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 됨을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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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 됨과 그 유익

갈라디아서 4:4–7 NKRV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
1922년 로마 바티칸에 한 청년이 있었다고 한다. 자신의 어머니는 아프시고, 학비도 스스로 벌어야하는 상황이었다. 그의 이름은 ‘쟝 라고스타’였다. 그는 가난한 학생이었지만 항상 밝고 긍정적으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을 했다. 그 이유는 아프신 어머니 때문이라고 한다. 자신이 기대했던 후원 장학금도 받지 못하고, 그것도 모자라 일자리도 구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바티칸 도서관에 번역할 사람들 구한다는 소식을 친구를 통해 듣게 된다. 쟝은 다행이도 불어를 능숙하게 잘했었다. 그런데 면접을 보러 간 곳에서 신부님을 기다리고 있던 그는 그 장소가 꿈에서 본 것 같은 장소이자, 서랍에 꽂혀 있던 ‘동물학’이라는 책도 꿈에서 정확히 본 장면이었다고 한다. 책을 읽던 쟝은 맨 뒷장이 붙어 있는 것을 보고 의아한 나머지, 붙어있던 맨 뒷장을 떼어내본다. 그 안에는 알 수 없는 글자들이 나열되어 있었고, 그 안에는 ‘주스티치아’라는 건물에 선물이 숨겨져 있다고 적혀 있었다.
함께 보던 친구는 50년도 더 된 책이라 누군가의 장난이라고 했지만, 꿈까지 꾸었던 쟝은 호기심을 주체할 수 없었고 곧바로 주스티치아 궁전을 찾아가게 된다. 그 궁전으로 가서 도서관 사서에게 뒷장에 적혀있던 알 수 없는 글들을 보여주니, 그것은 도서관에 있는 책의 나열 번호였고 사서는 50년 전의 문서를 찾아서 쟝에게 하나의 서류를 전해준다. 그 봉투 안에는 몇 가지 서류와 함께 편지 한통이 들어있었는데, 그 편지 안에는 그 동물학을 집필했던 한 작가의 이야기가 들어있었다. 그 작가는 동물학 책을 쓰는 동안 너무 빠져버린 나머지 가족들을 소홀히 대하고 방해두었으며 결국 그가 책을 다 쓰고 난 뒤에는 가족들은 이미 모두 떠나버렸다고 한다. 하지만, 충격적인건 그의 마지막 말이었다. 그는 책 마지막에 “내 소중한 책을 끝까지 읽은 한 사람에게 내 남은 유산을 모두 주겠다”라는 유언장을 남겼던 것이다. 그 후 쟝은 작가의 유언장에 쓰여진 은행에 찾아갔다. 놀랍게도 은행에는 작가의 계좌가 존재했고, 그 계좌에는 약 35억의 거액이 남겨져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유언장은 편지이고 누가 위조한 것일 수도 있다는 이유로 은행은 유산 지급을 거부한다. 이제 쟝은 은행을 상대로 소송을 걸었지만, 법원의 판결마저 은행의 손을 들어주게 된다. 그런데, 그로부터 한 달 뒤, 쟝은 도서관으로부터 책을 돌려받고 유산까지 상속하게 되는데 어떻게 된 일일까? 모든걸 포기하고 엄마에게 갔던 쟝은 어머니에게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게 된다. 그런데 믿기 힘든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된다. 바로 그 작가가 동물학을 집필하면서 방치하고 떠났버렸던 그의 부인과 딸, 바로 그 딸이 쟝의 어머니였던 것이다. 어머니와 함께 다시 로마로 돌아간 그는 결국 유산을 상속받게 된 것이다. 이처럼 유산은 확실한 공증이 없을 때는 오로지 친자식만이 유산을 받을 권리가 있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읽은 갈라디아서 본문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믿음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는 것이다. 아들은 아버지의 재산을 물려받는다. 이처럼 하나님의 아들은 유업이 있다. 바울은 이 점을 명확하게 말한다.
갈라디아서 3:29 NKRV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유업을 이을 자라는 것이다. 마치 구약에서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기업을 받은 것과 같다. 하지만 아들이 아버지의 유업을 물려받을 시기가 있다. 아이였을 때에는 유업을 물려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바울은 로마 시대의 풍속에 따라서 말하고 있다. 아들은 법적인 상속자지만 나이가 어리면 상속된 유산을 관리하기도 다스릴 능력이 없기 때문에 종이나 다를 것이 없다. 상속 받기 전에 어른이 되기 전까지 자신을 돌봐줄 사람을 후견인이라고 하는데 이 후견인의 말을 따라야 한다. 이것은 아버지가 정해 놓은 질서이다. 율법의 시대, 구약의 시대는 아들이 후견인 아래 있는 것과 같다고 한다.
