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719 금요기도회: 잠언 2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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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도 저희를 금요기도회 자리로 부르시고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은혜를 베푸심에 감사합니다. 한 주를 마무리하는 오늘 한 주의 수고와 지친 마음을 하나님께 내어놓기 위하여 왔습니다. 저희의 모든 수고를 아시는 주님이시오니 저희에게 신령한 복을 내려주시길 원합니다. 지친 마음과 고단을 위로하여 주시고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위로로 가득차게 도와주시옵소서. 오늘도 하나님께 아뢰기 위하여 이 자리에 나아왔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어 저희의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의 마음을 알려주시옵소서. 이 시간 함께 하실 줄 믿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함께 읽을 하나님의 말씀은 잠언 24:1-6 입니다. 제가 봉독하도록 하겠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잠언 24:1–6 NKRV
너는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말며 그와 함께 있으려고 하지도 말지어다 그들의 마음은 강포를 품고 그들의 입술은 재앙을 말함이니라 집은 지혜로 말미암아 건축되고 명철로 말미암아 견고하게 되며 또 방들은 지식으로 말미암아 각종 귀하고 아름다운 보배로 채우게 되느니라 지혜 있는 자는 강하고 지식 있는 자는 힘을 더하나니 너는 전략으로 싸우라 승리는 지략이 많음에 있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반갑습니다. 금요기도회에 나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요즘 날씨가 많이 안 좋은데도 안전하고 건강하게 함께 만나서 같이 기도할 수 있어서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오늘도 우리를 기도회 자리로 부르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이 시간도 주님께서 주시는 복을 누리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오늘도 말씀을 먼저 함께 듣고, 말씀을 두고 기도하면 좋겠는데요. 오늘 말씀은 잠언 24장의 말씀으로 이 세상에 있는 악인들의 형통에 대한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 악인들의 형통에 대하여 어떤 지혜를 가르치는지를 함께 살펴보고 오늘 우리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깨닫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권선징악을 추구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악은 징벌 받고 선을 권해야 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우리가 어떤 동화나 이야기를 듣거나 현대인들에게 익숙한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 악이 징벌 받고 선이 이기는 결말을 보고 우리는 통쾌하고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재밌게 봅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과정 속에서 악이 우세한 것을 볼 때 우리의 마음은 답답하고 선이 반드시 이겨줄 것을 기대하게 됩니다. 우리가 홍길동전이나 슈퍼맨과 같은 영웅이 등장하는 히어로물을 즐겁게 볼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이 권선징악이라는 요소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이 세상에 있는 악인은 당연히 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합니다. 오히려 악인들이 득세하고, 착하고 부지런히 사는 사람들보다 잘 사는 상황이 더 많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악이 징벌 받는 것을 보고 즐거워하고 통쾌해하는 것이 오히려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현실에서 그렇지 못하니 영화나 드라마에서라도 악이 징벌 받길 원하게 되는 것이죠. 그럴 때 우리는 세상이 불의하다고 느끼고, 왜 악인이 징벌 받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럴 때 우리에게 나타날 수 있는 반응은 다양합니다. 불평하거나 굴복하거나 부러워하거나 말이죠. 오늘 본문은 바로 형통한 악인을 보고 부러워하는 것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그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부러워 하지 말라고 이야기합니다.
