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만 의지하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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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만 의지하라!
[인사말-도입]
오늘은 ‘하나님만 의지하라’는 주제로 설교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서로 앞뒤 좌우에 계신 성도님들을 바라보며 인사했으면 합니다. “하나님만 의지합시다”. 하나님만 의지한다는 것이 저와 여러분 같이 하나님을 믿고 신앙 생활을 하는 그리스도인에는 너무도 당연한 말 같지만 실제로 현실에서는 쉽지가 않습니다. 몰론 ‘우리는 하나님도 의지합니다.’ 솔직이
교회에 와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말씀을 듣고 기도하지만 교회 문을 나서는 순간, 눈에 보이는 세상 것들을 의지하고 살아가곤 합니다. 현대 그리스도인의 비극은 하나님을 교회안에서만 찾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자신을 의지하고, 돈과 학력과 권력과 관계와 자녀와 철학과 과학과 종교와 이성과 쾌락을 사랑하고 의지합니다. 따라서 오늘 주제 말씀은 현대를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의 자화상을 그대로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같이 읽겠습니다: 삼상 5장 1-4절]
1.블레셋 사람들이 하나님의 궤를 빼앗아 가지고 에벤에셀 에서부터 아스돗에 이르니라
2.블레셋 사람들이 하나님의 궤를 가지고 다곤의 신전에 들어가서 다곤 곁에 두었더니
3.아스돗 사람들이 이튿날 일찍이 일어나본 즉 다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엎드러져 그 얼굴이 땅에 닿았는지라 그들이 다곤을 일으켜 다시 그 자리에 세웠더니
4.그 이튿날 아침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본 즉 다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또다시 엎드러져 얼굴이 땅에 닿았고 그 머리와 두 손목은 끊어져 문지방에 있고 다곤의 몸뚱이만 남았더라 5.그러므로 다곤의 제사장들이나 다곤의 신전에 들어가는 자는 오늘까지 아스돗에 있는 다곤의 문지방을 밟지 아니하더라
[서론]
오늘 본문은 4장 말씀의 에필로그 입니다. 따라서 4장의 스토리를 같이 살펴봐야 합니다. 4장에서는 이스라엘이 블레셋과 두번의 전쟁을 벌이고 두번의 패배를 경험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블레셋을 오늘날의 ‘세상’이라고 한다면 이스라엘은 ‘ 그리스도인’ 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삼상 4:1,후반을 보면 ’이스라엘은 나가서 블레셋 사람들과 싸우려고~. 여기까지는 좋았습니다.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이 세상과 연합하여 살아갑니까? 거룩한 삶, 세상속에 있으나 세상에 속하지 않고 구분된 삶을 살려고 하다가 때로는 넘어집니다.그렇게 실패를 계속하다가 그냥 주저 앉아 버리는 것이지요!
오늘 배경이 되는 시대는 구약의 사사 시대입니다. 가나안 정복의 1세대가 모두 죽자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을 숭배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은 주변국을 통해 이스라엘을 공격하게 하고 지배 받는 고통을 허용하셨습니다. 고통 가운데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 나와 울부짖으면 / 하나님은 사사들을 보내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이러한 패턴이 끊임없이 반복됩니다. 익숙하지 않습니까? 삼상 4장은 이스라엘의 마지막 사사, 사무엘이 등장하기 바로 전 사사 엘리 제사장의 시대를 이야기 합니다. 이 시대를 한마디로 표현한 말씀이 있습니다. 삼상3:1 ‘아이 사무엘이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엘리 제사장은 눈이 어두울 뿐만 아니라 그의 자식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기 전에 좋은 것을 자신들 앞으로 빼 돌리는 도둑 이였으며, 회막에 수종 드는 여인과 간음을 행하는 제사장들 입니다. 한마디로 영적 지도자들이 철저히 타락한 시대였습니다. 그럼에도 블레셋에 맞서 이스라엘이 (성도들은) 분연히 일어났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현실과 너무도 비슷하지 않습니까? 한국 교회는 목회자들의 타락으로 자정 능력을 잃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교회에 희망이 있는 것은 교회의 성도들이 복음으로 교회를 지켜 나가기 때문입니다. 자유주의 목회자가 강대상에 서지 못하는 것이 한국 교회에서만 가능합니다. 성도들의 복음주의적 신앙이/ 성경의 무오성을 인정하지 않는 목회자를/ 용납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릴 일입니다. 할렐루야!