갈라디아서 4:3 NKRV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의 초등학문 아래에 있어서 종 노릇 하였더니
여기서 “세상의 초등학문”은 ‘세상의 기초 원리’입니다. 여기서 초등학문은 세상의 원리, 천체의 원리를 생각하며 고대철학에서 만물의 근원이 구성하는 네 가지 요소가 땅, 공기, 불, 물을 의미를 가진다. 이방인들에게는 세속적인 철학이고 유대인들에게는 그들의 삶을 가르치는 율법이라는 것이다. 바울은 이것이 무엇인지를 다음 구절에서 더 자세하게 말한다.
갈라디아서 4:4 NKRV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세상의 초등학문 아래에”는 “율법 아래에” 있는 것이다. 이때 아들이지만 종과 같은 신분의 상태이다. 하지만 “때가 차매”는 하나님이 정하신 구원의 때가 온 것이다. 구원 역사의 결정적인 때이다. “그 아들을 보내사”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율법 아래에” 오셨다.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기 위해서 오신 것이다. 율법 아래 있는 사람들을 구원하여 “아들의 명분을 얻게”하신다. 즉, 양자로 입양하게 된 것이다.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아들로 입양이 되었다. 하나님은 믿는 자에게 “그 아들의 영” 즉, 성령을 주신다. 그래서 부자관계를 확인한다. 믿는 자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른다. 그리하여 이제 신분이 변했다. 종과 같이 지내던 시기가 끝났기 때문이다.
갈라디아서 4:7 NKRV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
이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기 때문에 이제 정식으로 유업을 물려받을 수 있다. 그렇다면 양자되었다는 것은 무엇이고, 그에 대한 유익은 무엇인지 자세히 다뤄보고자 한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34문을 함께 읽어보자.
Q34. 양자로 삼는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A34. 양자로 삼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거저 주신 은혜의 행위로서, 이로 인해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의 수효 중에 들게 하시며, 그 모든 특권을 누리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양자로 삼는 것은 하나님의 값없이 주시는 은혜의 행위라는 것이다. 사도바울은 우리가 그의 자녀이기에 아들의 영, 양자의 영을 받았다고 말한다. 양자가 되었다는 것은 진노를 받아 당연히 지옥에 가야하는 하나님과 원수의 관계였던 우리가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동시에 아들이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보호와 돌봄을 의미하면서 상속까지 의미한다. 타락한 우리를 죄에서 자유롭게 하시고 하나님이 백성 삼으신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감당하기 어려운 일인데, 죄인을 씻기고 사랑하시며 자신의 아들이 되게 하신 것이다. 우리를 천국 백성을 삼으시려고, 마치 놀이터에서 놀다가 더러워진 자녀를 어머니가 집으로 들이기 위해서 자기 자식을 씻어주시는 것처럼 말이다.
양자가 된다는 것은 아무도 스스로 될 수 없는 일이다. 하나님이 특별한 은혜를 베푸셔서 되는 것이다. 여기서 공기나 햇볕과 같은 것은 사람의 구분이 없이 보편적으로 내려지는 은혜이다. 그러나 여기서 하나님의 은혜로 된다는 말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의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런 질문이 생길 수 있다. 왜 하나님은 세상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지 않으시고 선택하신 사람만 구원하시냐고 물어볼 수 있다. 그러나 다르게 생각해보면 어떤 부모가 입양을 하려고 센터에 왔는데, 왜 한 아이만 선택하고 다른 아이는 입양을 선택하지 않았다고 손가락질 하는 사람이 있는가? 없다는 것이다. 입양을 할지 말지에 대한 모든 결정권은 부모에게 있는 것처럼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고 입양하고자하는 결정권은 오로지 하나님께 달려있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20:17 NKRV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시니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믿는 자를 향해서 ‘내 형제’라고 부르시고 또한 ‘하나님이 우리 믿는 자의 아버지가 되신다고 말씀해주신다. 스스로 우리의 형제가 되시고 많은 형제들 중에서 맏아들이 되셨다. 어떻게 거룩하신 하나님과 형제가 되며,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인가? 분명한 것은 내가 무엇을 해서가 아니고 내가 도덕적으로 착해서도 아니다. 우리가 아는 것은 이것이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였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 속에 하나님의 아들의 영 즉 양자의 영을 두셔서 하나님 아버지와 가지셨던 그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우리를 초청하신 것이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죄에서 구원하셨을 뿐 아니라 양자로 자녀 삼아주셨다.
