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지구력을 키워라! vol.3
2024 여름수련회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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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여름수련회
2024 여름수련회
사도와 장로들이 이 일을 의논하러 모여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언하시고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하사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아니하셨느니라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사랑합니다! 논스톱 기도회에 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지난 주에 돌아 맞아서 죽은 줄 알았던 바울이 극적으로 살아서 다음 도시의 성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1차 전도 여행은 마치게 된다. 그렇게 바울과 바나바가 안디옥 교회로 돌아왔다. 그때에 유대에서 온 형제들이 안디옥 교회에 와서 율법과 할례를 말한다. 이런 논란을 일으키게 된다.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하니
어떻게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모세의 법을 지켜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는다고 말한다. 이들의 가르침 때문에 안디옥 교회에서 구원에 대한 논쟁이 일어난다.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문제이다. 안디옥 교회에서 이 문제로 인해 바울과 바나바를 예루살렘 교회로 보낸다. 예루살렘 교회는 이들이 온 것을 크게 기뻐한다. 그 후에 이방인들이 모세의 율법을 따라 할례를 해야하는지에 대한 토론이 벌어진다. 바리새파 출신의 형제들의 주장은 이렇다.
바리새파 중에 어떤 믿는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를 행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이들은 할례도 해야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한다는 주장하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들은 사도 베드로가 일어나서 말하는 내용이 오늘 본문의 내용이다. 베드로는 이방인 고넬료의 집에 가서 설교를 했던 경험을 근거삼아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차별이 없다는 것을 말한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똑같이 믿음이 있고 성령을 받았다는 것이다. 성령을 받고 믿음을 가진 것에 차이가 없다. 그리고 율법을 지키는 것은 멍에라고 말한다.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베드로는 이방인의 형제들이 율법을 지키며 할례를 행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말한다. 여기어 “멍에”는 비유적으로 사용되어 율법을 지키고 할례를 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 멍에는 속박과 구속이다. 유대인 성도들이 멍에를 이방인들에게 지움으로 하나님을 시험하려고 한다. 하나님은 이방인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유대인 성도들은 이방인 성도들에게 율법을 지키고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사실 유대인 조상들이나 유대인들도 율법을 잘 지키고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사실 유대인 조상들이나 유대인들도 율법을 잘 지키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다. 베드로는 확실하게 선언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구원은 오직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베드로의 발언이 마치고 나서 바울과 바나바가 하나님이 그들을 통하여 행하신 표적과 기사를 말한다. 회의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이방인 사역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후에 야고보가 일어나 회의를 마친다. 예수님의 제자 야고보는 이전에 순교를 당했기 때문에 여기에 등장하는 야고보는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이다. 그 야고보가 회의의 의장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야고보는 베드로의 옛 이름 시몬을 언급하면서 그가 말한 내용을 동의한다. 더 나아가 구약의 아모스 선지자의 예언이 성취되었다고 선언한다. 하나님께서 무너진 다윗의 장막을 다시 세울 때에 이방인들도 함께 할 것이다. 결국 이방인들도 구원의 자리에 동참할 것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그때 야고보는 회의를 마치면서 이방인들에게 실제 도움이 되는 권면을 하자고 제안한다. 이 권면은 회개하고 돌아오는 이방인들에게 율법을 지키게 하지 말자는 것이다. 이방인들은 율법을 지키고 할례를 해야할 의무가 없었다. 그러나 이방인들이 주의해야 할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우상에게 바친 더러운 음식을 먹지 말 것과 음란한 행동을 하지 말 것과 목 졸라 죽인 짐승의 고기와 피를 먹지 말라고 말한다.
