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37:1-10 순종으로 그려야 할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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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넷째 주 그룹큐티나눔
순종으로 그려야 할 미래
예레미야 37:1-10
마음 열고, 찬양과 나눔
•이 세상에 근심된 일이 많고(찬송 486장, 구 474장)
•지난 한 주 어떻게 지냈는지 서로의 근황을 나눠봅시다.
회복의 미래, 아름다운 미래는 기도만으로 이뤄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마련해주실 찬란한 미래를 맞이할 만한 사람이 되는 것,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순종 없이는 회복도 없습니다. 유다의 운명 역시 순종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비록 잠시 국제정세가 유다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는 듯했지만, 불순종을 돌이키지 않는 한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멸망하리라는 미래는 변하지 않습니다. 밝은 미래는 얄팍한 처세가 아니라, 신실한 순종으로 확보할 수 있습니다.
마음 다해, 말씀과 나눔
1. 애굽의 견제로 바벨론의 군대가 예루살렘에서 물러갑니다(1-5절).
1) 시드기야는 어떻게 왕이 되었습니까(1절)?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왕이 그를 유다 땅의 왕으로 삼았다.
시드기야는 유다의 마지막 왕이다. 그는 경건했던 유다 왕 요시야의 셋째 아들로, 조카 여호야긴의 뒤를 이어,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 의해 유다 왕으로 세워졌다. 당시 유다는 전통의 강국 애굽과 신흥 제국 바벨론 사이에서 위험한 외교적 줄타기를 지속하고 있었다. 시드기야 역시 선지자 예레미야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친애굽파와 결탁, 주변 국가들과 반바벨론 동맹을 결성하는 방식으로 유다의 생존을 꾀했다(27:3; 37:5).
2) 유다의 왕과 신하들은 예레미야에게 무엇을 요청합니까(2, 3절)?
자기들을 위하여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라 요청했다.
교만한 인간은 하나님을 내 소원 성취의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데 주저함이 없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고, 하나님을 자기 뜻에 순종시키려 한다. 바로 본문의 유다 왕과 신하들처럼 말이다. 이러한 교만을 가진 자들은 때로 참믿음을 가진 이보다 더 크게 하나님을 찾을 수도 있다. 자기 소원을 이루고자 하는 열망의 크기가 큰 까닭이다. 그러므로 믿음의 크기는 부르짖음의 크기에 비례하지 않는다. 믿음의 크기는 순종의 크기에 비례한다.
3) 바벨론(갈대아인)의 군대가 예루살렘에 대한 포위를 풀고 물러난 이유는 무엇입니까(5절)?
바로의 군대가 애굽에서 나온 소문을 바벨론 군대가 들었기 때문
시드기야는 자신을 꼭두각시 왕으로 세운 바벨론의 간섭에서 벗어나고자 또 다른 강국인 애굽을 끌어들였다. 바벨론은 유다의 반역을 제압하기 위해 즉시 예루살렘을 침공했다. 위기에 빠진 유다는 애굽의 도움으로 잠시 그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지만, 이는 결코 완전한 문제 해결이 아니었다. 애굽의 군대가 물러간 후, 바벨론은 다시 침공을 재개했고, 유다는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비참한 파멸을 맞았다(52:1-14). 하나님 대신 인간적 처세에 의존했던 시드기야 왕과 유다의 비극적 최후다.
나눔 1 유다의 왕과 신하들은 하나님의 말씀은 듣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도움은 얻고 싶어 했습니다. 순종은 없고 간구만 있는 그릇된 신앙에 빠지지 않으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합니까?
나눔 2 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하고, 외교적 줄타기로 살길을 도모하다가 결국 패망했습니다.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내가 주로 선택하는 해결 방식은 무엇인지 이야기해봅시다.
2. 하나님이 유다의 멸망을 예고하십니다(6-10절).
1)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도우러 나온 애굽에 대해 무엇을 말씀하십니까(7절)?
자기 땅 애굽으로 돌아갈 것이다.
애굽이 유다의 요청에 따라 원군을 파견하기는 하였으나, 그들의 보호가 영원할 수는 없는 법이다. 애굽은 결코 유다가 온전히 의지할 방패가 아니었다. 유다의 온전한 방패는 오직 그들의 하나님뿐이다(시 33:20). 이 땅을 살아가는 인생들의 비극은 의지할 수 없는 것들을 의지하는 데서 기인한다. 돈이든, 권력이든, 이 땅에서 움켜쥔 그 어떤 것도 우리의 영원한 의지가 될 수는 없다. 인생이 의지할 유일한 참 소망은 우리를 빚으시고 구원하시는 한 분 하나님뿐이다.
2) 하나님은 예루살렘성에 대해 무엇을 말씀하십니까(8절)?
갈대아인(바벨론)이 다시 와서 성을 쳐서 빼앗아 불사를 것이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은 열국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칼이었다(27:6-8). 그 열국 안에는 타락한 유다 왕국이 포함되어 있었으며, 애굽도 예외가 아니었다(44:30). 이토록 분명한 하나님의 뜻에도 불구하고, 불순종함으로 애굽을 끌어들였던 유다의 외교 전략은 일시적으로 상황의 호전을 가져다주는 듯했으나, 결국 바벨론의 더욱 큰 진노와 유다의 파멸을 불러왔다. 이처럼 하나님 없는 인간적 처세는 순간적으로 우리의 문제를 경감해주는 듯 보이기도 하나 실은 우리 삶의 실타래를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악수가 될 뿐이다.
3) 유다가 스스로 속인 말은 무엇이고, 실제 현실은 무엇입니까(9, 10절)?
유다는 “갈대아인이 반드시 우리를 떠나리라” 했지만, 그들은 떠나지 않을 것이다.
현실을 직시하지 않는 막연한 긍정론이 삶의 해답이 될 리는 만무하다. 성도의 현실 직시란, 단순히 객관적 사실을 확인하는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안목으로 세상을 직시하는 능력이다. 유다가 제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바벨론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유는 하나님이 유다를 그렇게 심판하기로 결정하셨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유다의 현실이다. 모든 사람이, 모든 데이터가 가능함을 말해도 하나님이 안 된다고 하시면 안 되는 것이다. 모두가 불가능을 말해도 하나님이 된다고 하시면 되는 것이다. 이것이 성도가 인식해야 할 현실이다.
나눔 3 유다는 외세에 의존하여 상황이 호전되기를 기대했으나, 그들의 운명은 조금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회개하지 않았고 스스로 고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고치고 돌이켜야 하는 잘못된 태도와 습관을 이야기하고, 서로의 회복을 위해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