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의 정체성을 지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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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의와 그 유익
칭의와 그 유익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사랑합니다! 드림인 예배에 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하고 축복한다. 여러분은 영화 스파이더맨을 아는가? 스파이더맨이 되기 전에 성격이 어땠는가? 천방지축에 이것저것 호기심이 많은 아주 평범한 고등학생이다. 항상 스파이더맨에서 나오는 클리세가 있는데, 학교에 일진 같은 핵인싸가 스파이더맨을 못살게 굴고 괴롭히는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날 무엇에 물리는가? 1번 거미, 2번 모기. 그렇다. 거미에게 갑작스럽게 물리면서 자신이 신체가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 그러다가 손에 갈고리 같은 무언가가 생겨서 벽을 탈 수 있게 되고, 손가락 모양을 어떻게 하다보니 거미줄도 나오는 것이다. 그렇게 학교에 갔더니 신체반응이 어떤가? 이전에는 일진들이 괴롭힐 때 날라오는 주먹이 슬로우모션으로 보이면서 빠르게 피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 것이다. 만약에 스파이더맨이 거미에 물리지 않았으면 이야기는 시작되지 않았을 것이고 그저 평범한 고등학생으로 이야기는 끝났을 것이다.
오늘 여러분에게 ‘칭의’에 대해서 나누려고 한다. 칭의가 무엇인가? “의롭다고 여기는 것”이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하나님의 의”가 무엇인지 아주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복음의 성격과 내용을 말하고 있다. 롬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이 구절에서 중요한 3가지를 발견할 수 있다. 첫 번째로 우리의 믿음의 대상이 누구이신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두 번째로 사람이 소유한 믿음이다. 믿음은 사람에게 속해 있다. 예수를 믿는 것은 성경의 말씀을 잘 지켜서 믿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 번째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가져온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의롭다고 인정하시는 행동이 무엇인가? ‘칭의’라는 것이다. 우리의 행동이 아니라 하나님의 행동으로 인하여 예수님을 믿는 사람의 신분에 변화가 생긴다. 개인적인 변화, 의롭다고 인정 받는 것, 그렇게 ‘칭의’가 이루어진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율법과 선지자, 구약과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구약 시대에서 증거하고 기다리고 있었던 구원자, 메시아가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구약 시대가 증거하고 있는 새로운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구약 시대와 다른 새로운 시대이다.
무엇이 다른 것인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 이제는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이 아니라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 율법 시대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시대로 변하게 되었다. 새로운 시대의 특징은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차별이 없다는 점이다. 민족적이거나 인종적인 신분은 더 이상 특권이 아니라는 것이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모두 믿음이 필요하다. 유대인에게 주어진 특권이 없다. 예수님이 오시고 난 후부터 지금까지 이 시대는 구원 역사에 중요한 변화가 생기게 되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유대인이나 이방인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유대인이나 이방인 모두 죄를 범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 “하나님의 영광”은 간단히 말하면 하나님의 임재이다. 모세가 장막을 다 만들었을 때, 구름이 회막을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구름 가운데 임재하신 것이다. 시간이 흘러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고 봉헌식을 거행하는데 그때에도 제사장이 그 구름으로 말미암아 감히 서서 섬기지 못할 정도로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했다고 한다. 여호와께서 구름가운데 성전에 임하시는 것이다. 여호와의 영광과 여호와의 임재가 무슨 연관이 있는가? 사사시대 끝무렵에서는 이스라엘이 블레셋과 전쟁에서 지고 법궤, 언약궤를 빼앗겨버렸다. 그러자 당시 타락한 제사장인 비느하스의 아내가 아들을 낳고 아이의 이름을 이가봇이라고 짓는다. 이가봇의 뜻은 “영광이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이 곧 하나님의 임재를 뜻하는 것이다.
바울은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죄로 인하여 사람이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들어갈 수 없는 것이다. “이르지 못하더니"는 “결핍하다”는 것이다. 죄 때문에 어떻게든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고 늘 결핍되어 있는 것이다. 사람에게 하나님의 영광이 부족해도 너무나 턱없이 부족하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임재가 무엇인지 맛볼 수 조차도 경험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해본 사람은 계속 하나님의 임재를 갈망하게 된다. 여러분도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된다면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마치 축제의 현장보다 뜨겁게 찬양하고 말씀에 집중하고 기도하게 될 것이다. 아담과 하와도 선과 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고 범죄하자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서 추방시키신다. 죄는 하나님과 자유로운 교제를 잃어버리게 하고 하나님의 임재를 더 이상 누리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사람은 죄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을 잃어버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누리지 못한다. 이러한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회복해주는 분이 누구이신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할 첫 번째 단어는 “속량”은 곧 “구속”이다. 이 단어는 고대에서 전쟁에 져서 포로나 노예가 된 사람을 값을 주고 해방시켜주는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라고 말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사람들은 구속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속량”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사람들이 포로나 노예의 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죄의 지배 아래 있다는 의미를 갖는다. 바울은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고 말했다. 사람은 죄의 세력 아래 있다. 여기서 하나님이 사람을 구속해 주시는 것이다. 마치 이스라엘이 이집트에 노예로 있을 때에 하나님이 그들을 구원해준 것과 비슷하다.