그렇기에 양자로 삼으신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는 모든 특권을 누릴 권세를 갖게 된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것은 무한한 특권이고 영광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아들 됨의 권세를 누리는 것이다. 기업을 물려받게 되고, 하나님의 일을 맡아서 할 수 있고 하나님의 이름을 나타낼 수 있다. 그 하나님은 자녀를 보호하시고 돌보시며 우리를 성장시키기 위해 자녀에 대한 징계도 주신다. 자녀된 우리는 아버지께 부르짖고 도움을 구할 수 있으며 자녀는 예수님의 부활의 몸을 닮아서 아주 찬란하게 빛나게 될 것이다. 이 모든 특권을 개인적으로만 누리는데 그치지 않고 형제와 함께 누리게 된다. 함께 누릴 형제가 아주 많다는 것이다. 믿는 자들은 하나님께 무서워하는 공포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고 양자, 아들의 영을 받았다. 그래서 하나님을 향해서 ‘아바 아버지’라고 애정으로써 하나님을 마음 속에서부터 부를 수 있게 되었다. 이 말은 하나님과 자녀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잘 설명하고 있다. 더이상 우리는 하나님과 원수 관계가 아닌, 깊은 애정의 관계가 되었다.
이 양자 됨에 몇 가지 강조점이 있는데, 양자 됨은 한 순간에 이루어진다. 이것은 하나님의 행동으로 단번에 이루어지는 것이고 오랜 기간 걸리는 일이 아니다. 양자 됨은 또한 영구적인 효과를 지닌다는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가 양자 삼으신 사람들은 결단코 버림을 받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양자 됨은 또한 우리가 의식할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이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을 읽지 않으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게 된다.
우리의 아들 됨과 예수님의 아들 됨의 차이가 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유일하신 독생자이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본질상 그 능력과 영광에 있어서나 하나님만 갖고 있는 성품에 있어서 아버지와 같다. 그리고 이것은 그가 하나님임을 의미한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 됨은 우리가 신적인 사람으로 된다는 뜻이 아니다. 우리는 이러한 아버지와 동등한지에 있어서 그리스도와 같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가진 상속권과 권세와 영광을 주고자 하신다.
하나님의 구원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는데 그치지 않는다. 우리를 지옥에 가지 않게 하실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천국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유업을 이을 자로 삼으셨다. 자녀라면 또한 상속자이기도 하다. 우리는 하나님의 상속자이며 또한 그리스도와 공동의 상속자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누리시는 영광에 참여하기 위해 그분이 겪으신 고난에도 참여하는 것이라고 사도바울은 선언하고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상속에 참여할 자라는 것이다. 양자 됨은 우리에게 특별한 은혜를 준다. 놀라운 하나님의 가족으로서의 특권과 권리, 영광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됨을 기억하기 위해 3가지 기억해야할 것이 있다.
첫 번째로 오직 은혜라는 것을 기억해야한다. 항상 이야기하지만 우리는 어떤 자격이 있어서 하나님이 자녀 삼으신 것이 아니다. 우리 인간도 입양할 때 어떤 조건이나 다른 갓난 아기들보다 성적이 좋아서 머리가 똑똑해서 좋은 DNA가 있어서 선택하지 않는다. 하물며 하나님이 보시기에 인간이 뛰어나면 얼마나 뛰어나서 무슨 기준으로 우리를 선택하시겠는가? 하나님이 우리를 자녀를 삼으신 것은 어떠한 이유나 조건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무슨 제비뽑거나 공을 뽑듯이 선택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아시고, 심지어 머리카락 숫자까지 다 아심으로 선택하셨다는 것이다. 또 하나님께 선택받았다고 믿지 않는 사람보고 지옥의 뗄감으로 보는 것도 옳지 않다. 당연히 우리가 받아야할 형벌인데 하나님이 자격없는 나를 그 영원한 죽음으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해 택하신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기억해야한다.
전도사님은 날마다 교회에 있는 십자가를 보면서 ‘저기는 내가 달려야할 곳인데’라고 생각하며 나를 자녀 삼아주시고 택하신 은혜에 대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나를 구원하신 것도 너무나 감사한 일인데, 유업까지 상속해주신다는 것이 인생에 있어서 가장 행복한 일이라고 고백하고 싶다.
