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721 고등부 설교 빌4:4-7, 그럼에도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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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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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빌립보서4:4-7
설교 빌립보서4:4-7
본문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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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원치 않게 어려움을 당한 적이 있나요? 난처했던 적있으신가? 군대 폭행사건에 휘말려 휴가가 짤렸던 상황
서론: 옥중서신 빌립보서
서론: 옥중서신 빌립보서
빌립보서는 바울이 감옥에서 쓴 편지입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 감옥에 갇히게 되었고 이제 자기는 이 감옥에서 출소할 가능성이 없이 죽게 될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 당시 로마 문화에서는 육체적으로 고통을 받는 것도 비참한 일이었이지만, 본인의 명예에 스크레치가 나면 그것만큼 비참한 일이 없었습니다. 지금도 누군가에게 오해를 받아서 안좋은 이미지로 루머가 돈다면 굉장히 수치스럽죠. 얼굴을 들고 다니기가 부끄러워집니다. 그 당시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바울은 감옥에서 죽을 날을 기다리는 상황에서 억울한 일을 변명할 기회조차 없었어요. 자신이 감옥에 갇힌 것이 다른 것때문이 아니라 복음 때문인데 해명조차 할 수가 없었죠.
이 상황이 점점 안좋아진다면 자신이 전한 복음까지도 잘못된 것이라고 오해를 받을 수 있는 그런 상황이었어요. 이런 상황에서 여러분이 밖에 있는 지인들에게 편지를 쓴다고 생각해봅시다. 무슨 말을 할까요>? ‘나는 잘못없다’ 라는 식으로 변명을 하기도 모자란데 바울은 이런 상황에서 빌립보 성도들을 향해 이렇게 말합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기뻐하세요, 여러분 기뻐하세요. 저는 이 상황에서 기뻐합니다. 그리고 5절 말씀 모든 사람들에게 관용하세요. 너그러이 대하세요. 라고 말합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 바울은 기뻐할 수 없는 상황, 다른 사람을 생각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는데 그는 성도들을 향해 기뻐하라는 너그러이 대하라고 합니다. 그는 어떻게 이런 말을 하고 이런 마음을 품을 수 있는 것일까요?
본론1 기뻐하고 관용할 수 있는 이유? 재림의 소망
본론1 기뻐하고 관용할 수 있는 이유? 재림의 소망
그 이유는 바울이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4-5절을 함께 읽어봅시다. 5절 후반부에 기록하고 있는 것처럼 바울은 다시오실 주님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바울은 왜 다시오실 주님을 기다리고 있을까요? 주님께서는 이 땅에 다시오셔서 의인과 죄인을 재판하고 의로운 자에게 영원한 생명과 위로를, 죄인에게 영원한 벌을 내리겠다 약속하셨습니다.
그때 바울은 자신의 억울함이 해소되고, 영원한 기쁨을 누릴 것이라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날을 기다리며 지금 당하는 어려움은 견딜 수 있었습니다. 이 땅에서 잠시잠깐 당하는 일에 슬퍼하지 않고, 자신의 억울함을 주님께서 해결해주시리라 믿으며 그보다 영원한 것을 바라보고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진실하셔서 당신께서 하신 말을 결코 잊지 않고 지키십니다. 성경 역사를 통해 주님을 당신의 진실하심을 분명히 보여주고 계세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님의 약속을 잊어버릴 지라도, 주님께서는 결코 잊지 않고 계셨죠. 그리고 약속을 따라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셔서 구원의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진실하신 주님은 사랑이 가득하시죠. 그래서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녀들, 예수님을 믿어 당신의 아들이 된 자녀들을 결코 외면치 않으세요. 이 땅에서 겪는 자녀들의 고통을 외면치 않으세요. 그들의 아픔과 슬픔을 위로하시고 격려하시며 다시 일어서게 하십니다.
더 놀라운 것을 바라보고 마음에 품게 하세요. 로뎀 나무 아래에서 이세벨의 살패위협으로 절망에 빠져있던 엘리야를 일으켜 세우시고 그에게 비전을 주십니다. 주님의 비전을 보게해주셨어요.
