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19: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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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인의 도덕적 상태
사사기 19:1-15
사사기 끝 부분에서 보게 되는 내용들은 우리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 자신조차 “도대체 이런 일은 본 적이 없다”고 말할정도로 끔찍한 사건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어느 레위인에게 첩이 있었는데 그 첩이 부정을 저지르고는 자기 집으로 도망을 갔습니다. 레위인은 그 여자가 아까웠습니다. 그래서 첩 장인의 집으로 찾아가 잘 구슬려서 다시 데려오려고 했습니다. 레위인과 첩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베냐민 지파에 속한 기브아에서 밤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있던 동성연애자 깡패들이 몰려와 레위인을 강간하겠다고 소동을 피웠습니다. 레위인은 자기가 살기 위하여 자기 첩을 내주었고, 깡패들은 이 여자를 밤새 겁탈했습니다. 아침에 레위인이 나가보니 여자는 죽어 있었습니다. 집에 돌아온 레위인은 여자의 시체를 토막내어 온 이스라엘에 보냄으로써 이 일을 고발했고, 흥분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베냐민과 전쟁을 벌이기에 이르렀습니다. 이 내전으로 인해 다른 지파들도 큰 타격을 입었지만 특히 베냐민 지파는 거의 멸망할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사사기는 부흥의 역사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온 후 가나안 세력들을 몰아내지 못하고 주저앉아 있다가 오히려 다른 민족의 지배와 압제를 받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평신도들에게 성령을 부어 교회를 다시 살리시고, 영광스러운 모습을 되찾게 하신 역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끝까지 부흥하지 못한 지파가 두 군데 있었습니다. 한 지파는 어려운 상대들 피하여 편하게 살려고 했던 단 지파입니다. 영적 싸움을 포기했던 단 지파는 쉽게 잘 살려고 했던 만큼 쉽게 무너져, 이스라엘 열두 지파 중에 가장 먼저 소멸되어 버렸습니다.
또 한 지파는 베냐민 지파였습니다. 레위인의 첩을 강간해서 죽인 동성연애자 깡패들을 내어 주기 싫어했던 베냐민 지파는 남자 600명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백성들이 살육을 당하는 큰 손실을 입었습니다.
그런데 끝까지 부흥하지 못한 이 두지파의 멸망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이들의 멸망이 모두 레위인의 타락과 관련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단 지파의 멸망을 부추긴 사람은 미가의 집에서 월급을 받고 지내던 고용 레위인이었습니다. 베냐민 지파를 거의 망하게 만든 계기를 제공한 사람도 첩을 데리고 여행하던 레위인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보게 될 사건은 한 레위인의 비정상적인 생활에서 시작되고 있습니다. 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사사기 19:1 “이스라엘에 왕이 없을 그 때에 에브라임 산지 구석에 거류하는 어떤 레위 사람이 유다 베들레헴에서 첩을 맞이하였더니”
레위인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아무리 에브라임 산지 구석에 살고 있다 해도 자기가 있는 곳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가르쳐야 할 책이 있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가 첩을 두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첩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첩은 본부인 외에 거느리고 사는 여자입니다. 첩은 이를테면 군번 없는 군인과 같습니다. 중동 지방에서처럼 정식 부인들인 경우에는 아무리 수가 많아도 그 사이에 서열이 있고 똑같은 권리와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나 첩에게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또 고대에 결혼을 하려면 상당한 신부대금이나 지참금을 주고 신부를 데려와야 했습니다. 그것은 이혼을 방지하는 일종의 안전장치였습니다. 그러나 첩은 그런 신부대금이나 지참금 없이 그냥 데리고 살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남자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얼마든지 여자를 떠날 수 있고, 여자도 언제든지 남자를 떠날 수 있었습니다.
율법에는 레위인이나 제사장의 혼인에 대한 엄격한 규정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이었기 때문에 반드시 처녀와 결혼해야 했고, 성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은 제사장이 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 나오는 이 레위인은 아무 책임 없이 불장난 같은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사사기 19:2 “그 첩이 행음하고 남편을 떠나 유다 베들레헴 그의 아버지의 집에 돌아가서 거기서 넉 달 동안을 지내매”
이 첩도 정상적인 여자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레위인의 첩으로 있으면서 또 다른 남자와 놀아나다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자기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이 불륜의 문제로 심하게 다투었기 때문인지, 또는 레위인의 생활이 어려워서 생활고 때문에 돌아가 버린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문제는 이 레위인이 첩을 잊지 못해서 그녀를 찾으로 유다 베들레헴까지 찾아갔다는 것입니다.
