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

요한복음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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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
[하나님의 말씀을 교독하여 읽겠습니다[요한복음 4:21-38]
21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22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 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 지니라 25 여자가 이르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이다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 하시니라 27 이 때에 제자들이 돌아와서 예수께서 여자와 말씀하시는 것을 이상히 여겼으나 무엇을 구하시나이까 어찌하여 그와 말씀하시나이까 묻는 자가 없더라 28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 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29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30 그들이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 31 그 사이에 제자들이 청하여 이르되 랍비여 잡수소서 32 이르시되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33 제자들이 서로 말하되 누가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는가 하니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35 너희는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36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라 37 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 38 내가 너희로 노력하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이 노력한 것에 참여하였느니라
[인사말-도입]
사랑하는 여러분, 한주가 평안하셨는지요? 오늘은 다시 요한복음으로 돌아와 이어서 살펴보겠습니다.요한복음 강해를 마치는 것이 올해 저의 목표인데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주님의 은혜만 의지하고 나아갑니다.오늘 4장 사마리아 여인을 조금 더 살펴보고 다음에는 5장으로 넘어 가겠습니다.지난 번 설교에서 예수님이 유대인의 핍박으로 예루살렘에서 갈릴리로 내려 가시는데 굳이 사마리아 땅을 지나가신 이유가 ‘수가’성의 사마리아 여인의 목마름을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요한복음 3장의 니고데모와 4장의 사마리아 여인은 신분과 처지는 다르지만 ‘죄’의 문제를 해결 못하는 본질적인 점에는 생수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결국 관계의 문제이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우리에게 주셔서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 막혀 있던 죄의 벽을 해결하시고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의 관계를 화평케 하셨다는 것까지 말씀을 드렸습니다.
[도입]
오늘 본문은 예수님과 대화를 통해 변화된 사마리아 여인의 모습을 살펴보고 제자들에게 주고자 하는 예수님이 주신 영적 교훈을 살펴보면서 우리 자신의 신앙과 믿음을 되돌아 보는 시간을 가지기를 원합니다. 먼저 오늘 본문과 지난번 설교 사이에서는 16-20절의 대화 내용이 생략되어 있습니다. 15절까지 대화를 잘 푸시다가 갑자기 예수님은 여인에게 남편을 데려오라고 하십니다. 그러자 여인은 남편이 없다고 말하고 예수님이 여인의 말을 인정해 주면서 여섯 명의 남편을 언급합니다. 여인은 놀라면서도 예수님에게 예배의 처소문제를 물어 봅니다. 예수님은 왜 여인의 치부를 물어 보셨을까요? 그것은 여인에게 수치를 주기 위함이 아니라 수치에서 회복시키고 온전하게 만드시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인은 감정이 상한 것인지 예배의 처소 문제라는 유대인과 사마리아인간의 난제이자 다툼의 근원적 질문을 던집니다. 20절의 질문이 그것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그리심 혹은 에발)에서 예배하였는데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서 예배하라고 하는데 어떻게 맞나요? 이런 질문입니다. 싸우자는 질문이지요^^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이 왜 원수가 되었는지 역사적인 내용을 지난 시간에도 조금 말씀 드렸는데요!~ 다시 살펴보겠습니다. 