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7.17. 수요설교 (행 4:32-37, 큰 은혜를 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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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4:32–37 NKRV
32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33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 34 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35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 36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 사람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라 (번역하면 위로의 아들이라) 하니 37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그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
사도행전 4:32–37 ESV
32 Now the full number of those who believed were of one heart and soul, and no one said that any of the things that belonged to him was his own, but they had everything in common. 33 And with great power the apostles were giving their testimony to the resurrection of the Lord Jesus, and great grace was upon them all. 34 There was not a needy person among them, for as many as were owners of lands or houses sold them and brought the proceeds of what was sold 35 and laid it at the apostles’ feet, and it was distributed to each as any had need. 36 Thus Joseph, who was also called by the apostles Barnabas (which means son of encouragement), a Levite, a native of Cyprus, 37 sold a field that belonged to him and brought the money and laid it at the apostles’ feet.
“큰 은혜를 받다”
1. 서론
수요예배 나오신 성도님들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오늘은 사도행전 4장 말씀을 가지고, “큰 은혜를 받다”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우리가 7월달 부터 사도행전 강해를 시작했습니다.
1) 첫째 주 본문이 생각 나십니까?
네/ 사도행전 2 장 1-13절 말씀으로 보았습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에 대한 내용을 보았습니다.
[사진/ 흩어진 유대인들]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이 / 오순절날에/ 절기를 지키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왔습니다.
이때 / 예수님의 제자들은 성령을 받고, 이 사람들에게 /
그들의 언어 (페르시아어, 아랍어, 라틴어)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때 회심한 사람이 약 3,000명이나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2:41 NKRV
41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2) 둘째 주 본문은 / 사도행전 3 장 1- 10절이었습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에/ 어느날/
베드로와 요한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태어나면서 부터 걷지 못하는 사람을 걷게 해 주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 사진]
지금은 성전이 무너져서 없지만/
예루살렘 성전에서 베드로와 요한이 기적을 베풀었습니다.
태어나면서 부터 걷지 못했던 사람이/
바로 걸을 수 있었던 것은 정말 기적 입니다.
이 일로 인해서/ 거기 성전에 있었던 사람들이 심히 놀랐다고 말합니다.
사도행전 3:10 (NKRV)
10 그가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라니라
이로 인해서 베드로의의 설교를 듣고 /
오천명의 사람 (남자만)이 예수님을 믿고 회심하였였다고 말합니다.
사도행전 4:4 (NKRV)
4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
이처럼/ 성경에 예언된 대로/
예수님은 십자가 죽음에서 부활하시고/
하나님께서 예수님 영(성령)을 제자들에게 보내주셨습니다.
제자들은 성령을 받고/
1) 담대하게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전하였습니다.
2) 예수님이 공생애 사역 기간에 보여 주신 기적을 / 제자들도 동일하게 기적을 베풀었습니다.
이런 기적을 보여주신 이유는/
사람들이 이런 기적을 보고 예수님을 믿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 [본론]------
3) 오늘 우리가 같이 보실 본문은 사도행전 4 장 32-37절 인데요/
이 말씀은/ 3장 사건 이후에/
예수님을 주님을 고백하고/ 회심한 사람들이/
어떻게 이런 현상들을 이해하고 /신앙 생활을 하였는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유심히 보면/
우리가 어떻게 기도하고/ 어떻게 말씀을 보고/ 어떻게 주변 사람들에게 행동해야야 하는지 알 수가 있습니다다.
1.초대교회 성도들은 / 하나님의 말씀의 참 뜻을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다르게 말하면/ 구약 성경 말씀속에서/ 예수님을 발견하였습니다.
23절 부터 26절 말씀을 같이 보겠습니다.
사도행전 4:23–26 NKRV
23 사도들이 놓이매 그 동료에게 가서 제사장들과 장로들의 말을 다 알리니 24 그들이 듣고 한마음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이르되 대주재여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은 이시요 25 또 주의 종 우리 조상 다윗의 입을 통하여 성령으로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족속들이 허사를 경영하였는고 26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리들이 함께 모여 주와 그의 그리스도를 대적하도다 하신 이로소이다
(설명) 베드로와 요한은/ 복음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다가/
산헤드린 공회 감옥에 하루동안 감금당하고/ 재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대사장 안나스와 가야바는 사도들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도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는 것은 싫었는데/
병자가 나은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시는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놓아주었습니다.
