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사가 다른 하나님과 나의 이야기
24년 중고등부여름수련회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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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찬양의 열기가 이렇게 엄청나면 참 설교하는 사람입장에서 부담이 됩니다. 그래도 우리 중고등부가 연합해서 수련회를 진행하는 것이 참 은혜가 되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 저희 오늘 하루종일 돌아온 탕자 이야기를 했어요 내일도 계속해서 해 나갈 겁니다.
이 돌아온 탕자 이야기 예수님의 아주 유명한 비유 이야기중 하나이죠? 교회 오래다닌 친구들은 이 이야기 많이 들어 보셨을꺼 같아요 어때요 익숙하지 않으신가요?
그런데 이비유 이야기 예수님이 어떤 상황에서 꺼내신 이야기 인줄 아시나요?
이 탕자의 이야기는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님 말씀 한번 들어보겠다고 나왔죠 그런데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근거리는 겁니다.
저 예수라는 작자가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고 말이에요.
예수님께서는 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이런 마음을 푼고 있다는 것을 아시고 여러가지 비유로 이야기 하시기 시작 합니다. 양 백마리 있는 사람 비유, 잃어버린 드라크마를 찾은 여인의 비유, 그리고 오늘 이야기할 잃어버린 아들을 되찾은 아버지의 비유를 말이에요
자 그럼 오늘은 집회 첫날이니까 둘째 아들 탕자의 관점에서 말씀을 풀어 볼까 합니다.
둘째의 관심사
둘째의 관심사
같이 성경을 읽어보겠습니다. ppt
그 둘째가 아버지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버지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자 첫번째 들여다볼 파트는 바로 둘째의 관심사 입니다.
여러분 이 본문을 보면 둘째의 관심사가 어디에 있는지 쉽게 예측이 가능하죠? 어디죠? 바로 아버지의 재산 중 나에게 돌아올 분깃 입니다.
이 친구는 돈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요고 하나에만 노골적으로 관심이 있죠, “난 돈밖에 몰라 하나님 아버지 싫어” 하고 나가는 놈입니다.
보통 재산을 나눠 받는 시기는 아버지 죽었을때 인데, 이 탕자는 대담하게 아버지가 살아계신데 자신의 분깃을 달라고 요청하는 겁니다. 이야 보통 상상하기 힘든 불속성 효자인거죠
그런데 아버지도 보통이 아닙니다. 자기 아들이 이렇게 나오면 이놈의 자식 창고에 가둬놓고 한 일주일 굶기고 물만 같다주고 하면, 이친구 정신 차릴 겁니다. 아니면 그냥 뺨싸대기를 때릴 수도 있었겠죠
그런데 아버지는 그렇게 하시지 않습니다. 이 아버지는 보통분이 아닌 고단수에요 고단수, 이 이야기를 천천히 생각해보면 아버지는 처음부터 이 탕자가 아버지에 관심 없고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돈을 사랑하고 아버지의 재산에만 관심이 있는 아주 배응망덕한 불효막심한 놈이라는 것을 알아요 이걸 아는데 재산을 내어주십니다. 이게다 계획이 있으신 거겠죠
여러분 우리들도 이 세상에 나아왔을때 하나님께 재산을 받고 나온 사람들 입니다. 아니라고요? 저는 뭐 별거 없는데요? 저는 부자 아닌데요?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 밥 굶는 사람 있으십니까? 이 세상 살아가면서 공기 부족하신분, 태양의 따뜻한 열기가 부족하신분, 비가 안내려서 물이부족한 그런 삶을 살고 계신분 있으신가요?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것을 누리면서 살아가는 사람들 입니다. 심지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하나님께서는 똑같이 베풀어 주시는 중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주님이 주신 모든 것을 가지고 그것의 근본이 되시고 창조하신 아버지가 아닌, 돈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형통하게 사는 법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주님이 주신 그 모든 것을 우리는 허랑방탕하게 낭비하면서 살아갑니다. 이건 단순히 우리가 낭비하는 습관을 줄이고, 배달음식 덜먹고, 필요없는거 덜사고 하는 것에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의 문제는 하나님에게 가야할 관심이, 아버지에게로 향해야할 우리의 관심이, 쓸데 없는 것들에 가로막혀서 살아간다는 거에요.
