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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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히브리서는 유대인 기독교인들이 신앙의 어려움 속에서도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굳게 지키도록 격려하기 위해 쓰여졌습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로마 제국의 지배 아래에서 정치적, 경제적, 종교적 압박을 받고 있었고, 많은 이들이 신앙의 갈등과 혼란 속에서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히브리서의 저자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구약의 모든 약속을 완성하신 분임을 강조하며, 독자들이 예수님을 통한 하나님의 약속을 확신하고, 신앙의 흔들림 없이 견고히 서기를 권면합니다.
오늘날 우리도 다양한 도전과 불확실성 속에서 신앙의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변화무쌍한 세상 속에서 우리는 때로 흔들리고 불안해하지만, 변함없는 하나님의 약속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확실한 소망을 주시기 위해 변하지 않는 약속을 하셨고, 이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되었습니다.
오늘은 히브리서 6장 16절부터 20절까지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약속이 어떻게 변함없이 우리의 신앙과 소망을 지키는지 세 가지 대지로 나누어 살펴보겠습니다.
전체 중심 주제: 하나님의 변함없는 약속은 우리에게 영원한 소망과 확신을 주며, 이를 통해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1대지: 하나님의 약속은 변함이 없다는 것 입니다.
중심 주제: 하나님의 약속은 그분의 맹세로 확정되었으며, 이는 절대 변하지 않는 확실한 약속입니다.
1대지: 하나님의 약속은 변함이 없다는 것 입니다.
중심 주제: 하나님의 약속은 그분의 맹세로 확정되었으며, 이는 절대 변하지 않는 확실한 약속입니다.
히브리서 6:16–17 “사람들은 자기보다 더 큰 자를 가리켜 맹세하나니 맹세는 그들이 다투는 모든 일의 최후 확정이니라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하지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을 맹세로 보증하셨나니”
말씀설명: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서 맹세는 신성하고 절대적인 약속의 보증이었습니다. 중요한 약속을 할 때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맹세함으로써 그 약속의 신뢰성을 확립했습니다. 맹세는 단순한 약속 이상의 의미를 지녔으며, 약속의 확실성을 높이기 위해 필수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약속의 신뢰성을 강화하기 위해 자기보다 더 큰 존재를 두고 맹세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보다 더 큰 존재를 두고 맹세하면 약속의 신뢰도가 극대화되기 때문입니다. 맹세의 대상이 더 큰 존재일수록, 그 약속은 변질되지 않고 확고하게 지켜질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따라서, 맹세는 법적 보증의 역할을 하며, 약속이 변질되거나 논쟁의 여지가 없이 확정된 상태로 인정받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서 어떤 사람보다 더 큰 존재가 없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것이 그분의 손에 있으며, 그분이 모든 것을 주관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보다 더 큰 존재는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스스로를 두고 맹세하신 것입니다. 이 맹세는 그 어떤 것도 변질될 수 없는 확고한 약속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직접 자신의 이름을 걸고 하신 약속은 최후의 보증이 되어, 우리가 이 약속을 붙잡을 때 변함없는 신뢰와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됩니다.
예화: 사랑부의 한 성도님이 매주 토요일마다 정해진 시간에 꼭 전화를 하십니다. 이 성도님은 그 약속을 철저히 지키시는데, 하루는 전도여행을 함께 가게 되었습니다. 이 성도님은 거동이 불편하셔서 제가 휠체어를 밀어 드리며 이동했습니다.
그날 여행 중, 이 성도님이 갑자기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내서 열심히 다루기 시작하셨습니다. 저는 잠시 뒤 제 주머니에서 핸드폰 진동 소리를 들었고, 핸드폰을 확인해보니, 이 성도님이 전화를 걸어오셨다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토요일 정해진 시간에 전화를 하신 것이었습니다!
이 상황은 그 성도님이 약속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시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비록 거동이 불편하고 여행 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성도님은 정해진 시간에 맞춰 전화를 하셨습니다. 이는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한 큰 노력을 필요로 했습니다. 제가 만난 분들중에서 약속을 제일 잘 지키는 분인 것 같아요. 하루도 빠지지 않고 토요일 같은시간마다 전화하는 이 모습이 저에게 한편으로 도전이 되기도 했어요. 그런데 하루는 전화가 오지 않더라구요 걱정이 돼서 연락을 드렸더니 가족여행이 있어서 연락을 못하셨다는거에요. 생각해보니 아.. 그럴 수 있겠구나 라고 생각이 되었어요.