사도행전 4:18 NKRV
18 그들을 불러 경고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
사도들은 약 2 틀 동안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 교인들에게 알려주었습니다.
그런데/ 자기들이 이렇게 핍박을 받고/
사람들이 예수님을 싫어하고/ 예수님을 죽인 이유를
시편 2 편 말씀을 가지고 이해를 합니다.
이것은 놀라운 변화에요.
원래 예수님의 제자들은 / 예수님을 따라 다닐때에/ 예수님을 정치적인 메시아가 될 것으로 알고 따라 다녔습니다.
그 당시에/ 유대인들은 구약 성경에 예언된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런 배경을 가지고/ 제자들은 예수님이 보여주신 이적과 말씀으로/
예수님을 이 땅에서 통치할 메시아로 알고 따라 다녔습니다.
그런데 /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려고 하니까 /
모든 제자들이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해 버렸습니다.
베드로를 보면/ 구약 성경에 능통한 유대인 인것을 알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성령을 받기 전에는 / 구약의 성경 말씀을 완전히 이해를 하지 못했습니다.
그냥 문자적으로/ 인간적인 관점으로 구약 성경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시편을 같이 보겠습니다.
시편 2:1–2 NKRV
1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2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시편 2 편의 전체적인 내용은 / 메시아의 통치에 대하여 예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 메시아를 통하여/ 모든 나라를 통치할 것인데/
어떤 사람들은 이 통치를 거부하고/ 대적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메시아의 통치를 거부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이런 말씀(시편2편)을 육신적인 안목을 가지고 받아들였습니다.
메시아의 통치를 / 세상 왕들의 통치와 같은 개념으로 이해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이해를 못했습니다.
마태복음 16 장을 보면/
마태복음 16:21–23 NKRV
21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22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23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예고하였는데요/
베드로는 전혀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으며/
도리어 당신이 죽으면 어떻게 하냐고 반박을 한 것 입니다.
그러니까/ 성령을 받기 전, 베드로는 / 시편 2 편에 예언된 메시아를 /
육신적인 안목으로 이해를 했다는 것 입니다.
심지어/ 예수님이 부활하고 나서도/ 아직 그 정치적인 메시아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는 것이
사도행전 1:6 NKRV
6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그런데/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 이후로/ 베드로는 성령이 충만하여/
구약에 예언된 말씀 속에서/ 예수님을 올바로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초대교회 성도들이/ 시편 2 편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습니까?
시편 2:1–2 NKRV
1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2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기존에는/ 이런 이방 나라들을 -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국가들로 이해하였다면/
지금은 / 이런 이방 나라나 세상의 군왕들을 - 예수님을 대적하는 사람들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대적하는 사람들의 구체적인 예가 27절의 말씀입니다.
사도행전 4:27 NKRV
27 과연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세하여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슬러
세상의 군왕들에 -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 뿐만 아니라 + 이스라엘 백성도 포함하여서
이해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더이상 구약 성경을 /문자적으로만 이해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유대인)도 예수님을 대적하면 /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는 것으로 이해한 것입니다.
이것이 초대교회 성도들이 구약성경을 보는 방법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말씀하신 것 처럼/
요한복음 5:39 NKRV
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초대교회 성도들은 성령이 충만하여서/
이제 성경을 예수님 중심적으로 이해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기 시작하였다는 것 입니다.
(적용) 우리가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할때에/
예수님의 십자가를 거부하고 + 예수님께서 가신 그 길로 가지 못하고 +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결론)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성경을 볼때에는/
성경 말씀 속에서/ 예수님을 발견하고/ 그 뜻을 예수님과 관련시켜서 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제대로 말씀을 보는 것입니다.
2. 초대교회 성도들은 / 예수님의 통치를 인식하면서 살았습니다.
