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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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요한계시록 17:1-6
찬송가 357장 ‘주 믿는 사람 일어나’
요한계시록 4-18장은 종말론적 예언을 담은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 재앙을 연속적으로 전개하고 있습니다. 17장은 연속적인 재앙에 관한 묵시가 종결된 후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묵시를 선포하기에 앞서 삽입된 묵시의 내용으로 이미 일곱 번째 대접 재앙에 의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인류 문명을 대표하는 큰 성 바벨론의 모습을 재조명하고 있습니다.
음녀가 받을 심판(1-2)
(1) 또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 중 하나가 와서 내게 말하여 이르되 이리로 오라 많은 물 위에 앉은 큰 음녀가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
요한계시록 15장부터 등장한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 중 하나가 사도 요한에게 음녀가 받을 심판을 보여주었습니다. 음녀라고 번역된 헬라어 포르네(πόρνη)는 ‘팔다’라는 뜻의 페르네미(πέρνημι)에서 나왔습니다. 즉, 음녀란 돈을 받고 몸을 파는 여자를 의미합니다. 구약성경에서 음녀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사랑을 배신하고 우상숭배하는 이스라엘을 의미했으며(사1:21; 렘2:20; 겔16:23; 호1:3)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유혹하는 이방 나라를 의미하기도 했습니다(사23:15-17; 나3:4). 따라서 구약성경에서 음녀는 하나님의 사랑을 배신한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사랑과 무관한 삶을 사는 이방인을 동시에 가리키는 중의적 표현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도 음녀는 죄 가운데 사는 인류 문명을 상징하는 바벨론과 배교한 이스라엘을 동시에 의미합니다. 하나님과 무관하게 사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을 음녀라고 표현한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창조되었음에도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들을 사랑하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3:19)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많은 물 위에 앉은 큰 음녀라는 표현은 유브라데 강물을 주변에 흘려보내는 바벨론의 수로와 활발했던 해상 무역으로 인한 바벨론의 번영과 안정의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천사는 ‘많은 물’의 의미가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에 대한 상징으로 사용되었으며(15절) 죄 가운데 사는 인류 문명을 상징하는 바벨론이 이 땅에서 막강한 권세를 떨치는 것처럼 보이는 모습을 ‘많은 물’ 위에 앉은 이미지로 표현한 것임을 밝힙니다. ‘음녀’의 상징이 고대의 바벨론이나 요한계시록의 1차 독자들이 몸담았던 로마 제국이나 오늘날 전세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는 특정 나라를 의미하기 보다는 이 땅에서 신의 모습을 자처하는 모든 권세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땅에서 돈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신의 모습을 하고 있고 권력은 무엇이든 결정할 수 있는 심판주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결국 세상을 사랑하여 주님과 무관하게 사는 인생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음녀가 당하는 심판을 불신자들을 향한 것으로만 생각하여 강 건너 불구경하듯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마주할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확실한 승리 가운데 감사하면서도 세상과 하나님 나라의 중간지대인 회색지대에 머물 것이 아니라 전심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인생이 되어야할 것을 기억해야합니다.
신앙생활은 수준 높은 교양을 쌓거나 윤리적인 삶을 이루는 과정이라기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랑하는 주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이 아닌 것들을 사랑하며 그것들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생명까지도 바칩니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존귀한 인생임에도 쾌락을 위해 몸을 팔고 돈을 위해 마음을 파는 모습이 세상을 사랑하는 타락한 죄인의 정체성을 드러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창조되었고 영원히 주님을 사랑하기 위해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확증된 하나님의 사랑으로 구원을 받았기에 돈이나 명예나 다른 어떤 것과도 우리의 인생을 바꿀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거룩한 신부로 부르셨기에 우리는 이전에 사랑하던 모든 세속적 욕망을 십자가에 못 박고 신랑 되시는 주님만 전심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2) 땅의 임금들도 그와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에 사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 하고
2절은 1절에 묘사된 음녀에 대한 설명을 덧붙이고 있습니다. 땅의 임금들은 음녀와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에 사는 자들은 음행의 포도주에 취해있습니다. 권력자들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존귀한 사람들을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으로 섬기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힘을 자신을 위해 사용하기를 즐겼으며 일반 사람들은 권력자들의 그러한 행태를 반면교사 삼기보다는 그들의 권력을 욕망하고 권력자들의 삶을 동경하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큰 권세가 주어진 사람뿐 아니라 아무런 힘이 없고 연약해 보이는 사람들 모두를 포함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맡겨진 권력의 크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삶을 살아내는 동기와 방향을 근거로 삼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은 유대인들의 종교 지도자들 뿐 아니라 ‘못 박으소서’라고 외쳤던 모든 백성들이었습니다(요 19:6).