사람들과의 약속은 종종 상황이나 의도에 따라 흔들리며, 깨질 수 있습니다. 친구나 가족과의 약속도 때로는 어긋나고, 심지어 나 자신과의 약속도 지키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반면, 히브리서 저자는 하나님의 약속이 그분의 맹세로 확정되었으며, 이것은 절대 변하지 않는 확실한 약속이라고 전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은 변함이 없으며, 이는 장차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될 구속의 계획을 미리 예고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오셔서 인류의 죄를 대신 지시고 구속을 이루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약속하셨습니다. 이는 우리가 그 약속에 신뢰를 가지고 믿음을 붙들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깨지지 않는 굳건한 약속이기에, 우리는 그 약속을 신뢰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세상의 가치관과 그리스도를 믿는 가치관이 부딪히며 혼란스러울 때, 하나님께서는 변함없는 약속을 주셨기에, 이 약속을 붙들고 소망을 품으며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대지: 영원한 소망이 되어주십니다.
중심 주제: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에게 영원한 소망을 주며, 이 소망은 우리의 영혼을 안전하게 붙들어 줍니다.
2대지: 영원한 소망이 되어주십니다.
중심 주제: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에게 영원한 소망을 주며, 이 소망은 우리의 영혼을 안전하게 붙들어 줍니다.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하지 못할 사실로 말미암아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난처를 찾은 우리에게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 가나니
히브리서 6장 18-19절은 하나님의 약속과 맹세가 우리의 신앙과 소망의 기초가 된다는 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18절에서 하나님은 자신의 약속을 맹세로 확증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결코 거짓말을 하실 수 없기 때문에, 그분의 약속이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최후의 보증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약속하셨기 때문에, 이 약속은 변함이 없으며 확실한 기초를 제공합니다.
이어서 19절은 이 약속이 우리의 영혼을 지켜주는 소망의 ‘닻’ 역할을 한다고 설명합니다. 닻이 배를 바다에서 흔들리지 않게 고정시키듯이,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의 삶 속에서도 안정적인 평안을 제공하며,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우리를 흔들리지 않게 붙잡아 줍니다. 이러한 확실한 소망 덕분에 우리는 믿음을 굳건히 하고, 인내하며 나아갈 수 있습니다.
성도님들 실제로 닻을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해군에서 근무하거나, 바닷가에서 살지 않는 이상 닻을 실제로 보기란 쉽지 않습니다. 저도 닻을 한번도 본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준비하며 “아 내가 닻을 실제로 한번 봐야겠다!”라고 생각하고 인터넷에 “닻 볼수 있는 곳”을 검색했습니다. 그랬더니 포항이 나오더라구요. “그래 큰 마음 먹고 한번 가보자”라고 생각했으나 마음을 접고 가보지 못하더라도 이번 한주간은 누구보다 닻에 대해 많이 아는 닻 박사가 되어보자 라는 마음을 닻에 대해서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닻의 크기, 닻 내리는 법, 영어로는 뭐라고 부르는지, 참고로 영어로 닻을 앵커라고 합니다. 이 닻은 무거운 강철로 제작되고 두개이상의 날이 있어 바닥에 콱! 박힘을 통해 선박을 한 곳에 머물게 합니다. 닻에는 닻줄이 있어 로프로 배와 단단하게 이어줍니다. 조사를 하며 한가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왜 하필 이 닻을 영원한 소망에 비유하였을까?” 무언가를 고정하는 쇠못도 있고, 단단하게 묶을 수 있는 끈도 있는데 왜 하필 닻이었을까? 다른 것들과 무슨차이가 있을까? 이런 고민을 하는 중에 닻에 특징에 대해 발견했습니다.
1. 닻은 바다 깊숙한 바닥에 박혀 눈에 직접적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2. 족므도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파도에 따라 어느정도 흔들림이 있다.
3.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흔들림이 있더라도 배가 떠내려가지 않고 굳건하게 붙잡아 준다.
