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을 사랑한 바울의 본(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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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이 얻고자 한 것
바울이 얻고자 한 것
경산교회 2018년 12월 대구교회로부터 자립, 하계수양회 2차 참석
■ 서론
안녕하세요.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저는 서울은평교회에서 교제하고 있는 김보성 형제입니다. 경산교회에 처음 왔지만 너무나 따뜻하게 느껴지고 낮설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제가 대구교회에서 2013년 9월 부터 2015년 6월까지 함께 교제하며 교회 가운데 마주한 분들이 있어서 그렇다고 생각했지만
무엇보다도 우리는 주안에 한 가족이기에 한피 받아 한몸 이룬 형제, 자매기에 이렇게 가족과 같은 눈빛으로 바라바 주시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우리 경산교회 성도님들이 더욱 하나되고 주님이 맡겨주신 이 지경에서 귀히 쓰임받아 복음으로 확장되길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천치를 창조하시고 만유를 주관하시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드립니다. 저희를 죄악가운데서 구원하여 주시고 또 주님의 몸된 교회 가운데서 교제 가운데서 신앙생활을 하며 저 천국에 산 소망을 두고 살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저희를 많은 사람중에 택하여 주시고 구원받게 해주심은 저희를 통해 주님께서 계획하시고 이루시고자 하신 뜻이 있줄을 알고 있습니다.
말씀으로 깨닫게 해주시고 주님의 그 모든 뜻과 계획이 우리를 통해 이루시길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오늘 함께 상고하고자 하는 말씀 가운데 주님이 각 개인에게 필요한 말씀을 주시고 또 그 말씀이 우리의 생활 가운데 이루어지는 믿음이 되길 기도합니다.
병환중에 개인의 고난과 환난 중에 계신 형제, 자매님이 있다면 주님께서 그 사정을 잘 아시매 가장 좋은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하여 주시고 주님만 의지하며 나아갈 수 있도록 간구드립니다. 오늘 이 시간도 저희와 함께 하여 주심을 믿고 주님께 온전히 의지합니다. 이 모든 기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본문말씀 통독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유대인들에게는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는 자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약한 자들에게는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몇 사람들을 구원코자 함이니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예하고자 함이라
요즘 같이 바쁜시대에 뉴스 보시나요? 저는 개인적으로 IT분야와 세계 뉴스를 종종 찾아 봅니다.
제가 좋아하는 분야가 전자기기, IT에 대한 부분이구요, 세계뉴스는 세계정세가 어떠게 돌아가는지 어떠한 이슈들이 있는지 알아보고자 하는 목적으로 찾아 봅니다.
제가 요 근래 뉴스를 보며 가장 많이 보았던 주제는 “AI_인공지능”과 “전쟁”, “기상이변”입니다.
이세돌이란 바둑기사와 알파고라는 AI가 바둑 시합을 했던 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우리 가운데 AI는 훨씬 더 발전하여 이제는 보고 듣고 생각하고 말을 할 수 있는 수준에 까지 이르렀다고 합니다.
전쟁에 대한 부분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이 지금도 지속적으로 뉴스에 나오고 있습니다.
기상이변은 지구 온난화로 인해 빈번한 자연재해로 인해 많은 피해를 입고 있는 상황들이 뉴스에 나오죠
그런데 이러한 뉴스들을 보면 볼 수록 알면 알 수록 “성경강연회의 마지막 시대 징조”가 떠오릅니다. 적그리스도의 통치를 위한 준비, 나라가 나라는 대적하는 상황, 옷과 같이 낡은 지구
그리고 그 뉴스를 보며 감사한건 아직 구원 받지 못한 잃어진 영혼들, 친척과 지인들을 생각하며 더욱 기도하고 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해주심입니다.
오늘은 영혼을 사랑한 바울의 본이라는 주제로 함께 말씀을 상고해보고자 합니다.
