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숨겨두신 자랑, 레갑 사람들

예레미야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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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숨겨두신 자랑, 레갑 사람들
[서론]
미국 펜실베니아주 필라델피아에 가면 제가 평생 꼭 한번 가보고 싶은 마을이 있습니다.
바로 아미쉬 마을입니다.
이 동네 사람들은 21세기에 17,18세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 사진을 보시죠.
이 사람들은 자동차를 타지 않고 마차, 자전거를 타고 다닙니다.
이들은 항상 간소한 복장을 입고, 자급자족하며 살아갑니다.
현대인들이 모두 쓰는 전기와 핸드폰도 사용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이 두가지가 없다면 무엇을 할수 있을까요?
아마 못 견딜 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바로 ‘아미쉬’라고 불리는 크리스천들입니다.
미국과 캐나다에 주로 이들의 공동체가 있습니다.
이들도 우리와 같이 성경을 가장 중요한 신앙의 지침으로 여기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또한 이들은 폭력을 거부하고 전쟁에 참여하지 않습니다.
이들이 이런 생활을 하는 것도 자신들의 신앙을 잘 지키기 위해서 입니다.
그래서 학교를 가면 표어가 써있는데 JOY 입니다.
Jesus first, Others next, Yourself last의 약자입니다.
예수님 말씀이 가장 먼저, 그 다음이 다른 사람, 그리고 자기 자신이 마지막이라는 의미입니다.
놀라운 것은 이들의 이런 모습들이 자발적 선택에 의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들은 16세 청소년이 되면 바깥 세상을 경험할 기회를 얻게 됩니다.
그때 평생 아미쉬로 살지, 아니면 이 공동체를 떠날지 결정하게 된다고 합니다.
또 떠난 사람은 언제든지 다시 돌아올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공동체에 남는 비율이 평균 80-90퍼센트라고 합니다.
우리가 볼 오늘 말씀에도 이들과 비슷한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본론]
먼저 오늘 말씀의 배경은 여호야김 때입니다.
그는 여호아하스 이후 유다의 왕이 되어 11년동안 통치했습니다.
그의 통치시절 바벨론의 1차 침공으로 인해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가게 됩니다.
오늘 말씀은 바로 바벨론이 예루살렘을 포위했을 때의 일입니다.
34장은 유다의 마지막왕 시드기야의 이야기입니다.
37장부터는 또다시 시드기야 왕 이야기가 계속됩니다.
34장과 37장이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35장, 36장 이야기는 중간에 끼어있는 셈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유다를 심판하실수 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시려는 것입니다.
도대체 무엇때문에 유다는 멸망할수 밖에 없는 것일까요?
유다는 시드기야 왕때 갑자기 멸망이 결정된게 아닙니다.
그 전부터 하나님은 수없이 예레미야를 통해 경고하셨습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35장입니다.
34장에 나온 유다백성들의 모습과 대조하기 위해 35, 36장이 끼어들어간 것입니다.
35, 36장에는 예레미야의 상징행위가 등장합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예레미야의 상징행위를 통해 유다백성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시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레갑 사람들을 성전으로 데려오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성전의 한 방에 근사한 포도주를 차려놓고 그들이 마시도록 권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왜 이런 명령을 하신 것일까요?
우선 레갑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아봐야 합니다.
‘레갑’이란 ‘낙타를 타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레갑 사람들이 유목민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들의 조상은 겐 족속으로서 미디안 광야 모세의 장인이 속했던 족속입니다.
이 족속은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에 입성할때 함께 정착했습니다.
이 족속이 중요하게 등장하는 때는 레갑의 아들, 요나답 때입니다.
요나답 혹은 여호야답은 열왕기하 10장에 등장하는 인물인데요.
요나답은 예후와 함께 협력하여 아합왕의 바알 숭배자들을 모두 척결한 인물입니다.
그럼 그는 예후가 왕이 되는데 일등공신일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재야로 물러납니다.
그러면서 자신과 자신의 후손들이 대대로 지켜야할 몇가지 사항을 만듭니다.
크게 보면 세가지 입니다.
첫째, 포도주도 마시지 못하게 합니다.
둘째, 집을 짓지 못하게 합니다.
셋째, 농사를 짓지 못하게 합니다.
그럼 할수 있는게 뭘까요?
유목민 생활을 할수 밖에 없습니다.
그가 자신의 후손들에게도 이런 명령을 내린 이유가 무엇일까요?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서 입니다.
그는 가나안 땅에 정착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쉽게 우상숭배에 빠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농사를 지으면 비가 중요한데 그 비를 내리는 가나안 신이 바알입니다.
바알은 다산과 풍요, 즉, 당시 사람들에게는 성공을 보장해주는 신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알숭배에 깊이 빠져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을 버린게 아닙니다.
하나님과 바알 둘다 섬긴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는 그건 하나님을 버린것과 같습니다.