이러한 특징을 보며 히브리서 저자가 왜 닻에 비유를 하였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1.우리의 삶이 하루 아침에 바뀌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변화가 보여서 “내 닻좀 봐봐” 너의 닻은 좀더 크네” 이렇게 이야기하지 않는 다는 것이죠.
2. 하루 아침에 믿음이 굳건해져서 세상의 유혹과 시험에 흔들리지 않게 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넘어지기도 하고 하나님과 가까워졌다 멀어졌다하는 흔들림이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소망의 닻이 우리의 영혼에 내리는 손간 하나님께 붙들리게 되어 유혹과 시험에도 떠내려 가지 않도록 하나님께 붙들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영혼의 닻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삶에서 변함없는 소망과 확신을 제공하시며, 인생의 모든 도전과 시련 속에서도 평안과 안정된 마음을 유지하게 해줍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 얻은 안정된 소망을 붙잡고, 삶의 모든 순간에 흔들림 없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영혼을 지켜주며,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우리의 믿음을 지키는 굳건한 닻이 됩니다. 주님께서 주신 이 확고한 소망을 붙잡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도록 힘을 내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현재 어려운 상황 속에서 소망을 잃어버리고 있다면, 그럴 때일수록 하나님의 약속을 되새기고 붙잡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언제나 변함이 없으며, 우리의 영혼을 안정시키는 든든한 닻이 되어줍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가지고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으며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우리의 삶을 안전하게 고정시키고, 어떤 상황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3대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약속의 완성과 하늘 소망
중심주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약속을 완성하시고 하늘 소망의 길을 여심으로써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에도 흔들리지 않는 소망과 영원한 확신을 주십니다.
말씀: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장차 들어가신 바로 그 지성소에 들어가셨습니다." (히브리서 6:20)
설명:
히브리서 6장 20절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의 지성소에 들어가셨다는 중요한 진리를 우리에게 전합니다. 이는 단순히 예수님께서 천국에 들어가셨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완전한 구속을 이루어 우리에게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구약 시대의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지성소에 들어가기를 간절히 원했지만, 그들은 매년 반복적으로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릅니다. 그분은 단 한 번의 완벽한 희생으로 모든 제사와 속죄의 필요를 완성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늘의 지성소로 들어가신 것은, 그분이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이제는 우리가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다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약속을 완성하는 결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은 구속의 핵심입니다. 예수님은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영원한 대제사장으로서, 단 한 번의 희생으로 우리의 죄를 속량하셨습니다. 구약의 제사장들은 반복적으로 희생 제물을 바쳐야 했지만, 예수님은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모든 제사의 필요를 완성하셨습니다. 그분의 십자가에서의 죽음과 부활은 구약의 모든 예언과 약속을 성취하는 결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예수님의 희생을 통해 이루어진 구속은 단순히 우리의 죄를 용서하는 것을 넘어, 하나님과의 완전한 화평을 이루고 하늘의 영원한 소망을 우리에게 제공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대제사장으로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심으로써, 우리가 그 길을 따라 하나님의 임재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우리의 구속을 완성하시고, 우리에게 영원한 하늘 소망을 열어 주신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희생은 하나님의 약속의 확실성을 보증하며,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에도 흔들리지 않는 소망과 확신을 제공합니다.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 열린 길은 단순한 구원의 길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 속에서도 평안과 확신을 갖게 해주는 영원한 소망의 길입니다.