두 번째로 의인이 된 것이다.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는 죄인이 의롭다고 선언된 것이다. 법정적인 의미를 갖고 있는 칭의를 말한다. 마치 대한민국 시민이 될 때 대한민국의 법으로 보호를 받는 것처럼 말이다. 사람이 예수님을 믿을 때 하나님이 의롭다고 인정하신다. 이러한 신분의 변화는 과거도 미래도 아닌 지금의 시간을 말한다. 이것은 또한 하나님의 최후 심판 때에도 우리를 영원한 죽음으로부터 보호하실 것이다. 세 번째로 하나님의 구속과 칭의는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이루어진다. 은혜는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이다. 하나님의 구속을 받기 위해 어떤 일도 하지 않았고 받을 자격도 없지만 하나님이 구속과 칭의를 주신다. 그것도 값없이 말이다. 그렇기에 ‘선물’인 것이다.
바울이 이런 고백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바울은 이전에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고 감옥에 가두고 죽이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 다메섹이라는 동네에서 기독교인들을 박해하기 위해 가고 있을 때 부활하신 예수님이 그에게 나타나셨다. 예수님은 바울에게 자신을 드러내며 그러한 바울을 사도로 삼으셨다. 바울은 이러한 경험을 하기 위해 어떤 수고와 노력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예수님은 바울에게 구원의 은혜를 주시고 그를 종으로 삼아 주셨다는 사실이다. 바울은 “예수 안에 있는 속량”이 무엇인지를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그의 피로써”는 십자가 사건을 의미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다. “화목제물”은 죄를 씻어내는 수단과 방법이기도 하면서 속죄의 장소로 법궤의 뚜껑이 있는 “시은좌”를 의미하기도 한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인간의 더러운 죄를 완전히 깨끗하게 하시는 속죄의 희생제사이다. 그의 피로 죄를 씻어주어 하나님과 화목하게 만든다. 또한 이 단어는 속죄의 장소인 “시은좌”를 뜻하기도 한다. 대제사장이 일 년에 한 번 희생의 피를 가지고 들어가 속죄하기 위해 붓는 장소이다. “시은좌”로 해석을 하면 하나님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구약에서 시은좌의 실체로 보여주는 것이다. “세우셨으니”는 “공개적으로 제시하다”의 뜻이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공개적으로 보여주신 것이다. 구약에서 속제는 대제사장이 희생 제사의 피를 지성소로 가지고 들어가 시은좌 위에 붓는다. 이것은 비공개적이라서 대제사장만 할 수 있고 그 장면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신약에서 하나님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공개적으로 보여주신다. 공개적인 십자가 사건을 믿는 사람을 의롭다고 인정하신다.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에서 “전에 지은 죄”는 옛 시대에 지은 죄를 의미한다. “간과하심으로”는 “형을 유예”한다는 뜻이다. 옛시대에 지은 죄에 대한 벌을 유예하신 것이다. 한 마디로 지은 죄를 처벌하지 않고 두신 것이다. 하나님이 이렇게 오래 참으심으로 형을 유예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화목제물로 세우셨다. 하나님이 이러한 일을 하신 이유가 있다.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이다. 하나님의 공의를 보여주신 것이다. 그래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시는 것이다. 믿음으로 사람은 의롭게 된다. 이것이 이신칭의 교리이다. 무엇으로 사람이 의롭게 되는가?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 이것을 네 글자로? 이신칭의이다. 누구를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이다. 이 이신칭의를 바울은 “믿음의 법”이라고 부르고 있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을 지키는 행위가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것이다.이것은 바울은 “믿음의 법 또는 믿음의 율법”이다. 율법이라는 용어는 일반적으로 모세의 율법을 지칭할 때에 사용한다. 그런데 바울은 재밌는 것은 여기서 “믿음의 법”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으로 성취된 “믿음의 법”이다. 바울은 율법이라는 용어를 새롭게 사용하고 있다. 다시 말해 “믿음의 율법”이다. 새로운 율법이 나온 것이다. “믿음의 법”이 구약의 모세 율법을 대체한다. 이것이 모든 인류를 위한, 유대인과 이방인을 위한 또 마지막 때를 위한 율법이다. 이제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이 새로운 “믿음의 법”을 통해서 의롭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는 의롭다고 칭함을 받은 어떻게 정체성을 지켜나갈 수 있는가? 첫 번째로 나의 정체성을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에서 찾아야 한다. 우리는 뭔가 자신의 행동으로 정체성을 찾으려고 한다. 