1절을 보시면 “너는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말며 그와 함께 있으려고 하지도 말지어다”라고 말합니다. 이 24장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부러워할 뿐만 아니라 그와 함께 있지도 말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단지 악인들이 잘 사는 모습만을 보고 그들과 함께하고 교제하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나도 형통하고 싶고 잘 살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악인임에도 교제하려고 하고, 악인과 같이 형통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결국 나도 똑같은 사람이 되어 악인이 되어버릴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저자도 이러한 악인의 영향력을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형통한 악인과 교제하게 되면 똑같은 악인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미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악인과의 교제를 금하고 있습니다. 자신도 형통하고자 악인과 교제하게 되었지만, 악인에게 영향을 받아 똑같은 악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악인이 되어서는 안되는 이유로 2절은 “그들의 마음은 강포를 품고 그들의 입술은 재앙을 말하기” 때문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악인들의 마음은 강포한 마음입니다. 이것을 직역하면 “폭력을 묵상하며 읊조리”는 마음입니다. 바로 악인들은 약자들을 돕고 긍휼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약자들에게 폭력을 휘둘러 그들에게서 착취하여 부를 축적하려고 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어떻게 하면 더 큰 부를 축적할 수가 있을까? 어떻게 하면 약자들에게서 빼앗아 더 많은 이익을 남길 수 있을까? 하며 폭력을 묵상하며 읊조리는 자들입니다. 악인들의 마음에 이렇게 폭력이 있으니 자연스레 입에서 내뱉는 말도 폭력적인 말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인간의 말은 마음으로부터 기원하기 때문에 폭력을 품은 자는 폭력을 내뱉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입술에 폭력이 있는 악인들에게는 재앙이 임한다고 2절은 동시에 말하고 있습니다. 폭력을 휘둘렀으니 그에 따른 대가로 당연히 재앙이 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폭력을 싫어하시기 때문에 강포하고 폭력적인 악인들을 반드시 보응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악인들에게는 재앙이 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본문은 악인들이 형통하고 번성하는 것을 부러워하거나, 심지어 질투하여 이에 악인들의 길에 동참해서는 안 되는 이유는 그들이 마음에 폭력을 계획하고 이를 말함으로 스스로 파멸을 자초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재앙이 앞에 놓여있는 자들과 함께하는 것은 동참한 자도 함께 그 재앙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에 지혜가 아니며 어리석은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어느 누가 재앙을 받고 싶어하겠습니까? 그러나 이 세상에서 형통하고 번성하는 것은 너무나도 좋아보입니다. 우리는 때론 악인들이 불의한 재물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가진 부를 부러워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단지 악인들에게 동참하지 말라는 것을 넘어서서 그들과 동참하지 않을 때에 받는 유익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악인들의 형통함에 유혹되지 않으니 말입니다.그래서 솔로몬은 지혜의 유익, 오늘 본문에 의하면 악인들의 형통함을 부러워하거나 그들에게 동참하지 않고 오히려 지혜를 가질 때 받는 유익에 대해서 3-4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요약하자면 지혜는 악인들이 가진 형통함보다 더 큰 가치가 있다는 겁니다.
3-4절을 보시면 “집은 지혜로 말미암아 건축되고 명철로 말미암아 견고하게 되며 또 방들은 지식으로 말미암아 각종 귀하고 아름다운 보배로 채우게 되느니라”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집은 건물을 의미하는 것을 넘어서서 집에서 함께 사는 가족, 그리고 모든 공동체를 의미합니다. 바로 지혜는 공동체를 파괴하지 않고, 오히려 세우게되는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악인들은 공동체를 파괴합니다. 그들의 자기중심적인 행동으로 약한 자들은 공동체에서 살아남지 못하고, 끊임없이 자기보다 약한 자가 있으면 악인들은 착취하려고 하기 때문에 공동체가 서지 못합니다. 그러나 지혜는 악인들과는 달리 좋은 집을 세우고 명철로 견고하게 만들며, 더 나아가 각각의 방들은 그 지식으로 인해 각종 귀하고 아름다운 보배로 가득차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지으신 원리이기도 합니다. 그분은 원래 삼위라는 공동체로 계셨고, 잠언은 그분이 지혜로 이 세상을 지으셨다는 것을 말함으로 이 세상이 각종 보화로 가득찬 공동체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지혜 그 자체이신 하나님께서 이미 공동체로 계시고, 그분이 행하시는 일들은 모두 공동체를 세우는 행위이니 자연스레 지혜는 공동체를 세우게 만듭니다. 공동체를 파괴하고, 분열시키는 것은 지혜가 없는 것이며 미련한 것입니다. 더 나아가 오늘 본문에 따르면 악인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자신의 형통함과 번성함을 위하여 타인을 희생시키기 때문입니다. 잠언 1장에서 솔로몬은 악한 친구들은 자녀를 유혹하여 약탈물을 가져오자고 한다고 말하였습니다. 악인의 방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약탈물들입니다. 그러나 지혜자의 방에는 보물로 가득찬 곳입니다.
더 나아가 솔로몬은 지혜는 힘보다 더 강하다고 말합니다. 5-6절입니다. “지혜 있는 자는 강하고 지식 있는 자는 힘을 더하나니 너는 전략으로 싸우라 승리는 지략이 많음에 있느니라”
솔로몬은 지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하기 위하여 전쟁에서 가장 필요한 힘과 비교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힘이 결코 잘못된 것이거나 악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지혜를 강조하기 위하여 힘과 비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전쟁은 단지 힘으로만 하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많이 읽는 삼국지를 보십시오. 제갈량과 같이 지혜가 있는 사람은 힘이 쎈 장수도 전쟁에서 이겨버립니다. 지혜는 승리를 가져다주기도 합니다. 특별히 잠언에서 말하는 지혜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앙을 뜻합니다. 성경은 모든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고 말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을 예배하는 것이 곧 전쟁에서 승리하는 지혜입니다. 머리가 비상하고 병법을 잘 아는 것이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진정한 지혜입니다.
