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으로 살다 ③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라(롬 8: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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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으로 살다 ③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라(롬 8:14-17)
성령으로 살다 ③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라(롬 8:14-17)
부제; 아빠 아버지 하나님이 주신 특권
<서론>
제가 존경하고 친하게 지내는 목사님 내외 이야기입니다. 목사님 내외는 자녀들이 둘씩이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아이들을 입양하여 그들이 결혼하고 독립할 때가지 돌보는 일을 하고 계십니다.
지금도 어린 두 아이가 그분의 자녀로 살고 있습니다. 어느 날 목사님이 지병으로 인하여 사경을 헤매다가 회복하여, 몇 주 만에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입양된 막내딸이 건강하게 집으로 오시는 목사님을 보고 뛰어나와, ‘아빠다! 우리 아빠가 오셨다!’하며 맞아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말을 했습니다. ‘아빠! 나는 아빠가 죽는 줄 알았어... 매일 밤 꿈에서, 죽지 않을 아빠 같은 새 아빠를 찾아 헤매곤 했어! 아빠! 나랑 함께 있을 거지?’
이 아이는 한번 파행된 아픔과 상처가 있었기 때문에 늘 ‘내가 버려지면 어떻게 하지?’하는 염려 속에 있었습니다.
목사님 말했습니다. ‘얘야, 아빠는 언제나 너와 함께 있을 거야! 아빠의 아버지, 하나님 아빠 아버지가 나와 늘 함께 계시듯이 말이야’
작년 말, ‘나는 애들 때문에라도 건강해야겠어! 하하하’ 너스레웃음을 하시던 목사님을 보면서, 저는 내가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특별한 것인지 되 뇌이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요 14:18) 약속하신 대로, 예수를 주님과 구원자로 영접하는 순간, 보혜사(나를 돕고, 인도하기 위해 오신) 성령이 내 안에 내주하시면서, 나의 “아빠 아버지”(롬 8:15)가 되어 주신 하나님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지난주에, 육의 일을 죽이고, 영의 일을 생각하는 성도는 성령이 하는 일에 주목해야 한다는 말씀을 나눴습니다.
성령이 주목하는 일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라는 것을 「늘 생각하고 마음에 새기」게 하셔서,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도록, 내 생각(마인드)를 변화시키는 일입니다.
이 시간은 성령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확증」하셔서, 「하나님 자녀의 특권」을 누리게 하신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나누겠습니다.
<본론>
1.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14).
먼저 성령이 누리게 하는 성도의 가장 두드러지는 특권은, 「우리 성도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한다」는 것입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본문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은, 하나님의 영; 성령의 인도를 받기 때문이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표현 때문에, 여기에 계신 대부분의 딸들은 실망 마세요. 여기 있는 아들들만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우리 성경은 단수 ‘아들’이라고 번역 했지만, 원문에는 복수 ‘아들들(υἱόἱ)’입니다. 이 ‘아들들’은 ‘모든 아들과 딸’을 아우르는 대표 성(性)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의미입니다.
사실, 우리가 예수를 나의 주인이자 구원자로 영접할 수 있는 것은, 순전히 성령의 인도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의 주인이시고, 나는 영원히 죽을 죄인인데, 나의 죄와 형벌을 대신하여 십자에서 죽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내 결단과 용기로는 불가능합니다.
오직 성령이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성령 받아서) 나의 생각(mind)을 변화시키셨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성령을 받고,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말한 ‘하나님의 자녀’의 뜻은 중요한 메시지를 줍니다.
「자녀υἱόἱ」의 의미는 단순한 ‘아들들’ 혹은 ‘딸들’의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의 친아들들’ ‘하나님의 친딸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는 것은, 「나는 하나님의 친자녀다」라는 의미입니다. 15절에서 말하는 「양자」는 「친자녀의 지위를 회복한 상태」입니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최초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누렸던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여, 하나님과 사람 그리고 우주 만물의 창조질서가 복원된 친자녀 신분이 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성령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하나님의 친아들과 친딸로’삼으셨음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이라는 표현에는, 또 하나의 믿음의 신비가 있습니다. 우리말의 어감에는 성령은 우리를 인도하는 수단이나 도구 정도로 보입니다.
그런데 이 말을 직역하면 그 의미가 확 드러납니다. ‘성령이 이끌었다’입니다. 「우리를 이끌어서 예수를 믿게 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 분이 성령님이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누리는 확고한 특권은, 부족하고 연약한 우리가 무엇인가를 해야 성령님이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부족하고 연약하기 때문에 성령님이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성도여러분, 우리의 구원이 「오직 믿음으로」 이듯이, 우리의 하나님 자녀 됨과 인도는 「오직 성령으로」입니다.
따라서 내가 연약하다는 사실을 숨기거나 나의 부족함을 부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연약함과 부족한 나를 ‘하나님의 친아들과 친딸로 삼으신’ 「성령이 이끄시도록」나를 맡기시기를 바랍니다.
2.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15).
바울은 15절에서, 하나님 자녀에게 주어진 놀라운 특권을 더 확장하여 선포합니다.
15절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은 우리들이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했다고 말합니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의 놀라운 특권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아빠 Ἀββᾶ’는 라는 단어는, 신약성경시대 중근동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던 아람어입니다.
‘아빠’는 어린아이가 내는 혀 짧은 소리입니다. 그러나 부모 자녀 간에 사용 할 수 있는 최고의 친숙한 표현입니다.
‘아빠’라는 이 짧은 말을 통하여 성도인 우리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 그분과의 사랑, 그분을 향한 신뢰를 표현할 수 있습니다.