야고보의 제안은 예루살렘 교회에 의해 받아들여지게 된다. 예루살렘 교회는 안디옥 교회에게 공식적인 편지를 쓴다. 먼저 안디옥 교회에 가서 율법을 지키고 할례를 행하라고 가르친 사람들은 예루살렘 교회에서 보낸 사람들이 아니라고 확인시켜준다. 따라서 그들의 가르침은 권위가 없었다. 그들은 옛날부터 여러 성에서 모세의 가르침을 전하는 사람들이다. 예루살렘 교회는 이번 회의를 통해 결정된 것을 알려준다.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는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옳은 줄 알았노니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할지니라 이에 스스로 삼가면 잘되리라 평안함을 원하노라 하였더라
이 말씀을 통해서 예루살렘 교회의 회의 결과는 “성령과 우리”를 통해서 된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와 성령이 아니라 성령이 먼저 나온다. 이 회의의 주관자가 성령이라는 것이다. 성령이 교회의 지도자들을 통해서 구원에 관한 논쟁을 정리하게 하신다. 그러면서 예루살렘 교회는 안디옥 교회에게 “짐을 지우지 아니”하기로 결정한다. 짐은 율법을 지키는 것과 할례를 받는 것을 의미한다. 이로써 구원은 어떻게 받는 것인지에 대해 명확해져간다. 오직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을 받는다. 그렇게 구원에 대한 이야기를 결정한 후에 윤리적인 권면을 준다. 안디옥 교회는 이방인들로 구성된 교회이다. 이방인과 유대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 그 후에 이 두 그룹이 평화롭게 살아가기 위해서 윤리적인 문제들을 지킬 것을 말한다.
유대인들은 어려서부터 이방인과 상종하지 말 것과 음식법을 지켜야 할 것을 교육받고 자라기 때문이다.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을 삼가라고 한다. 이것은 먹는 문제이다. 우상에게 드려진 제물을 먹는 것과 피를 완전히 빼지 않은 고기와 목매어 죽인 짐승의 고기를 먹는 문제이다. 유대인들은 가축을 도살할 때 피를 완전히 뺀 후에 고기를 먹었다. 유대인들은 피를 먹지 않았다. 죽은 사체를 만지는 것을 부정한 일이기도 했다. 예루살렘 교회가 이렇게 먹는 문제를 언급한 것은 이방인 성도들과 유대인 성도들 사이의 식탁 교제가 있을 것을 생각한 것이기 때문이다. 유대인 성도들은 구약과 그들의 전통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리고 음행에 대해서도 말한다. 이방인들은 성적으로 아주 음란하다. 믿는 이방인 성도들이 이러한 분위기에 영향을 받을 수 있기에 음행을 삼가라고 권면한다.
예루살렘 교회는 위의 결정된 사항을 만장일치로 결정했다. 이것을 공적인 편지로 써서 바나바와 바울 그리고 유다와 실라를 통해 안디옥 교회에 보낸다. 안디옥 교회는 이 편지를 받고 기뻐한다. 구원에 대한 신학적인 문제가 해결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기서 3가지를 발견할 수 있다. 첫 번째로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받는다는 것이다. 의외로 교회 안에 모태신앙의 사람들이 구원에 대한 것을 굉장히 헷갈려한다. 이전의 교회에서 어떤 교회 동생과 형이 나에게 이런 상담을 했었다. 자신들은 술과 담배를 하는데 지옥에 갈 것 같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때 내가 형제들에게 이렇게 물어보았다. 예수님 정말로 믿냐고 물어봤더니 예수님 당연히 믿는다고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나는 걱정하지 말라고 답을 해줬다. 당신들은 꼭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왜냐하면 믿음은 하나님이 주시지 않으면 아무리 내가 믿으려고 해도 믿고 싶어도 믿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를 들은 형제들은 기뻐하며 속이 후련한 기분이라는 것이다. 그때 나는 한 가지 질문을 했다. “그러면 진짜 예수님 사랑해? 만약에 사랑하는 사람이 술과 담배를 해서 몸이 망가지는걸 보고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라고 말했다.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주권과 선택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행위를 하더라도 하나님께 조금이라도 구원을 받을만한 행위는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하나님이 나를 선택하셨다는 것은 오직 은혜말고는 도저히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구원은 완성형이 아니라 이루어져가는 진행형이라는 것을 기억해야한다. 우리가 연약함과 죄로 인해 넘어질 때 스스로 생각해봐야하는 것은 “내가 진정으로 예수님을 사랑하는가?”이다.