죄를 안 짓고 예배를 잘드리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 같고, 몰래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을만한 나쁜 짓을 하면 자녀의 자격에서 박탈되는 것으로 착각한다. 그러나 분명하게 여러분에게 전한다. 믿음은 하나님이 주신 특별한 선물이고 은혜이다. 아무나 주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하나님이 믿어진다는 것은 하나님이 여러분의 인생을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강력한 의지라는 것을 기억하기 소망한다. 절대 여러분을 버리시지 않으신다. 우리는 혹여나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시게 하는 모습으로 살고 있다면 속히 돌아오기를 소망한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은혜 베푸시고 자기 아들을 희생하면서 여러분을 구속하는 이유는 딱 한 가지 밖에 없다. 여러분을 죽기까지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칼빈 선생님은 인간을 이렇게 표현한다. 인간은 죄를 찍어내는 공장과 같다고 말한다. 그만큼 인간은 하나님 품에 갈 때까지 죄의 본성이 여전히 남아있어서 우리는 피흘리기까지 죽기까지 죄와 싸워서 거룩함을 따라 가려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넘어져도 괜찮다. 그러나 넘어진 상태로 엎어져 있지말고 곧장 하나님 앞에 나아가길 소망한다. 전도사님이라고 완벽하게 사는 것이 아니다. 나에게도 연약함이 있기에 넘어질 때마다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얼굴에 철판을 깐 사람처럼 하나님께 곧장 달려간다. 말씀 앞에 달려간다. 기도의 자리에 달려간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이 주시는 사랑의 메시지를 들으면, ‘역시 나는 하나님의 자녀라서 행복하다’라는 고백이 나올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잊어버려선 안 된다. 여러분은 동남아에서 코끼리를 어떻게 키우는지 아는가? 어릴 때 두꺼운 쇠사슬로 코끼리 다리를 묶는다. 어린 코끼리는 힘이 아직 약하기에 쇠사슬을 끊을 힘이 없어서 그러한 상태로 살아간다. 그렇게 다 큰 코끼리가 되어서 쇠사슬을 충분히 끊을 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린 기억으로 인해 쇠사슬을 끊지 못할 것으로 당연하게 생각하고 평생을 묶여서 힘을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자유를 못느끼며 살아간다. 그렇기에 덩치가 엄청나게 크고 힘이 쎈 코끼리도 힘이 있어도 사용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 참 안타까운 것은 여러분을 포함한 많은 사람이 이렇게 살아간다는 것이다. 세상에 소리에 묶여서 내가 이정도 밖에 안되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정의하고 결론을 내리고 아무런 액션을 취하지 않는다. 그저 쇠사슬을 끊어내는 사람을 보고 ‘운이 좋았네’, ‘시대를 잘탔네’라고 말하며 정작 본인은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잊지 않기를 소망한다. 우리가 이렇게 찬양하지 않는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네, 나의 힘되신 능력의 주로 인해 Nothing is impossible” 우리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근거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 성경 말씀 안에 있다는 것이다. 이미 믿음의 조상, 사도들 제자들을 통해서 보여주셨다. 그 힘의 근원은 말씀 안에서 성령의 권능이 믿는 자 안에 있기 때문이다. 성령이 충만하면 제일 먼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진다. 그러면 언제 성령의 강력한 임재를 느낄 수 있는가? ‘복음을 전할 때’이다. 내가 한번도 살면서 예수님을 전해본 적이 없으면, 전도한 경험이 없으면 성령님의 강력한 임재를 느껴볼 수 없다. 스파이더맨이 자신이 가진 능력을 깨닫고 악당들을 물리칠 때 힘을 사용하면서 정체성이 강해지는 것처럼 우리의 정체성은 복음을 전할 때 성령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기 소망한다.
그러니 사랑하는 여러분, 스파이더맨이 거미에게 물렸을 때 그가 어떤 조건이 있어서 된 것이 아니다. 어떤 종류의 거미가 능력을 준다고 알고 원해서 받은 것도 아니다. 갑자기 거미에게 물렸는데, 그에게 초능력이 생긴 것이다. 그러나 능력을 사용하지 않으면 이전과 똑같은 평범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그 능력을 가지고 악당 앞에서 사용했기에 사람들이 스파이더맨이라 부르는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느낄 때는 어느 날 같지만, 하나님이 이미 창세전에 구원을 주시기로, 우리를 자녀삼으시기로 작정하셨다. 이것은 아무에게 다 주는 것이 아니라 선택한 백성에게 주신 은혜의 선물이다. 그러면서 더불어 성령도 받았다. 그 받은 선물을 혼자만 가지고 전혀 사용하고 있지 않는다면 어느 누구도 크리스천이라고 생각할 수가 없다.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전할 때 비로소 크리스천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다. 여기 있는 저와 여러분은 성령의 권능에 힘입어 날마다 승리하며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