바울이 한 영혼, 한 영혼을 건지기 위해 어떻게 했는지 보겠습니다.
본문 말씀을 다시 한번 보겠습니다.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유대인들에게는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는 자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약한 자들에게는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몇 사람들을 구원코자 함이니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예하고자 함이라
바울 사도는 먼저 모든 사람에게 자유 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되었다고 합니다.
두번째는 유대인들에게는 유대인과 같이 되고, 율법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율법 아래 있는 자 같이 되었다고 합니다.
세번째는 율법 없는 자에게는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되었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네번째는 약한 자들에게는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되었다고 합니다.
바울 사도는 스스로 종이 되고 유대인, 율법아래 있는 자, 율법 없는 자, 약한 자와 같이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중요한건 그 가운데 목적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을 얻고자 함이고 구원코자 함이라고 하며 복음에 참예하고자 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먼저는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말하며 전하고자 한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보낸 서신서에서 왜 이렇게 말씀을 하셨을까요?
먼저 당시 고린도 교회와 그 지역의 특징, 본문 말씀에 대한 배경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고린도 전서는 A.D 55년 봄 쯤 기록된 서신서로 기자는 말씀 가운데 스스로 자신을 바울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1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입은 바울과 및 형제 소스데네는”
고린도전서 16:21 “나 바울은 친필로 너희에게 문안하노니”
그리고 고린도 교회는 바울 사도가 제2차 전도여행 중 고린도지역에서 1년 6개월 간 복음을 전하며 세운 교회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이 고린도 지역에서 바울과 함께 장막만드는 업을 하며 동역하였습니다.
하지만 바울이 고린도를 떠나고 시간이 지난 후 다른 지역을 방문하고 에베소에 머무는 시기에 고린도 교회의 소식을 듣게 됩니다.
그런데 그 소식은 안타깝게도 교회 내에서 여러 문제가 발생하였다는 소식이였습니다.
지협과 해협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무역이 발달하고 상권이 집중되어 있어 경제가 발전한 도시였습니다.
고린도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많은 우상도 함께 모이게되는 도시였습니다.
다양한 사람들 다양한 우상, 이 가운데 구원받은 그리스도인 사이에도 교회의 분열과 분쟁, 성적 타락과 우상의 재물 취식에 대한 문제들이 발생하였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바울이 발생한 문제들에 대한 훈계의 말씀(1~6장)과 질의에 대한 답변(7~16)을 보낸 서신이 바로 고린도 전서입니다.
본문에서 바울 사도는 자신의 생활을 절제의 산 모범, 본으로 제시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권리와 자유를 절제한 궁극적인 목표는 한명, 한명의 영혼을 사랑했기 때문에 그 영혼들을 건지고, 세우기 위함으라고 말하며 성도들의 자발적 동참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본문을 한절 한절 보겠습니다.
■ 본론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모든 사람에게 자유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것은… 바울은 먼저 더 많은 사람을 얻기 위하여 즉 복음전파를 위해서 자신의 개인적인 자유를 포기하고 섬기는 종이 되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에 대해서 아니 바울이 되기 전 사울을 안다면 그의 마음이 얼마나 복음을 위한 간절한 마음인지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엄한 유대교 관습에 따라 유대교 집안에서 자랐습니다. 그리고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며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였습니다.
내가 팔일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
유대교 관습에 따라 팔일만에 할례를 받고 정통있는 지파,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라고 말하며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바울 자신은
갈라디아서 1:14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유전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으나”
나는 내 동족 가운데서 나와 비슷한 나이의 많은 사람보다 유대교에서 앞서 있었으며, 내 조상들의 전통을 지키는 일에도 훨씬 더 열심이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잘 하는 바와 같이 당대 유명했던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공부한 사람이였습니다.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하는 자라
바울 사도의 태생으로봐도 자라는 과정을 봐도 종을 부리면 누렸지 누군가의 종이 되어 섬길만한 사람은 아니였습니다.
