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백성이 즐거워하고 온 성이 평온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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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11:13–21 NKRV
13 아달랴가 호위병과 백성의 소리를 듣고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가 백성에게 이르러 14 보매 왕이 규례대로 단 위에 섰고 장관들과 나팔수가 왕의 곁에 모셔 섰으며 온 백성이 즐거워하여 나팔을 부는지라 아달랴가 옷을 찢으며 외치되 반역이로다 반역이로다 하매 15 제사장 여호야다가 군대를 거느린 백부장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그를 대열 밖으로 몰아내라 그를 따르는 자는 모두 칼로 죽이라 하니 제사장의 이 말은 여호와의 성전에서는 그를 죽이지 말라 함이라 16 이에 그의 길을 열어 주매 그가 왕궁의 말이 다니는 길로 가다가 거기서 죽임을 당하였더라 17 여호야다가 왕과 백성에게 여호와와 언약을 맺어 여호와의 백성이 되게 하고 왕과 백성 사이에도 언약을 세우게 하매 18 온 백성이 바알의 신당으로 가서 그 신당을 허물고 그 제단들과 우상들을 철저히 깨뜨리고 그 제단 앞에서 바알의 제사장 맛단을 죽이니라 제사장이 관리들을 세워 여호와의 성전을 수직하게 하고 19 또 백부장들과 가리 사람과 호위병과 온 백성을 거느리고 왕을 인도하여 여호와의 성전에서 내려와 호위병의 문 길을 통하여 왕궁에 이르매 그가 왕의 왕좌에 앉으니 20 온 백성이 즐거워하고 온 성이 평온하더라 아달랴를 무리가 왕궁에서 칼로 죽였더라 21 요아스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칠 세였더라
여러분, 철학이나 생물학에서 '닭이 먼저인가? 달걀이 먼저인가?'하는 논쟁을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이 논쟁처럼, 각 분야에는 정답이 없는 논쟁들이 존재합니다. 성격심리학에서도 '사람의 성격은 변하는가? 변하지 않는가?' 혹은 '유전적 요인인가? 환경적 요인인가?'라는 논쟁이 있습니다. 신학에서도 이런 논쟁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의지에 관한 논쟁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다보면 기독교는 운명론에 빠지기 쉽고, 어차피 하나님께서 정하신대로 이뤄질텐데 우리가 열심히 계획하는게, 전도하고 선교를 나가는게 의미가 있나요? 라는 의문이 생기게 됩니다. 반대로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하다보면 전지전능한 하나님의 뜻이 인간에 의해 좌절되고 실패될 수 있는가? 무능력한 하나님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게 됩니다.
이 두 가지는 조화롭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성경은 이 둘이 신비롭게 연합한다고 말합니다. 그것이 바로 '언약'의 개념입니다. 언약이란,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피로 맺으신 약정입니다. 하나님은 언약을 통해서 우리와 관계를 맺으십니다. 예를 들면, 회사에서 사장과 직원은 계약서를 쓸 때 사장과 직원이라는 관계가 형성됩니다. 계약서 안에는 얼만큼의 일을 할 것인지, 그에 대한 대가로 임금은 얼마를 줄 것인지 대한 내용이 있고, 그 밑에 사인을 함으로 서로 계약 내용에 따라 책임을 지겠다고 약속합니다. 계약서의 특징은 쌍방향의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이 우리와 맺으신 언약에도 쌍방향의 책임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잘 드러내는 레 26 12 을 함께 읽겠습니다.
레위기 26:12 NKRV
12 나는 너희 중에 행하여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니라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 되심으로, 우리에게 약속하신 바를 신실하게 지켜주셔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된 자로서, 그분의 말씀을 따르고 순종해야 합니다. 이러한 서로의 책임 속에서 관계가 형성되고, 유지되는 것이죠. 하나님의 책임도 인간의 책임도 모두 강조됩니다.
제가 서론에서 언약에 대해서, 책임에 대해서 이야기한 이유는 오늘 본문은 언약이 회복되는 장면, 곧 하나님이 책임을 다하고, 인간이 책임을 다하는 모습이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본문으로 들어가서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책임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13-14절을 보면,
열왕기하 11:13–14 NKSV
13 아달랴가 호위병들과 백성의 소리를 듣고, 주님의 성전에 모여 있는 백성에게 가서 14 보니, 왕이 대관식 규례에 따라 기둥 곁에 서 있고, 관리들과 나팔수들도 왕을 모시고 서 있고, 나라의 모든 백성이 기뻐하며 나팔을 불고 있었다. 아달랴가 분을 참지 못하고 옷을 찢으며 “반역이다! 반역이다!” 하고 외쳤다.