레위인이 첩을 두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정상적인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 첩이 다른 남자와 부정한 생활을 하고 자기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면 어떻게 해야 마땅합니까? 하나님이 이 정상적이지 못한 관계를 기뻐하지 않으셔서 그 여자를 떼어 보내신 것으로 생각하고 오히려 감사하면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는 첩을 포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죄짓는 생활을 하려고 할 때 예기치 못한 일이 생겨서 그 죄를 방해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간섭하시는 것입니다. 그럴 때 얼른 포기해야지, ‘사람이 뜻을 세웠으면 한 번이라도 실천해 봐야 한다’면서 부득 죄를 짓는 것은 굉장히 악한 태도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워낙 사람들이 많으니만큼 나 하나의 행동쯤이야 하나님도 모르실거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세심하게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우리가 죄에 빠지려 하거나 죄에 빠져 있을 때, 우리의 걸음을 막아 건져 내고자 하십니다.
그러니 이 레위인은 하나님을 별로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했다면 이렇게 무책임한 남녀 관계를 맺지도 않았을 것이고, 더구나 도망간 여자를 찾아가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에서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이 바로 남녀 관계입니다. 하나님은 남녀의 성에 자신의 형상을 새겨 놓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반드시 책임 있는 이성 관계를 맺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레위인이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첩을 둔 것을 보면, 겉모습은 성직자였지만 사생활은 대단히 문란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레위인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레위인을 사랑하셔서 여자와 떨어지게 하셨습니다. 여자를 그 아버지 집으로 보내심으로써 레위인으로서 온전한 사명을 감당하며 바른 생활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좋지 못한 과거를 깨끗이 청산하고 하나님을 바로 섬기는 생활로 돌아왔어야 마땅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레위인은 그 여자를 잊지 목해서 유다 베들레헴까지 찾아 나섰습니다.
교회에 다니지 않던 사람들이 교회에 나와 처음 듣게 되는 대단히 어려운 말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회개입니다. 처음 교회에 오면 말씀중에 ‘회개하라’고 하는데, 이것을 ‘회계하라’로 잘못 듣고 무슨 장부를 정리하라는 말인가 보다 오해하는 이들이 가끔 있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자기가 지은 죄에 대해 고백하는 것을 회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회개란 자신의 삶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것들을 버리고 삶을 바꾸기로 결단하는 것입니다. 예를들어, 레위인처럼 첩을 데리고 살고 있다면, 첩에게 먹고 살 것을 주어서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회개입니다. 다른 사람의 돈으로 흥청망청 살고 있다면, 그 빚을 다 갚고 새롭게 출발하는 것이 회개입니다.
그런데 이 레위인은 다른 사람에게 회개를 가르쳐야 할 자리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이 첩을 포기하지 못해서 베들레헴까지 찾아왔습니다. 그는 죄짓는 생활을 도로 찾기 위해 상당한 비용까지 지불했습니다. 3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사사기 19:3 “그의 남편이 그 여자에게 다정하게 말하고 그를 데려오고자 하여 하인 한 사람과 나귀 두 마리를 데리고 그에게로 가매 여자가 그를 인도하여 아버지의 집에 들어가니 그 여자의 아버지가 그를 보고 기뻐하니라”
이처럼 하인 하나와 나귀 둘 필까지 준비하여 먼 길을 떠난 것은 어떻게 해서든지 이 여자를 데려오고야 말겠다는 그의 의지를 보여줍니다. 여기에서 ‘그 여자에게 다정히 말하고 그를 데려오고자 하여’라는 것은 그를 책망하거나 바로잡기보다는 어떻게 해서든지 잘 구슬러서 자기 욕망을 채울 마음을 먹었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도착한 레위인은 장인으로부터 무려 3일동안 거의 잔치에 가까운 환대를 받고, 그 후에도 이틀이나 더 붙들려 대접을 받았습니다. 첩 장인이 레위인을 이토록 환대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이 사위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자기 딸의 행실이 온전치 못했기 때문입니다. 율법에는 여자가 부정을 저질렀을 때 누군가 문제를 삼으면 돌로 쳐서 죽이게 되어 있었습니다. 아마도 장인은 레위인이 딸의 부정을 문제 삼으려고 온 것은 아닐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레위인은 그의 부정을 문제 삼기는커녕 그를 구슬려서 데려가려고 온 것입니다. 그러나 도둑이 제발 저리다고, 장인은 어떻게 해서든지 사위의 기분을 풀어 주려고 3일 동안 계속 음식과 술을 대접했습니다.
