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목상 성도에서 온전한 성도로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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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설교문은 요셉의 이야기와 그의 형제들이 명목상 성도에서 온전한 성도로 변화되는 과정을 통해 교회의 역할과 성도의 성장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은 고난과 회개를 통해 성도들을 중생시키고 헌신적이고 도덕적인 삶으로 이끕니다. 교회는 단순히 마음의 평안을 위한 곳이 아니라 구원과 영생을 추구하며, 다양한 신앙 활동을 통해 중생을 경험하게 하는 곳입니다. 성도들은 예수님을 중심으로 목회자와 함께 믿음을 일치시키고, 교회를 세우는 과정에서 자기 자신도 세워지는 경험을 하며, 명목상 성도에서 벗어나 진정한 그리스도의 제자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명목상 성도에 대하여

1) 로잔 운동에서 정의한 명목상 크리스찬
- 성도는 회심과 중생을 경험해야 하며, 헌신이 있고 현실적인 경험이 필요하다.
이것은 지난 시간 요셉의 도덕을 이야기하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설명할 수 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도덕적인 행위나 자기의 공로로 결코 구원을 받을 수 없다. 그렇다면 아무렇게나 살아도 되는가? 그것도 옳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인해 은혜로 새로운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을 경험하는 사건을 회심과 중생이라고 한다. 이것은 상징적이거나 추상적인 의미가 아니라 현실적이면서도 경험적인 사건이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인해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경험을 하게 되면 예수님의 능력, 지혜, 성품, 영성 등을 부분적으로 공급받게 된다. 그러므로 중생을 경험한 성도는 자발적으로 헌신적이 되며, 도덕적인 사람이 된다.
2) 신앙의 목적
- 교회의 목적이 마음의 평안에서 그쳐서는 안된다. 그것을 목적으로 처음 나왔을 수 있지만 그 목적은 더 높은 이상을 향하여 변화되어야 한다. 그것은 구원과 영생이다.
3) 교회에서 얻는 행복감 대비 지루함, 헌금생활, 성경읽기와 기도생활 > 이러한 활동이 중생을 경험하는 통로가 됨
그러므로 지금 이런 성도라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그 상태에 머무르는 것이 문제가 되며, 이전에 그렇지 않았는데 점점 명목상 성도가 되어가는 것도 점검해야 한다.

명목상 성도였던 요셉의 형제들

“요셉의 스토리는 야곱의 족보라고 소개된 야곱에 관한 이야기이며, 이는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세워지는 시작을 이야기하기 위함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교회가 어떻게 세워지는지 알려주고 있다.”
야곱의 가정은 교회이고, 그 안에 가족들은 성도들이다. 그 성도들의 모습을 보라. 동생을 시기 질투하고, 교회를 떠나서 바깥 친구를 사귀어 여러 이성과 관계를 갖고, 심지어 며느리와도 관계하는가 하면, 아버지의 첩과 관계를 갖고, 다른 사람을 속이고 한 마을을 몰살시키고, 그들의 물건을 약탈하고 이 모습들이 모두 명목상 성도들의 삶이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기근’을 겪게 하셨다. 경제적 어려움이 왜 믿는 사람들에게 있고, 안 믿는 사람들은 없나? 기근을 통하여 변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심이 더욱 감사하다.
2절 “우리가 살고 죽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한사람을 미리 준비시키셨다. 요셉의 억울함과 고난을 통하여 형제들이 생명을 얻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먼저 죽으심으로 인하여 우리가 생명을 공급받게 되었다.
요셉과 형제들의 이야기는 예수님과 우리의 이야기이다.
요셉은 총리답게 감정적으로나 충동적으로 행동하지 않고, 신중하게 형제들을 대하며 그들을 옥에 삼일동안 가뒀다.
이 과정을 통하여 형제들의 잘못에 대한 벌을 받게 하고, 동시에 그들을 용서하였다. (요셉이 겪은 고난에 비해 관대한 용서)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 형제들은 ‘회개’하게 되었다. 회심과 중생을 경험하기 위해 꼭 거치는 과정이 바로 ‘회개’이다.(이후에 이런 것들을 자세히 배울 수 있다.)
“21절 우리가 아우의 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도다”
24절 예수님은 가벼운 징계에도 슬퍼하시며 함께 아파하신다. (눈물 흘리는 요셉)
2차 세계대전 유대인 포로수용소에서 일어난 일이다. 어린 아이가 탈출을 시도하다가 잡혀서 모두가 보는 중에 교수형을 당했다. 사람들은 분개하며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는 것이냐고 물었다. 그때 한사람이 이렇게 대답했다. 하나님은 이곳에서 우리와 함께 울고 계신다. 우리가 어려운 일을 겪을 때 하나님이 도무지 내 삶에 느껴지지 않을 때 그때도 하나님은 우리 곁에 계신다. 그리고 함께 슬퍼하고 아파하시며 울고 계신다.
25절 형제에게 받은 것을 다시 돌려주는 요셉
- 주님은 우리의 물질이 필요해서 헌금을 하라고 하시는 것이 아니다. 받은 것 이상으로 돌려주시는 분이심을 믿으라.