또 바울은 이러한 부분외에도 로마의 시민권을 가진 완전한 자유인이였습니다.
바울이 이르되 로마 사람인 우리를 죄도 정치 아니하고 공중 앞에서 때리고 옥에 가두었다가 이제는 가만히 우리를 내어 보내고자 하느냐 아니라 저희가 친히 와서 우리를 데리고 나가야 하리라 한대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지역에서 복음을 전할 때 귀신들린 여종에게서 귀신을 쫒아 주었지만 그로 인해 여종을 통해 큰 이익을 보던 주인이 잡아서 빌립보의 통치자에게 데려가고 그곳에서 옷을 찢어 벗기고 때리고 옥에 가두었다 놓아줄때 바울 사도가 한 말입니다.
로마 사람인 우리를 죄도 정치 아니하고…
바울 사도를 지금 우리 시대로 하면 아주 뼈대 있는 집안에서 태어나 아주 유명한 선생님의 제자로 배움을 받았고 한국 시민권 뿐 아니라 미국 시민권까지 취득한 2중 국적을 가진 어딜가나 자유한 사람인 것입니다.
이처럼 모든 사람들로부터 자유로운 그가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되기로 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다른 사람 구원 받게 하는 것이 그 영혼 건지는 것이… 자신의 자유를 누리고 지키는 것보다 우선시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바울의 자세는 당시 이방인의 철학이나 문화적인 관습에 뿌리를 둔 것이 아니라 말씀에 근거하여 예수님의 마음으로 하였습니다.
마가복음 10:43–45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그리고 그 마음은 예수님의 마음으로 한것은 예수님을 본받는자 된 것 같이 라고 말씀하신 것을 보며 알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1:1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그리고 이 마음은 아래 20절~23절까지 어떠한 사람들에게 어떻게 처신함으로써 하였는지 잘 나와 있습니다.
바로 유대인, 이방인, 약한자 입니다.
○ 유대인에 대한 전략
유대인들에게는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20절을 잘 읽어 보면 유대인들과 율법 아래 있는 자가 나옵니다. 사도 바울은 그들을 얻고자 해서 그들과 같이 되었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유대인과 율법아래 있는 자, 율법아래 있는 자는 유대인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율법아래 있는 자라고 표현한 것은 당시 유대인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율법은 구원받은 우리가 봤을 때, 율법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이 아니라 죄를 깨닫게 하는 거울이며 예수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 선생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로마서 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갈라디아서 3:24–25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몽학선생 아래 있지 아니하도다”
하지만 당시 유대인들은 그 본질적인 목적을 모르고 율법 자체에 집착하며 그것을 더욱 복잡하게 하고 기준의 잣대와 같이 사용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어떠한 사람이였을까요? 바울은 율법에 있어서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는 가말리엘의 문하생이였습니다.
갈라디아서 1:14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유전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으나”
나는 내 동족 가운데서 나와 비슷한 나이의 많은 사람보다 유대교에서 앞서 있었으며, 내 조상들의 전통을 지키는 일에도 훨씬 더 열성이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곧 바울 사도가 율법에 대한 열심과 지식이 어느 누구보다 뛰어나고 높았다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율법 아래 있는 자 중 최고의 율법주의자였습니다.
하지만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그의 신앙과 모든 가치관이 순식간에 정 반대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변화 되었습니다.
마치 고삐풀린 망아지가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제멋데로 날뛰다가 진정한 주인을 만나고 제대로 된 훈련을 통해 그 힘을 제대로 쓸 줄 아는 명마가 되는 것 같이 바울도 예수님을 만나고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 율법에 대한 지식이 그리스도 안에서 사용되어 질 때 구약성경을 복음 안에서 해석할 수 있는 도구가 되었으며 복음의 전도자가 된 것입니다.
