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18: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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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요한계시록 18:20-24 찬송가 486장 ‘이 세상에 근심된 일이 많고’ 요한계시록 18장 9절에서 19절은 무너진 성 바벨론에 대한 세 개의 장송곡으로 구성됩니다.
이 노래들은 바벨론의 사치에 함께 했던 땅의 왕들과(9-10절), 바벨론의 만족할 줄 모르는 사치에 대한 탐욕을 채워줌으로써 치부한 땅의 상인들(11-17절), 그리고 바벨론이 원하는 것들을 조달하는 가운데 번영했던 전체 해상 무역상(17-19절)이 부르는 노래입니다.
이 단락은 두로에 대한 에스겔의 애가를 따라 지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27장). 요한계시록 19장 1절에서 12절에 등장하는 스물아홉 가지의 물품 중 열다섯 개가 에스겔 27장 12절에서 22절에 나옵니다. 또한 세 그룹처럼 똑같이 우는 자들이 에스겔 본문에도 등장합니다.
종합적으로 볼 때,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완전한 심판으로 인하여, 바벨론은 결코 다시 세상에 재앙을 가져다 줄 권력이나 자원을 가지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20절에는 바벨론에 임한 완전한 심판이 기록됩니다. (20) 하늘과 성도들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아, 그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그에게 심판을 행하셨음이라 하더라 하나님과 연합한 자들은 요한계시록 18장 9절에서 19절에 나온 바벨론의 멸망에 대하여 즐거워하며 소리칠 것이라고 말합니다. 바벨론의 끔찍한 멸망에 성도들이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그 권면이 주어집니다. 그 반응은 즐거움입니다.성도들이 즐거워해야 할 이유는 하나님이 바벨론에 심판을 행하셨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바벨론의 위증죄가 발견되었고, 하나님은 바벨론이 자신의 희생자들에게 강요했던 바로 그 처벌을 도리어 바벨론이 당하도록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바벨론의 사치스러움을 통해 이윤을 얻었던 모든 자들의 슬픔과 절망이 끝나게 됩니다. 그 성은 폐허가 되었으며, 그 성의 사사로운 이익에 도움을 주었던 모든 자들의 특별한 이익도 끝나 버립니다.
자기중심적이고 기회주의적인 것에만 관심이 있는 현대사회가 위기와 멸망으로 치닫고 있을 때, 우리들의 삶은 어떤 방향을 향해서 나아가고 있는지 점검해 봐야겠습니다.
불의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공의가 시행되거나 실현됨 없이 역사가 끝난다면, 신자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자가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심판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심판 원리는 무엇입니까? 준대로 갚아 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 사실 때문에 주님을 경외해야 하는 것이며, 이 사실 때문에 주님을 신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의 나라를 위해 흘린 노고와 눈물을 기억하신 것이며, 하나님 나라를 위해 신실함으로 흘린 그 피를 반드시 보상해 주실 것입니다. 이 변하지 않는 사실로 인하여, 세상의 멸망 때, 주의 재림을 바라보는 주의 백성이 기뻐하는 것입니다.
(21) 이에 한 힘 센 천사가 큰 맷돌 같은 돌을 들어 바다에 던져 이르되 큰 성 바벨론이 이같이 비참하게 던져져 결코 다시 보이지 아니하리로다 요한계시록 18장 9절에서 19절에서는 바벨론의 정치적이고 상업적인 동맹들이 그들의 멸망으로 인하여 어떤 외부적 영향을 받게 되었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제 이어지는 절들에서 우리는 바벨론의 멸망을 내부로부터 보게 됩니다. 큰 성의 예술, 세공업, 상업, 그리고 관습이 영원토록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21절에서 23까지 여섯 번이나 반복되는 ‘다시...아니하고’라는 문장이 그 성의 멸망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한 힘센 천사가 큰 맷돌을 들어 바다에 던지면서, 바벨론이 이처럼 던져져 다시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외칩니다.
