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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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플이야기
레벨을 250을 찍었으나 다른 250들보다 현저하게 약했음.
내실을 채우지 못해서 그랬음.
그때부터 내실을 채우기 시작함
유니온에 대한 이야기, 코어강화 등
이때 깨달았죠.
겉모습이 커나가는 건
쉽다면 쉬울 수 있는데,
나의 내면이
좋은 것들로 채워지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구나.
즉, 성장도 중요하지만
우리 인생은 성숙함이
더 중요한거구나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성숙해져야 하는지
고린도전서를 통해 알아보겠습니다.
사도바울이 고린도라는 지역에 세워진
고린도교회에 쓴 편지여서
이 책의 이름은, 이 편지의 이름은 고린도전서입니다.
고린도에 대해서 지난 번에
찬규 전도사님께서 대략 설명해주셨던 것 같아요.
구체적으로 사진으로 한 번 볼까요?
세계 어느곳이든 바다를 끼고 있거나
큰 강을 끼고 있으면 무역이
활발하게 일어날 확률이 굉장히 높습니다.
그리고 그 동네가 대도시와
가까운 곳에 있다면 더 말할 것도 없죠.
그곳은 거의 100퍼센트 발전하게 되어있습니다.
경제적으로 발전하게 되고,
경제적으로 발전하게 되면
지식의 수준이나 문화의 수준이
반드시 높아지게 되어 있습니다.
지중해를 끼고 있는 도시들 중에서
아주 크게 성장하고 있는 도시가
바로 이 고린도였습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고린도는 그게 문제였어요.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지식적으로
아주 크게 성장하고 있기는 한데,
사람들이 생각을 하는 수준이 더 자라나지 않는거에요.
막말로 책 한 권 읽은 사람이 제일 무식하다고,
고린도 교회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들이
지식수준이 더 높아지고, 문화적 수준도 높아지고,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뭘쫌 알게 되었다고
서로를 무시하고 편가르기를 시작한거죠.
형제자매 여러분, 나는 여러분에게 영에 속한 사람에게 하듯이 말할 수 없고, 육에 속한 사람,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 같은 사람에게 말하듯이 하였습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젖을 먹였을 뿐, 단단한 음식을 먹이지 않았습니다. 그 때에는 여러분이 단단한 음식을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사실 지금도 여러분은 그것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아직도 육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가운데에서 시기와 싸움이 있으니, 여러분은 육에 속한 사람이고, 인간의 방식대로 살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어떤 사람은 “나는 바울 편이다” 하고, 또 다른 사람은 “나는 아볼로 편이다” 한다니, 여러분은 육에 속한 사람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 말씀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아니 이정도 멕여주고 키워줬는데
아직도 갓난아기처럼 행동하시면 어떻게 합니까?
몸뚱이는 어른이 되었는데
아직도 갓난아기와 같은 수준에 머물러 있으면 어떻게 합니까?
아가들은 생각보다 굉장히 단순합니다.
배고프면 울고, 기분나쁘면 울고,
아무튼 자기 성에 안 차면 일단 울어버립니다.
정확하게 자신이 보는대로,
자신이 느끼는대로 즉각즉각 반응하는 것이 갓난아기이죠.
그런데, 애기때는 보는대로만 반응하고,
느낀대로만 살아갈 수 있어요.
뭘 모르니까.
인생에 대한 경험이 낯설고,
느껴지는 감정들이 처음이니까.
세상 모든게 낯설으니까 그럴 수 있어요.
그런데 문제는,
다 큰 어른이 되어서도 배고프면 단비꺼!!!
갖고 싶은거 있어도 단비꺼!!!!!
승질나면 그냥 승질 내버리고 울고불고
다른 사람은 신경도 쓰지 않고
자신만 생각하면서 살아간다면 그건 정말 큰 문제가 되겠죠.
애기때 분유를 먹고 자랐으면,
자라고 나서는 단단한 음식도 먹을 줄 알아야 하고,
내가 아무리 싫어하는 음식이어도 몸의 건강을 위해서,
더 행복한 삶을 위해서 먹을 줄도 알아야 하는 것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삶은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점점 성숙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을 향한 믿음도 지혜도
점점 성숙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성숙한 사람과
성숙하지 않고 아직도 갓난아기처럼
자신이 보고 느끼는대로만 행동하는 사람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3절 말씀 읽어보겠습니다.