레위인은 이런 성대한 대접에 기분이 좋았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를 단단히 잡아매는 죄의 줄이었습니다. 그는 이런 대접을 받음으로써 여자를 포기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마저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다섯째 날이 되자, 레위인은 더이상 머물지 않고 첩과 함께 떠나려고 길을 나섭니다. 8-10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사사기 19:8–10 “다섯째 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떠나고자 하매 그 여자의 아버지가 이르되 청하노니 그대의 기력을 돋우고 해가 기울도록 머물라 하므로 두 사람이 함께 먹고 그 사람이 첩과 하인과 더불어 일어나 떠나고자 하매 그의 장인 곧 그 여자의 아버지가 그에게 이르되 보라 이제 날이 저물어 가니 청하건대 이 밤도 유숙하라 보라 해가 기울었느니라 그대는 여기서 유숙하여 그대의 마음을 즐겁게 하고 내일 일찍이 그대의 길을 가서 그대의 집으로 돌아가라 하니 그 사람이 다시 밤을 지내고자 하지 아니하여 일어나서 떠나 여부스 맞은편에 이르렀으니 여부스는 곧 예루살렘이라 안장 지운 나귀 두 마리와 첩이 그와 함께 하였더라”
왜 이 레위인은 더 이상 체류하지 않고 다섯째 날 오후에 떠나기로 작정했을까요? 여섯째날 저녁부터는 안식일이 시작되는데, 레위인에게는 안식일에 에브라임 산지에서 해야 할 일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으로는 더 있고 싶었지만 안식일을 빼먹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표시가 나니까 할 수 없이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겼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 레위인에게서 보게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겉으로는 자기 임무에 굉장히 충실한 사람 같습니다. 먼 곳에 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 유혹을 뿌리치고 길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말과 행동이 다른 위선적인 사람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자기 임무를 잘 수행하는 것 같았지만 실생활은 음랑과 방탕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는 안식일만 아니라면 몇 달 아니라 몇 년이라도 장인 집에 놀러 앉아 있을 사람이었습니다. 예배만 없다면 아예 허리띠를 풀어놓고 정신없이 먹고 마실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이 다섯째 날에 결단하고 그 집을 떠난 것은 첩 장인의 유혹을 벗어나기 위한 결단이 아니었습니다. 마음으로는 더 있고 싶었지만 레위인으로서 맡은 예배순서가 있었기 때문에 마지못해서 일어날 것일 뿐입니다. 아마 다른 사람들은 그의 도덕적 타락을 눈치채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를 따라갔던 하인과 나귀들은 그가 얼마나 위선적인 사람인지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첩 장인의 집이 있는 유다 베들레헴은 남쪽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레위인이 살고 있는 에브라임 산지는 북쪽에 있었습니다. 이것은 하루에 가기에는 좀 먼 거리였습니다. 베들레헴에서 에브라임으로 올라가는 중간에 예루살렘이 있었고, 그 위에는 베냐민 지파에 속한 기브아와 라마가 길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었습니다.
워낙 늦게 출발한 레위인 일행은 베들레헴에서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저녁을 맞이했습니다. 11-15절 말씀을 보시면, 여기서 ‘여부스’는 예루살렘의 옛 지명입니다. 그 당시만 해도 이스라엘 백성들의 여부스 족을 몰아내지 못한 때였기 때문에 이들이 예루살렘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여부스 족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쫓겨 난 것은 다윗 때입니다.
