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7장 10-1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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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7장에 등장하는 아하스 왕은 우리가 잘 아는 히스기야의 아버지 입니다.
아하스의 이름의 뜻은 여호와가 붙잡으신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이름의 뜻처럼 하나님은 오늘 본문에서 그의 삶을 붙잡으시려고 하십니다.
본문 1절에서 이야기 하는 것 처럼 아람과 에브라임의 동맹은 남유다에 큰 위기였습니다.
어떻게 첫번째 공격은 막아냈지만, 유다의 군사력은 아람-에브라임 동맹을 버텨낼 더 이상의 힘이 없습니다.
두려워하는 아하스와 남유다에게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7절에서 부터 9절까지 르신과 베가의 계획은 반드시 실패할 것이다 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시고 안정시키십니다.
하지만 아하스가 바라보는 국제정세 가운데 남유다는 바람 앞의 등불과도 같았습니다.
그래서 아하스의 선택은 하나님이 아닌 앗수르를 의존하여 위기를 모면하려는 것입니다.
아무리 이야기 해도 그는 듣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0절은 다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또 아하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물론 직접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하신 말씀은 아니지만, 이사야의 선포를 완곡하게 거절하는 왕의 태도를
여호와께 대한 직접적인 불순종의 모습인 것을 알리기 위한 표현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아하스는 결단력과 충실한 신앙이 요구되는 이 시기에 우유부단하고,
이 상황을 감당하기에는 정치적으로도, 또한 신앙적으로도 미숙하고 약한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아하스에게 하나님은 파격적인 약속을 하십니다.
11절 입니다.
11.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한 징조를 구하되 깊은 데에서든지 높은 데에서든지 구하라 하시니
하나님은 직접적으로 징조를 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엇이든지 구하면 다 들어주고 보여주겠다고 까지 말씀하시면서 그에게 확신을 주려하십니다.
하지만 아하스는 어떻게 반응하고 있습니까?
12절 입니다.
나는 구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나는 여호와를 시험하지 아니하겠나이다 한지라
이는 하나님을 의지하겠다는 왕의 신앙고백이 아닙니다.
오히려 경건을 가장한 위선적 신앙에 의해서 하나님의 파격적 제안과 보호하심을 거절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왕의 자기 변명은 단지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확신과 신뢰와 믿음의 부족이 아닙니다.
그는 열방의 위협에 대한 정치적 영역에서는 여호와의 주권을 거부하겠다는 확실한 거절의 의미 입니다.
아하스는 하나님을 역사의 무대에서, 이스라엘의 무대에서 퇴장시키는 행동 입니다.
이에 하나님의 책망과 주권적 징조의 선포가 시작 됩니다.
13절 입니다.
13. 이사야가 이르되 다윗의 집이여 원하건대 들을지어다 너희가 사람을 괴롭히고서 그것을 작은 일로 여겨 또 나의 하나님을 괴롭히려 하느냐
오늘 이 말씀은 계속해서 하나님의 약속과 인간의 거부가 부딪히는 사건 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왕조의 영원함을 약속하셨지만, 아하스의 거절로 어려운 처지에 빠지신 것입니다.
13절의 의미를 해석하는 것이 쉽지 않지만 왕을 책망하고 계십니다.
너희가 사람을 괴롭히고서 그것을 작은 일로 여겨 하나님을 괴롭히려 하느냐 라는 말에서
왕조가 괴롭힌 사람이 누구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불순종 이라는 의미에서 아마도 하나님의 말씀을 신실하게 듣고 전하는 자들을 괴롭히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닫으면서 하나님도 괴롭히고 있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들을 향해 책망하시면서 곧 이루어질 징조를 선포하십니다.
14절 입니다.
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 말씀은 이후에 마태복음에서 그리스도의 탄생을 예언하며 사용 됩니다.
하지만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하스 시대에 주어진 내용으로 먼저 볼 필요가 있습니다.
처녀라고 사용하는 알마 라는 히브리어 단어는 애를 낳을 수 있을 정도로 성숙한 여자를 가리킵니다.
하지만 처녀가 누구를 지칭하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처녀가 아들을 낳을 것이고, 그 아이의 이름을 임마누엘 이이라고 짓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아이가 태어나 선과 악을 선택할 줄 알고 엉긴 젖과 꿀을 먹을 수 있는 나이가 되면
네가 미워 하는 두 왕의 땅이 황폐하게 될 것이라고 선포 하십니다.
아하스 왕이 미워하는 두 왕이 누구 입니까?
다메섹과 북이스라엘의 왕을 의미 합니다.
이사야에서 14절의 징조가 누가 태어났는지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다만 이 징조를 아하스가 듣고 또한 직접 봐야 하기 때문에 임마누엘의 징조는 그 시대에 일어났을 것입니다.
또한 역사적으로 앗수르에 의해서 주전 733년 다메섹이 멸망하고 11년 뒤 주전 722년에 북이스라엘도 멸망하게 됩니다.
이렇게 임마누엘의 징조는 남유다에게는 구원과 북이스라엘과 다메섹 에게는 심판의 징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징조는 여호와의 통치를 거부한 남유다에게도 심판의 표징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임마누엘 징조에 가려져 아하스의 불순종을 잊으면 안됩니다.
일차적으로 하나님을 거부하는 남유다를 보호하시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하스의 심판을 거두신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키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을 믿는 가장 중요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내 삶의 여러 영역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밀어내고 눈 앞의 이익을 위해 계산기를 두드릴 때가 많습니다.
내 삶에 하나님의 주권영역을 축소 시키고, 내가 주인이 되고, 결정하고자 하는 것들이 있습니까?
세속적 성숙함은 하나님의 주권을 거부하고 밀어내게 합니다.
그러므로 세속적 성숙이 아닌 믿음의 성숙과 하나님을 의지하는데 더욱 힘을 쓰며 살아갑시다.
무엇보다 우리를 죄와 죽음에서 구원하신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며
항상 함께 하시는 주님과 영원히 동행하는 우리의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