진실하시고 사랑이 많으신 주님께서는 전능하십니다. 그래서 온 우주를 향한 주님의 뜻을 확실히 이루십니다. 더디 이루시는 듯해도 주님께서 정하신 때에 확실한 방법으로 이루십니다.
주님께서 언제 오시는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과거로부터 있어왔던 질문이지만, 주님의 시간과 우리의 시간은 차원이 다른 개념이기에 그 시기는 오직 주님께서만 알고 계십니다. 그러나 약속을 지키시는 진실하시고 사랑이 많으시며 전능하신 주님께서 다시 오셔서 이 땅의 모든 죄와 그로인해 생겨난 모든 문제들, 고통들, 아픔들을 해결해주실 것입니다. 심판을 통해 죄를 완전히 없애시고, 의인들을 구원할 것입니다. 그래서 의인들에게는 영원한 생명이라는 선물이 주어지고, 죄인들에게는 영원한 고통을 주어질 것입니다.
이것이 결코 불공정하다, 사랑이 없으시다 라고 할 수 없는 이유는 이 땅을 살면서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믿을 수 있는 수많은 기회를 주셨어요. 이 땅의 만물들을 통해서도 그분의 존재를 알 수 있게 하셨습니다. 로마서 1장에서도(20-21절) 이를 증언합니다.
선한 마음과 동기를 주셨지만, 이를 거부하고 인정하지 않았지요. 이렇게 자기 의지로 거부하는 것까지도 허락하실 만큼 우리의 뜻을 존중해주셨어요. 너무나 사랑하셨지요. 이 땅의 죄를 위해, 우리를 위해 예수님이 목숨을 버리기 까지 사랑하셨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거부했기 때문에 주님께서 불공평하시다, 받아 들일 수 없다 말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선한 마음을 주셔서 아멘으로 반응한 자들에게는 이 땅이 전부가 아님을 영원한 생명과 기쁨이 기다리고 있음을 깨닫게 하십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 받는 괴로움, 어려움들을 이겨낼 수 있는거에요. 바울이 감옥에 갇히는 일이 얼마나 힘들고 슬펐겠습니까?
바울은 가택연금이라고 해서 로마 시의 집 건물에 갇혀있었다고 합니다. 집 앞에는 군인들이 지키고 있었고요. 감옥의 상태가 어두컴컴하고 축축한, 쥐가 돌아다니는 그런 곳이 아니었다해도, 밥먹고 사람들을 만나고, 움직이고 하는 모든 게 제약을 받고 동네 사람들로부터 의심의 눈초리와 자신을 둘러싼 여러 허무맹랑한 소문을 들었을 Rㅓ에요. 그런 삶이 얼마나 괴로웠을까요? 차라리 안보거나 안듣는게 낫겠다. 어두운 감옥이 차라리 낫겠다 그런 생각을 했을 거에요.
하지만 바울은 그런 상황에서 이런 어려움을 고통을 잊어버리려고 기쁘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주안에 주님으로 인해 주님때문에 기쁘다 라고 말하고 있어요. 주님께서 바울에게 영원한 생명과 기쁨, 소망을 주셨어요. 그래서 본문 앞장에서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예수님을 믿는 자들의 시민권은 이 땅이 아니라 하늘에 있다 우리는 하늘에 속한 자들이다. 이 땅을 밟지만 하늘을 바라보며 천국을 소망하며 살아간다 라는 거에요.
그래서 삶의 목적도 가치관도 이 땅의 것이 아니라 하늘을 바라보며, 주기도문의 고백처럼 하늘의 뜻이 이땅 가운데 이뤄지고, 주님의 나라가 내가 밟은 이 땅에 이뤄지기를 소원하며 살아가는 삶입니다.
내눈에는 전혀 변화가 없을 것 같아 보여도 그런 작은 행동을 통해서 주님께서 일하실 것을 믿으며 말씀을 실천하는 삶 말씀을 행하는 삶을 사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 땅에서 손해를 보는 것, 이 땅에서 어려움을 당하는 것 너끈히 이겨낼 수 있습니다. 물론 멘탈에 잠깐 어려움이 있을 수 있어요. 그러나 회복이 빠릅니다. 왜냐하면 그게 절대적인 가치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에요.