여러분은 아직도 육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가운데에서 시기와 싸움이 있으니, 여러분은 육에 속한 사람이고, 인간의 방식대로 살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고린도 교회에 있었던
시기와 다툼, 분열, 편가르기,
이 모두가 삶을 그저 보이는 대로만,
느끼는대로만 살아가기 때문에 벌어진 일입니다.
서로 이해하려고 하기보다는
갓난아기처럼 내가 보고 듣고
느낀대로만 반응하고
필터 없이 내가 짜증날때 짜증내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도
내 좋은대로만 편식하다가
편가르기를 하게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죠.
바울이 말한 육에 속한사람, 육적인 사람은
이처럼 내 생각과 감정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살아가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영에 속한 사람, 영적인 사람은 반대로 이렇게 말할 수 있겠죠.
“영에 속한 사람(영적인 사람)은 내가 보는것,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그것보다 더 큰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믿으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궁금해하며 살아간다.”
영적인 사람은 남들보다 조금 신비스럽고,
기도도 소리지르면서 하고,
자신의 생각으로 만들어낸 상상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계시라느니
어쩌니 떠드는 것이 영적인 것이 아닙니다.
진짜 영적인 사람은 보여지는 것,
느껴지는 것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들을
발견하기 위해서 무던히 애를 쓰고
노력하고 행동하는 사람을 영적인 사람이라고 해요.
예를 들어 이런겁니다.
내 옆에 있는 친구가 나한테 짜증을 내기 시작해요.
그때 육에 속한 사람들은 똑같이 짜증을 내거나
아니면 긴말이 뭐가 필요하겠어
하면서 주먹을 날릴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당장 눈에 보이는 대로 하자면
이 친구는 저한테 짜증을 낸거고요,
내가 느껴지는대로 하자면
나는 지금 이 친구때문에 당황스럽고
덩달아 화가 나기 때문인 것이죠.
내가 보이는대로, 나의 생각과 감정대로만 행동하는 겁니다.
그러나 영에 속한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 친구가 짜증을 내는 이유는 뭘까?
하나님 저는 이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하고 대처해야할까요?
이 친구는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있길래
저에게 화를 내는걸까요? 이유가 있는걸까요?
제가 이 친구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영에 속한 사람들은 보이는 것이,
느껴지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내 생각과 내 감정보다는
하나님의 시선으로 그 친구를 바라보기를 원하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그 친구를 품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서 끊임없이 씨름하고
노력하는 사람을 영적인 사람이라고 해요.
물론 우리의 생각과 감정이
아예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의 생각과 감정대로만 살아가면
이 세상은 굉장히 큰 혼란 속으로 빠지게 될 겁니다.
이 생각과 감정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스려질 수 있고,
다듬어져갈 수 있습니다.
그래야 사람이 정말로 사람답게,
창조하신 그 목적대로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며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들을
영적인 사람, 영에 속한 사람이라고 말해요.
사도바울이 고린도 교회 사람들에게
바랬던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이제는 육에 속한 사람에서 머물러있지 말고,
영에 속한 사람으로 함께 자라나야한다는 것이었어요.
그리고 사도바울은 우리의 인생이
육에 속한 사람으로써 만들어져갈 것이냐,
영에 속한 사람으로써 만들어져갈 것이냐를
건물을 건축하는 것에 비유했습니다.
아무도 이미 놓은 기초이신 예수 그리스도 밖에 또 다른 기초를 놓을 수 없습니다.
누가 이 기초 위에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집을 지으면,
그에 따라 각 사람의 업적이 드러날 것입니다. 그 날이 그것을 환히 보여 줄 것입니다. 그것은 불에 드러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불이 각 사람의 업적이 어떤 것인가를 검증하여 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만든 작품이 그대로 남으면, 그는 상을 받을 것이요,
어떤 사람의 작품이 타 버리면, 그는 손해를 볼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지만 불 속을 헤치고 나오듯 할 것입니다.
누구든지 겉으로 보기에는
훌륭하게 성장한 것처럼 보일 수 있고,
멋지게 성숙해진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겁니다.