솔로몬의 사후 이스라엘이 두개로 나뉘어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로 분리되었는데 북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기원전722년에 멸망하고 남 유다는 바벨론에 기원전 590년 경에 망하게 됩니다. 이후 북 이스라엘은 앗수르의 민족 말살정책으로 이방인과 혼혈이 되어 순수성을 잃어 버리고 유다는 바벨론이 페르시아왕 고레스에 의해 멸망하고 칙령에 따라 70년만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물론 바벨론 유수의 10%의 인력만 귀향으로 하고 그 백성을 인도한 사람이 에스라와 느헤미아 입니다. 그 과정에서 사마리아에 있던 사람들이 유대인들의 정착을 방해하고 성전을 짓는 과정에 동참을 요구했으나 거절을 당하여 세겜 땅에 자신들의 성전을 짓고 서로 경원시 하게 되었습니다. 이후로도 주전 128년 유대 왕 ‘요한 히르카누스’사마리아의 성전을 파괴하는 일이 있고, 기원후 6-9년 유월절사마리아 인이 예루살렘에 몰래 와서 성전에 죽은 사람의 뼈를 뿌려놓는 일이 있었으니 그 관계는 매우 심각했습니다. 성전중심이 회당중심으로 변경됨 (제사중심이 말씀중심으로 전환됨, 제사장 중심이 서기관 바리새인)
[본론]
사실 예배의 처소를 놓고 싸우는 것은 종교적인 접근 태도입니다. 사마리아인도 유대인도 모두 예배의 처소를 두고 서로의 종교적 정통성을 주장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질문에 주님이 예상 못한 답변을 하십니다. 21절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21’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이 말씀에서 먼저 주님은 여인에게 믿으라! 고 하십니다. 우리는 논리에 근거한 사실을 증명하면 믿겠다고 하지만 믿음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만약 세상 지식과 과학이라면 그런 방법론이 유효하기도 하겠습니다만 근원에 대한 질문은 논리로는 설명 안되는 진리인 것입니다. 믿음은 논리에 근거한 사실 인식에 기반하지 않고 권위에 근거한 인식을 기반합니다. 예수님은 여인이 어떤 예배 처소가 맞느냐는 질문을 해체 하시고 예배에 처소에 관심을 두는 종교적인 물음에 예배의 대상으로 관심을 전환하는 관계적 신앙적 접근을 보여 주십니다. 오늘날 우리는 교회에 나왔다 예배 드리고 가면서 하나님을 만나지도 않고 돌아가는 많은 선데이 크리스찬을 봅니다. 그들의 관심은 예배의 처소 그 공간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이 오늘 말씀 하셨듯이 예배의 대상 되신 하나님에게 집중해야 될 줄 믿습니다. 예수님은 그러면서 잘못된 지식도 바로 잡아 줍니다. 22절, 사마리아인들이 알지도 못하는 것을 예배하는데 구원은 유대인에게서 나는 것이다. 아는 것을 예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요17:3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예배는 예배의 대상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입니다. 이어서 주님은 예배에 대한 중요한 가르침을 선포하십니다. 23-24절 함께 읽겠습니다. ‘23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 지니라’예배하다’ 는 누군가에 입을 맞추거나 존경을 표하기 위해 무릎을 꿇는 행위라고 합니다. 23절 이때는 헬라어 ‘눈’ 입니다. 지금이라는 뜻입니다. 여인의 앞에는 성전의 원형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여기서 영은 헬라어 ‘퓨네우마티’ (퓨뉴마 원형)로 성령 혹은 우리의 영을 말합니다. 진리는 헬라어 ‘알레테이아’ 로서 참, 사실, 진리입니다. 이것은 진리 자체인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기도 하며 우리 마음 중심의 진실함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사야는 하나님께 진심으로 드리는 예배를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사1:16~17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한 행실을 버리며 행악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 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예수님은 예배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신 것 같지만 그것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그 본질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즉, 성령이 오시면 우리가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되죠! 그러면 스스로를 깨끗하게 하고 선행을 배우고 약한자를 돕는 삶을 사는 것이 바로 예배라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구약과 신약의 예배는 실천적인 삶을 중요시 합니다.