아무튼 그는 자신의 후손들도 가나안 땅에 계속 머물러 있으면 우상숭배에 빠질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결단합니다.
땅에 정착하여 집도 짓지 않고, 농사도 짓지 않기로 말입니다.
먹고 사는 일을 오직 하나님께만 의존하며 유목생활을 택한 것입니다.
포도주를 마시지 않는 것도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기 위한 것입니다.
마치 성경에 나오는 나실인처럼 말입니다.
이런 조상의 전통을 지키며 살아온 역사가 무려 250년의 세월입니다.
이런 삶이 쉬운 게 아닙니다.
머물 집도, 소유한 땅도 없이 떠돌아 다니는 삶이 얼마나 불편하겠습니까?
당시 사람들은 포도주도 거의 물처럼 마셨습니다.
그것을 마시지 않고 살아가는게 쉬운 삶이었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꿋꿋히 조상의 전통을 지키며 살아갑니다.
신앙의 순수성을 지켜 나가기 위해서 입니다.
그럼 하나님은 왜 이들에게 성전에서 포도주를 권하신 것일까요?
그들을 시험하기 위해서 입니다.
단순히 그들을 넘어뜨리기 위한 시험과 유혹이 아닙니다.
유다 백성들에게 교훈을 주시기 위한 상징행동 입니다.
그럼 시험에 대한 레갑 사람들의 반응은 어떨까요?
그들은 결코 시험에 넘어지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포도주를 마시지 않는 이유에 대해 분명히 설명합니다.
또한 자신들이 왜 조상의 전통대로 유목생활을 하지 않고 예루살렘에 머물고 있는지 설명합니다.
바벨론과 시리아 군대가 침략해 오는 바람에 잠시 전쟁을 피해 예루살렘메 머물고 있는 것 뿐입니다.
그럼 레갑 사람들이 이런 하나님의 시험을 피하는게 쉬운 일이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레갑 사람들은 일시적이지만 벌써 한가지 원칙을 깨뜨렸습니다.
예루살렘에 들어와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뭐 벌써 하나 깨졌는데 다른 것도 깨뜨리지’
이렇게 생각할수 있습니다.
우리도 죄 지을때 한번 무너지면 어떻게 합니까?
‘어차피 더럽혀진 몸 좀더 죄를 진다고 뭐 달라지나’ 하면서 멈추지 않을때가 있지 않습니까?’
레갑 사람들도 충분히 그럴수 있습니다.
또한 그들은 예루살렘에 잠시 정착해 있을 때입니다.
예루살렘에 있으면서 좋은 집, 좋은 논과 밭을 보았을 것입니다.
눈 앞에서 사람들이 포도주를 즐겁게 마시는 모습도 많이 보았을 것입니다.
광야에서 자기들끼리 함께 살아갈때는 보지 못하던 모습을 쉽게 접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만큼 유혹은 강할수 밖에 없습니다.
심지어 성전에서 그 유명한 예언자 예레미야가 포도주를 마시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마치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포도주를 따라주고 있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러면 마음이 얼마나 흔들리겠습니까?
‘바울 사도도 마시는데 뭘~’
이렇게 핑계댈수 있는데 레갑 사람들은 단호히 거절합니다.
반면 유다 백성들을 살펴 보겠습니다.
250년동안 레갑 사람들이 지켜온 전통은 한 사람의 말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지금은 죽어 무덤에 묻힌 레갑의 아들 요나답이 한 말을 후손들이 250년이 넘도록 지키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다 백성들은 어떻습니까?
살아계신 하나님이 수많은 예언자들을 통해 지속적으로 직접 말씀하고 계십니다.
죽은 연약한 한 인간의 말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중 어느 것이 더 무겁겠습니까?
끊임없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유다 백성들은 계속해서 불순종합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에서 강조되는 단어가 있습니다.
‘듣다’와 ‘순종하다’는 단어입니다.
한번 동그라미를 쳐 보십시오.
얼마나 많이 등장합니까?
8, 10, 13, 14절에서는 레갑 사람들에 대한 설명입니다.
‘듣다’와 ‘지키다, 순종하다’가 등장합니다.
반면 14후반부, 15, 16, 17절은 유다 백성들에 대한 설명입니다.
‘듣지 않다’와 ‘순종하지 않다’가 등장합니다.
히브리어는 ‘듣다’와 ‘순종하다’는 단어를 동일하게 사용합니다.
히브리어로 ‘듣다’는 말은 단순히 귀를 열어 이해했다는 말이 아닙니다.
듣고 마음으로 받아들여 행동으로 옮긴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암송한 신명기 6장 4-5 절의 시작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아 들으라’입니다.
진짜 들었다면 반드시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순종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진짜 들은 것이 아니라 무시한 것입니다.
우리가 설교를 들을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설교를 듣는 행위 그 자체가 바로 말씀을 순종하겠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순종하지 않으면 설교를 듣고도 무시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숨겨두신 자랑인 레갑 사람들을 등장시키신 이유가 있습니다.