저의 이야기를 조금 들려 드리겠습니다.
저도 참 쓸데 없는것에 가로막혀서 아버지를 떠났던적이 있습니다. 저번 겨울수련회 재탕같기는 한데, 저는 참 써레기 같은 인생을 살아더랩니다.
죄인하면 오태식이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가끔 믿는 사람’ 이었습니다. 더 정확히는 가끔 믿는 척 하는 사람 이였다는게 더 정확한거 같네요.
대학교에 딱 입학을 했는데, 참 세상이 재밌더랍니다. 그런데 기독교인이라는게 무슨 대수인지, 참 제약이 많다고 느꼈어요. 여러분 기독교인으로 사는거 힘들다고 느껴질때 있지 않습니까?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 말로는 참 쉬운거 같은데 직접하기는 참 어렵고, 뭐좀 재밌게 친구들이랑 놀려고 하는데, 대학생 되면 뭐하고 놉니까? 밤새 음주가무를 즐기면서 놀게 됩니다.
그런데 기독교인이라서 못합니다. 이런것들이 점점 싫어져서 저는 하나님을 가끔 믿는 사람으로 일요일에만 하나님을 믿는 척 하는 사람으로 몇녈을 살아갔습니다.
친구들과의 술자리도 즐겁고, 그들이랑 즐기던 유흥들도 참 재밌었지요. 얼마나 재밌는지 점점 교회는 안가게 되더랍니다. 가면 뭐해요 토요일부터 마신 술때문에 머리가 아퍼서 짜증만 나지, 괜히 교회가서 예배하면 죄책감만 늘어나지, 그래서 교회 안가버렸습니다. 그리고 학교도 휴학했습니다. 그때는 무슨 핑계대면서 그랬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노는거에 중독되서 그런거 같아요.
그렇게 저는 주님이 주신 그 분깃을 허랑방탕하게 낭비하면서 살았습니다. 나 오탕자의 관심사는 아버지가 아니였어요, 놀이였고 중독이였습니다.
이랬던 탕자의 삶을 살던 저에게 관심사를 바꾸어주는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허랑방탕한 삶의 끝에 나의 분깃 모두 잃어버리고
나의 손에도 없던 쥐엄열매 마저 없어지고 있었습니다.
이랬던 탕자가 국가의 신성한 의무를 하러 갑니다. 그런데 저는 비만이라 공익갔어요, 그런데 하나님이 이렇게 맛이 간 저를 쉽게 쉽게 보내주시지 않더라고요
저는 요양원에서 근무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 일이 힘들어지면 사람들 마음에도 날카로운 가시가 돋아납니다. 고3친구들 있는지 모르겠는데, 이 친구들 집에서 화한번 내면 장난 아닐꺼에요, 날카롭죠
요양원의 일들도 그렇더라고요, 마음에 날카롭게 나아있는 가시가 서로를 찌르는 곳이였습니다. 그렇게 서로 마음을 찌르다보면 저같이 연약한 사람은 마음에 상처가 납디다.
우울증이 저를 덥쳤습니다. 세상 유쾌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제가 우울해지니까 정신을 못차리더라고요, 여러분 우울증 오면 어떻게 되는줄 아십니까? 좀 많이 모자라 집니다.
무언가 일을 해야 하는데, 그 이유를 못찾겠는거에요, 그래서 점점더 나쁜 마음을 가지다가 결국은 터져버리고 맙니다.
그렇게 터져버릴거 같은 어느날 이었습니다. 한 친구가 오랜만에 교회가자고 전화를 해줬어요. 처음에는 별로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무슨 교회야, 옛날이라면 몰라도 지금의 나랑은 교회랑 어울리지 않아, 지금의 나는 교회에서 말하는 나쁜놈인데, 어떻게 가
그런데 그 친구가 끊임없이 저를 붙잡아 줬어요, 교회가자고, 교회가자고 그 친구의 끝없는 부탁에 교회를 갔습니다. 그런데 그날 설교시간에 참신기하게도 목사님이 이런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이런 눈물이 펑펑 나더라고요. 나혼자 하나님을 제단하고 있었단게 밝혀지더라고요. 저는 그전까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는 이유가 내가 교회 잘 나가고, 헌금 잘 내고, 찬양 열심히 해서 인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해서 우리가 바뀔 수 있는거지, 내가 잘해서 하나님이 날 사랑하는게 아니였어요. 예수님이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신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애끓는 사랑이라는 것을 그때 알게 되었습니다.