본문의 상황은 성전에서 왕이 즉위하고 있고 아달랴가 자신의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옷을 찢으며 반역이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이 배경을 조금 더 이해하기 위해서는 앞절을 살펴보는게 좋습니다.
1절을 함께 읽어볼까요?
열왕기하 11:1 NKSV
1 아하시야의 어머니 아달랴는 아들이 죽는 것을 보자, 왕족을 다 죽이기 시작하였다.
아달랴는 남편 여호람이 죽고, 아들 아하시야가 예후에 의해 죽자 아하시야의 아들들, 자신의 손자들을 다 죽여버렸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왕좌에 앉아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살펴볼 것은 아달랴의 죄는 무엇이었을까요? 반역죄? 친족살인죄일까요? 물론 그것도 맞지만 그녀의 행동 이면에는 더 큰 죄와 위기가 숨겨져 있습니다. 그녀의 행동은 하나님의 언약을 파괴한 행동이었습니다.
삼하 7:16을 보면 하나님은 다윗에게 너의 가문에서 왕조가 이어지게 해주겠다고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그런데 아하시야의 아들들이 다 죽어버리면 다윗의 가문이 끊기게 되고 하나님은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되는 것이죠. 하나님의 명예에 치명적인 스크레치가 생길뻔 한거에요. 하나님 신실하시죠. 근데 저번에 약속하나는 못지키셨던데….? 이런 찝찝함이 남기게 될 뻔한 거죠.
이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책임을 다하십니다. 2-3절을 함께 읽어볼까요?
열왕기하 11:2–3 NKSV
2 그러나 왕자들이 살해되는 가운데서도, 여호람 왕의 딸이요 아하시야의 누이인 여호세바가,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를 몰래 빼내어, 유모와 함께 침실에 숨겼다. 이 때에 사람들이, 아달랴가 모르도록 그를 숨겼으므로, 그는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 3 요아스는 그의 고모 여호세바와 함께 여섯 해 동안을 주님의 성전에 숨어 지냈으며, 그 동안 나라는 아달랴가 다스렸다.
고모인 여호세바가 요아스를 몰래 빼내어 성전에 숨어살게 했습니다. 그리고 성전에서 6년간 고모부인 대제사장 여호야다가 요아스를 가르쳤을 것으로 보입니다. 근데 인물들의 이름의 뜻을 보면 되게 재밌어요. 하나님은 맹세라는 여호세바가 모든 것을 아신다는 여호야도와 함께 그분이 도와주신다는 뜻의 요아스를 구해낸 것입니다. 해석해보자면,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은 아달랴의 죄 그리고 그 너머에 있는 사단의 계략을 알고 계셨으며,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께선 다윗의 언약을 기억하시고 이를 지키기 위해 친히 요아스를 보호하셨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2-3절은 하나님께서 책임을 다하시는 적극적인 사건이었습니다. 21절이 이를 또한번 말해주고 있습니다.
열왕기하 11:21 NKRV
21 요아스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칠 세였더라
왜 저자는 사건의 마지막 기록에 요아스의 나이를 다시한번 기록했을까요? 이는 요아스가 왕의 자리에 앉게 된 것이 그가 정치적으로, 전략적으로, 군사적으로 뛰어났기 때문이 아니라 어린 왕을 왕좌에 세우신건 하나님의 개입이라는 것을 다시한번 강조한 것입니다. 너희 이 사건을 핵심을 까먹으면 안돼? 이거 하나님이 하신거야. 잊지마.
오늘 본문은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 반드시 하신 약속을 책임지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약속을 지키실까요?
다니엘 풀러 신학자는 하나님의 사명 선언문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나의 최고의 사명은 000을 섬기는 것이다.” 가운데 자기 이름을 넣고 다시한번 다같이 말해볼까요?
[우리가 하나님을 오해했다]라는 책에서 저자는 예레미야 32:39-41 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명이 이와 같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32:39 NKRV
39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과 한 길을 주어 자기들과 자기 후손의 복을 위하여 항상 나를 경외하게 하고
하나님께서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복을 주시기 위하여 한 마음과 한 길을 주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항상 자신을 경외하도록 하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복이라는 단어는 토브입니다. 토브는 좋다, 혹은 하나님이 선하시다 할 때 선하다라는 뜻을 가집니다. 또한 경외한다는 표현을 영어성경은 예배한다고 번역합니다.
다시 풀어보면, 39절은 하나님은 우리와 후손에게 선을 베풀어주시기 위해서 한 마음 곧 당신을 예배하도록 만든다는 것이죠.
