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설교 240718 목 [에스겔 1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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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설교 240718 목 [에스겔 15장]
새벽설교 240718 목 [에스겔 15장]
본문: 에스겔 15장
본문: 에스겔 15장
오늘 새벽에도 함께 말씀을 나누는 모든 분들께 선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하시길 축복합니다.
성경에서 ‘포도’와 ‘포도나무’는 흔히 사용되는 상징이지요. 예수께서는 당신을 ‘포도나무’라고 말씀하시고, 성도들을 가리켜서 ‘포도나무의 가지’라고 표현하십니다. 예수로부터 공급되는 것을 통해서, 그 나무에 붙어있을 때 우리가 비로소 아름답고 먹음직스러운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시편 128편에서는 하나님께서 주신 어떤 복을 표현할 때 ‘포도나무’의 표상을 사용합니다. 포도나무는 굉장히 귀한 것이지요. 시인은 자신에게 주신 아내를 포도나무에, 또 자식들을 감람나무에 비유합니다.
이렇듯 성경속의 포도나무의 비유, 심상, 어떤 상징들은 주로 귀한 것을 가리킵니다. 포도나무에서 열리는 열매, 포도와 그 포도로 만든 것들이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기쁨, 잔치를 대표했던 것처럼 사람들은 포도나무라고 하면 좋은 인상을 떠올리기 마련이었지요. 그런데 이 ‘포도나무’의 상징이 조금 비틀어져서 사용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사야서 5장입니다. 여기서는 하나님께서 당신을 아주 포도나무를 아끼며 열심히 일하는 농부에다 비유하십니다. 정확히는 포도원 주인이지요. 주인은 아주 기름진 산을 일구고 가꾸어서, 그것의 돌을 제하고 밭을 갈아서 극상품의 포도나무를 옮겨 심습니다. 땀흘려서 일하고 그는 좋은 포도 열매 맺기를 기대합니다. 아마도 구슬땀을 흘리면서 온갖 수고를 다하면서도 그 주인의 입가에 미소가 넘치지 않았을까, 그만큼 애정을 다하였지만 열리는 것이 ‘들포도’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비유를 듣는 유다 예루살렘 주민들에게 묻습니다. 과연 누구의 잘못인가 하고 말이지요.
시편에서도 포도나무의 상징이 등장합니다. 시편 80편에서 시인은 하나님께서 포도나무를 애굽에서 옮겨 심었다고 말하지요. 구약성경 안에서 줄곧 하나님의 백성들, 애굽에서 건져내시고 언약하신 그 백성들, 유다와 예루살렘 성읍은 포도나무로 비유됩니다. 본래 하나님께서 아끼고 사랑하셔서 옮겨 심으신 포도나무, 그것이 하나님 백성들, 예루살렘이라는 것이지요. 오늘 본문, 에스겔의 예언에서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내용이 심상치 않습니다. 이 포도나무가 아주 보잘 것 없고 쓸모가 없다는 식으로 묘사되지요. 5절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온전할 때에도 아무 제조에 합당하지 아니하였거든, 하물며 불에 살라지고 탄 후에 어찌 제조에 합당하겠느냐’(5) 이것은 이미 바벨론의 침략으로 불살라진 예루살렘을 두고 하는 말로 들립니다. 5절은 3절과 그 내용이 상통하고 있지요. 하나님은 예언자를 통해 물으십니다. ‘그 나무를 가지고 무엇을 제조할 수 있겠느냐’(3)
사실 이것은 풍자입니다. 포도나무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그것으로 무엇을 가구를 만들거나 집을 짓는 재목으로 쓰는 것입니까? 아니지요, 포도나무는 열매를 얻기 위해 심는 키 작은 나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것을 무엇에다 쓸까, 그것으로 무엇을 만들어 쓸 수나 있을까, 궁리하십니다. 왜 그럴까요? 열매가 이미 온데간데 없기 때문입니다. 이는 기름진 땅으로 옮겨 심으신 포도원 주인의 기대, 그것을 철저히 저버린 포도나무에 대한 풍자이자 고발입니다. 주인의 기대대로 열매도 맺지 못하였는데, 심지어는 다른데 쓰기에도 쓸모가 없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이제는 불에 타버렸으니 더욱 쓸모없다는 것이지요.