아버지에게 돌아가기전 탕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PPT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하늘과 아버지께 향한 죄가 나를 가로 막고 있다고 생각하고 아들로 더이상 못돌아가겠다고 나 자신을 그저 그렇게 보았는데 아버지는 다시돌아온 저에게 놀라운 이야기를 해주십니다.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아버지의 관심사 /밝혀지는 첫째의 관심사
아버지의 관심사 /밝혀지는 첫째의 관심사
이런 작은 놈을 이 작은 놈을 배응망덕하고, 불효막심한 놈을 그런 놈을 아버지가 맞아주시는 겁니다. 다 탕진하고 돌아왔는데, 이놈을 내쫓아도 종은 고사하고 곤장을 쳐서 내쫓아도 당장 죽여도 할 말이 없는 놈을 아버지가 어떻게 했다고요?
아버지는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고 살찐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아버지가 왜 이렇게 합니까? 왜 이렇게 하죠? 이 아들에게 알려주는 겁니다. 내가 니 애비라는 겁니다. 아버지의 관심사는 여기에 있습니다. 이게 가장 중요합니다.
내가 아버지 재산 다 말아 먹었는데도요. 그래도 “내 아들이야 그냥 이리 나오라”는 겁니다.
내 재산을 말아벅든 뭐를 했든 니가 내 아들이다. 넌 내 아들이 잖아. 어쨋든 내가 내 뱃속으로 낳은 내 자식이잖아.
아버지가 원하는건 이겁니다. 니가 내 아들이야 그런데 나는 아들은 고사하고 동만도 못합니다. 그런 아들을 아버지는 새옷 입히시고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벌이는 겁니다.
왜 내가 니 아버지니까
아버지가 원하시는건 첫째처럼 말 잘듣고 집에 있으라는 거아닙니다. 이런거 해야 아들이라는 아닙니다. 아버지는 내가 낳았기 때문에 아들이라는 겁니다.
집을 나가고 안 나가고 해서 다르지 않아요. 집 나온 놈이나 안 나온 놈이나 솔직히 말해서 그 속은 돈밖에 몰라요. 하나님 싫어요, 아버지 싫어요, 나면서 부터 돈만 좋아하고 나면서 부터 나밖에 모릅니다. 그래서 첫째놈은 아버지가 둘째 한테 잔치 베풀때 화를 바락바락 내는 겁니다. 그게 누구 돈이에요 아버지 죽으면 내돈인거에요 내돈
둘째 나갔을때 이렇게 생각한 겁니다. 동생이 챙겨 나갔으니 나머지는 내 것만 남았구나 이런 마음만 품고 있는 겁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오셔서 이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 한테 이러는 겁니다.
이 사람들 바리새인 서기관들이 그렇게 착하고 종교생활 열심히 하고 기도에다 금식에다가 구제에다가 선행에다가 도대체가 이렇게 사람들이 완벽할 수 있습니까?
그런데 이렇게 착하고 완벽한 애들은 외면하시고 주님께서는 어떻게 못된 애들만 골라서 사귀시는지 세리, 창기, 죄인들
그런데 우리들 부모님들 보면 야 친구 잘 사귀어야 한다. 요즘 보니까 질 안 좋은 애들이랑 놀던데, 그 질 안 좋은 애 집에 가보세요, 걔네 엄마가 뭐라 그러나 너 요즘에 질 안 좋은 애랑 다니더라 그 질 안좋은애가 내가 됩니다.
올바른 사귐이 대체 몹니까? 그래서 뭐에요?
그 주변에 항상 친구나 환경 이런 걸 조심해야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항상 좋은 친구를 사귀는 거 좋은 만남을 위해서 기도하고 좋은 친구들 사귀는 겁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예수님은 좋은 만남이 한번도 없어요. 하나님이 한번도 안주십니다. 맨날 누구만 만났어요? 창기 세리 뭔 좋은 만남이 있습니까?
