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세례 요한 보다 크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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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마가복음 1:6-8(신약 52쪽)
설교제목: 예수님은 세례 요한 보다 크십니다.
6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더라
7 그가 전파하여 이르되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8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었거니와
그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리라
반갑습니다.
오늘도 은혜의 자리에 나오신 분들을 축복합니다.
요사이에 저는 설교에 관한 책을 읽고 있습니다. 제 아내가 신학대학원 다닐 때 교과서로 썼던 책입니다. 설교에도 다양한 방식과 형식이 있음을 그 책을 통해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책을 읽으며 저의 설교를 돌아보았습니다. 여러 설교의 형식들 중에서 제가 주로 하는 설교의 방식은 ‘주제 설교’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는 어떤 주제로부터 성경말씀을 찾고 이를 설교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설교의 장점은 공감대를 쉽게 형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요즘 시대에 화제가 되는 내용이나 현재 우리의 관심에 집중하여 주제를 잡고 그로부터 설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상에 완벽한 것이 없듯이 이 설교의 형식에도 단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칫 성경 말씀보다는 설교자의 지식과 사상을 전하는 위험이 따릅니다. 이는 주객전도가 되어서 성경 말씀을 통해서 설교가 전달되어하는데, 주제를 앞세워서 성경이 이용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점을 보완하고 보다 성경적인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설교의 방법이 강해설교라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기존에 담임목사님이 이 시간을 통해서 성경책 한 권을 정해서 그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설교해 나가는 방식입니다. 물론 이 설교방식에도 단점은 있습니다. 주제설교와 반대로 시의적절한 주제를 반영하지 못함으로써 공감대 형성에 어려움이 있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으로부터 메시지를 끌어내어서 보다 성경적인 설교를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제가 이러한 말씀을 드리는 것은 저도 앞으로 강해설교 형식으로 설교의 방식을 전환해 보려고 합니다. 아무래도 과거의 습관이 남아 때때로 주제설교를 하기도 하겠지만, 보다 성경적인 설교를 하고자 변화를 주려합니다. 물론 주제설교가 성경적이지 않다는 얘기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로부터 벗어날 가능성이 높이 때문입니다. 해서, 기회가 닿는데로 오늘부터 신약성경 마가복음의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특별히 마가복음을 선택한 까닭은요. 성경의 전체적인 얘기를 이렇게 말해 볼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이야기’라고 말입니다. 우리가 구약이라고 부르는 성경의 내용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실 것이라는 약속이 담겨 있습니다. 또 신약이라고 부르는 성경의 내용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복음서가 가장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복음서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 중에서 가장 처음 쓰여진 복음서가 마가복음입니다.
해서 성경의 첫 책은 창세기이지만 성경의 핵심적인 얘기를 기록하는 첫 책은 마가복음으로 보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하여 오늘부터 마가복음의 이야기를 연속적으로 보면서 성경을 통해 하나님께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경우에 따라서 일정 부분은 건너띄거나 생략할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마가복음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살피는 것에 목적이 있습니다.
오늘이 변화의 첫 걸음이라 서론이 길었습니다. 이제본격적인 얘기를 풀어보자면 이렇습니다. 우리가 오늘 읽은 성경의 내용은 이러합니다. 예수님의 이종 사촌인 세례 요한의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세례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은 친척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세례 요한과는 친적관계입니다. 이 땅에 태어난 순서만을 놓고 보면, 세례 요한이 예수님보다 6개월 일찍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세례 요한은 예수님보다 앞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세상으로 나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는 장성한 이후에 요단강에서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며 회개할 것을 명하였습니다. 우리가 그를 세례 요한이라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가 많은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었기 때문입니다. 좀 보충해 말씀드릴 것은 세례 요한은 정확히 말하자면 침례 요한이라 불러야 합니다. 왜냐하면, 요단강에서 행한 세례를 사실은 침례 곧 물속에 완전히 잠겼다가 다시 건져내는 방식의 예식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장로교의 전통에 따라 세례 곧 머리에 물을 부어주는 방식으로 세례를 베풀기에 성경에 나오는 침례를 세례로 표기하였고 여기 성경에 나오는 요한 또한 세례 요한이라고 부릅니다.