오늘 본문은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기 보다는 하나님을 따르는 신앙을 가지는 것이 지혜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시편을 통하여 악인들의 형통함을 보고 불평하지 말 것을 배웠습니다. 오늘 본문도 그러한 맥락 속에 있습니다. 그러나 잠언이 가지는 독특성 특성은 시편은 하나님의 공의에 호소하며 기도함으로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있기 때문에 불평하지 말라는 것으로 신자가 어떻게 그 상황을 대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가르쳤다면, 잠언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부러워하는 것은 지혜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참된 지혜는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합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악인들이 형통하는 모습을 많이 마주합니다. 그럴 때 이 악인들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 지혜라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삶은 너무나 윤택하고 평탄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하나님을 믿지 않는 많은 이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돈 잘 챙겨주고 높은 월급을 주는 사장이 있다면 아무리 윤리적으로 좋지 못하더라도 좋은 사장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겉으로는 드러내진 않아도 오늘 본문의 악인들과 같이 불의한 재물을 얻더라도 남들에게 걸리지만 않으면 괜찮다고 생각할 겁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말합니다. 그것은 지혜가 아니며, 재앙이 임하는 길이라고 말입니다. 그 길은 승리하는 길이 아니라, 패망하는 길이라고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갈 때 매순간 도전을 받습니다. 나의 이익과 나의 형통함을 위해서 잠시 하나님의 말씀을 어겨도 괜찮지 않을까, 그냥 한번쯤 어기는 건데 별 문제 있겠어? 하고 말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를 구원하신 그리스도께서 걸어가신 길을 보십시오. 그분은 세상의 관점으로 봤을 때 결코 형통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과 같은 악인들이 득세하는 세상 속에 계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단 한번도 그들을 부러워하지 않으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을 예배하는 것이 진정한 지혜임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하나님께서 악인들을 심판하실 것이고, 악인들에게 닥칠 미래는 재앙이라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이 곧 승리하는 길임을 아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실제로 실현되어 십자가를 통하여 죄로부터 승리하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 곧 지혜로 승리하셨습니다. 또한 그분이 세우신 공동체는 결코 무너지지 않는 견고한 공동체입니다. 오늘 본문이 말하는 집은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공동체인 교회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지혜 그 자체이신 분께서 세우신 이 교회는 약자들도 함께 공존하여 아주 견고하고 각종 보물로 가득찬 공동체가 됩니다. 에베소서에서 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다고 말합니다. 바로 무너지지 않는 아주 견고한 모퉁잇돌이 우리 교회를 지키고 계십니다. 그리하여 교회는 어떻게 됩니까? 마태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그리스도께서 공동체를 세우셨으니 그분의 말씀을 따르는 교회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며 오늘 본문의 솔로몬이 말하는 지혜자가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 지혜자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입니다. 그분은 참된 지혜자로서 공동체를 세우시고 그 공동체를 견고하고, 각종 보물로 가득 채우셨습니다. 우리 교회는 겉으로는 별 볼일 없어 보여도 견고하고 보물로 가득찬 공동체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복을 이 교회 안에서 누리며 살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악인들이 형통해보인다고 그들에게 동참하지 마십시오. 그들의 길은 공동체가 파괴되는 길이며 반드시 패망하고 재앙이 임하는 길입니다. 그들의 길을 가지 마시고, 지혜자이신 그리스도의 길을 가십시오. 그분의 길은 보화로 가득찬 길입니다. 그리스도의 길을 가는 것이 참된 지혜입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며 참된 지혜자이신 그리스도의 길을 따라 서로의 연약함을 보듬어 주고 공동체를 세우며 보물로 가득찬 공동체로 만들어가는 우리 새순교회 성도님들이 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 시간 같이 오늘 말씀을 두고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은 악인들의 형통함을 부러워하고 그들에게 동참하는 것은 지혜가 아니며 재앙이고 패망의 길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시간 말씀을 두고 기도합시다. 지혜이신 그리스도를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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