율법 아래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아래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바울은 율법아래 있지 않지만 말씀을 벗어나지 않는 한에서 율법아래 있는 자 같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고전 4:6에 나와 있는 “기록한 말씀 밖에 넘어가지 말라”하였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떠한 수준에서 율법 아래 있는 자 같이 행하였을까요?
바로 디모데의 할례 사건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 받는 자니
바울이 그를 데리고 떠나고자 할쌔 그 지경에 있는 유대인을 인하여 그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하니 이는 그 사람들이 그의 부친은 헬라인인줄 다 앎이러라
디모데는 헬라인 아버지와 유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헬라인 아버지였기에 유대인의 할례 규례를 적용 받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바울 사도가 디모데를 데리고 떠나고자 할 때 그 지역의 유대인을 인하여 할례를 행하였다고 합니다.
이것은 할례 행위가 의롭다 함이나 신앙적인 행함이 아니라
유대인을 인하여 즉 유대인 전도를 하는데 있어 이 할례를 하지 않은 행위가 추후 비방 거리가 되고 이로 인해 복음을 전하는데 걸림돌이 될 수 있기에 할례를 행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선택받은 민족임을 아는 유대인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데 있어 하나님께서 주신 할례규례를 지키지 않은 자가 하나님말씀을 전한다는 것은 유대인들에게 약점이 될 수 있기에 행한 것입니다.
이 것은 유대인과 같이 율법 아래 있는 자 같이 된 것이라는 전략이였습니다.
○ 이방인에 대한 전략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는 자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율법 없는 자에게는… 율법 없는 자는 유대인 보기에 이방인을 말합니다.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는… 이방인은 본성 즉 양심으로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이방인에게 복을 전하기 위해 바울은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되었다고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되었다고만 한다면 분명 오해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 되었을 겁니다. 이방인에게 전도를 할 때 이방인과 같은 모습으로 전한다고 그리스도인에게 합당하지 않은 모습 가운데 같은 모습으로 행하며 전하는 것은 올지 못한 것이기 때문에… 먼저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는 자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이것은 바울이 말한 그리스도의 율법이 유대인들의 율법과 다름을 말하고 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율법이 의롭게 함을 얻는 즉 최초의 의도와는 다르게 죄에 사로잡혀 악용되고 남용되어 율법주의로 타락하였지만,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율법의 구속에서 해방되어 생명의 성령의 법,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은 그리스도인들이 가진 그리스도의 율법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구약의 율법에서 자유하게 되었으나 그렇다고 해서 마음대로 법 없이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율법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합당하게 살아야 할 많은 지침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율법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의 율법이 있지만 로마서 12, 13장만 보더라도 개인의 몸은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교회 생활에 대해서, 이웃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원수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나라의 권세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등 많은 그리스도의 율법이 있습니다.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 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
우리는 자유의 율법대로 말도 하도 행하기도 해야하는 것처럼 지켜야할 말씀들이 있습니다.
다시한번 본다면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의 율법아래 있는 자로서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되었다고 말을 합니다.
그렇다면 어떠한 모습으로 율법없는 자와 같이 되었을까요?
게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책망할 일이 있기로 내가 저를 면책하였노라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이들이 이르기 전에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저희가 오매 그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
남은 유대인들도 저와 같이 외식하므로 바나바도 저희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
그러므로 나는 저희가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로 행하지 아니함을 보고 모든 자 앞에서 게바에게 이르되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을 좇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하였노라
면책 : 면박하다, 면전에서 책망하다, 마주 대하여 책망하다
게바, 베드로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이들 할례자 유대인이 오매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갔습니다.
이에 바울 사도가 베드로 사도를 마주대하여 책망하는 장면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이방인들과 겸상하는 것 즉 함께 식사하는 것은 관습상 위법이였습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이방인과 다르게 무엇은 먹고 무엇은 먹지 않는 규례가 복잡하게 있었습니다.