들어가서 유숙하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레위인은 이방 족속에게로 갔다가 무슨 봉변이라도 당할까봐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기왕 유숙해야 한다면 동족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찾아가 안전하게 밤을 보내는 것이 좋겠다고 하면서, 조금 더 걸어가면 베냐민 지파에 속한 기브아가 나오니 거기서 유숙하자고 했습니다.
기브아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해가 져 있었습니다. 그들은 아무 집에서나 자려고 했지만 그들을 영접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좀 더 안전한 곳을 찾아 같은 이스라엘 백성의 마을을 찾아왔지만, 사실은 제발로 사자굴을 찾아온 것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레위인 일행은 왜 이곳 사람들이 자신들을 영접하지 않았는지 몰랐을 것입니다. 그냥 인심이 좀 좋지 않다고만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것아 아니었습니다. 기브아 주민들은 누구든지 새로운 사람을 집으로 데려가면 엄청난 봉변을 당하게 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이들을 집으로 영접하지 않은 것입니다.
기브아는 소돔과 고모라와 하나도 다를 바가 없는 곳이었습니다. 거기에는 동성연애자들이 우글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숨어서 동성애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아예 내놓고 밤마다 몰려다녔고, 새로운 사람이 오면 반드시 성폭행하는 것을 관습으로 삼고 있었습니다.
성경이 기브아 사람들의 타락을 이야기하기 전에 한 레위인의 아름답지 못한 사생활부터 길게 설명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레위인의 사생활은 그 한사람의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레위인이 이 정도의 윤리의식을 가지고 살았을 정도라면 다른 이스라엘 백성들의 수준은 확인해 보나 마나입니다. 이 레위인은 다른 사람과 불륜을 저지른 첩을 포기하지 못하는, 자신의 상태가 곧 이스라엘 백성 전체의 영적 상태를 대표한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의 도덕성은 이스라엘 백성 전체의 도덕성을 나타내는 지표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기의 직분을 버리지 않았고 안식일에 맡은 일을 감당하기 위해 열심히 집으로 돌아가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사생활은 이미 한계선을 넘어섰을 뿐 아니라 회개의 기미 또한 전혀 없었습니다. 이처럼 레위인이 첩을 두고 살 정도라면, 부정을 저지르고 도망간 첩을 쫓아가 다시 데려올 정도라면, 다른 이스라엘 사람들의 도덕적인 상태는 이미 갈 데까지 다 갔다가 보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그의 사생활을 아느냐 모르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레위인은 하나님을 섬기는 자로서 그 일을 위해 다른 모든 욕망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과 자기 욕망을 별개의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믿는 사람들이나 직분자들의 도덕성이 그 사람 개인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만큼은 분명합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이, 더구나 직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하나님의 율법을 공공연히 깨뜨리고 자기 욕망에 따라 산다면, 믿지 않는 사람들의 삶은 들여다볼 필요조차 없습니다.
목회자나 교회에서 직분을 맡은 사람들의 도덕성은 여느 교인들이나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도덕적 수준을 드러내주는 바로미터입니다. 레위인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으로서 남들보다 더 성결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을 섬긴다는 바로 그 하나의 이유만으로도 남들과 구분되는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이런 희생을 치르려 하지 않을 때, 다른 이스라엘 백성들은 얼마나 더 정욕에 빠져 살게 되며, 결국 자기 자신에게도 피해가 되어 돌아오는지 전혀 생각지 못했습니다.
교회에서 직분을 맡은 자들은 모두 레위인입니다. 예배를 돕는 자들은 모두 레위인입니다. 대표기도하는 사람, 헌금을 맡은 사람, 찬양대를 하는 사람, 안내를 하는 사람, 모두 레위인입니다. 그 중에는 이런 순서를 감당하기 위해 먼 곳에서 새벽부터 달려오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겉으로 드러난 그 부분 외의 것을 질문하십니다. ‘너는 너의 욕망에 대해 어떤 결단을 내렸느냐? 네가 가지고 있는 부정한 돈에 대해, 부정한 이성 관계에 대해, 좋지못한 습관에 대해 어떤 결단을 내렸느냐?’라고 질문하십니다.
