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한 기도(염광금요설교)

염광교회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19 views
Notes
Transcript

정직한 기도(염광금요)‌‌

시편25:1-3
1여호와여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보나이다
2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의지하였사오니 나를 부끄럽지 않게 하시고 나의 원수들이 나를 이겨 개가를 부르지 못하게 하소서
3주를 바라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려니와 까닭 없이 속이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리이다
그리스도인들이 모여 열심히 하는 것들 중에 예배가 있고, 기도모임이 있고, 교제가 있습니다.
예배와 기도는 하나님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지만 교제는 좀 다르지 않나 하는 생각을 가질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교제는 단지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사교적인 만남이나 모임이 아닙니다.
시간을 정해 드리는 예배는 그 시간으로 끝나게 되지만 우리는 교제를 통해 예배를 계속 이어져가게하는 기능이 있습니다. 예배 후에 나누어지는 교제는 굉장히 중요한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배만 드리고 아무런 교제없이 교회를 다니는 성도나 주중에 성도의 교제 없이 교회를 다니는 성도가 있다면 온전한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교제를 통해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생활속에서 계속적으로 발견해 나가는 것입니다.
성도간의 교제를 통해서 우리는 서로를 잘 알게 됩니다. 영혼의 이야기, 살아온 환경의 이야기, 미래의 대한 꿈의 이야기, 현재 상황의 이야기 많은 것들을 교제를 통해 더 깊이 알게 됩니다. 또한 그 속에서 역사하신 하나님을 발견하면서 내가 알고 경험한 하나님을 더 넓고 깊게 알게 됩니다.
성경공부만큼이나 성도의 교제는 하나님을 알아가는데 참으로 중요한 시간이 되는 것입니다. 교제를 통해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배울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풍성한 교제는 영원한 예배로 나아가게 합니다.
성도간의 건강한 교제가 빠진채로 신앙생활하고 있다면 신앙생활을 다시 점검해 봐야 합니다.
오늘은 이 영원한 사귐을 위해 필요한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인 이 기도를 정말 잘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뜻을 묻고, 그분의 음성을 듣고, 그분께 위로를 얻고, 사랑을 고백하고, 힘을 얻습니다. 기도는 단지 필요를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윗은 하나님과 참 많은 기도의 교제를 합니다.
오늘 시편의 말씀은 다윗이 위험에 처해 있거나 어려운 문제앞에서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닙니다. 상황과 상관없이 하나님을 찾고 있습니다.
이 시편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께 드리는 정직한 기도를 함께 배우길 원합니다.
대부분의 기독인들은 기도를 하나님께 필요한 것을 요구하는 통로로 삼습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심부름시킵니다.
이것좀 해 주세요. 이것좀 옮겨주세요. 이것좀 없애 주세요. 이것좀 더 주세요.
우리 기도속에 온통 하나님을 향해 요구하는 것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기도는 요구의 기도가 아니라 훨씬 더 고상하고 차원이 높습니다.
첫 번째로 정직한 기도는 은혜를 의지하여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1절에서 여호와여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보나이다
말씀합니다.
말로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훌륭한 신앙을 고백하고 하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 영혼이 지금 하나님을 향해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아무리 말로 유창하게 기도하여도 그 영혼이 하나님께 온전히 향해 있지 않으면 그 모든 말의 기도는 하찮은 것이 됩니다.
다윗이 고백하고 있는 나의 영혼은, 자신의 생명, 존재 자체를 말하는 것이며, 우러러본다라는 것을 우리가 기도의 표현 중에 손을 높이 들어 올리것과 같은 표현입니다.
하나님께 나의 영혼, 생명, 마음, 나의 전 존재를 들어 올려드립니다. 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지금 내가 위태하든지, 무엇인가 필요하든지 그것과 상관없이 일단 내 영혼을 하나님께 향한다는 것입니다.
상황 때문에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은혜 때문에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말레이시아 페낭지역의 한 현지교회를 갔습니다. 주일예배를 드리는데 찬양이 깊어지기 시작하니까
목사님부터 군데 군데 성도들이 바닥에 바짝 엎드리고 손바닥을 높이 쳐들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가져야될 기도의 태도는 은혜를 의지하여서 기도하는것입니다.
