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의 관계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43 views
Notes
Transcript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다시 빚으실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알고 계시나요? 이제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은 어떤 모양으로 우리를 빚으시기를 원하시느냐는 것입니다. 어쩌면, 어떻게 빚어진 우리가 하나님께 사용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아주 명확하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기 행동이나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판단하고 통제하는 정신적 능력’을 ‘뜻’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 계획과 결정이 내 뜻이라면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계획과 결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 뜻이라고 하는 말은 참 무서운 말입니다. ‘자의식’이 생기면서부터 자신의 의지대로 하려는 경향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이러한 인간의 성향을 이렇게 말합니다.
이사야 53장 6절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우리 신앙의 문제는 바로 이 ‘뜻’에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 예수님은 두 가지 모범을 보여주셨는데,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주기도문’을 통해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모범을 겟세마네 동산에서 보여주셨습니다.
마태복음 26장 39절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문제는 우리가 이렇게 기도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왜곡되게 바라볼 수 있고, 잘못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고, 하나님과 나의 뜻이 갈등을 빚을 때 고민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깨어진 질그릇은 하나님의 뜻을 벗어난 우리의 모습일 것이고, 깨어졌다는 것은 쓸모없이 되어버린 우리의 모습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의 뜻 구별해야 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참 힘든 것 중의 하나가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가?”라는 질문입니다. 사실 신실한 신앙의 문제는 ‘구별’의 문제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로마의 교인들에게 아주 의미 있는 권면의 편지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유념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란 그분의 계획이 우리의 삶에 유익이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알지 못한다고 그분이 악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데 아주 중요한 기준이 있는데 우리의 마음이 변화를 받아야 뜻을 분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라고 했습니다.
사무엘상 8장에 보면 왕이 없던 사사 시대를 살던 이스라엘 백성이 사사이고, 제사장이었던 사무엘에게 자기들에게도 왕을 달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요구에 대하여 하나님이 화가 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화가 나신 이유는 그들의 요구가 사무엘에 대한 거부가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거부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주변 나라에 있는 왕들을 보며 자신들에게도 왕이 있다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왕을 요구하는 그 내면에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거부하는 마음이 있음을 보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요구가 하나님의 마음에 들지 않았고, 그들의 요구가 불의함에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십니다. 여기서 우리가 혼동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불의’를 허락하신 것이 아니라, 변하지 않고 바뀌지 않는 그들이 불의한 뜻으로 인해 고통을 당해 깨닫게 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들의 말을 듣되 너는 그들에게 엄히 경고하고 그들을 다스릴 왕의 제도를 가르치라”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지만, 그들에게 허락하셨습니다.
신앙 생활을 하다보면 ‘인격적’이라는 말을 종종 듣게 될 것입니다. 우리 신앙의 가장 큰 문제는 하나님을 인격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데 있는 듯합니다. 마치 무슨 기계처럼 우리가 기도를 넣으면 응답이 나오는 것처럼, 혹은 하나님께서 설계하신 로봇과 같은 인간들이 입력된 명령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마치 꼭두각시 인형과 같이 줄에 매달려 하나님이 손가락을 움직이는 대로 인간도 움직인다고 하는 생각에 빠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은 중요한 단어들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로마서 12장 1~2절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루는 내용을 기록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나의 관계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통하여 행하는 것이 예배에서는 영적인 예배로 드려지는 것과 생활에서는 이 세대를 따르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렸던 산제물로의 생활을 통해 새로운 변화를 가지고, 하나님의 뜻이 선하신 것과 기뻐하시는 것과 온전한 것을 분별하는 삶을 살아가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그중에 가장 중요한 단어를 하나 꼽으라면 “분별하라”라는 말을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변화를 받아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왜곡된 우리의 마음은 올바른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인생이 깨어진 이유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인생을 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인생이 어떻게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있다”라는 말은 이제 우리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인생을 살게 되었다고 하는 확고한 믿음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인격적이라는 말의 의미는 또한 “지속적”이라는 말과도 일맥상통합니다. 인격은 한 번의 관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된 과정이고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한 번의 관계는 그때로 끝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의 방법이 모든 사람에게 같지 않다는 것은, 그 인도하심이 개별적이고 인격적이라는 말과도 일치합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나와 광야를 지날 때 율법과 규례를 주셨습니다. 그들은 한 번도 자신의 규범이 없이 살았던 노예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 법이 없었다면 유리하는 양 떼와 같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최소한의 규율로,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인 것을 드러내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율법 가운데 살던 이스라엘에 오신 예수님은 더 이상 율법과 규범을 이야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관계 속에서 우리의 삶에 적용되는 영적 원리들을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위한 지혜를 어떻게 소유할 것이냐는 문제입니다.
신앙인들에게 자주 나타나는 오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 듣기”, “하나님께 뜻을 알기 위해 기도하기”라는 이름으로 계속해서 기다립니다. 환경이나 사람을 통해 혹은 자연이나 그 어떤 상황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 말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을 분별하기 위한 기준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정기적으로 말씀을 묵상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정기적으로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도 그렇게 행하셨습니다.
누가복음 6장 12~13절
이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위해 기도하고 말씀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그 시간을 통해 우리의 감정을 억누르고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감정적으로 사람을 믿었다가, 감정적으로 환경에 대응하다 실패한 기억들이 참 많을 것입니다. 조금 늦는 것 같아도 참고 기다리고 분별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사도행전 13장 2절에도 아주 중요한 사건이 나옵니다.
안디옥은 초대교회 선교의 전초기지가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걸출한 지도자 바로 바나바와 사도 바울을 세웁니다.
사도행전 13: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 당시 사도 바울은 ‘사울’이라는 옛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고, 그의 옛 이미지 때문에 초대교회에서 지도자로 세움 받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비합리적인 일이 일어납니다. 왜냐하면, 금식하며 기도할 때 아주 명확하게 성령께서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들의 합리성과 지혜를 사용하시지만, 그것이 절대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앞서지는 못합니다. 진정한 합리성과 지혜란 가장 명확한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모든 일에 성령께서 간섭하시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따라 사는 사람들이라면 능히 하나님의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할 능력이 있다는 것을 인격적으로 믿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중대한 일을 놓고 기도할 때 순종하며 기대하는 자세로 임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우리를 인도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실 때 도덕적인 뜻과 배치되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애써 기도하는 것은 사실 옳은 길이 너무 힘들고 버겁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는 우리에게 확신을 주실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에 있는 교인들에게 편지했던 내용입니다.
빌립보서 2: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뜻이 악한 권세와 사탄이 기뻐할 일은 아닙니다.
이제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물어야 할 질문이 있습니다.
내 인생에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일이 무엇일까요? 반대로 이야기 한다면 내 인생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을 일을 하므로 망가진 것, 즉 깨어진 질그릇이 무엇인가요?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고 내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가장 선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요. 하나님의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 길은 완전합니다.
쉽다는 것은 아닙니다.
야고보서 1장 5절의 말씀입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많은 사람이 자신의 인생에서 쉬운 길을 찾아갑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착각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은 우리를 망가뜨려서라도 고쳐가기를 원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인생이 망가질 때 하나님께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이 평탄할 때 하나님의 뜻대로 가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오늘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요?
그리고 여러분은 그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계신가요?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