이제 사마리아 여인은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한 예수님의 새로운 말씀을 듣고나서 이제 자신의 깊은 곳에 감추인 열망을 드러냅니다. 25절 한번 같이 읽겠습니다. ‘여자가 이르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이다놀랍게도 이 여인은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메시아가 오면 자신의 부끄럽고 상처받은 인생이 변화되고 왜 이런 삶이 자신에게 주어진 것인지에 대한 모든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소망했습니다. 4장 7절부터 시작된 예수님과의 대화속에 겉돌던 질문을 깨고 이제 진짜 질문을 합니다. 저는 예수님이 사마리아를 통과하여 이 여인을 만날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25절 말씀에서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 삶의 근본적인 질문에 답을 주실 메시아,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바랬던 한 여인! 인생의 성공과 안정과 남편 같은 것으로 채워질 수 없는 그 깊은 목마름을 채워 주실 분을 바라고 소망하는 한 여인, 그리스도를 기대하고 기다리는 한 여인을 예수님은 만나셨고 오늘도 우리를 만나주시고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히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고 사도는 권면합니다. 여인에게 드디어 제대로 된 질문을 받으신 예수님은 26절의 정답을 말씀해 주십니다. 26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 하시니라’ 주님은 신적인 본질을 드러내십니다. ‘에고 에이미’ 내가 네가 찾는 그 존재이다’ 말씀 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에게 어떤 질문을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오늘 사마리아 여인은 그리스도가 오시면 우리에게 모든 것을 알려 주시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그것을 물었습니다. 그러다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우리는 어떠한 삶의 질문을 가지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고 계시나요? 사마리아 여인처럼, 물에 대하여, 예배장소에 대하여, 현실적인 필요와 종교적인 관심을 가지고 나아가시나요? 아니면 우리의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실 진리이신 메시야, 그리스도를 소망하고 그분 자체, 하나님을 구하는 질문을 하시나요?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은혜를 누리시는 저와 여러분 되길 예수님 이름으로 간절히 권면 드립니다.
에고 에이미’ 라는 표현은 요한복음에 8번 나옵니다. 생명의 떡(6:35), 세상의 빛(8:12), 양의 문(10:7,9), 선한 목자(10:11,14), 부활이요 생명(11:25), 길, 진리, 생명(14:6), 포도나무(15:1) 이렇게 술부와 함께 나오고 오늘 본문 4:26에 독립적으로 나옵니다. 이 표현은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을 표현하는 방식입니다. 출3: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수 없는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부를 때 사용하던 표현입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자신을 말씀 하셨듯이 성육신 하신 하나님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자신을 드러내신 사건인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 마음 중심을 보시고 하나님을 향한 열정, 기대감을 가지고 있는 자를 만나주시고 자신을 드러내시는 하나님 입니다. 모세를 만나주시듯,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주시듯, 오늘 우리를 만나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삶이 바뀌고 가치가 전도됩니다. 이전에 중요하게 여기던 것이 더 중요한 것으로 인하여 뒤로 미루어 집니다. 28절을 보십시오! 여인은 물동이를 버려두고 사람들에게 자신이 만난 그리스도를 전하고 있습니다. 목마름을 해결해 줄 수단인 물동이를 어떻게 이렇게 쉽게 버릴 수가 있었을까요? 그리고 29절~30절 읽어볼까요?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30그들이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 여기서 복습 한번 할까요! ‘보라’ 가 헬라어로 뭐라했죠? ‘에이돈’ 입니다. 요한복음 1장 빌립이 친구 나다나엘에게 예수님을 소개할 때 동일한 동사를 씁니다.’ 와서 보라’ 이것은 하나님이 하신 일을 보라!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35절에 ‘보라’ 는 동사가 나오는데 이것은 헬라어 ‘떼아오마이’ 로서 ‘주목하여 응시하는’ 뜻인데 이는 적극적인 시선을 말합니다. 정리하자면 ‘에이돈’ 은 와서 직접 경험하여 보는 것을 의미한다면 ‘떼아오마이’는 주목하여 눈으로 응시하는 것을 말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와서 보는 것입니다. 삶을 함께 하고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사람들(교회가)의 삶이 어떻게 세상과 다른 가를 와서 보고 경험하여 맛보아 아는 것을 말합니다.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전단지를 주어서 복음의 지식을 전하는 것만이 아니라 전인격적인 삶을 관계를 통해서 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우리에게 또한 경고하고 주의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할 때가 되었다. ‘아직’ 의 느긋함보다는 ‘이미’ 의 긴박함이 우리 말세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영적인 유익이 있음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구원을 인식하는데 있어서는 ‘이미’ 라는 인식이 ‘아직’ 이라는 불안함 보다 안전합니다.