이슬람 사람들이 할랄음식을 먹는 율법과 같이 레위기(11장)에 나와 있는 정한 것과 부정한 것을 나누어 율법대로 지키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이방인과 식사하는 도중 다른 유대인들이 왔을 때 이방인과 함께 식사하는 것을 안보이려 그들의 눈치를 보고 피한 상황입니다.
그것을 바울 사도가 보고 책망하는 장면입니다.
바울 사도는 비록 유대인들이 복기에는 관습에 위배되는 것이지만 이방인들과 식사를 하면서 복음도 전하고 교제도 하는 것이 더 유익했기에 성도들을 세우는 길이였기에 이와 같이 한 것입니다.
바로 이방인의 영혼을 위한 바울의 전략이였습니다.
○ 약한자에 대한 전략
약한 자들에게는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몇 사람들을 구원코자 함이니
약한 자들에게는 내가 약한자와 같이 된 것은… 8장 9절을 보겠습니다.
고린도전서 8:9 “그런즉 너희 자유함이 약한 자들에게 거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우상의 제물의 취식에 대한 논의의 핵심적인 쟁점 중 하나인 믿음이 연약한 자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믿음이 연약한 사람들을 하나라도 더 얻기 위해 바울 사도는 13절과 같이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형제를 실족치 않게 한다 하였습니다.
바울은 믿은 강한 사람중에 강한 사람이였지만 약한 자들을 대할 때는 그들의 마음을 고려하여 행하는 진정한 겸손한 사람이였습니다.
이것은 아무쪼록(판토스), 완전히, 확실히, 의심 없이, 전적으로 몇몇 사람을 구원코자 하는 소원 때문이였습니다.
바울이 왜 그러 했는지 23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예하고자 함이라
복음을 위하여, 복음에 참예하고자 모든 것을 행한 것은 한명 한명의 영혼을 더 건지고자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 결론
○ 우리에게 주는 교훈
고전 9장 19~23절 이 짧은 5개 절 가운데 우리는 바울의 마음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한 영혼, 한 영혼을 사랑하고 건지고자 했던 그 마음을 본받아야 합니다.
가장 많이 반복되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얻고자 함이라, 얻고자 함이요, 얻고자 함이라
바울이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였나요? 영혼이였습니다. 영혼의 구원이였습니다.
세상사람들은 이세상 가운데 많은 것을 얻고자 합니다.
특히 사람들을 만나고 사귀며 친해지는 것은 결국 자신의 유익을 얻고자 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것이 물질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만족감과 기쁨을 얻는 것이죠. 만약 그 관계 가운데 본인이 원하는 것이나 유익이 없다고 생각되며 언제든 관계를 끊어 버리는게 세상 사람입니다.
하지만 우리는요 주님의 피값으로 사신 우리는 어떤가요?
이 바울의 모습을 보면서 가장 먼저 생각난게 우리 주님이였습니다.
우리 죄를 사해주시기 위해서 인간의 몸으로 오신 예수님 우리의 영혼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 매달리신 주님입니다.
종을 부릴수 있는 위치에 있는 바울 사도가 종이 되어 섬겼던 것처럼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낮고 천한 인간의 모습이 되어 십자가에 죽으셨던 것처럼
우리는 그 사랑을 받은 그리스도인으로 주님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신 것을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과는 다릅니다 사귀는 목적이 다른 겁니다. 나의 유익의 목적이 아닌 주님이 귀하게 여기신 영혼을 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영혼을 건지는데 필요한 것들을 우리는 희생할 수도 있어야 합니다. 내 시간, 재능, 물질 등 이 모든 것은 주님이 주신 은혜 가운데 올바른 목적을 두고 사용해야합니다.