잠시잠깐 나에게 오는 어려움임을 믿으며 나를 이끄시고 도우실 분이 계신다 그분은 전능하신 분이시다 라는 사실을 믿으며 담대하게 살아갈 수 있는 거에요. 예수님꼐서도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우리가 누구를 두려워 하겠습니까? 또 누구를 의지하겠습니까? 전능하신 분아니겠습니까?
세상을 바라보는 눈과 가치관, 방향과 목적이 다르기때문에 마음이 힘들고 몸이 힘들 때가 올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다른 세상 사람들에게 욕을 먹기도 하고, 비난을 받기도 하고, 왜 그렇게 살아가냐 핀잔을 듣기도 합니다. 그 사람들은 이해 못하거든요. 그래서 이 땅에서 힘들 수가 있어요.
하지만 주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자들, 의로운 자녀들을 하늘 아버지께서는 결코 외면치 않으시고 도우십니다.
시편 34편에는 다윗이 블레셋의 왕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체 하며 위기를 모면한 뒤에 쓴 시인데요 이런 내용이 기록되어 있어요.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의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
그의 모든 뼈를 보호하심이여 그 중에서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도다
의인은 고난이 많지만, 여호와께서 건지신다. 그의 모든 뼈를 보호하신다 그중에 하나도 꺾이지 않게 하신다 라고 말입니다. 이런 전능하신 아버지의 보호가 있기 그렇기에 이 땅에서 의를 따라 살며 고난을 당하더라도 근심하지 않고 기뻐할 수 있습니다. 너그러이 관용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관용’이란 어떠한 지위에 있는 자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가지는 배려 용서와 같은 태도를말합니다. 노블리스 오블리쥬와 같은 표현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의로운 자녀로서 이웃들과의 관계에서 가지는 여유로움, 고귀함이 있어야 한다. 그것을 모든 자들에게 보여주라고 말합니다.
고난 중에 기뻐하고, 도리어 이웃을 사랑하고 배려하는 모습은 어떻게 그럴수가 있는가 세상으로 하여금 놀라움을 느끼게 할 것입니다.
이런 놀라운 일을 행하신 분이 계시죠. 십자가 위에서 모욕을 당할지라도 저들의 죄를 용서하소서 라고 기도했던 한 사람, 신이신 예수님 그분이 바울과 우리에게 하늘 아버지의 자녀로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를 보여주셨습니다.
이 땅을 걷지만, 하늘을 보는 삶 그 삶이 우리가 가야할 삶의 모습입니다.
본론2 하늘 소망을 위해 해야 할일: 기도
본론2 하늘 소망을 위해 해야 할일: 기도
그러나 이런 삶은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렇다 다짐한다고 해도 우리는 여전히 이 땅을 밟으며 살아갑니다. 우리 눈에는 계속해서 슬픈 일, 어려운 일, 억울한 일들이 생깁니다. 그럴 때 우리가 어떻게 기뻐하고 이웃들을 너그러이 대할 수 있을까요?
심지어 나에 대한 루머를 퍼뜨리는 그런 사람조차 너그러이 대할 수 있을까요? 정말 쉽자 읺을거에요.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수 있을까요? 그냥 그러려니, 믿음은 어려워, 믿음은 그냥 교회에서 예배드릴 때만 있으면 되는거야, 밖에 나가면 아무 상관없이 남들이랑 똑같이 지내도 괜찮아 라는 식으로 살아도 될까요?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6-7절입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기도하라,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하늘 아버지께 구하라고 말씀합니다. 왜 아무 것도 염려하지 않을 수 있나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은 우리의 선하시며 진실하시며, 사랑이 많으시며, 전능하신 아버지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기도하며 염려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도리어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이런 분이 나의 아빠가 되셔서 나를 도우시다니! 라며 감사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이기적인 기도에도 기뻐하며 들어주시는데, 아버지의 영광을 위한, 아버지의 뜻을 따라 살기 위한 이 기도를 얼마나 좋아하실까요? 부모님께 잘 하겠습니다. 노력하겠습니다 라고 말하는 자식의 얘기를 어떤 부모님이 싫어하실까요?