이 레위인의 죄는 잘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이 이 정도의 생활을 했다면 소문이 나도 벌써 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레위인은 이런 것이 죄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소문나지 않게 죄를 지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안식일을 정확하게 지킵니다. 자기 순서가 되면 딱 나타나요. 거의 완전범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완전범죄일수록 나중에 문제가 터지면 더 수습이 안 되는 법입니다. 직분자의 타락은 일반인들의 타락을 보여 주는 지표입니다.
우리 사회에도 이미 목회자들의 성적 타락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고 있으며, 굵직굵직한 사건마다 장로나 권사나 집사가 개입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직분자의 수준이 그 정도라면 우리 사회 구석구석은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썩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왜 우리가 자기 정욕대로, 자기 생각대로 살면 안됩니까? 다른 사람들은 다 자기 마음대로 집 바꾸고, 사업하고, 공부하는데, 왜 우리는 그렇게 하면 안됩니까? 왜냐하면 이 사회가 죽느냐 사느냐 하는 문제가 바로 우리에게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우리나라는 내 가정은 곧바로 소돔과 고모라처럼 멸망하고 말 것입니다. 어쩌면 이미 이 사회는 지금 소돔과 고모라 일지도 모릅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 자신의 욕망에 사생결단하고 결단해야만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먼저 우리 자신이 그 피해를 입게 될 것이며 우리 자녀들도 피해를 입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은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불러오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경건의 모양만 있고능력이 사라진 성도는 필연적으로 타락 할 수밖에 없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이 레위인은그자신의 잘못을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레위인은 자신의 행위가 악한것인줄도 몰랐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우리도 때로는 죄를 범할수 있습니다. 이 죄를 숨겨두고 신앙생활을 하면 이 첩을 둔 레위인과 같이 외식하는 생활이 됩니다.
오늘 우리의 중심을 가르고, 우리 안에 숨겨져 있던 죄를 드러내야 합니다. 단순히 자기 모습을 슬퍼하고 유감스럽게 생각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됩니다. 내가 여기에서 양보해 버린다면 내 자신의 신앙 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이 망하고, 우리 민족이 망한다는 생각으로, 왜 내가 남들보다 더 참아야 하며 하나님을 더 뜨겁게 사랑해야 하는지에 대한 절실한 깨달음으로, 죄가 주는 달콤한 맛을 오늘 이 자리에서 끊어 버리기로 결단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내 결심을 들으면 ‘그런 것이 무슨 죄가 된다고 그러냐? 너무 유치하다’면서 비웃을지도 모르지만, 하나님은 나의 작은 결단을 번제로 받으시고, 그 결단을 통해 나를 살리며, 가족과 민족을 살리실 것입니다. 이 믿음으로 끝까지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결단찬양 : 천부여 의지 없어서
결단기도
내 안에 숨겨진 죄가 있다면 깨달아 알게 하시고 끊어 버릴 수 있도록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로 인하여 우리의 이웃과 이 세상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 보다 더 아름다운 것으로 세워져나갈 수 있도록
담임목사님과 교회를 위한 기도
-담임목사님 영육의 강건함과 성령 충만함을 위해
-복음에 빚진 자로서 삶 속에서 전도의 사명을 다하고, VIP를 정하여 기도하며, 새생명의 열매를 거둘 수 있도록
매주 새가족을 보내주시며, 등록한 새가족들의 믿음과 신앙이 아름답게 자라고, 새가족을 맞이하고 환영하는 자리가 더욱 복되도록
다음세대를 위한 기도
-여름행사 가운데 지혜와 능력을 주시고, 다음세대의 부흥과 성장을 위한 좋은 시간을 함께 준비해 가도록
-7/27(토)-28(주일), 8/4(주일) 초등부 여름성경학교에 좋은 날씨를 허락하시고, ‘기도할래요’주제 말씀을 따라 기도의 어린이들로 성장하도록