좋은 만남 이 좋은 만남 자체가 웃긴 거예요 이 좋은 만남의 기준이 뭡니까? 좋은 친구의 기준이 뭐에요? 나보다 성적 높고 나보다 성ㅇ품이 좀 좋고 나보다 돈도 좀 많고 그러면 좋은 친구죠
그러면 그 친구한테 좋은 친구는 누구입니까?
나는 누굽니까? 좋은 친구가 돼요? 나쁜 친구가 돼요? 나쁜 친구가 되겠죠?
그럼 모두가 좋은 만남을 갖고 좋은 친구를 사귀려고 하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아버지 눈에는 이 집나간 놈만 탕자가 아니라 집 안에도 탕자가 있는겁니다. 둘 다 잃어버린 놈이에요. 그런데 차이점은 자기가 집나간 탕자라는 사실을 아는 탕자가 있고 모르는 탕자가 있다는 겁니다.
탕자 아니라는 탕자가 있고 탕자라고 하는 탕자가 있어요
돌아온 놈 집나갔다 돌아온 놈은 자신이 탕자라는 탕자에요 나는 100번 죽었다 깨어나도 탕자입니다. 집 안나간 놈은 나는 절대 탕자 아니라는 겁니다.
오늘 주님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주님이 오늘 본문이 있는 누가복음에서 이렇게 말씀하세요
하나님의 관심사는 첫째와 둘재와 같이 재산에 있지 않아요. 하나님의 관심사는 자신을 죄인이라 심히 애곡하는 저 아들들에게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죄인임을 알게 해주시는 은혜가 있습니다. 우리가 의인이라고 아버지 앞에서 뻣대다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해주시는 은혜가 있습니다.
저 바리새인들은 나와서 이 앞에서 서서 기도하고 주여 내가 토색하지 않고 불의하지 않고 소득의 심일조를 들이며 부재하고 음색하고 저 세리와 같이 아니한 것을 감사합니다. 하고 기도합니다.
세리와 같은 죄인들은 저 뒷구석에서 고개를 들지도 못하고 가슴을 치며 주여 죄인입니다. 하고 기도합니다.
죄인인건 하나님 앞에서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왜요? 우리가 이미 모두 죄인이거든요 그런데 죄인인데 자신이 의인인척 하는 것은 문제가 됩니다. 탕자가 재산을 낭비한 것에 아버지는 뭐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인지한 탕자를 끌어 안으십니다. 그의 필요를 채우십니다. 내가 잃었다가 찾았고 그가 죽었다 살아난 그 상황이 아버지의 관심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죄인임을 아버지께서 알게 하시고 우리가 하나님과 관계하는 것이 불가능한 존재임을 알게 하시고 오직 하나님의 자비와 공원 그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 되심이 그 자비로우심이 우리를 맞아주시고 새 옷을 입히시고 가락질 끼우시는 그 아버지의 긍휼 덕분이다라는 것을 그 아버지께 감사드리고 그 아버지가 빛날 수 있도록 아버지가 아버지 다워 질 수 있도록
피조물의 역활을 하는 그 아들 그들을 하나님의 백성이라 하고 또 성도라 칭하는 겁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탕자와 같이 죄인으로 아버지에게 돌아갈 죄인의 겸손한 마음이 있습니까?
아니면 여지껏 살아온 것이 뿌듯한 첫째의 오만한 마음이 있으십니까?
돌아갈 결심이 섰다면, 더이상 하나님과 다른 관심 같지 않고, 겸손한 마음으로 죄인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오겠다는 마음으로 우리 같이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릴 입술로 고백했으면 좋겠습니다.
아버지가 주신것 모두 잃어버린 멍청한 아들이지만, 아버지에게 다시 나아갈때 겸손한 마음과, 상한 마음 가지고 아버지께 나아갈때 아버지는 저 멀리보이는 우리를 보시고 뛰어 나오셔서 우리를 반겨주실줄 믿습니다.
오늘 우리 기도회가 남아있습니다.
수많은 여름, 겨울 수련회 기도회 많이들 참가하신거 압니다. 그런데 모든 기도의 순간은 새로운 고백과 결심의 장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시간동안 아버지를 부르짖고, 성령님의 감동이 우리에게 임하시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새롭게 겸손의 마음으로 아버지께 나아가는 한사람 한사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