어린이 사역을 하던 30대 때, 「시현」이라는 여자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저를 ‘목사님’이라고 부르지 않고, ‘아빠’라고 불렀습니다.
저를 아빠라고 부르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이 친구는 엄마하고만 사는 「한부모가정」이었습니다.
교회에서 운영하는 아동센터를 통해 전도하여, 학교생활과 방과후활동, 엄마가 퇴근하기 까지 돌보는 일, 때때로 우리 집에서 재우면서 정성으로 돌봐 주니까, 저를 아빠라고 불렀습니다.
그 아이를 돌보면서, 아무나 아빠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아무나,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고, 그저 ‘신(神)’ ‘절대자(絶對者)’ ‘조물주 (造物主)’로 부를 뿐입니다.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 성도들뿐입니다.
그 이유는 「성령께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증명」하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설명하는 두 단어가, “종의 영”과 “양자의 영”입니다. 원어적으로 「양자」는 「아들」(υἱόἱ)과 같은 단어(υἱός)를 사용합니다.
“종의 영”과 “양자의 영”은, 또 다른 영적 존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우리 성도에게 어떤 분인지를 설명합니다.
「성령은 우리를 ‘종으로 삼는 영’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 삼는 영’이다.」는 것입니다.
종은 강제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복종하지만, 자녀는 ‘아빠’에 대한 사랑과 기쁨으로 순종합니다.
종은 실수하면 주인에게 벌 받을 것이라는 불안감에 살지만, 자녀는 실수해도 ‘아빠’에게 용서받을 것이라는 안정감으로 삽니다.
성도여러분, 성령님이 우리를 노예가 아니라, 사랑받는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음을 믿으십시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부르짖느니라”(15)
“부르짖는다”는 「큰소리를 내어 외치는」 깊은 감정적 표현입니다. 그런데 단순히 큰소리만 내는 것이 아니라 ‘마음 것 부른다’는 의미입니다.
이 감정적 표현은 길거리에서 처음 만나는 아저씨 아주머니에게 할 수 있는 표현이 아니라 「친 자식이, 친아빠에게만」 할 수 있는 표현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을 가장 친근한 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마음 것’ ‘소리 질러’ 부를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하나님은, 멀리 계신분이 아닙니다. 마음 것 부를 수 있는 친근한 분이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 성도가 ‘아빠 아버지~~’하고 소리 질러 부르짖으면, 언제고 우리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시는 분이심을 믿으십시오!
살면서 외롭고 힘들 때, 우리가 아빠 아버지 하나님을 소리 질러 부르면, 우리의 기도에 하나님은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예배하는 이 자리, 찬양하는 이 시간은, 아빠 아버지 하나님이 우리와 가장 가까이 계시는 시간이기에 마음 것 그리고 원 없이 주님을 경배함으로, 주님을 만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3.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확신합니다(16).
그렇다면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 자녀임을 확신하는 사람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주민등록증이 있습니까? 아버지학교 어머니학교처럼 수료증이 있습니까?
16절 말씀은, 증서나 수료증 보다, 더 확실한 성령의 증거를 제시합니다.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성령이 우리의 영과 더불어 증언하시나니」는,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는 내적 증거가 「이미 우리에게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안에, 이미 있는 내적증거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나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를 없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따라서 저와 여러분이 참 마음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다면, 저와 여러분은 이미‘하나님의 자녀’임이 분명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면 어쩌지? 의심하지 않고, 참 마음으로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고백하심으로, 「이미」 「언제나」 내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신하는 우리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4. 우리는 하나님의 상속자입니다(17상).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에게 주어지는 궁극의 특권은 ‘우리는 하나님의 상속자이다’는 사실입니다.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17절은, 놀랍게도 이제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하나님의 상속자”라고 부릅니다.
성경시대의 ‘상속자’는, 이 시대의 ‘상속자’와는 다른 개념입니다.
‘상속자’는 다른 형제들과 전혀 다른 처우를 받습니다. 예를 들면, 두형제가 있다고 하면 부모는 재산을 3등분하여 장자에게는 2개, 차자에게는 1개를 상속해줍니다.
그 이유는 장자로 하여금 아버지의 이름과 집안의 기업을 이을 상속자로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이처럼 상속자는 부모의 재산 가운데 가장 큰 몫을 차지하는 특권을 누립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를 수 있는 친아들 친딸)가 되어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하나님이 각각을 위하여 준비하신, 저마다 가장 많은 상속을 받습니다.
이로 인해, 우리의 이름에 하나님 나라에 영원히 기억되고, 하나님이 주실 천국과 천국의 모든 영광(영생, 기쁨, 권세)을 받을 자들이 되었습니다.
바라기는,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만 주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요 1:12)로 이 땅에서 뿐만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그 이름이 기억되는 상속자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결론>
탕자의 비유에서(눅 15:11–32), 둘째아들은 가족을 버리고 멀리 떠나 방탕하게 살다가 아버지께 받은 유산을 모두 탕진해 버렸습니다.
그는 그때서야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며 이런 생각을 합니다.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눅 15:19)
우리는 때때로 이 둘째아들과 같은 태도로 하나님께 나아가곤 합니다.
‘아! 나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만한 어떠한 가치도 없어! 그래서 내가 일(예배 봉사 헌금 선행)을 잘하면 하나님이 품삯을 주시겠지만, 내가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내쫓기고 말 거야!’
그러나 성령이 찾아오셔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 성령이 인도하시고 보증하셔서 하나님의 친아들과 친딸로 삼으신 우리,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로 부를 수 있는 우리는,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너와 함께 가시며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라”(신 31:6)약속하시며, 언제나 우리 가까이에 계신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로 모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으로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