우리는 이 땅의 권세들과 그 권세 아래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통치가 아닌 죄의 지배를 받고 있으며 죄를 사랑하고 죄에 취해있는 모습임을 기억하여 그러한 삶에 동화되지 않도록 깨어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 땅에 두 발을 딛고 살아가지만, 우리의 뿌리는 하늘에 있으며 우리는 이 땅에 속한 사람들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 섬길 것이며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고 하나님 앞에 흠이 없는 삶을 살아갈 것을 결단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모독하는 이름들(3-5)
(3-4) 곧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광야로 가니라 내가 보니 여자가 붉은 빛 짐승을 탔는데 그 짐승의 몸에 하나님을 모독하는 이름들이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으며 그 여자는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 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
요한은 성령님께 이끌리어 광야로 갔습니다. 요한계시록에서 광야는 여인(교회)의 피난처로 소개되었지만(계 12:6),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이 심판을 받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요한은 광야에서 붉은 빛 짐승을 탄 여자를 보았습니다. 붉은 빛 짐승은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은 여인과 한 쌍을 이룹니다. 요한계시록에서 붉은 색깔은 짐승의 공포스러운 모습을 묘사하기 위한 것일 뿐 아니라 사치스럽고 교만한 모습을 상징합니다.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 잔을 가진 여자는 로마 시대의 고급 매춘부를 떠올리게 합니다. 로마의 부유층 사이에서 금은 사치품으로 여겨졌고 진주는 로마제국에서 다이아몬드 다음으로 귀하게 평가 되었던 보석이었습니다. 로마제국에서 바단과 양모 옷은 대부분 자주 색으로 염색되어 자신의 부를 드러내는 수단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음녀가 가진 가증한 물건은 우상숭배와 관련이 있으며 음행의 더러운 것 또한 우상숭배로 인하여 영적으로 타락한 모습을 의미합니다.
음행과 가증한 것은 짝을 이루어 우상숭배하는 모습을 강조하고 있으며 음녀의 화려한 겉모습과 대조적으로 영적으로 타락한 더럽고 추한 내면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또한 붉은 색이 왕족이 입었던 의복의 색깔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이 땅에서 스스로 왕 노릇하는 모습을 붉은 색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붉은 빛 옷은 흰 옷을 입은 하나님의 백성들과 대조를 이룹니다.
음녀의 특징이 유혹이라면 짐승의 특징은 권력입니다. 짐승은 요한계시록 13장에 등장한 바다에서 나온 한 짐승입니다. 열 뿔과 일곱 머리를 가진 짐승의 몸에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이름들이 가득하였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열 뿔과 일곱 머리를 가진 짐승을 만난다면 공포와 거부감을 동시에 느낄 것입니다. 요한이 성령님께 이끌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권세의 추악한 모습을 기괴한 모습으로 마주했던 것처럼 하나님을 모독하는 모든 행위와 문화가 달콤하고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기괴하고 무서운 모습으로 우리 눈앞에 드러난다면 어떨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엊그제 ‘핼러윈데이’를 즐기기 위해 이태원에 몰린 인파를 보도하는 뉴스를 접하였습니다.
코로나19의 감염 위험이 여전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리두기는 고사하고 거리를 빽빽하게 채운 사람들은 저마다 기괴한 분장을 하고 핼러윈데이를 즐기는 모습이었습니다. 우리 자녀들의 눈에 핼러윈데이를 즐기는 사람들의 분장이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공포로 다가온다면 좋겠지만, 하나님을 대적하는 문화가 매력적으로 보여 그것들을 무분별하게 수용하지는 않을까 염려가 됩니다. 우리의 싸움은 이 땅에 속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안을 열어주셔서, 우리 자녀들의 영안을 열어 주셔서 피조세계에 충만한 하나님의 아름다움과 영광을 누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모습을 경계하는 은혜가 있기를 원합니다.