이후 32절부터 38절까지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영적인 의미를 알려주시는 내용입니다. 제자들이 음식을 구해와서 예수님에게 드리며 잡수시기를 청하자 예수님은 32절에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말씀하십니다. 33절에 제자들이 무슨 말씀인지 감도 잡지 못하자 34절에 답을 풀어 주십니다.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여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잃어버린 양을 찾기 위해서 입니다. 그 방법은 죄의 노예로, 사탄의 종으로 살아가는 인간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그 결과로 우리의 죄를 속량(갑을 지불하심)되었고 하나님 아버지와 화평하게 되었습니다.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 땅에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이 확장되는 ‘하나님 나라’ 를 이루는 것입니다. 요8:29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아멘!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과 대화하고 질문을 통해 올바른 자신의 질문을 통해 답을 찾아 간 반면 제자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27절 한번 같이 읽어 볼까요? ‘27이 때에 제자들이 돌아와서 예수께서 여자와 말씀하시는 것을 이상히 여겼으나 무엇을 구하시나이까 어찌하여 그와 말씀하시나이까 묻는 자가 없더라’ 제자들은 궁금해도 질문을 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자신이 안다고 생각해서 그렇습니다. 대충 분위기 보니 알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우리는 익숙해 지고 친숙해 지면 그것을 안다고 착각을 합니다. 교회를 좀 다니면 하나님을 안다고 착각합니다. 그것은 익숙해 진 것이지 아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지식에 대하여 경고 합니다. 고전 8:2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 탐구하려는 마음이 사라지고 질문이 사라집니다. 따라서 아는 것은 무지의 시작이라고 합니다. 오늘날 교회안에는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이 이런 함정에 빠져 있는지 모릅니다. 제자훈련 한 번 받았다고, 리더였다고 더 이상 공부하지 않고 훈련 받지 않는 사람들로 교회가 가득 채워지고 있습니다. 영적 실력은 자연적인 사실이 아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눈을 들 수 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35절‘너희는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자연적인 사실은 파종 후 넉 달이 지나야 수확을 하는 것이 이치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이치는 그렇지 않다고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그런 믿음의 눈으로 수확을 나서는 추수꾼에게 주님은 이미 삯을 지불하셨고 즐거움도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심고 거두는 것은 특권입니다. 부르심을 받은 우리는 모두 심고 거두는 자의 특권을 부어 받았음을 알아야 합니다. 일하지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않는 우리를 의롭다 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우리의 믿음을 주님은 의롭게 여기십니다. 뿌리지 않은 것을 거두게 하시며 수확의 기쁨으로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결론]
설교를 마무리 하겠습니다. 요한복음 3장의 니고데모와4장의 사마리아 여인은 매우 독특합니다. 니고데모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자이고 사마리아 여자는 세상에서 가장 신분이 낮은 자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지위와 신분과 관계없이 영적인 목마름속에 고통 받고 있었습니다.이 세상 길은 어떤 선택이던지 근원적인 목마름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 되심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형편이 어떠하든 예수님과 함께하면 우리는 기쁨과 생명을 얻습니다.더이상 갈증으로 헤매지 않아도 됩니다. 삶이 변화되고 가치가 전도됩니다. 이전에 소중했던 성공과 물질의 부, 명예와 권력이 더 이상 의미를 가지지 못합니다.온 우주의 창조주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시는 여러분! 하나님 한분만으로 충분하십니까?그리스도인이 된 우리는 더 이상 믿음으로 성장하지도, 주님께 질문하지도 않고 있지는 않은지요? 그렇다면 스스로를 돌아보아 주님이 에베소 교회에 주신 경고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계2:4-5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정직한 자를 기뻐하십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정직하게 자신의 영적인 상황을 바라봤고 주님 앞에 나아 왔습니다.니고데모도 정직함으로 주님 앞에 영생을 구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만난 성경의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문제를 솔직하게 주님 앞에 내려놓고 도움을 구했고 모두 구원을 받았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메시야 그리스도 예수님 앞에 우리의 모든 것을 고백합시다. 겸손히 그분의 도움을 구하고 무릎을 꿇고 예배합시다. 우리 찬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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