5장 2절에서 힘센 천사는 큰 두루마리를 지키는 자로 언급되었고, 10장 1절에서는 힘센 천사가 하늘에서 작은 두루마리를 가지고 내려왔다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힘센 천사는 큰 크기의 맷돌을 바다에 던집니다.
어떤 주석가들은 이 환상이 로마가 사라질 것을 상징한다고 해석합니다. 큰 맷돌은 그냥 바다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맹렬하게 바다로 내동댕이쳐집니다. 이 장면은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갑작스럽게, 그리고 큰 규모로 이 옛 성에 임할 것인지를 강조할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을 반대하는 전체 적그리스도의 세계에도 심판이 임할 것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22) 또 거문고 타는 자와 풍류하는 자와  퉁소 부는 자와 나팔 부는 자들의 소리가 결코 다시 네 안에서 들리지 아니하고 어떠한 세공업자든지 결코 다시 네 안에서 보이지 아니하고 또 맷돌 소리가 결코 다시 네 안에서 들리지 아니하고 사도 요한은 바벨론 성이 맹렬하게 내던져진 결과 발생한 영향을 이야기합니다.
첫째로, 거리에서 음악이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적막함이 멸망한 성을 다스리게 됩니다. 한때 거문고 타는 자와 풍류하는 자와 퉁소 부는 자와 나팔 부는 자들의 소리로 가득했던 거리가, 이제는 으스스한 적막에 사로잡혀 버린 것입니다.
음악이 사라질 뿐 아니라, 두 번째로는 장사하는 세공업자들의 소리도 사라져 버립니다. 경제 활동 전체가 갑자기 멈춰 버립니다.
세 번째로, 맷돌 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는 언급으로 추리해 볼 수 있는 사실은 음식이 없어져 버린 모습을 표현했다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결코 다시’라는 말을 여러 차례 반복하여 완벽한 심판이 임할 것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23) 등불 빛이 결코 다시 네 안에서 비치지 아니하고 신랑과 신부의 음성이 결코 다시 네 안에서 들리지 아니하리로다 너의 상인들은 땅의 왕족들이라 네 복술로 말미암아 만국이 미혹되었도다 넷째로 불빛이 사라지는 것이 멸망한 성의 황폐한 모습에 추가됩니다. 계시록이 쓰였을 그 당시의 시대를 생각해 봤을 때, 많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부자들이 축제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횃불을 든 많은 노예들에 둘러쌓여 배웅받는 모습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한 모든 활동들이 멈출것이라는 선포를 하고 있습니다. 그 바쁜 성은 세공업자들이 주문량을 맞추기 위해 오랜 시간 일하면서 밤 동안 켜두었던 불빛에 익숙해져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밤의 캄캄함이 이 버려지고 황량한 대도시를 덮어 버렸습니다.
마지막으로 혼인의 기쁨, 즉 인간관계중에서 가장 친밀한 연합의 기쁨도 지나가 버린 것으로 묘사됩니다. 결혼은 과거의 일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신랑 신부의 기쁨이 더 이상 남아 있지 아니하다는 의미입니다.
바벨론 성의 상인들은 땅의 왕족들이 되었는데, 이것은 엄청난 교만함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호칭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상인들의 사업장을 통해 전 세계로부터 온 엄청난 양의 비싼 사치품들이 도성으로 밀려들어왔을 것입니다. 상인들의 개인적인 부는 자신의 고객의 채울 수 없는 탐욕과 함께 더불어 성장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상인들은 하나님께서 자기들에게 맡기신 것을 청지기로서 책임 있게 감당하기는커녕 그저 자신의 영광을 취하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바벨론이 심판받은 이유로서 언급된 요소는 복술이었습니다. 복술은 술수, 마술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 항상 여호와 하나님의 인도가 아니라 점성술사들의 인도를 받는 것과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요한계시록 9장 20절에서 21절을 보면, 우상숭배, 복술, 음행이 함께 언급되며, 복술은 심판받을 죄라고 명백히 증언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본 절은 바벨론의 술수가 낳은 죄악 됨은 모든 나라로 하여금 부요와 사치를 궁극적인 목표로 삼아 살도록 했다는 점에서 심판을 피할 수 없다고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24)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및 땅 위에서 죽임을 당한 모든 자의 피가 그 성 중에서 발견되었느니라 하더라 바벨론의 죄는 돈을 우상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사치와 방탕에 빠져들기 시작하면 사람을 더 이상 존중하지 않습니다. 궁극적 타락에 이르렀을 때, 즉 물질이 우상이라면 결국 사람의 피를 흘리는 것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피를 흘린 땅은 하나님의 저주를 불러옵니다. 피를 흘린 도성은 하나님의 심판을 불러옵니다. 땅에 흐르는 피는 복수를 요청하는 피입니다.사치와 방탕, 물질 지상주의적인 삶의 태도는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습니다.
