신앙인으로써 기도해야하기 때문에 새벽기도회에 나오는 것’이라고요. 그래서 ‘은퇴 후에도 새벽기도회를 힘써 나올 것’이라고요. 저는 이것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의 한 모습이라고 여겨집니다. 나의 선택이 다른 누군가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으로 인해서 결정되고 있으니 말입니다.
한번 스스로를 돌아보시길 바랍니다. 지금 내가 의지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또 내가 기도하고 있는 것은 혹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해 의지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무엇이 맞고 그른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자기 스스로에게 이렇게 질문해 보면 아주 정직하게 답할 수 있을 겁니다. 만약 내가 오늘 하나님 앞에 서게 된다면 하나님은 나를 어떻게 평가 하실까? 또 나는 하나님께 참으로 칭찬받게 될까?
바라건대, 오늘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것이 세상의 어떤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그분만을 오롯이 의지하며 살아갈 때 아마도 우리는 사람들의 말들로 상하거나 괴로워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오늘 우리가 구할 것은 사람들의 칭찬이 아니라 하나님이 칭찬이 되어지기를 간절히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