여기에 관해서도 설명할 것이 많지만 간략하게만 정리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세례와 침례는 방식에 차이는 있지만 같은 뜻을 담고 있습니다. 침례가 물에 완전히 잠기는 것처럼, 세례 때 머리에 물을 붇거나 경우에 따라서 뿌리는 행위는 물에 완전히 잠겼음을 나타냅니다. 또 이러한 세례 예식은 결과적으로 같은 의미를 지니는데, 이전까지의 나는 죽었고 예수로 또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새로 태어났음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례 요한이 사람들에 앞에 나타난 모습에 우리는 주목해 보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구절의 6절입니다. 다시 한번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마가복음 1:6(신약 52쪽)
6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더라
오늘 성경 구절은 세례 요한의 복장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었다. 또 그가 메뚜기와 석청 곧 꿀을 먹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성경이 이렇게 상세한 설명을 덧붙이는 것에 우리는 주목하고 관심해야 합니다. 그것에는 눈여겨 보아야할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특별히 주목할 것은 그가 입고 있는 복장입니다. 이는 구약성경 열왕기하 1장 8절에 나오는 엘리야의 복장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세례 요한은 사람들 앞에 오래전 예언자의 모습으로 등장한 것입니다.
엘리야는 기원전 9세기 무렵에 북이스라엘에서 활동했던 예언자였습니다. 그는 우상숭배가 성했던 북이스라엘에서 하나님을 증거하고 바알과 아세라 우상 숭배자 850명과 대결을 펼쳐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했던 특별한 인물입니다. 우리로 치면 일제치하에 신앙의 절개를 지키기 위해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신앙을 위해 목숨을 내어놓았던 신앙에 열심이 특심인 인물이라 하겠습니다. 오늘 성경은 세례 요한 모습을 그와 같이 특별한 존재로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은 자신과 예수님을 이렇게 비교하여 설명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구절의 7절과 8절입니다. 다시 한번 같이 읽어봅니다.
마가복음 1:7-8(신약 52쪽)
7 그가 전파하여 이르되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8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었거니와
그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리라
세례 요한은 자신에 관해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내 뒤에 오시는 분 곧 예수님에 비해서 능력이 많이 모자랍니다. 나는 예수님의 신발끈을 푸는 하찮은 일 조차도 그분 앞에서 감당하기 부족한 사람입니다.’ 다시 말해 세례 요한은 예수님에 비해 아주 비천하고 별볼일없는 존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렸지만, 그가 정말로 별볼일 없는 존재일까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그가 엘리야에 버금가는 아주 특별한 존재로 그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러니 성경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이런 것입니다. 그 대단한 세례 요한도 예수님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존재에 불과합니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 보다 크신 분이고 예수님은 세상 그 누구보다 크신 분이십니다.
저는 마가복음의 시작에서 세례 요한을 등장시켜서 전하는 중요한 메시지가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바로 예수님이 이 세상에서 가장 크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비유하자면 그런 것이죠. 우리나라에서 서울대가면 공부 잘하는 학생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전세계에서 서울대는 어느 정도일까요? 2024년 전세계 대학을 평가한 어떤 자료를 보니 전세계 대학 중에서 서울대는 41위였습니다. 1위는 미국의 MIT였습니다. 그러면 MIT에서 공부 1등하는 학생은 전세계에서 공부 1등하는 학생으로 볼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그 학생이 나보다 훨씬 공부 잘하는 분이 있다고 얘기하면 어떻습니까? 대체 그는 얼마나 공부 잘하는 분입니까?
마찬가지로 오늘 성경이야기는 세례 요한을 통해 예수님이 얼마나 대단하고 특별한 분인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모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은 보통 인간을 넘어서 하나님의 아들 곧 하나님이라고 굳게 믿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오늘 성경의 메시지가 새롭거나 특별하게 다가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물어보면 어떻습니까? 우리는 예수님을 정말로 그렇게 대단한 분으로 대접해 드리고 있습니까? 우리는 이 질문 앞에서 스스로를 깊이 들여다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은 주님이라고 하나님으로 믿고 섬긴다고 말하면서도 과연 그에 걸맞는 대접을 해드리고 있느냐는 것에 멈칫거리게 될 수 있습니다. 설령 아니라고 나는 정말로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고 그에 걸맞는 대접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의 삶이 어떤지를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삶의 기준과 결정들이 예수님이 뜻에 전적으로 따르고 있는지 아니면, 내 생각과 방법 또는 경험을 더욱더 의지하고 있는지 말입니다. 저는 우리가 이것에 대해 정직하게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실 말씀을 전하는 저조차도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그래서 오늘 마가복음의 메시지가 전혀 새롭지 않음에도 우리에게 충격을 줄 수 있습니다. 우리를 돌아보니 우리의 삶이 그와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바라건대, 오늘 우리의 삶에서 예수님을 크신 분으로 대접해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분께 우리 삶의 길을 내맡기고 그 분께 나의 고민과 문제를 기꺼이 내어놓고 그 분의 말씀을 따라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이를 이루고자 힘쓰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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