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14장 12-23절
Notes
Transcript
계속해서 말씀은 바벨론의 멸망에 대하여 이야기 합니다.
12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12.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아침의 아들 계명성에 대해서는 정확한 의미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때로는 계명성의 존재에 대해 성경에서 사탄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의 문맥 가운데 계명성은 계속해서 교만하고 폭군으로 군림한 바벨론을 의미 합니다.
성경에는 자세하게 배경을 기록하지는 않지만 아마 당시에 어떤 신적 존재에 대한 신화를 가져다가 그 이름을 폭군에 적용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의 교만함을 고발합니다.
13절과 14절 입니다.
13.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14.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
폭군의 교만과 오만함은 끝을 모릅니다.
온 세상을 자신의 발 아래 둔 채, 이제는 신들마저도 자신의 통치 아래에 두려고 합니다.
지상의 왕에 만족하지 못하고 스스로 신의 자리에, 그것도 최고의 신의 자리에 오르려고 합니다.
이런 폭군의 교만을 하나님은 그냥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15절 입니다.
15. 그러나 이제 네가 스올 곧 구덩이 맨 밑에 떨어짐을 당하리로다
그가 스올..지옥 구덩이 맨 밑에 떨어짐을 당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여호와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고, 여호와를 자신과 대등한 위치에 놓은 폭군 입니다.
아니 그 보다 더 높아지려고 하였습니다.
그런 교만의 끝을 달리는 그가 가게 될 곳은 어디입니까?
스올에서도 구덩이 맨 밑으로 떨어집니다.
자신의 한계를 알지 못하고 교만과 오만함에 사로잡혀 절대권력을 휘두르던 자의 비참한 말로를 기술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우리에게도 높아짐의 시간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내가 하는 일이 갑자기 잘되어 많은 재산을 축척하거나, 하는 일이 잘되어 사람들이 높여줄 때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바벨론 제국과 같이 열방에 우뚝서는 그런 일이 아니라 하더라도,
바벨론을 바라보며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라 불리는 전성기의 때가 오게 됩니다.
그때 우리의 중심은 여지없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붙드시고 베푸신 은혜를 잊어버리고 오만하고 교만하여
나의 힘과 능력으로 모든 것을 이루었다고 자만하는 순간 우리의 끝은 스올 구덩이 맨 끝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택하시고 그들에게 힘을 주신 이유는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앗수르 제국을 벌하고,
그래도 정신차리지 못하고 하나님을 떠나 살고 있는 남유다를 징계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주신 힘으로 바벨론은 폭군으로, 교만과 오만함으로 하나님의 자리를 탐냈던 자들입니다.
그런 바벨론의 결말이 어떻습니까?
다니엘서에 기록된 것 처럼 느부갓네살 왕은 갑자기 미쳐서 광야를 돌아다니는 자가 되었습니다.
성전의 그릇으로 술을 마시고, 자기의 신들을 찬양하다가 벨사살왕은 하루아침에 메대 사람에 의해 살해를 당하고 바벨론은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이 일에 대하여 오늘 본문 19절에서 이렇게 말씀 하고 있습니다.
19. 오직 너는 자기 무덤에서 내쫓겼으니 가증한 나무 가지 같고 칼에 찔려 돌구덩이에 떨어진 주검들에 둘려싸였으니 밟힌 시체와 같도다
무덤도 허락되지 않는 수치스러운 죽음을 맞이 할 것이라 선포되는데, 이후에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누릴 때 우리는 더욱 하나님께 겸손해야 합니다.
혹여나 지금 우리의 마음 가운데 교만이, 자만과 오만함이 자리잡고 있지 않는지 잘 살펴 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삶의 파멸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우리의 삶을 높이실 때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를 겸손히 묻고 행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교만하여 높아지는 죄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결국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주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돌이키고 회개하라는 의미 입니다.
하지만 교만한 자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질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말씀이 들리지 않는 영적 교만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항상 감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높아지는 것이 무조건 죄다 라는 말이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채우시고 높이시며 은혜를 주실 때, 교만하지 않도록 항상 겸손의 감사가 따라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혹여나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에 얼마나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이 말씀들이 세상의 권력, 그들의 높은 교만과 악함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고 적용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에게도 마찬가지 입니다.
어떤 누구보다는 내가 그래도 사는게 낫지, 내가 저 사람보다는 그래도 높지 라는 이런 교만을 하나님은 원치 않으십니다.
주님이 우리를 어디서 어떻게 세우시든지, 그 곳에서 항상 겸손히 주님의 뜻과 영광을 위하여 살아갈 때
하나님께 잘했다 칭찬받는 주님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주님이 주심을 잊지 않고, 겸손함으로 최선을 다해 주님을 섬김으로
아름다운 겸손의 열매를 주님을 위해 맺어가는 저와 여러분들의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