6-7절은 그런 포도나무에 대하여 하나님이 얼마나 실망하시고 분노하시는지 드러냅니다. 이제는 비유를 직접적으로 예루살렘에 적용하지요. 포도나무를 불에 던질 땔감이 되게 한것처럼, 예루살렘을 그렇게 하시겠다는 겁니다. 7절은 점입가경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주민들을 대적하여서 이 일, 불에 뗄감을 던지듯 하실텐데, 사람들이 혹여나 그 불 속에서 도망치거든 어떻게 하실까, 그 불에서 나와 쫓아가겠다 하시는 겁니다. 불 속에서 불이 튀어나와 끝까지 추적하여서 불사르겠다는 것이지요.
어째서 하나님께서 이렇게까지 하실까, 어째서 하나님이 이토록 끈질기고 집요하게 예루살렘을 징벌하실까, 8절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이는 그들이 범법함이라.’(8) 이것이 단 한가지 이유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범법함’이라는 말을 주의깊게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율법을 지키지 않았다든지, 종교적인 제의, 의례, 예배를 소홀히 했다든지, 아니면 법적인 잘못을 저질렀다든지, 이런 뜻이 아닙니다. 히브리어 본문을 보면 여기서 ‘마알’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그것은 문자적으로 ‘서로 헌신된 관계에서 충실하지 않음’을 뜻합니다. 이를테면 우리가 호세아서에서 보는 것처럼 말이지요. 사랑하는 남편과 아내 사이에, 혼인의 언약으로 맺어진 관계 사이에, 서로에게 충실하지 않은 것, 다른 사람을 마음에 두고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어주는 것, ‘부정’한 것이지요. 이사야서에서 등장했던 포도원 주인을 떠올려 보면, 극상품의 포도나무를 옮겨심고 최선의 것을 다하여 사랑하고 섬겼는데, 들포도를 맺은 것, 그 사랑을 실망하게 한 것입니다. 서로에게 헌신을 약속한 그 언약, 그 언약을 어긴 것, 그리하여서 그 사랑과 헌신에 상처를 주고 실망을 안겨준 것, 그것이 7절의 이 집요한 분노의 이유라는 것이지요.
아가서 8장에서 시인은 이런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너는 나를 도장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질투는 스올같이 잔인하며, 불길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사랑은 죽음같이, 질투는 스올같이. 마치 오늘 에스겔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하나님의 사랑같다는 생각이 들지요.
그리하여 아가서의 시인은 이야기합니다. ‘너는 나를 도장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 신명기도 우리에게 같은 말을 전해줍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라.’(신 6:5-6)
오늘 하루 우리도 주님께 최상의 사랑을 올려드릴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 마음에 새기고, 지워지지 않고 잊혀지지 않는 그 사랑에 기대어서 순종의 열매를 기쁨으로 드릴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그리하여 죽음 같이 강하고, 스올같이 질긴 그 하나님의 사랑이 오히려 우리의 충만함이 되는 은혜가 함께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제목/마침기도
기도제목/마침기도
말씀을 생각하며
열매맺는 삶이 되게 하소서. 우리에게 주신 믿음의 열매를 맺어 하나님께, 또 사람들에게 영광과 기쁨되는 우리의 선한 삶이 되게 하소서.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그 소명 다하는 삶이 되게 하소서. 우리를 포도나무로 심으신 하나님께서 심으신 그 뜻에 맞게 사는 삶되게 하소서.
오늘 주님께 최선을 드리는 삶이 되게 하소서. 주님의 사랑을 우리 마음에 도장같이 새기고, 그 사랑에 응답하는 더 많이 사랑하는 삶되게 하소서.
교회를 위하여
영유아 유치부 여름캠프를 위해
비가 많이 옵니다. 좋은 일기를 주시고, 많은 비로 인해서 다치거나 상하는 일 없도록
출타중이신 담임목사님을 위해
이동중에 비가 많이 오는데 안전을 지켜주시옵소서. 먹고 마시는 일에 상하는 일 없게 하소서.
해마다 수재민들이 많이 발생하는데, 주님 긍휼을 베풀어 주셔서 많은 비 피해 없게 하소서. 특히 가난한 이들이 위험에 내몰립니다. 가난한 자들의 하나님, 자비를 베푸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