두 번째로 교회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교회가 예수의 영이신 성령님이 주관하신다. 오늘 예루살렘 교회에서 구원에 대한 회의를 통해 결정했던 것처럼 그 모든 결정은 사람이 한 것 같지만, 결국 성령님께서 정리하신 것이다. 이 땅의 교회는 완벽한 교회는 없다. 요한계시록에서도 일곱 교회에 책망하신 내용만 보아도 교회가 완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이 오시고 난 후의 초대교회도 로마로부터 300년 동안 숱한 고난과 박해를 당하며 끝날 줄 알았던 교회역사는 끝나지 않고 오히려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삼는 일이 생긴다. 그러면서 로마가 멸망하고 중세시대가 되어 점점 교회는 타락의 길을 가게 되었고, 교회 역사의 암흑기로 사라져갈 것 같았지만 종교개혁이 일어나 교회가 다시금 생명력을 가져 부흥의 역사를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모든 교회와 역사의 주인이 누구라는 것인가?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는 교회는 망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교회는 완성형이 아니다. 과정을 향해 교회가 교회되어가는 과정에 있는 것이다. 부흥의 역사, 회개의 역사는 누구의 손에 달린 것인가? 하나님 손 안에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한다. 하나님이 열어주셔야지, 하나님이 부흥의 때를 허락하셔야 부흥이 오게 되는 것이다. 인간의 노력으로 부흥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기를 소망한다.
마지막으로 음행을 조심해야 한다. 지난 주일에 담임목사님도 강력하게 말씀하셨던 이야기다. 성경에서 음행은 크게 두 가지로 말한다. 외간 여자, 외간 남자에게 눈길을 돌리는 것과 음란한 행위를 하는 것을 말한다. 십계명에서 7계명인 ‘간음하지 말라’는 것은 분명하게 결혼한 사람이 자신의 남편과 아내를 두고 다른 이성에게 마음을 갖는 것을 말한다. 눈에 보이는 배우자만을 사랑하지 못하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만을 어떻게 사랑하며 살 수 있겠는가? 이것은 영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기로 결단하고 했는데, 세상의 것도 사랑하여 양다리 걸치는 것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음행은 음란한 행위이다. 당시 그리스 로마의 문화는 아주 음란하기로 역사적으로 유명하다. 대중 목욕탕 문화가 발달되면서 남녀노소 상관없이 무분별한 성적인 행위를 하고 동성애가 판치던 시대가 오늘 읽은 사도행전의 당시 상황이다.
우리 시대도 마찬가지 아닌가? 만 18세가 되어서 성인이 되면 자신의 쾌락을 위해서 마음껏 살라고 말하는게 요즘의 세상 아닌가? 나는 음란에 대해서 묵상할 때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 ‘내 육체가 원하는대로 살아가는 삶’이 음란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무엇을 말하는가? ‘절제’를 강조한다. 내가 아무리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것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거룩함을 위해 하지 않는 것이다. 절제가 되지 않는다면 그 자리에서 당장 도망쳐 나와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지 않고 다른 것을 사랑하는 것, 의지하는 것이 있다면 모두 ‘음란’이라는 것을 기억하기 소망한다. 그래서 나 또한 스스로 확신하지 않는다. 언제든 상황만 주어지면 ‘음란’앞에서 넘어질 수 있는 아주 연약한 존재라는 늘 생각한다. 그래서 뉴스에서나 주변에 성추행, 성폭행, 바람이 났다는 소식이 들릴 때 마음 속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다. “김 전도사, 다음은 너야” 그러니 긴장을 놓칠 수가 없다.
사랑하는 여기 모인 성도님들, 마지막 때가 가까워진 만큼 더욱 거룩함을 지켜나가기 소망한다. 내 안에 조금의 죄도 허용하지 않고 민감하게 반응하여 날마다 주님 앞에 그리스도의 보혈로 깨끗해지길 원한다. 하나님은 깨끗하고 정결하고 거룩한 사람을 사용하시기 원하시기 때문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집에 있는 깨끗한 그릇에 반찬을 담아서 먹지 않는가? 이처럼 우리 광주사랑의교회가 하나님께 쓰임받기 위해서는 성도들이 더욱 거룩함을 더욱 힘써 지키길 소망한다. 아무리 금그릇이라고 할지라도 깨끗하지 않으면 사용할 수 없는 것이 되기에 여기있는 저와 여러분은 거룩함으로 하나님의 일하심을 맛보고 부흥의 때를 경험하기 간절히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