34장에 등장하는 유다 백성들의 불신앙을 더욱 두드러지게 드러내기 위해서 입니다.
34장에서 시드기야는 갑자기 히브리인 종들을 해방시키는 언약을 맺습니다.
원래 율법에 따르면 7년째 되는 안식년이 되면 동족인 히브리인 종들을 해방시켜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영원한 종이 될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조상들은 종에게 얻는 경제적 이득때문에 그 율법을 오랫동안 제대로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시드기야가 그 율법을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나님 앞에서 맹세를 한 것입니다.
왜 일까요?
시드기야는 하나님의 환심을 사서 현재 겪는 바벨론의 포위로부터 벗어나려 한 것입니다.
실제로 이집트가 개입하는 바람에 잠깐 바벨론 포위에서 벗어나게 된 때가 발생합니다.
그러자 시드기야는 어떻게 했을까요?
곧바로 다시 히브리인 종들을 해방하는 법을 취소하고 예전으로 돌아가 버립니다.
어떻습니까?
레갑 사람들과 얼마나 대조됩니까?
레갑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언자 예레미야가 포도주를 권하지만 거절합니다.
그들은 상황과 조건이 달라져도 끝까지 조상의 전통을 고수합니다.
그런데 시드기야와 백성들은 어떻습니까?
사람과 한 약속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한 약속인데도 상황이 달라지니까 금새 예전 상태로 돌아가 버리고 맙니다.
이것이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수 없는 이유입니다.
예루살렘이 멸망하지 않을수 없는 이유입니다.
이런 유다 백성들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인거 같아 부끄러워 집니다.
자기 유리할대로 자기 중심적으로 신앙생활하는게 바로 우리들입니다.
하나님의 뜻보다 내 욕망을 채우기 위해 하나님을 우상처럼 섬기는게 바로 우리들입니다.
어려울때는 하나님을 찾으면서 상황이 해결되면 점점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는게 우리의 모습입니다.
우리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라면 가망성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 사랑을 자기 아들까지 죽이시는 십자가에서 보여주셨기에 우리가 설수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랑을 깨달아 알기에 우리가 다시 일어설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숨겨두신 하나님의 자랑인 레갑 사람들을 드러내신 것은 여전히 유다 백성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지금이라도 돌이키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끝까지 불순종하였기에 유다는 멸망하고 맙니다.
반면 하나님은 레갑 사람들에게는 복을 선포하십니다.
레갑의 자손들이 영원히 하나님을 섬기게 될 것이라고 복을 주십니다.
혹시 ‘이게 복이야?’ 라고 생각하실지 모릅니다.
‘뭔가 부귀영화를 주셔야 하는거 아냐?’라고 생각하실지 모릅니다.
그러나 레갑 사람들에게 가장 큰 복은 하나님입니다.
그들이 이런 불편함의 대가를 치루는 이유도 하나님때문입니다.
그럼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받을 가장 큰 복 역시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 천국이 가장 좋은 선물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대로 레갑의 후손들은 바벨론이 예루살렘을 멸망시킬때도 살아남습니다.
바벨론 군대가 부유한 자들을 잡아가고 비천한 자들을 남겨두었기 때문입니다.
가진게 없는 레갑 사람들은 남겨둔 것입니다.
나중에 레갑 후손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올때에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느헤미야 3장 14 절에 따르면 그들은 예루살렘의 남쪽문을 보수하는 일을 담당합니다.
더 놀라운 것은 예수님이 탄생하셨을때 제일 먼저 천사들에게 탄생소식을 듣는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베들레헴의 목자들입니다.
그들이 누구일까요?
바로 레갑 후손들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새 사람들이 쇼펜하워에게 미쳐있다고 합니다.
서점에 가보시면 쇼펜하워의 인생수업, 마흔에 읽는 쇼펜하워, 쇼펜하워의 조언 등 책이 넘쳐납니다.
심지어 쇼펜하워가 하는 말을 필사까지 하며 마음에 새긴다고 합니다.
쇼펜하워가 인생에 대해 하는 말이 현대의 불안한 사람들의 마음에 위로를 준다고 합니다.
저도 찾아보니까 좋은 명언들이 참 많더라구요.
그러나 우리에게는 어떻습니까?
어찌 옛날에 죽은 철학자 쇼펜하워의 말보다 살아계시고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덜 무겁겠습니까?
그럼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무엇일까요?
한 단어입니다.
순종입니다.
온전한 순종입니다.
순종은 곧 듣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마음에 새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레갑 사람들처럼 세상 것들 다 끊고 살라는 게 아닙니다.
그들의 신실함을 배우라는 의미입니다.
내가 좀 불편해도, 내가 좀 손해봐도 신앙을 위해 포기할 것은 과감히 포기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무엇을 포기하고 있습니까?
아니 무엇을 포기할수 있습니까?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겨 듣고 온전히 순종할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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