영혼은 사랑하는데 있어 우리는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먼저는 그 영혼을 사랑해서 얻는 일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5: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누가복음은 잃었던 것에 대한 비유를 통해 죄인이 회개하고 구원 받는 일이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크고 기쁜 일인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양 일백 마리 중 하나를 잃고 다시 찾은 비유를, 열 드라크마 중 하나를 잃고 다시 찾은 비유를, 집을 나갔다 돌아온 탕자 비유를 통해 죄인이 회개하고 구원 받는 일에 대해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 하시는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어찌 악인의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서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
그리스도인의 최대 소망중에 하나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신에게 잘해주는 사람, 사랑해주는 사람, 친절한 사람 등 호의적인 사람에게는 대부분 관계를 맺음에 있어 보답을 하고자 합니다.
지금은 많이 없어진 문화지만 예전에 이사오면 잘부탁한다고 이웃사촌이 되었다고 이사떡을 주변 집들에 돌리는 문화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사떡을 받은 사람들은 떡만받고 그냥 빈그릇으로 주었을까요? 아니였습니다. 그 떡에 대한 보답으로 다른 음식이나 식품을 담아 돌려주는 그런 정있는 모습이였습니다. 무언가 물질적인 빚이나 심적인 빚을 지면 꼭 갚고자 하는 마음도 있고 그렇지 못하면 미안해하고 안타까워 하는 그런 모습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원래 이와 같은 마음이 있었기에 옛 사람들은 결초보은 이라는 사자성어가 유래 한거 같습니다. “은혜가 사무쳐 죽어서도 잊지 않고 값는 다는 뜻” 은혜에 대한 보답하는 마음이 있다 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생가운데 가장 큰 은혜를 하나님께 입었습니다. 아니 그 무엇으로 비교할 수 없는 은혜입니다. 우리 죄로 지옥에 밖에 갈 수없는 우리의 죄를 예수님에게 담당시켜 주시고 보혈의 피로 구원해주신 하나님께 무엇으로도 보답할 수 없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갈라디아서 1: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그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우리가 품어야할 그리스도인으로서 당연한 소망입니다. 영혼을 사랑하고 얻고자 하게 하는 마음 은혜에 대한 보답 하나님의 기쁘심을 위함입니다.
두번째는 영혼을 사랑해서 건지는 일은 주님의 명령입니다.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리우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사흘(3일)만에 부활 하셨습니다. 그리고 열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그 제자들에게 나타사가 제자들에게 사명을 주시고 승천하여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이 말씀은 제자들에게만 주신 말씀이 아니라 교회에게 내리신 명령이며 또 나에게 주신 사명이기도합니다. 우리는 복음을 선포해야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바울 사도도 이렇게 말씀 하셨죠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예수께 받은 사명이기에 한영혼 한영혼을 건지기 위해 행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마땅히 주님께 받은 사명이라고 여기고 한 영혼 한 영혼을 사랑하고 건져야합니다.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주님의 명령, 명령은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선택의 문제가 아닙니다.
복음을 전하라는 명령은 주님이 승천하기전에 교회에게 내리신 지상 최대의 명령이며 엄한 명령입니다.
명령은 왕정시대나 군조직에서 엄청난 효력을 발휘합니다. 왕이내리 명령을 어기는 것 어명을 어기는 것과 군에서 전쟁시 지휘관의 명령에 불복종 하는 것은 아주 큰 죄입니다. 목숨을 걸고 불복종해야 할 만큼 큰 선택이죠
우리는 영혼을 사랑하는 것은 주님이 주신 명령의 첫단추와 같습니다. 우리가 영혼에 대한 사랑과 갈급함이 있어야 복음 전할 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면 내가 진정 그 영혼을 사랑하고 불쌍한 마음이 없이 전한다면 상황의 영향으로 포기하고 대상의 태도에 상처받아 포기하고 전도가 갈급함보다는 형식적인 전도로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복음을 끝까지 전하게 하는 첫단추라는 것을 기억해야합니다.
세번째는 영혼을 사랑해서 건지는 것은 주님이 지불하신 댓가에 마땅히 할일 입니다.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주님께서는 세상 모든 죄인을 위해 죽으셨습니다. 하나님 편에서 볼 때 이미 값을 모두 지불한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주님이 값주고 사신 것을 거두어 들이는 것입니다.