첫번째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패배하고 4천명이 죽습니다. 그러자 백성의 장로들이 결과를 두고 원인 분석을 합니다. 4:3 ‘백성이 진영으로 돌아오매 이스라엘 장로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우리에게 오늘 블레셋 사람들 앞에 패하게 하셨는고 여호와의 언약궤를 실로에서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중에 있게 하여 그것으로 우리를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자 하니’ 하나님 임재의 상징인 언약궤가 우리와 함께 하지 않아서 패배 했으니 실로에서 안약궤를 매어와 다시 전쟁을 하자는 솔루션을 만듭니다. 여러분 이 모습은 어떻습니까? 겉으로 보면 좋은 해법 같지만 이런 해결방법은 안 하는 것보다도 못합니다. 물론 장로들의 시작은 옳았습니다. 싸움의 승패가 여호와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인정한 것은 매우 타당한 진단입니다. 하나님의 부재하심이 패배를 불렀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디로 가야 합니까? 하나님께 기도로 나아가 야지요! 그런데 장로들은 하나님께 묻지도 않고/ 자신의 생각대로 임재의 상징인 언약궤를 전쟁의 장소로 가져가면/ 하나님이 자신의 의도대로 /그곳에 임재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여러분!이것이 우상이고 종교입니다. 아론의 금송아지는 하나님이 아닌 다른 우상을 숭배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고 경배했지만 영이신 창조주 하나님을 보이는 피조물의 형상으로 타협한 가증한 일을 한 것입니다. 이 모습이 우리의 일상과 너무도 비슷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저마다의 문제를 가지고 교회에 와서 예배하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러나 교회를 나가는 순간, 하나님에게 기도로 요청한 응답을 기다리기도 전에 자신의 생각과 뜻으로 세상을 살아갑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경의 결과를 보십시오! 하나님 없이 나간 첫 전투에서 4천명이 죽었는데, 하나님을 우상으로 바라보고 행동한 결과 두번째 전투에서 이스라엘은 3만명이 죽고 언약궤마저 빼앗겨 버리는 대패를 하게 됩니다. 경건의 모양은 그대로 갖추었지만 하나님의 임재가 없는 경건은 능력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세상은 그 모양을 보고 두려워 떨었습니다. 7절 말씀에 이스라엘이 언약궤를 진중에 가져오고 사기가 승천한 소리를 듣고 ‘블레셋 사람이 두려워하여 이르되 신이 진영이 이르렀도다 하고 또. 이르되 우리에게 화로다 전날에는 이런 일이 없었도다
실력이 드러나기 전에는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으로 판단하는 것이 세상과 믿음 없는 종교인의 공통점 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믿음은 바로 서야 합니다. 세상이 보기에 우리는 원수입니다. 빛과 어둠은 공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온전하게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경배의 대상이십니다. 그분의 능력 가운데 우리가 붙잡혀 있는 것이지 우리 손이 하나님을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의지하며 그분을 기다릴 때는 승리하지만, 자신을 신뢰하고 의지할 때는 백전백패를 합니다. 오히려 믿지 않았을 때보다 우리의 모습은 더욱 초라합니다. 세상에게는 공격당하고 하나님께는 버림받기 때문입니다. 4장의 결론은 바로 이것입니다. 오늘날 기복신앙의 모습이(탐심이) 바로 우상숭배의 모습이기에 조심해야 합니다.
이어서 오늘 본문 내용이 4장의 에필로그로 나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우상으로 만들자/ 하나님께서 그들의 더러운 생각대로 내버려 두심을 통해 블레셋에게 대패하였습니다. 블레셋은 탈취한 하나님의 언약궤를 자신들의 최고의 신 다곤 신전에 가져다 놓았습니다. 그들은 처음에는 언약궤를 두려워 하였으나 자신들에게 패한 이스라엘을 보면서 언약궤가 능력이 없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도 언제 또 써먹을지 모르기에 보관해 놓습니다. 세상의 인식은 이렇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능력이 드러나지 않음에 조롱하고 모멸감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자신’이라는 신을 숭배합니다. 그러나 존재의 근원이신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할 수가 없습니다. 결국에는 그 두려움이 현실로 드러납니다. 본문과 같이 다곤 신상이 한번은 넘어져 있다가 세워 놨더니 이제는 머리가 잘리고 팔다리가 분리되어 문지방에 걸치고 몸통만 남게 된 것이지요! 여기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배우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우상을 숭배하면 하나님이 없는 인생의 패배를 교훈적으로 맛보게 하시지만 그렇다고 원수의 승리를 인정하시지 않으십니다. 인간의 죄로 깨어진 세상은 이미 엉망진창입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주장하며 높아진 종교와 과학과 철학이 만들어 놓은 세상을 한번 보세요! 이 세상이 살만 합니까? 약육강식과 승자독식 그리고 각자생존의 사회 아닌가요? 인간은 스스로 문명을 자랑하고 과학 기술의 발달과 철학적 이성으로 모든 것이 하나님 없이 잘 되어 갈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전쟁과 기근은 세상 도처에서 일어납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 통제가 어려운 바이러스 전염병, 일본 핵발전소의 폭발, 성적 타락, 살인, 학대와 기아 , 저출산 등은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가 않습니다. 우리나라를 보아도 세상은 여전히 절망적입니다. 끝나지 않은 전쟁,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 교회지도자의 타락, 포스트모던, 청년들의 5포, 10포세대, 더 이상 결혼하지 않고 끝이 없이 추락하는 저출산, 더이상 선교하지 않고 이웃을 섬기지 않는 교회. 인류의 타락에서 빗나간 창조세계는 어떠한 희망도 없다는 것을 동의하지 않습니까? 마치 하나님 없는 세상이 진보이고 발전이며 인류의 행복이라는 세상의 거짓말은 이미 파탄이 났습니다.