30절을 보시면/
사도행전 4:30 NKRV
30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옵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
사도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표적과 기사가 나타나기를 기도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바로 지금 여기에/ 우리와 함께/ 있다고 인식하면서 살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여 + 하늘로 올라가버린 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바로 지금 여기서 살아서 역사하시는 분으로 인식했다는 것입니다.
에수님은 내 안에서/ 나의 주인으로 통치하시고/
모든 환경과 상황속에서도/ 나를 주관하는 분으로 인식했다는 것입니다.
시편 2 편 3 편을 보면/ 예수님을 대적하는 사람들은 / 예수님의 통치를 거부한다고 말합니다.
시편 2:3 NKRV
3 우리가 그들의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는도다
과연 이 말대로 /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통치를 거부합니다.
이 지구상에 사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
자기 왕국에서는/ 자기가 왕으로 살아갑니다.
자기 왕국을 지키기 위해서/ 모든 힘을 동원해서 자기 왕국을 지킬려고 합니다.
그런데/문제는 예수를 믿는 다는 우리가? 과연 얼마나 예수님의 통치 가운데에 있느냐?
항상 예수님께서 여러분들을 다스리고 계십니까?
말로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데/
실상은 / 자기가 왕으로 살고있을 때가 너무나 많은 것 같습니다.
우리가 항상 살아계신 주님의 손 아래에서 사는 모습이 보이도록 은혜를 구해야 하겠습니다.
3. 오늘 말씀을 보면/ 초대 교회 성도들이 / 큰 은혜를 받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32절부터 35절까지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사도행전 4:32–35 (NKRV)
32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33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
34 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35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
1)어떻게 이 공동체가, 이 교회가 은혜를 받았다고 말하고 있습니까?
33절
사도행전 4:33 ESV
33 And with great power the apostles were giving their testimony to the resurrection of the Lord Jesus, and great grace was upon them all.
-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 이 교회가 큰 은혜를 받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도 보면/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가 /
나의 죄를 사하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 사건이/
교회 공동체 모두에게 큰 은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기 앉아 계신 우리 모두는 십자가의 저주 가운데에 죽어야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대신 죽어주셨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큰 은헤를 입은 것 입니까?
여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은 3일만에 다시 살아나셔서/
우리들도 부활한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천지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이 놀라운 은혜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베풀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런 큰 은혜를 입었는데? 어떻게 그 은혜를 갚아야 합니까?
ex) 누가 밥을 한끼 사줘도/ 우리는 감사하면서/
은혜를 베풀어 준 사람에게/ 그 은헤를 갚으려고 합니다.
이것이 지극히 정상입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들을 보십시요.
얼굴이 굳어 있지 않습니다. 마음이 굳어 있지 않습니다.
마음은 녹아지고/ 얼굴은 기쁨으로 변합니다.
우리 영도교회가 정말 은혜 받은 공동체가 되길 바랍니다.
사람이 은혜를 받으면 어떻게 됩니까?
당연이 변합니다.
말도 공손해지고 + 사람에 대한 태도도 달라집니다.
2) 은혜 받은 공동체가 어떻게 변했는지 보겠습니다.
사도행전 4:32 NKRV
32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사도행전 4:34 NKRV
34 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은혜 받은 모든 사람들이 / 한 마음이 되어서/ 자기 재물을 나누어 주었다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이 없었다라고 말합니다.
사도행전 2 장을 보아도/ 똑같은 말이 나옵니다.
사도행전 2:45 NKRV
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무슨 말을 하고 있습니까?
은혜 받은 사람들이 / 자기의 소유를 가지고/ 다른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었다는 것 입니다.
분당에 있는 한 교회/ 목사님이 설교를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한 권사님께서 평생 힘들게 모으신 어머어마한 금액 (42억)을 헌금을 하셨다고 합니다.
이 소식을 들은 집사님 부부가 2만평의 땅을 기부를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수 많은 성도님들의 헌금과 재능기부로 / 장애인들의 부모님을 위한 쉼터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초대교회 은혜 공동체 사람들이 한 일이/ 지금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 영도교회도 이런 은혜의 나눔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얼마전에 사랑부에서 바자회를 했습니다.