여러분 이 땅의 억울함과 어려움 앞에서 기도하십시오. 그것을 보지않고 영원한 것을 꿈구며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엘리야가 아버지께 도움을 구했을 때 그의 기도는 믿음의 조상답게 화려하고 거창한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죽겠습니다. 그냥 죽여주세요. 그렇게 말하고 있는거에요. 하늘 아버지께 탄식하고 있는거에요. 자신의 삶의 어려움을 허심탄회하고 나눴어요
이런 자세가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지난 수요일 예배때 목사님이 이런 얘기를 들려줬었죠. 깊이 잠든 자기를 깨울 수 있는 것은 어린 딸아이가 자기를 부르는 소리라고 말입니다. 자기를 움직이는 세상에서 가장 큰 소리는, 그 어떤 목소리보다 작은 어린 아이의 목소리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하늘에 계신 아버지도 그렇지 않으실까요? 물론 늘 깨어계시지만 우리의 기도에 늘 귀기울이십니다.
기도에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가 주님의 은혜를 누릴 수 있도록 기도를 알려주셨어요. 기도를 통해 우리의 소원을 간구하기도 하지만 기도의 본래목적은 나의 뜻을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우리의 간구를 들으시고 응답하십니다. 하지만 기도는 아버지의 뜻을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 삶의 목적이 주님의 영광을 위한것인데, 우리의 기도와 소원, 간구 또한 그것이 되는게 마땅하고 자연스럽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사는 것이 복입니다. 그렇게 살아갈 때 필요한 모든 것을 더하시겠다 약속하셨다면, 우리는 무엇을 붙잡는게 맞을까요?
진실하지 못하고, 사랑이 없으며, 능력이 부족한 우리의 생각과 지혜 힘을 의지하는 게 좋을까요? 아니면 진실하시고 사랑이 넘치시며 전능하신 분의 생각과 약속을 의지하는게 좋을까요? 어느 쪽을 선택하는 것이 지혜로운 판단일까요? 답은 분명합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든다 그러나 주님의 약속을 변치 않고 영원하다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영원하지 않은 것을 바라보지 말고, 영원한 것 영원한 생명, 영원한 주님, 그리고 그분과 영원히 살아가는 것을 바라보며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가 되길 원합니다.
이 땅을 살면서 우리의 시선을 땅에 두지 말고, 하늘에 둡시다. 이 땅에 슬픔 어려움, 억울함 속에서도 하늘의 영원한 것을 바라봅시다. 그런 자들을 가리켜 바울은 하늘 시민이라고 말합니다.
하늘 시민의 삶, 너무나 자유로운 삶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늘 아버지께서 주신 최고의 복은 ‘자유’입니다. 자유를 주셨어요. 이 땅의 것에 매여있던 종인 그들을 자유롭게 해주셨어요. 그래서 땅의 것에 소망을 두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의 전부가 아님을 광야생활을 통해 알려주셨어요. 주님을 의지하며 말씀을 따라 살아갈 때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셨고, 불기둥과 구름기둥을 주셨어요. 그리고 그들의 신발과 옷이 헤어지지 않게 하셨어요.
놀라운 일을 경험하게 해주셨어요. 이런 것들은 그들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죠. 우리 주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알려주고 싶으신 거에요. 너희는 내가 구원한 나의 자녀들이다. 자녀된 너희들은 자유민이다. 이 땅의 것에 목매달며 사는게 아니라, 영원한 하늘을 바라보며 나를 위해, 나의 영광을 위해 살아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의 삶을 책임지겠다 말씀하세요. 약속하신분은 진실하시고 전능하신분이세요.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것인가? 무엇을 소망하며 살 것인가?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 바울은 우리에게 어떤 삶을 살라 말하고 있습니까? 주님 다시오실 것을 기다리며! 요즘 즐겨부르는 찬양중에 이런 찬양이 있죠. 오래된 찬양인데, 그날에 우리 주님께서 밤중에 찾아오실 때에 어떤 사람이 잔치에 참여한다고요?