[본론]여기서 우리는 생각해 볼 점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패배, 교회의 패배는 블레셋이 강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약해서 입니다. 교회사적으로 보아도 교회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의지하는 순간은 언제나 세상에 패했습니다.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믿는 그리스도인은 세상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교회에 왜 나오나요? 세상과 비슷한 것을 교회에서 발견하려고 오지는 않을 것입니다. 세상에 있는 심리학과 경영학 리더십 강연을 교회에서 들으려고 오지는 않습니다. 세상 지혜와는 다른 하나님의 말씀, 세상에는 없는 복음을 들으려고 교회에 나옵니다. 그런데 교회가 복음을 선포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수 있는지! 선한 가르침은 무엇이고 도덕적 실천방법에 대해 가르치고 있다면 과연 어느 누가 세상보다 못한 세상 지식을 들으러 교회로 나아 오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당대의 철학자와 맞짱을 떠도 밀리지 않는 지성의 소유자입니다. 그런 그가 왜 그 모든 지식을 배설물로 여긴다고 고백했습니까? 빌3:7-9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네! 복음 때문입니다. 이 복음을 떠나서는 교회도 그리스도인도 세상을 이길수가 없습니다. [세상을 두려워 하고 자신을 의지하면 우리는 한없이 약해집니다]. 오늘날 교회의 위기는 우리가 좌초한 위기이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교훈으로 허락하신 패배라는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패배로 끝나는 것인가요? 그럴 리가요? 교훈은 다시 일으키기 위해서 주시는 것입니다. 전투에서는 패배할 수 있지만 전쟁은 이미 승리한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교회는 음부의 권세가 침범하지 못합니다. 우리의 패배는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입니다. 히브리서 12:5-8 말씀에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맞습니다. 징계를 받는 것은 자녀라는 것을 인정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때 우리는 마땅히 우리의 우상숭배의 죄를 자복하고 자신을 신뢰하는 마음을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이켜야 하겠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최고의 징계는 내버려 두는 것입니다. 로마서 1장 24절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28절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그런 의미에서 본문 말씀은 우리에게 위로가 됩니다. 하나님은 다곤 신전에 신상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으십니다. 역사적인 패배로 끝날 것 같은 상황에서 하나님은 개입하십니다. 우리를 내버려 두시지 않으시고 [하나님 없는 세상의 승리는] 평화와 기쁨이 없다는 것을 명백하게 드러내십니다.
[결론]
블레셋과 이스라엘 모두 하나님을 법궤 속에 넣고 다닐 수 있는 존재로 오판을 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하나님은 우리 손에 계신 분이 아니고 우리가 그분의 능하신 손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블레셋 다곤 우상을 부숴 버리신 하나님은 살아 역사 하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분은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온 우주의 통치자이시며 주권자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살아 역사하시며 무한하시고 광활하신 위엄으로 우리를 붙들고 계십니다. 롬11: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 또한, 하나님은 유일하신 하나님 이십니다. 그분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다곤 신상을 부숴버리는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누구와도 나누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 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하나님에게 나아갈 때 우리의 방식으로 나아가면 안됩니다. 그것은 우상숭배 입니다. 우리에게 허용하신 방법으로만 그분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종교적인 열심과 의식으로 언약궤를 가지고 전쟁에 나가봐야 더 처절한 패배만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오늘 본문이 이스라엘의 실패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그분의 자녀라면, 하나님이 없이 나가서 이 세상 원수와 싸우는 것보다/ 자신이 만든 신을 하나님이라고 생각하며 싸울 때 비교할 수 없는 완전한 패배를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 가운데 종교적 욕심과 자기 노력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육체가 없습니다. 요14:6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 에게로 올 자가 없느니라’ 선언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허용하신 방법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입니다. /예수의 피, 그분의 십자가를 통과해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유일한 길입니다. 예수님이 곧 길이요 생명이요 진리입니다. 지옥에 떨어져도 마땅한 죄인인 우리가 원수를 십자가에서 멸하신 구세주 예수를 통하여 하나님께 생명과 빛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무능함과 무력감을 철저하게 깨달어야 합니다. 그럴 때만이 우리는 자신의 (지식,명철,철학,논쟁,열심,원칙,관계,물질,학벌)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성령으로 충만함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인생이 됩니다.
[마무리]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날 교회는 그리고 우리는 많은 도전과 시험 가운데 놓여 있습니다.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고후4:8-10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주변을 둘러보면 이미 교회는 패배하고 망해가고 있는 듯이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상황에서도 희망을 바라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속에 교회가 패배하도록 그냥 내버려 두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고후10:4-5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언제 어디서나 날마다 살아오는 나의 시퍼런 자아를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처리하고 하나님만 의지하여 승리하는 삶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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