40절에서 더 의미가 확장됩니다.
예레미야 32:40 NKRV
40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기 위하여 그들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는 영원한 언약을 그들에게 세우고 나를 경외함을 그들의 마음에 두어 나를 떠나지 않게 하고
복은 선을, 경외함은 예배로 다시 해석하면, 40절은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에요. 내가 영원한 언약을 세울건데, 그 언약은 내가 너희를 위해 선을 베푸는 일을 결코 그치지 않을거야. 그래서 너희 마음 안에 나를 예배하고 싶은 열망을 만들어줄거야. 그렇게 너희가 나를 떠나지 않도록 만들 것이다.
근데 더 놀라운 점은 41절에 있습니다.
예레미야 32:41 NKRV
41 내가 기쁨으로 그들에게 복을 주되 분명히 나의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그들을 이 땅에 심으리라
우리가 하나님을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사랑하라는 말씀은 익숙한대, 하나님도 마음과 힘을 다해 우리에게 선을 베풀어주신대요. 그게 기쁨이래요. 니들 꼬라지보면 진작 버리고 싶은대 내가 진짜 뱉은 말이 있어서 억지로 해줄게가 아니라 내가 너희에게 그렇게 선을 베푸는게 너무 기뻐서, 내 마음과 힘을 다할거야. 라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새 언약을 정리해보면, 하나님이 기쁨으로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선을 베풀어주셔서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고 싶은 갈망함을 만들어주신다는 거에요.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지 않도록 만든다는 것입니다.
이 새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자들이 포함됩니다. 즉, 새 언약은 오늘 말씀을 들으러 온 모든 성도들에게 행할 하나님의 책임인 것입니다.
“나의 최고의 사명은 000을 섬기는 것이다.”는 하나님의 사명 선언문에 자기 이름을 넣고 다시한번 말해볼까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표현이자 상상이에요. 하나님께선 내가 일어나기도 전에 사명 선언문을 외치시면서 그 무한하신 지혜와 능력으로 모든 일을 계획하셨고 온종일 실행하실 것입니다. 이전에도 어제도 단 한번의 예외없이 그렇게 행하셨고, 오늘도 내일도 그렇게 행하실 것입니다.
그분이 우리의 하나님 되십니다. 그분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알면 알수록 우리 마음 가운데 하나님을 예배하고 싶은 마음이 자라나게 됩니다. 우리도 우리의 책임을 다하게 되는 것이죠.
두번째는 바로 우리의 책임입니다.
열왕기하 11:17 NKSV
17 여호야다는, 이스라엘 백성이 주님의 백성이 되는 언약을, 주님과 왕과 백성 사이에 맺게 하고, 동시에 왕과 백성 사이에도 언약을 맺게 하였다.
왕과 하나님, 그리고 백성 사이에 언약을 맺습니다. 많은 학자들은 이장면이 모세 언약을 회복하는 장면이라고 해석합니다. 모세 언약은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맺은 언약으로, 그 내용은 특히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내용이 담겨져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십계명의 내용이죠. 하나면 살펴보자면,
신명기 4:23 NKSV
23 당신들은,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당신들과 세우신 언약을 잊지 말고 지켜야 합니다. 그리고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당신들에게 금하신 대로, 어떤 형상의 우상도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책임은 우상을 섬기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언약을 맺자마자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응은 바로 우상을 제거하는 것이었습니다.
열왕기하 11:18 NKSV
18 그렇게 하고 난 다음에, 그 땅의 온 백성이 바알의 신전으로 몰려가서, 그 신전을 허물고, 제단을 뒤엎고, 신상들을 완전히 부수어 버렸다. 또 그들은 제단 앞에서 바알의 제사장 맛단을 죽였다. 그리고 여호야다 제사장은 주님의 성전에 경비병들을 세웠다.
온 백성이 우상을 제거합니다. 언약에서 바로 인간의 책임을 다한 것입니다.
우리는 언약을 회복할 때, 즉 정체성을 회복할 때 삶의 변화가 나타납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하나님이 당신의 자녀에게 어떻게 행동하는가를 다시 확인할 때 우리는 우상을 제거하고 다시 하나님께 돌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상하면 제사를 드리는 것처럼 다른 종교를 믿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내가 만든 신에서 팀켈러 목사님은 우상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우리 다함께 읽어볼까요?