건물이 지어져가듯이
‘나’라고 하는 존재가
내 생각과 내 감정만으로도
그저 인간적인 방법만으로도
충분히 만들어져갈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나 나의 존재를, 나의 삶을
인간적인 방법으로, 세상의 방법으로 지어놓는다면,
그 삶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무너뜨리십니다.
왜냐하면 인간적인 방법으로는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그 삶 속에 아름다움이 깃들을 수 없고,
생명이 깃들어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셨던
처음 그대로의 모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눈으로 보기에
잘 성장하고 성숙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한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그 삶이 거룩하게 만들어져 있지 않으면
여전히 인간적인 방법에만 머물러서
보는대로만, 느껴지는대로만 살아가고 있다면
하나님께서 그 삶을 반드시 무너뜨리십니다.
왜냐하면 고린도 교회에 있었던 교인들도
각자 나름의 정의는 있었어요.
편을 가르게 된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고
서로 싸우고 시기하고 질투하게 된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어요.
그러나 아무리 인간의 생각으로는
그것이 옳고 정당하다 하여도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그 모습이
거룩하지 못했던 것이죠.
그래서 사도바울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모두에게 정신차리라고 한 마디 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성전이며, 하나님의 성령이 여러분 안에 거하신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파괴하면, 하나님께서도 그 사람을 멸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성전이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교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삶은
내 눈에 보이는 대로만, 내가 느끼는 대로만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단단하게 만들어가야합니다.
“성령이 여러분 안에 거한다”에서
이 ‘거한다’는 단어가 가정을 꾸린다,
정착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모두는 한 명도 빠짐없이
하나님께서 너무나 사랑하는 한 가정입니다.
따라서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안에서 한 가족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보기에 이해가 되지 않고,
내가 느끼기에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함부로 관계를 무너뜨리는 일은
하나님의 성전을 파괴하는 일입니다.
서로의 관계를 파괴하는 것은
하나님의 성전을 파괴하는 일이자
나 자신을 파괴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내 눈에 보기 좋은대로만 살아가느라,
내가 느낀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살아가느라,
내 삶을, 나라고 하는 이 교회를
휴지쪼가리나 지푸라기 같은
하찮은 재료로 건축해나가는
어리석은 행동은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 눈에 보이는대로만,
느껴지는대로만 살아가느라
내 주변 사람들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품어보려고 노력조차 하지 않고,
선을 긋고 편을 가르고
공동체를 무너뜨리고 있는 줄도 모르면서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행동을 하는 것은
나라고 하는 이 교회를
휴지나 지푸라기같은 재료로
짓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죠.
그래서 바울은 우리 각 사람
한 명 한 명이 하나님의 성전이기 때문에
우리들의 삶이 곧 하나님을 예배하는
교회이기 때문에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뜻으로 지어져가기를
소망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성전이며, 하나님의 성령이 여러분 안에 거하신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파괴하면, 하나님께서도 그 사람을 멸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우리는 굉장히 연약한 존재입니다.
죄로 인해서 하나님의 형상이 완전하게 깨져서
우리 안에서부터 절대로 선한 것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없이 살아가면,
우리의 눈에 보기 좋은대로만,
우리가 느껴지는대로만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나의 일상 뿐만 아니라
심지어 교회에서조차도
내 마음에 드는 사람, 나에게 잘 맞는 사람만
찾아다니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것은 지푸라기로
교회를 짓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의 모양은 갖춰져서 성숙해지는 것처럼
보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인생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견고하게 지어진 교회가 아니기 때문에
언제든 쉽게 무너지게 되어있습니다.
우리는 인간적인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뜻으로,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것들로
우리의 내면을 채워서
성숙해져가야 합니다.
우리 모두의 삶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교회이기 때문에
우리의 삶을 하나님의 뜻 안에서 잘 만들어가야합니다.
우리 눈에 보기 좋은대로,
그저 느끼는 그대로만 살아가며
인간적인 방식과 덕목으로
우리의 삶을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의 삶을 만들어가야합니다.
그런 삶을 영적인 삶이라고 말합니다.
서로 미워하지 않기 위해 무던하게 애를 쓰고,
서로가 하나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 노력하며,
영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내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닌,
내가 느껴지는대로가 아닌 하나님의 시선으로,
하나님의 마음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며,
나라고 하는 이 교회를,
우리라고 하는 이 교회를
아름답게 지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