(5) 그의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
음녀의 이마에는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당시 로마의 매춘부들이 이마에 자기의 이름을 표시하고 있었다는 것에 근거한 표현이라는 해석이 있지만 이마에 기록 된 이름을 성경 안에서 그 의미를 찾으면 이름은 존재를 드러내며 이름은 정체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이마에 기록된 표시는 7번 등장하는데 세 번은 짐승의 표를 의미하였고 네 번은 하나님의 인 또는 그 이름을 의미하였습니다.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다는 것은 그것의 본질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즉, 음녀의 이마에 기록된 이름이 비밀이며 큰 바벨론이며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는 것은 음녀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비밀로 번역된 헬라어는 ‘입을 다물다’라는 뜻을 지닌 단어에서 파생된 것으로 일반 사람들에게는 알려주어도 알지 못하는 감추어진 것을 의미합니다. 7절에서 천사가 요한에게 비밀을 알려주는 것으로 미루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지 않으면 우리를 미혹하는 음녀의 정체를 우리가 구별하거나 알아챌 수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죄 가운데 살 때에는 무엇이 죄인지 무엇이 선인지 분별하여 판단하고 행동할 어떤 지혜도 능력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무엇이 죄인지 무엇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인지 깨닫게 되었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 수 있는 능력을 얻었습니다.
음녀의 비밀스러운 정체는 큰 바벨론이며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였습니다. 큰 바벨론이라는 표현은 다니엘 4장 30절에서 발견되는 것으로 다니엘의 말씀이 1차적으로 하나님을 향한 느부갓네살 왕의 교만함과 그로인한 심판과 멸망을 의미하였지만 유대 묵시 문헌에서 로마제국을 의미하는 상징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는 표현은 그것의 정체가 하나님 나라와 대조되는 이 땅에 속한 것임을 드러냅니다.
크게 놀랍게 여기니(6)
(6) 또 내가 보매 이 여자가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한지라 내가 그 여자를 보고 놀랍게 여기고 크게 놀랍게 여기니
‘또 내가 보매’라는 표현을 통해 요한이 보고 있는 환상이 전환되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요한은 여자가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한 모습을 환상 중에 보았습니다. 음녀는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를 마치 술을 마시듯 하였으며 그러한 행동을 이미 통제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요한은 그 여자의 모습을 보고 놀랍게 여기고 크게 놀랍게 여겼는데 이는 순교자들의 피를 즐기며 통제 불능의 상태가 된 모습을 마주한 충격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1세기 로마 제국의 원형경기장 안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사람들의 오락거리가 되어 짐승들에 의해 처참하게 죽어갔으며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로마 제국의 핍박은 약 300년 동안 이어졌습니다. 2021년 1월 13일자 기독일보 기사에 따르면 2020년 전 세계 기독교인 가운데 8명 중 1명이 극심한 박해와 차별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아프리카 기독교인 6명 중 1명, 아시아에서는 기독교인 5명 중 2명의 수치를 기록하였습니다. 조사 기간인 2019년 10월 1일부터 2020년 9월 30일까지 4,761건의 기독교인 사망 사건이 파악 되었으며 이와 같은 수치는 전년도(2,983명)보다 60% 증가한 수치였습니다. 우리는 매력적인 모습으로 미혹하는 음녀를 대적할 뿐 아니라 열 뿔 달린 짐승처럼 그리스도인들을 탄압하는 세력을 대항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의 삶의 현장은 총과 칼을 들지 않았지만 전쟁터와 같이 치열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동시에 치열한 영적 전투 현장 가운데 살아간다는 사실을 기억해야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에 합당한 모습으로 세상 가운데 살면서도 하나님 나라를 살아내고 힘들고 어려워도 주님을 따라가는 삶이 되길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세상은 그 속에 시커먼 속내를 감춘 채 매력적인 모습으로 우리를 유혹하며 넘어뜨리려 하고 사단은 우는 사자와 같이 우리를 찾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먹고사는 문제에 함몰되어 우리에게 주어진 영적 전투를 잊지 않도록 붙들어 주시고 늘 하나님 말씀으로 마음을 지키며 성령 안에서 깨어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날에도 핍박받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음을 기억하여 기도하게 하시고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에 합당하게 살고자 힘들고 어려워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