영아부 8/11(주일) 비전센터
초등부 7/27(토)~28(주일), 8/4(주일) 비전센터
중고등부 8/1(목)~3(토) 선업교회(양주)
청년부 7/11(목)~13(토) 로뎀나무아래펜션(강화)
YYC 8/4(주일)-6(화) 창후교회(강화)
나라와 민족과 세계를 위한 기도
-여름철 폭염과 폭우 등의 자연재해와 질병으로부터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있도록
-7/26(금)~8/12(월) 파리 올림픽에 출전한 크리스천 선수들이 안전하게 모든 역량을 발휘하여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올려드리는 대회가 되도록
-세계의 경제를 지켜주시고 물가 안정과 금리 인하로 인해 민생이 안정되도록
환우를 위한 기도
이성재(황애경집사 남편) : 뇌경색으로 치료와 회복을 위해(나은병원 집중치료실)
박화서 장로, 홍준기 장로, 김일숙 권사, 최화선 집사, 구영희 권사, 문영기 성도, 이영남 권사, 심지후 어린이, 안우리 성도, 신현숙 집사, 이혜경 집사, 강연자 권사, 오인세 권사, 박삼례 권사, 김관옥 권사, 김금환 권사, 유양순 권사, 이복희 집사, 이강문 집사, 남유경 성도, 이문기 권사(박은향 권사 모), 안순임 집사(신현숙 집사 모), 이장호(유정엽 집사 남편)
오직 예수 이름에 능력이 있고 치유가 있음을 선포하며 기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깨끗함을 입어 죽은 세포가 살아나는 하나님의 재창조와 치유의 역사가 일아나며 질병을 통해 우리 안에 역사하는 모든 두려움과 염려의 영은 떠나가고 생명과 평안으로 역사하는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옵소서. 예고 없이 찾아오는 질병과 고통 앞에서 담대하게 마주할 수 있는 용기를 주시고, 하나님 안에서 해석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믿음을 더하여 주시며, 모든 질병의 고통들이 치유의 증거가 되게 하셔서 그리스도의 증인의 삶을 신실하게 살아가게 하옵소서.
만병의 치료자가 되시는 예수님!
병든 자를 고치시고 약한 자를 강하게 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의 권세와 능력을 믿고 기도합니다. 아픈 부위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덮이고 치유되고 온전히 깨끗하게 되기를 간구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나의 질병을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못박히심으로 나의 질병이 나음을 입었음을 믿고 고백하오니 믿음대로 이루어 주옵소서 나를 괴롭히고 고통스럽게 하는 질병들이 내 몸에서 사라질지어다! 모든 혈액의 수치들이 정상적으로 회복할지어다! 마른 뼈 같은 우리 몸에 생기가 넘칠 찌어다! 강건케 될지어다!
우리의 모든 불안, 낙심, 절망도 감사와 평안으로 회복케 될지어다!
이시간 성령의 불로 아픈곳 태워주시옵소서 연약한곳은 온전케하여 주시옵고, 마비된곳은 풀어주시고, 죽었던 신경과세포는 살아나게 하여 주옵소서. 부정적인 생각 의심의 세력 물리쳐주옵시고 믿어지는 믿음을 주옵소서
만군의 여호와시며 나의 왕이신 하나님아버지 나를 경외하는 너희에게 치료의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는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처럼 뛰리라 하셨으니 저에게 치료의 광선을 내려주시어 영육이 연약한 성도님들에게 거룩한 주 나사렛 예수님 이름으로 병이 치료가 되어 건강과 활력을 지켜주시기를 간절히 간구합니다. 치료하여 주옵소서.
세상의 흐름 속에서도 거룩하신 하나님의 모습을 본 받아 우리의 삶이 말씀 안에서 터를 잡고 세워나가게 하옵소서. 특히 예수 그리스도만을 우리의 유일한 소망으로 삼고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기도>
오늘도 참 진리로 하나님의 말씀안에 거하게 하여 주심을 감사합니다. 날마다 우리 안에 숨겨져 있던 죄를 주 예수 그리스도 앞에 드러내게 하시고, 죄가 주는 달콤한 유혹으로부터 벗어나 외식하는 자가 아닌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승리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주님 앞에 귀한 예물 드립니다. / 호명 / 이 예물을 축복하시사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받는 예물 되게 하옵소서.
이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무한하신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성령님의 감화 역사하심이
내 자신의 욕망으로부터 벗어나 주님께서 주시는 참된 진리의 말씀으로 무장하여 날마다 승리하기를 힘쓰는
모든 성도들 머리 위해 항상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