‘기름 준비된 자만이’ 기름을 준비하는 삶 다시 오실 것을 믿으며 그분의 약속을 따라 사는 삶. 영원한 것을 바라보며 이 땅의 것을 쫓아 사는 게 아니라 말씀을 따라 사는 것. 그것이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자들의 삶입니다.
그런 자들의 삶의 모습에는 당연히 이 땅의 어떤 상황 속에서도 기뻐할 수 있고, 관계에서 너그러워질수있겠죠? 우릴 핍박하는 자들을 향해 안타까운 마음을 품으며 저들도 나와같이 되기를, 고통을 당하는 것외에 예수님을 믿어 하늘을 소망하는 삶을 살길 바울처럼 기도할 수 있겠죠?
이런 믿음을 위해 우리는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기도할 때우리에게 힘과 능력을 주시리라 확신합니다. 우리의 선한 생각과 뜻을 지켜주실 것입니다. 아멘
결론: 이땅에서 하늘을 소망하며 기뻐하자!
결론: 이땅에서 하늘을 소망하며 기뻐하자!
우리는 이로서 성경에서 말하는 내용의 절반을 배웠습니다.
24년 1월달로 돌아가 볼까요? 하늘 아버지께 영광돌리는 삶, 그리고 그분을 기뻐하는 삶이 사람의 인생에 가장 제일된 최고의 목적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내맘대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방법을 주셨다고 했어요. 그것이 바로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에는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 알아야 할 것과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명하신 일에 대해 기록해놓았다고 말씀드렸어요.
우리는 그중 첫번째인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 알아야 할 것들을 이번주까지 쭉 살펴보았습니다.
먼저는 하늘아버지께서 어떤 분이시며 그분께서 하신 일들 창조와 세상을다스리심, 그리고 사람을 지으심을 배웠어요.
그리고 지으신 사람의 존재는 어떠했으며 사람은 고 고귀한 존재를 계속 유지했는가를 살펴보았죠.
사람은 그 존쥐한 하늘 아버지의 자녀라는 지위를 내팽겨치고 죄에 빠져 타락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하늘아버지께서는 사람의 타락을 가만히 보고만 계시지 않고 그들을 다시 구원해서 존귀한 자녀로 회복시키고자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늘 아버지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주셔서 죽음과 부활로 구원을 이뤄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루신 구원은 하늘 아버지의 영이신 성령님을 통해 우리에게 허락되었고 성령님을 통해 믿음을 얻어 거룩하고 의로운 하늘 아버지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자녀로서 이땅에서 저 천국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소망을 품게 되었습니다. 최종적으로는 저 천국에 살게 될 것입니다.
이 땅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과 특별히 우리에게 이뤄진 구원은 거룩하신 삼위일체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루신 일입니다. 이 놀라운 구원의 일들을 우리는 한마디로 구속사, 구원역사라고 말합니다. 그 일들이 성경에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기록되어 있고 우리는 이 내용들을 간단하게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수련회 이후에 이런 구원을 주신 아버지께 어떻게 감사해야 할까? 하늘 아버지께서는 구원받은 자녀들이 어떻게 살아가길 원하실까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물론 이 일도 우리가 하는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모든 것인 은혜입니다. 이 사실을 잊지 않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그리고 이 땅에서 하늘 시민으로 살아가는 우리가 됩시다.
기뻐합시다. 관용합시다. 마라나타 주께서 오실날이 가깝습니다.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우리의 고백
-주님 오심을 기다리며 이땅에서 기뻐하고 관용하겠습니다.
-하늘 시민으로서 아버지의 뜻을 구하며 살겠습니다.
우리의 삶
-우리가 삶 속에서 기뻐하고 관용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요(빌4:4-5)
-주님께서 내일 다시 오신다고 하면 여러분은 어떤 마음이 드나요? 무엇을 하시겠어요?
-나는 하늘 시민으로서 어떤 기도를 하고 있나요?
-내 삶속에서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기도는 무엇이 있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