내가 비천한 노예여서 아주 어려운 노역을 위해 끌려가야 하는 사람이였습니다.
이제 한번 가면 돌아올 수 없는 노역선을 탔습니다. 그런데 그 안에는 내 사랑하는 가족들도 있고 친척들도 있고 친구들, 지인들 아주 많은 사람들이 있었어요 함께 끌려가는 길입니다.
그런데 그 배가 출발 하기전에 한 사람이 와서 족쇄를 풀어줍니다. 그리고 족쇄를 풀 수 있는 키를 주면서 설명을 해줍니다.
저기 있는 저 능력 많으신 분이 여기 있는 모든 노예들의 속환값을 다 내주었고 배가 떠나기 전까지 풀어주는 사람만 그 배에서 내릴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럼 그 노역선에서 내가 그 키를 들고 해야하는 일은 무엇일까요? 한명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 노력을 해야합니다.
시간이 되고 그 배가 출발하면 내가 구해낸 사람만 자유를 얻는 것이거든요
분명 말했습니다. 능력 많으신 분은 모든 노예들의 속환값을 다 내주었다고 이제 내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풀어주냐에 따라 그 값이 달라지는 겁니다.
내가 제한된 시간 동안 10명을 풀어주면 그 값는 10명 값어치가 되는 것이고, 50명을 풀어주면 50명의 값어치가 되는 것입니다.
그 시간동안 우리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런데 그분은 한명한명 풀려날때마다 너무 기뻐합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주님은 이와 같이 세상 모든 사람의 죄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우리가 전해서 말씀을 듣고 구원을 받으면 예수님의 그 보혈의 값어치가 더 높아지는 것이며
지옥 백성이 줄고 천국 백성이 늘어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주님의 비싼 댓가를 지불하셨기에 우리는 그 댓가에 마땅히 거두어 들이는 것입니다.
그 시작은 영혼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영혼을 사랑하는 한가지 예산을 넉넉히 세워두어야합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오래참고… 바로 오래 참고의 예산입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할 때 때론 조급한 마음으로 때론 상황의 어려움으로 때른 그영혼이 주는 상처로 포기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영혼을 사랑함에 있어 오래참고 사랑하도록 예산을 세워야 합니다.
우리가 하는 그리스도인의 사랑에는 원천이 있습니다. 바로 그리스도께서 모범이 되어 주셨죠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그리스도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을 깊이 묵상해보면 그 사랑의 크기와 깊이를 알 수 있습니다. 낮고 천한 사람으로 오셔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기까지 받으신 그 고난과 핍박을 다 받고
다 이루었다 하신 그 사랑이 어쩌면 우리는 너무 가볍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할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수순으로 순종하셨지만 그길을 가신 그 이유가 능력과 권세가 있음에도 그 길을 가신 이유가 바로 우리를 향한 사랑이였습니다.
우리도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복음을 전할때 오래 참음이 없다면 그래 네 맘데로 해라, 다시는 전도 하나봐라 이런 마음이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안할 수 있지만 그영혼을 예수님의 사랑으로 사랑한다면 끝까지 오래 참고 견디고 묵묵히 전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래 참고의 예산을 영혼 사랑하는데 반드시 세워두어야 합니다.
영혼에 대한 간절함을 생각하면 한가지 떠오르는 사건이 있습니다.
어느덧 10년이 지난 사건 입니다. 이 사건은 우리나라에서 큰 이슈가 되었으며 우리 교회에도 영향을 준 사건입니다.
바로 2014년 4월 16일에 발생한 세월호 참사입니다.
저는 당시 군인이였고 점심식사를 하려고 식당에서 줄 서 있었습니다.