두 번째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기억해야한다. 전도사님은 믿음이 흔들릴 때마다 암송하는 말씀이 있다. 예레미야 33장 3절의 말씀을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지금까지도 입술로 고백하며 기억한다. 그럴 때 하나님이 불안한 마음 가운데 확신과 기대감을 주시기 때문이다. 실제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고백하고 기도할 때 응답되었던 것들이 너무나 많아서 감히 셀 수 없을만큼의 은혜들을 누렸었다. 그 경험을 토대로 하루하루 살아가면 주님과 동행하는 삶이 얼마나 늘 기대감과 행복이 가득한지 모른다. 저기 있는 약속의 말씀도 뭔가 우연의 일치처럼 송구영신예배 마치고 말씀 카드를 뽑았는데, 저 말씀이 나왔고 어느 청소년 집회에 다녀와서 마치고 말씀 카드를 뽑았는데 저 말씀이 나왔다. 잊어질만 할 때 수련회에서 말씀카드를 뽑았는데 저 말씀이 나오니 내 인생 약속의 말씀으로 붙들어야겠다는 확신이 생겼었다.
여기있는 여러분들은 붙들고 있는 약속의 말씀이 있는가? 그 말씀을 날마다 암송하고 하나님의 때에 이루실 것을 기대하고 기도하며 살아가는 자에게 반드시 놀라운 일들이 나타날 것을 확신한다. 약속의 말씀을 붙들며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해야한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이집트 노예로 살다가 출애굽하게 하신 은혜 바벨론에서 포로에서 해방되게 하신 은혜 등등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 받은 은혜들을 감사하고 노래하며 고백한다. 우리도 한국 역사 안에서 감사할 것이 너무나도 많다. 먼저 한국에 선교사님을 보내주셔서 믿음 생활할 수 있게 해주신 것, 모태신앙이라면 믿음의 가정을 주신 것, 모태신앙이 아니라면 이제 믿음의 가정을 꾸릴 수 있게 해주신 것, 이렇게나 좋은 교회주셔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것 등등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각자에게 주신 은혜들이 너무나도 많다는 것이다. 그 은혜들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면 오늘에도 감사할 것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그렇게 감사로 살다보면 우리의 감정은 어떻겠는가? 행복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 심리학자가 어느 동네에 한 구역을 정해서 집집마다 매일 10만원씩 갖다 놓은 후에 결과를 관찰하기로 했다. 실험 첫날 사람들은 그가 미친 사람이 아닌가 의아해 하면서도 슬그머니 돈을 집어 갔다. 3일 뒤에 그 마을은 10만원을 집앞에 놓고 가는 사람의 이야기로 동네가 떠들썩했다. 둘쨋주 쯤되니 현관 앞에 나와 돈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고, 셋쨋 주쯤 되자 돈을 받는 것을 이상해하지 않았고 넷쨋 주가 되었을 때는 아주 당연한 것처럼 돈을 집어 갔다. 실험기간인 한달이 지나자 심리학자는 돈을 집 앞에 놓지 않고 그냥 동네를 지나갔다. 그러자 사람들은 아주 불쾌해하며 “왜 오늘은 안주고 가느냐”고 따졌다. 사람들은 이유없이 베풀었던 은혜를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고 고마워하기는 커녕 오히려 주지 않는 것을 서운해하고 불쾌해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도 날마다 누리는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자연들, 심지어 바람, 공기, 햇살, 물 더 나아가 오늘 하루 살아가는 하루와 생명도 하나님이 주신 은혜들이다. 이것들을 당연하게 생각한다면 하나님 앞에 감사할 것이 없는 거저 받은 은혜에 감사할 줄 모르는 방금 이야기한 동네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다. 그렇기에 여기있는 저와 여러분들은 사소한 것 하나하나 모두 감사의 기도로 드려보는 것은 어떤가? 당연한 것은 하나도 없고 모두 하나님께 감사로 여기는 사람은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반드시 행복할 것을 확신한다. 그 행복을 누리시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설교의 마무리로 찬송가 429장 ‘세상 모든 풍파 너를 흔들어’의 가사로 여러분에게 전해드리고 마치려고 한다.
세상 모든 풍파 너를 흔들어 약한 마음 낙심하게 될 때에 내려주신 주의 복을 세어라. 주의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받은 복을 세어 보아라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받은 복을 세어 보아라 주의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세상 근심 걱정 너를 누르고 십자가를 등에 지고 나갈 때 주가 네게 주신 복을 세어라 두렴없이 항상 찬송 하리라. 받은 복을 세어 보아라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받은 복을 세어 보아라 주의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세상 권세 너의 앞길 막을 때 주만 믿고 낙심하지 말아라 천사들이 너를 보호 하리니 염려없이 앞만 보고 나가라. 받은 복을 세어 보아라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받은 복을 세어 보아라 주의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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