하나님, 내가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서 하나님을 찾습니다.
하나님, 내가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서 하나님께 나왔습니다.
요구가 있어서 하나님께 나온 것도 아닙니다. 필요가 있어서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하나님을 찾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이
정직한 기도로 나아가는 첫 번째 발걸음입니다.
자랐던 교회의 한 원로장로님의 기도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선명합니다.
그분은 북에서 피난오셨던 분이어서 이북사투리로 강대상에서 그저 하나님, 하나님 몇마디 부르기만 해도 함께 기도하던 분위기가 얼마나 숙연해지고, 그 한마디에도 회중 속에서 울음이 터져 나오기도 했습니다.
기도가 유창해서도 아닙니다.
평생 교회를 세워나가기위해 헌신한 그 삶이 은혜가 되어서 그랬고
겸손한 그분이 지금의 시간이 얼마나 하나님의 큰 은혜인지 늘 고백했기 때문에
그분이 그저 하나님 하나님 몇마디만 불러도 은혜가되고 가슴에 뜨거움이 흘러 넘쳤습니다.
두 번째는 정직한 기도는 고난을 뛰어 넘는 기도입니다.
2절과 3절에서 시인은 숱한 고난을 경험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려운일을 많이 겪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의지하였사오니 나를 부끄럽지 않게 하시고 나의 원수들이 나를 이겨 개가를 부르지 못하게 하소서
3주를 바라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려니와 까닭 없이 속이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리이다
다윗이 이런 고백을 할 수 있는 이유는 자신은 하나님만 의지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큰 소리치는 자가 수치를 당한다면 하나님이 수치를 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부끄러움을 당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고난을 붙들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어려운 상황을 붙들지 않았습니다.
어려운 상황은 하나님께 맡기고, 고난은 하나님께 맡기고 자신은 하나님을 붙들었습니다.
하나님께 때를 쓰고 애를 써서 요구하면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때도 있습니다.
시편 106편 15절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그들이 요구한 것을 그들에게 주셨을지라도 그들의 영혼은 쇠약하게 하셨도다
하나님을 향한 나의 마음이나, 하나님의 은혜는 생각지도 않고 문제만 붙들고 하나님께 요구하고 고난만 붙들고 하나님께 요구하게 되면 하나님이 들어 주실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고난과 상황을 통해 주시는 은혜는 발견하지 못하기 때문에 영혼은 오히려 병들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경험이 없습니까.
저는 전도사가 되어서 용인의 시골 교회에서 사역을 할 때 신학교를 오가면서 날마다 강남의 멋진 교회를 보게 되었습니다. 마음에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하나님 나도 시골에 있게마시고 저렇게 멋지고 좋은 동네에 있는 교회에좀 사역하게 해 주세요. 얼마나 간절히 때를 쓰면서 기도했는지 모릅니다.
기도의 동기가 별로 거룩하지도 않고 의미도 없어요. 그런데 얼마나 기도했는지 몰라요.
그런데 정말 기적같이 그 교회에서 단번에 저를 콜~ 한거에요.
하나님 응답하셨어요. 그런데 몇 년동안 제 영혼이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아, 때를 써서 네 필요를 채운 기도 응답의 댓가가 이런 것이구나를 뼈저리게 경험했습니다.
오히려 지금 고난이나 슬픔이 내 영혼을 위해서 더 나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전도서 7:3 슬픔이 웃음보다 나음은 얼굴에 근심하는 것이 마음에 유익하기 때문이니라
슬픔이 웃음보다 낫다 라는 말이 나옵니다.
시편 119:71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고난 때문에 나를 향한 하나님의 요구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고난을 붙들고, 문제를 붙들고 기도하지 마세요.
하나님을 붙들고 고난을,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는 기도를 하세요.
하나님을 찾는 시간동안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유익이 분명이 있게 됩니다.
3절에서 까닭없이 속이는 자는 그저 갑자기 속이거나 죄악을 행하는 사람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계속해서 집요하게 우리를 넘어뜰게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런 사람앞에서 우리는 이길 수 있겠습니까.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속이고 넘어뜨릴 수 있어도 하나님은 속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이길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님 뒤에 숨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시편 91 편을 다같이 한번 읽어봅시다.