그 때 뉴스에 세월호에 대한 뉴스가 나왔고 사고가 났지만 전원 구출되었다는 속보로 그냥 그렇게 끝날줄 알았습니다. 그런데요. 시간이 지나고 그 속보는 오보로 판명되고 결국 안타까운 299명의 사망자를 발생하면서 바다로 가라앉게 된 참사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사건도 너무 안타까웠지만 그 후 이야기를 들으며 영혼에 대한 간절함과 애정함이 마음에 다가 왔습니다. 아실지 모르겠습니다. 두 부류의 사람이 있었습니다. 쓰러지고 침몰하는 가운데 탑승객의 탈출을 신속하게 지휘해야하는 선장이 구조대가 오고 있다고 다들 그자리에 있으라고 방송을 지시하고 본인만 탈출한 사람… 그리고 세월호가 가라 앉고 그 안에 혹 모를 생존자를 위해 수색했던 잠수부들입니다.
가라 앉고 있는 가운데 한명이라도 더 구출해야할 상활에서 본인만 팬티바람으로 탈출한 선장을 보며 화도 나고 괘씸하다고 생각 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시간이 지나고 생각해보니 이세상에서 지금 내모습과 같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주변의 영혼들은 거듭나지 못하고 주님이 오시면, 혹 불의의 사고를 당하면 어디 갈지를 뻔히 아는데 나는 혼자 구원 받았다고 그것으로 만족하고 그냥 있으라고 하는 선장과 같은 사람이구나… 영혼에 대한 내 마음은 그 선장과 다를게 없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절대로 우리는 그런 선장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누구와 같아야 할까요? 자신의 육제적 수명을 버리며 한명 한명의 시신을 인양하기 위햇 반복되는 잠수로 일부 잠수사는 목숨을 잃기도 하고 몇몇 잠수사는 육제척 수명이 다해 그 후 잠수할 수 없는 몸이 되어 취업도 못한다는 이야기, 잠수병으로 아직도 고통받고 있는 잠수사의 이야기를 들으며 안타까웠습니다. 그 잠수사는 한구라도 더 가족의 품으로 돌려주고자 자신을 버리며 인양한 잠수사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세상에서도 이렇게 육신을 가족에게 돌려주기 위해 희생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나는 선장인가요? 아니면 잠수사 인가요?
내 주변에 있는 잃어진 영혼들을 보며 우리는 과연 얼마나 사랑하고 간절한 마음을 두고 있나요?
사도 바울은 그 예수님의 마음을 본받아 영혼을 그렇게 사랑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제 바울은 자신을 본받으라 하십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우리가 품어야할 마음입니다. 바울을 본받아 한 영혼, 한 영혼을 사랑하고 구원 받게 하기 위한 마음
죄인하나가 회개 하면 하늘에서는 회개 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와 같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드립니다. 오늘 이렇게 우리 사랑하는 경산교회 형제, 자매님들과 함께 말씀을 상고할 수 있는 시간과 장소를 허락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주님께서 우리 경산교회에 맡겨 주신 이 지경을 더욱 넓히고 확장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더욱 하나되어 주님을 따르고 섬길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복음의 역사가 이루어 지는 하계수양회가 시작되었습니다 1차 수양회가 진행중에 있고 7차까지 진행될 예정입니다. 그 각 차수마다 보지 않는 곳에서 봉사로 수고하시고 전도에 힘쓰시는 형제, 자매님들의 손길손길마다 주님에 능력의 손으로 붙들어 주시고 더욱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봉사하고 전도 할 수 있도록 도와 주옵소서 많은 영혼들이 말씀앞에 나아오고자 합니다. 혹 강팍한 마음이 있다면 주님께서 깨트려주시고 이번 수양회를 통해 구원 받는 귀한 시간이 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말씀전하시고 상담하시는 전도인들의 입술과 건강도 지켜주시길 기도 합니다.
이후에 있을 시간도 주님께서 도와주시고 함께해 주실 것을 의지합니다. 이 모든 기도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렸습니다. 아멘
찬송가 253장
봉사회장님 광고 해주시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