우상이란 무엇인가? 무엇이든 당신에게 하나님 보다 더 중요한 것이다. 무엇이든 하나님보다 더 크게 당신 마음과 생각을 차지하는 것이다.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것을 다른 데서 얻으려 한다면 그게 바로 우상이다. 무엇이든 워낙 당신 삶의 중심이자 필수여서 그것 없이는 살아갈 가치를 별로 느끼지 못한다면 그게 바로 가짜 신이다. 무엇이든 당신이 그것을 보며 마음 깊은 곳에서 이렇게 말한다면 그게 곧 우상이다. “저것만 있으면 내 삶이 의미 있어질 거야. 나도 가치 있는 사람이 될 거야. 내가 중요해지고, 안정감이 들거야”
무엇이 우상이죠? 오늘 하루 여러분 마음속에 가득찬 그것이 우상입니다. 무엇이 우상인가요? 여러분이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 위로를 받는 것, 기쁨과 안정을 주는 것이 우상입니다. 여러분 주위에 있는 선한 모든 것이 우상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지난주에 저를 굉장히 낙담하게 만든 말이 있었습니다. 제가 이제 목회자로 나아가고 있는 단계잖아요? 열심히 배우고 깨지고 그런 단계에 있는데, 그때마다 저에게 오는 많은 조언과 쓴소리를 듣고 절대 낙담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나를 올바른 길로 가르쳐주기 위해서 하는 말임을 알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요즘 시대에 누가 이래라 저라래 쓴소리해주나요. 사랑하니까 해주는거죠. 그리고 그 소리가 없다면 나는 성장하지 못한다는 것도 알기에 감사하게 받습니다. 오히려 너무 고마워요. 그런데 그날은 제가 좀 많이 지쳐있었나봐요. 평소라면 감사하게 받았을텐데 그날은 마음에 여유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중에서 한 말이 저의 마음에 너무 사무친거에요. 내가 지금까지 뭘했지? 나는 잘못된 길로 오고 있었나? 나 진짜 못하겠어. 나름대로 발버둥친다고 열심히 해왔는데 그 모든게 다 물거품이 되어 사라지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낙담하게 된거에요. 너무 마음이 슬프니까 평소와 같으면 사야한테 이야기하면서 위로를 받으려고 했을 거에요. 근데 그날따라 사야랑도 이야기하고싶지 않은거에요. 말씀을 읽을까? 기도를할까? 하다가 설교를 들었습니다. 설교말씀에 하나나님을 거치지 않고 너가 직접 저주하지말고 기도로 하나님께 맡겨라는 메시지를 받고 많이 위로가 됐어요. 그리고 다음날 흔적이라는 저녁집회를 참석했는데, 그날 저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너가 깨지는 과정이 필요해. 지금 그 과정인거야. 근데 나는 너가 이 과정을 잘 이겨낼거라 믿어. 이 과정을 지나고 우린 다시 사랑하게 될거야.” 제가 이 말씀 앞에서 펑펑 울었어요. 다시한번 하나님께 고백했어요. “하나님 제가 목사안수를 받는날 하나님께 드렸던 고백 기억하세요? 내 고집, 욕심, 관계, 돈 모든 것하나 놓지 못하는 저이지만 주님이 저를 사용하신다면 제가 주님의 선한 도구가 되기를 원해요. 했던 그 고백을 다시한번 드릴게요. 여전히 부족하고 실수투성이지만 하나님 저를 믿어주고 기다려주신다면 제가 잘 이겨내볼게요. 이 과정을 견대내볼게요. 다시 우리가 만날 그날에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도록.”
여러분 이 이야기를 왜 했을까요? 우리 무슨 이야기하고 있죠? 우상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만약 제가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고 사야에게 나아갔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사야는 제 우상이 되어버리는 것이죠. 하나님의 위로를 또한 경험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내가 힘들 때, 어려울 때, 기쁠 때 먼저 찾는 것이 바로 우리의 우상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책임을 다하고 우상을 제거하며 하나님께 다시 돌아간다면 하나님은 세상이 줄 수 없는 위로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나타나죠.
열왕기하 11:20 NKRV
20 온 백성이 즐거워하고 온 성이 평온하더라 아달랴를 무리가 왕궁에서 칼로 죽였더라
오늘 말씀의 제목이죠. 언약을 회복하고 우상을 제거하자. 즐거움과 평안이 회복되었습니다.
우리 삶의 기쁨이 , 평안이 언제 회복되냐면 하나님께 돌아갈 때입니다.
말씀의 결론입니다.
첫째, 우리는 아달랴의 죽음을 통해서 죄의 결과를 인식해야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며 주권적인 개입을 위해 기도해야합니다.
셋째, 우상을 고백하고 다시 하나님을, 말씀을 붙들며 살아내야 합니다.
말씀의 결론을 기억하며 함께 내가 주인 삼은 찬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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