우리는 교회가 필요합니다.

에베소서 4:4–5 NKRV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에베소서 4:11–16 (NKRV)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믿음의 일치를 위해 교회가 필요하다.(4-5)
예수님을 통해 그리고 목회자를 통하여 우리는 믿음의 일치를 이룬다. (야곱과 아들들의 믿음이 모두 달랐다. 그러나 요셉을 통하여 야곱과 아들들 모두 믿음의 일치를 이룬다.)
목회자도 성도들과 함께 예수님을 배워가는 과정이다. 야곱이 완전하지 못한 것처럼 목회자도 완전하지 않다. 그러나 때로는 성도들에게 결단을 요구할 수 있다.
믿음의 일치가 일어나지 않는 교회를 요셉의 가정이 보여준다.
목회자는 성도를 편애한다. 교회의 온갖 문제가 그로부터 시작되는데 당사자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하고 성도들을 원망하고 나무란다. 그래서 요셉이 베냐민을 끝까지 보내도록 하는 것이다.
성도들은 자기 생각에 옳은대로 행동한다. 부족하지만 목회자는 하나님이 세우신 사자이기 때문에 중요한 일들은 목회자와 상의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된다. 자녀들은 그것이 옳습니까?!라며 야곱에게 물었다.
요즘 시대의 성도들은 목회자에게 옳고 그름을 따지는 시대가 되었다. 목회자를 바꿔버리던지 자신이 교회를 떠나기를 가볍게 생각한다. 물론 목회자를 바꾸거나 교회를 떠나는 일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무엇을 하던지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이 아니라 예수님의 인도하심을 받도록 하자.
2. 온전한 사람이 되기 위해 교회가 필요하다.(11-13)
요셉을 꿈꾸는 자로 삼으신 것은 그의 성도들을 온전하게 하여 봉사하게 하고,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우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예수님을 아는 것과 믿는 것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룬다.
은사는 그것을 통해 교회를 세우라고 주신 능력이다. 성도들을 온전하게 한다는 것은 성도들을 준비시킨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은 목회자를 통해 교회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성도를 통해 교회를 세우신다. 우리 교회가 어떻게 깨끗해지고 아름다워지는가? 성도들을 통해 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을 통하여 우리는 ‘온전한’사람이 되는데 이는 예수님을 닮은 사람을 의미한다. 그래서 마치 어린 아이가 성장하며 온전하여 지듯이 우리도 점점 자라가는 것이다.
3. 교회를 세우며 나를 세운다. (12,16)
주님은 성도들을 통해 그들의 봉사와 헌신과 땀과 눈물을 통하여 교회를 세우신다. 그런데 교회를 세우며 경험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교회가 세워지면서 내가 세워지는 것이다. 우리는 서로를 비난하거나 탓 할 필요가 없다. 누구를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내가 살기 위해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몸은 머리가 시키는 대로 움직인다. 그래야 제대로 작동하는 것이다. 우리의 머리는 예수님이다. 그리고 목회자는 예수님의 대언자 역할을 한다.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해 연결되어 도움을 받고 연결되고 결합되어 자기 분량대로 역사하듯 성도들도 예수님을 중심으로 연결되고 도움을 받고 연결되고 결합되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에서 자기 분량대로 역할을 하면 된다. 무리할 필요도 없고, 게을러서도 안된다. 그렇게 몸이 자라듯 교회가 자라게 되고, 그 과정에서 자기 자신이 세워지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결론

오늘 우리는 요셉의 이야기와 그의 형제들이 명목상 성도에서 온전한 성도로 변화되는 과정을 통해 우리 자신과 교회의 역할을 깊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아들들, 즉 요셉의 형제들이 겪은 기근과 고난을 통해 그들의 마음을 돌이키고 회개하도록 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삶의 어려움을 통해 회심과 중생을 경험하고, 이를 통해 헌신적이고 도덕적인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교회는 단순히 마음의 평안을 얻기 위한 곳이 아니라, 더 높은 이상, 즉 구원과 영생을 추구하는 곳입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얻는 다양한 신앙 활동—헌금생활, 성경읽기와 기도생활—은 중생을 경험하는 통로가 됩니다. 따라서 명목상 성도가 아닌 진정한 성도로서, 지속적으로 신앙의 깊이를 더해가야 합니다.
요셉의 형제들이 결국 요셉을 통해 믿음의 일치를 이루고 온전한 성도로 변화되었던 것처럼, 우리도 교회를 통해 서로 믿음을 일치시키고, 온전한 사람으로 성장해 가야 합니다. 예수님을 중심으로 목회자와 성도들이 함께 교회를 세우고, 그 과정에서 자기 자신도 세워지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교회를 세우는 일은 곧 우리 자신을 세우는 일입니다. 교회 안에서 서로를 돕고 연결되며 예수님의 지시에 따라 살아가는 성도들이 될 때, 우리는 명목상 성도에서 벗어나 진정한 그리스도의 제자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요셉의 이야기와 교회의 본질을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중요한 교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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