적용:
우리의 삶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소망을 붙잡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희생과 구속을 통해 이루어진 약속의 완성을 통해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믿음을 지킬 수 있습니다. 현재 어려운 상황 속에서 신앙이 흔들리고 있다면,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진 하늘 소망을 되새기세요. 예수님의 희생을 통해 주어진 이 소망은 우리의 삶을 안정시키고, 이 땅에서 흔들리지 않는 확신과 평안을 누리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의 완성을 기억하며, 우리 삶의 모든 순간에 확고한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길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변함없는 약속이며, 그분을 통해 주어진 하늘 소망은 우리의 삶을 지탱해주는 영원한 확신이 됩니다. 우리가 어려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믿음을 지킬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 변함없는 약속과 영원한 소망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은혜와 평강이 여러분의 삶에 가득하길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과 소망을 붙잡고, 매일의 삶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님들 저의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저는 대전 변두리 산중턱에 있는 고등학교를 졸업했어요. 오르막길만 10분은 걸어 올라가야 됐어요. 남녀 공학이었는데 고3이 되자마자 공부에 집중하라고 남녀 분반을 하게 되었습니다. 고3 때 저희 반이 21명이었어요. 놀라운 사실은 21명중에서 교회에 다니지 않는 인원이 20명이었다는거에요. 저 혼자만 교회에 다녔다는거겠죠..? 고등학생이 되면 야간자율학습을 합니다. 저는 이시간이 너무도 싫었어요. 공부하기 싫어서가 아닙니닿ㅎ 다른 이유가 있었어요. 이때까지도 야자가 필수였습니다. 고3 얼마나 장난기가 가득하겠습니까? 그러니까 야자시간만 되면 반 친구들이 심심해서 놀거리를 찾기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저를 발견해요. 고3이 되면서 본인이 갈 대학교와 장래희망을 게시판에 공유했어요. 제이름 옆에는 신학교와 목사 이렇게 두 가지가 적혀있었습니다. 교회를 다니지 않는 친구들에게 저는 재미있는 장난감이 되었습니다.
야자시간만 되면 질문이 시작됩니다. “하나님이 진짜 있냐, 성경 그거 다 소설 아니냐, 목사가 아니라 목수를 잘못 적은거 아니냐 등” 온갖 농담이 저에게 쏟아졌습니다. 저는 변증을 시작합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신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쓰신거다. 목사맞다. 20대1 이기기 쉽지 않더라구요. 20대 1로 싸워보신 분 계신가요…?
그러면서 한편으로 와..핍박을 받는다는게 이런 기분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몇날 몇일 지속되다 보니 믿음이 흔들리고 마음이 어려워서 친구들에게 한 가지 거짓말을 했어요. “나 사실은 다른 학과로 전과하려고 신학과 가는거다” 그때부터 별로 안놀리더라구요. 본인들이 이겼다고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 당시는 이게 맞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후 대학교에 진학했어요. 그곳에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진정으로 소명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죽임당하시고 나를 구원해주신 그 감격이 내 안에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제 안에 영혼의 닻이 쾅하고 내려진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나니 제 고등학교 시절했던 말이 너무 부끄러웠어요.
그 잠깐의 힘듦과 믿음의 연약함으로 인해 예수님을 부인했던 것은 아닐까.. 죄책감이 찾아오더라구요.
그래서 고등학교 친구들을 한명씩 찾아가서 복음을 전했어요. 자연스럽게 대화하다가 교회가자 게임하다가 교회가자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연락하면 친구들이 교회가자고 안하면 통화할게 라고 이야기하며 전화를 받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제 안에 소망이 생기니 더이상 믿음이 흔들리지 않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많이 힘드시지요..? 물론 아닌 분들이 계실수도있습니다. 그러나
개개인에게 제가 절대 공감하지 못할 정도의 힘듦이 가득할거라 생각됩니다.
경제적인 어려움 직장상사와의 문제 가정에서의 어려움 내가 사랑하는 이들의 아픔 차마 하나하나 다 말하지 못할 정도로 우리는 고난과 역경의 삶을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우리에게 고난이 없을 것이다”라는 구절이 단 한구절도 기록되어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리스도인에게는 고난이 있을 것이라 여러번 언급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은 우리를 절망시킬 수 없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에게 변함없는 약속을 하셨으며, 그 약속을 통해 우리의 삶 가운데에 무엇으로도 흔들 수 없는 안전한 영원한 소망 영혼의 닻을 내려주셨기 때문입니다.
숨이 탁 막혀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고난 가운데 계신가요?
아침에 눈을 뜨는 것이 고통스럽고 현재의 나의 삶에 희망이 없다는 절망적인 생각에 얽매여 있는 분이 계십니까?
예수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변함없으신 약속을 완성시키셨습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스스로 우리의 영원한 소망이 되셨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붙잡으시길 소망합니다. 우리를 위해 예비된 저 천국을 우리의 본향을 바라보시기 원합니다. 우리의 변함없는 약속이자 영원한 소망 되시는 예수그리스도를 붙잡을 때 이 땅 가운데 흔들리지 않는 믿음과 평안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주님의 나라에 이를 때까지 순례의 길을 걸으며 포기하지 않고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이 시간 우리의 본향 천국을 생각하며, 하늘 소망 함께 찬양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