거만한 도시 옛 바벨론이나 당대 로마는 하나님의 백성 박해하기를 그들의 쾌락으로 알았습니다. 민중의 즐거움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내어 놓았습니다. 원형 극장에서 굶주린 사자들 앞에 성도들을 풀어 놓았습니다. 정치에 대한 불만의 해소책으로 그리스도인을 제물로 삼던 일들은 로마시대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무죄한 성도의 피는 지금도 부르짖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벨론 멸망의 명백한 근거이자 이유입니다. 죄로 인하여 부패한 세상에서 오늘 언급된 바벨론 멸망에 원인을 제공한 모습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탐욕과 사치를 따라 사는 자들은 자연스럽게 땅의 것만을 추구하고 하늘의 보물을 무시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비록 요한계시록이 쓰여질 당시, 요한계시록 18장 21절부터 23절의 모습들을 동사의 미래형 시제를 사용함으로서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코로나 펜데믹을 경험한 우리에게는 많은 부분들을 경험했습니다. 그 당시, 일자리가 사라지고, 거리에 음악이 들리지 않았고, 불이 꺼지고 문이 닫힌 많은 상점들, 천정부지로 올라가고 있는 식자재들의 가격과 함께, 결혼을 기피하는 시대의 문화들은 오늘 바벨론의 멸망과 흡사한 점이 너무도 많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현상들이 우리가 지금 급박한 종말의 심판대에 너무도 가깝다고 주장하거나 단정하는 것은 자칫 잘못된 성경해석과 오류에 빠질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말세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지혜는 쉽게 교만에 빠지며,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가는 이 세상의 풍조에 휩쓸려 사는 방법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웃과 나누며, 성령의 열매가 우리의 삶에 맺혀가도록 주님을 닮아가는 싸움을 오늘 나의 삶에 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을 오늘도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기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썩어져갈 세상 풍조의 열매가 아닌,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시려고, 말씀을 허락하시고, 듣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시대적 현상에 말씀을 끼워 맞춰, 시간을 허비하지 말게 하시고, 말씀의 가르침에 우리의 삶을 맞춰가며, 주님의 뜻을 이 땅에 성취해 가는 귀한 사명을 살게 하옵소서.
얼마나 많이 소유했는가를 인생의 기준으로 삼지 않고, 주님 앞에 나는 어떤 존재인가를 끊임없이 돌아보는 성숙한 신앙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복된 한날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나는 지금 세상의 풍조에 휩쓸려 심판의 때를 두려워하고 있는지, 아니면 성경의 권면처럼 심판 때 주께서 베풀어 주실 공의를 기대하며 즐거워할 준비를 하고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20절) 2. 교만과 물질을 숭배하는 것이 죄의 본성이며 바벨론 멸망의 핵심적 원인이었음을 오늘 본문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어떤 멸망의 현상들이 나타나는지 생각해 봅시다.(22절) 3. 세상이 나에게 계속해서 유혹하고 있는 달콤한 복술(속임수)이 무엇인지 묵상해 봅시다.(23절) 4. 죽임을 당한 어린양 되신 예수님의 숭고한 희생에 대한 감격과 감사가 내 삶에 있는지 점검해 봅시다.(24절) <작성:황동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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