그래서 바자회 수익으로/ 수련회도 가고/ 여기 저기 필요한 곳에 쓰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랑부 곽목사님께서 수익금의 일부를 청년부 + 교육부를 위해서 기부를 하셨다고 회의 시간에 말씀을 하셨습니다.
제가 속으로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가 사랑부에 은혜의 손길을 내밀어야 하는데
오히려 그 은혜를 받고 있구나......
어떻게 해야 할까?
또 이번에 교육부에서 여름 사역을 위해서 모금을 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성도님들이 십시일반으로 많이 은혜를 베풀어주셨는지/
또 어떤 권사님은 중등부에 오셔서/ 본인이 1년 동안 모은 저금통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이 권사님은 저금통에 돈을 모을때부터/
교회 공동체를 위하여 쓸 것이라는 마음으로 모았을 것이 분명합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초대교회 은혜 공동체처럼/
이렇게 / 다른 사람들에게 은혜를 끼칠 수 있게 되어서 너무나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3) 은혜 받은 사람들은 위로의 사람들입니다.
36-37절을 같이 보겠습니다.
사도행전 4:36–37 NKRV
36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 사람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라 (번역하면 위로의 아들이라) 하니 37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그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
이 은혜 공동체 안에 지금 “바나바”라는 사람이 있었다라고 말합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받은 은혜를 나누면서 살았는데/
그 중에 대표격으로 지금 바나나를 말하고 있습니다.
바나바는 우리가 잘 아는대로
사도 바울과 함께 안디옥교회에서 목회를 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과 함께 1차 선교 여행을 한 사람입니다.
지금으로 치면/ 목사님 이었고 + 또 선교사님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분(바나바)의 원래 이름은 요셉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도들이 요셉을 “바나바”라고 불렀습니다.
번역하면 “위로의 아들”이라는 뜻 입니다.
바나바는 / 지치고 힘든 사람들에게 /
힘을 주고, 용기를 주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잘 도와주었던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이 이 요셉을 바나바라고 불렀습니다.
사도행전 11 장을 보면/
예루살렘 교회가 박해를 받아서/ 사람들이 흩어지게 되었고/
안디옥 까지 복음이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나바가 안디옥 교회 목사님으로 파송이 되는데요.
바나바가 다소에 있던 바울을 데리고 와서 같이 목회를 하게 됩니다.
이것으로 볼때에. 이미 바울과 바나나는 서로 아는 사이였습니다.
그러면 언제 바나바가 바울을 만나게 되었을까요?
사도행전 9 장을 보면 /
사도행전 9:26–27 NKRV
26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가 제자 됨을 믿지 아니하니 27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보았는지와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였는지를 전하니라
사울이 회심한 이후에 / 약 3년 만에/ 예루살렘으로 가서 제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사귀려고 하였는데요.
원래 사울은 예수 믿는 자들을 죽이려고 박해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제자들 사울을 의심하면서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바나바가 바울의 본심을 알아보고 /
제자들이 바울을 받아들이도록 중재한 사람이 바나바 입니다.
바울이 회심한 것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때에/ 바나바가 바울을 믿어주었습니다.
이처럼/ 바나바는 누군가에게 위로와 힘을 주는 사람이었습니다.
이것이 은혜 받은 자의 모습입니다.
-----------------------
우리가 오늘 오늘 사도 행전 4장 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에/
제자들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셔서 살아계신 예수님의 능력이 제자들을 통하여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박해가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자부하는 유대인들이 / 바로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것처럼/
그의 제자들도 박해를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박해 속에서도/ 초대 교회 공동체는 은혜의 공동체였습니다.
1.성경을 읽을 때에도/ 그 말씀 속에서/ 예수님을 통하여 다시 해석하게 되었습니다.
2.은혜가 넘쳐서/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는 나눔의 공동체였고
3.힘과 용기가 필요한 사람들을 위로하는 위로의 공동체였습니다.
이 은혜가 우리 영도교회에도 임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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