91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자여,

2 나는 여호와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3 이는 그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심한 전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4 그가 너를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에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시나니

5 너는 밤에 찾아오는 공포와 낮에 날아드는 화살과

6 어두울 때 퍼지는 전염병과 밝을 때 닥쳐오는 재앙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7 천 명이 네 왼쪽에서, 만 명이 네 오른쪽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하지 못하리로다

8 오직 너는 똑똑히 보리니 악인들의 보응을 네가 보리로다

9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를 너의 거처로 삼았으므로

10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11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12 그들이 그들의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아니하게 하리로다

13 네가 사자와 독사를 밟으며 젊은 사자와 뱀을 발로 누르리로다

14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

15 그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 그들이 환난 당할 때에 내가 그와 함께 하여 그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16 내가 그를 장수하게 함으로 그를 만족하게 하며 나의 구원을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도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피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그늘아래 거하는 것 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누가 일합니까 누가 싸웁니까 하나님이 다 싸우십니다. 하나님이 전면에 나서서 다 해결하십니다. 내가 얼마큼이나 하나님께 피하고 숨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정직한 기도는 고난을 내힘으로 정면승부할테니까 힘을 주세요가 아니라
하나님 나는 어떤 힘도 지혜도 없습니다. 하나님만 붙듭니다. 하나님 도와주세요입니다.
하나님 나는 하나님만 의지합니다. 하나님만 의지하는 것이 부끄러운일이 되지 않게 해 주세요.입니다.
하나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 뒤에 숨는 길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일하시옵소서. 하나님이 싸워주시옵소서. 라고 기도하는 것밖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제목들을 나누는 일이 정말 중요한 일입니다.
교제 속에서 자신의 기도제목을 나눈다는 것은 서로 함께 하나님을 의지하자는 공동체의 약속이고 이 일이 교회안에 활발하게 일어나면 그 공동체는 전체가 하나님을 의지하는 공동체가 됩니다.
정리합니다.
정직한 기도는 우리의 요구와 필요만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직한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잘 알게 되고, 기도하는 동안의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들을 보게 됩니다.
정직한 기도를 위해
먼저 은혜를 의지하여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상황 때문에, 어떤 이유 때문에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기도해야 될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 때문입니다. 뭐 요즘 기도할거리가 별로 없어요라는 말이 나와서는 안됩니다.
은혜를 통해 우리의 마음과 영혼을 하나님께 향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고난을 뛰어넘는 기도입니다. 문제를 붙드는 기도는 응답된다 할 지라도 우리 영혼이 성숙되지 않습니다. 고난의 문제는 하나님께 맡기고 나는 끝까지 하나님만 의지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것 자체가 기쁨이요 즐거움이요 감사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낮에 어떤 목사님의 요청으로 분당에 지하에 있는 개척교회를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20-30명 남짓 70대 노인분들과 장애가 있는 분들이 모여있었습니다. 코로나동안 얼마나 힘들었는지
1대 목사님이 갑자기 암으로 돌아가시고 2대로 오셨는데 이제 50이 조금 넘은 사모님이 파킨슨병에 걸렸고
지하에 조그마한 교회에는 70대 노인분들 몇분과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목사님이 그런 말씀을 합니다. 자신이 여기서 무슨 대단한 꿈을 꿀 수 있겠는가? 여기서 뭐가 대단하게 바뀔 것이 있겠는가. 그런것을 위해서 여기서 기도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헛된 자기 욕망인가.
교회나 하나님의 꿈이 아니라 목사 자신의 욕망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은 여기서 그냥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머무는 것 외에는 길이 없다는 거에요.
그리고 기도가 목사로 시작하게 하셨으니 목사로 죽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우리 하나님을 찾읍시다. 우리의 요구때문에 찾는 것이 아니라 주신 은혜때문에 하나님을 찾읍시다.
어려움이 있습니까. 고민이 있습니까. 우리 교회의 어려움 있습니까.
하나님께 맡깁시다. 하나님 발아래 둡니다. 이제 하나님이 일하시고 우리는 하나님만 바라겠습니다.
하나님만 바라보고 있겠습니다. 하나님이 일하시옵소서라고 말입니다.
역대하 20:12 우리 하나님이여 그들을 징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하고
우리는 주님만 바라봅니다.
주님이 우리를 그냥 버려 두지 않으실 것입니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