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증거

요한복음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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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증거’(아버지와 아들)
[인사말-도입]
샬롬! 한주일 동안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시느라 얼마나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애쓰셨습니다. 우리 서로 보고 인사로 격려했으면 좋겠습니다. “한주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말씀을 같이 교독 하겠습니다.제가 먼저 읽겠습니다. 하나님 말씀입니다. 마지막 절은 함께 읽겠습니다.
[요한복음 5:31-47]
31.내가 만일 나를 위하여 증언하면 내 증언은 참되지 아니하되 32.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는 이가 따로 있으니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는 그 증언이 참인 줄 아노라 33.너희가 요한에게 사람을 보내매 요한이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였느니라 34.그러나 나는 사람에게서 증언을 취하지 아니하노라 다만 이 말을 하는 것은 너희로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
35.요한은 켜서 비추이는 등불이라 너희가 한때 그 빛에 즐거이 있기를 원하였거니와
36.내게는 요한의 증거보다 더 큰 증거가 있으니 아버지께서 내게 주사 이루게 하시는 역사 곧 내가 하는 그 역사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나를 위하여 증언하는 것이요 37.또한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친히 나를 위하여 증언하셨느니라 너희는 아무 때에도 그 음성을 듣지 못하였고 그 형상을 보지 못하였으며 38.그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가 보내신 이를 믿지 아니함이라 39.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40.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41.나는 사람에게서 영광을 취하지 아니하노라 42.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
43.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너희가 영접하지 아니하나 만일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오면 영접하리라 44.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 45.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발할까 생각하지 말라 너희를 고발하는 이가 있으니 곧 너희가 바라는 자 모세니라 46.모세를 믿었더라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 47.그러나 그의 글도 믿지 아니하거든 어찌 내 말을 믿겠느냐 하시니라
[서론]
직장인들의 이직과 퇴직 이유를 묻는 설문조사 결과에 65%가 대인관계의 문제라고 합니다. 급여조건과 근무환경이 제일 높을 것 같은데 의외의 결과이지요! 그런데 제가 이전에 컨설팅회사에 있으면서 많은 퇴직자들을 상담해 본 경험은 다릅니다. 오히려 저의 경험으로는 90%가 넘는 사람들이 조직안에서 관계의 문제로 회사를 떠나거나 변화를 맞이하게 됩니다. 외적인 요건인 급여와 근무환경도 문제가 되기 시작하는 것은 관계의 문제에서 비롯되는 경우를 봅니다.이처럼 인간에게는 서로 간의 관계를 맺고 상호관계를 이해하는 문제가 매우 중요합니다. 사실상 복음의 핵심도 관계의 회복입니다.
지난번 설교에서는 요한복음 5장의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대하여 다루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과 성전과 하나님의 이름을 지키는 것을 종교적인 절대기준으로 삼았습니다. 따라서 38년된 병자를 안식일에 고쳐 주었다는 이유로 예수님을 죽이려 했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행위를 통해 스스로를 거룩한자와 그렇지 않는 자로 구별하며 살았던 유대인에게 예수님은 당신을 안식일의 주인이고 하나님이 친아버지고 자신을 아들이라 선포합니다. 이 아들은 상속자이며 아버지에게 심판을 위임 받았으며 이 아들을 말미암지 않고는 생명을 얻을 수 없다고 하십니다. 선한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자는 심판의 부활을 맞이 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을 통해서 당신의 증언이 참이고 이를 증언하시는 증언자가 있음을 언급하는데 첫째는 세례자 요한이고, 둘째는 자신이 행하신 일이고 셋째는 성부 하나님이시고 넷째는 성경말씀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세를 언급하며 하나님과 예수님의 관계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라는 것을 확증합니다. 이 관계를 아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그 동기와 근거가 사랑이고 이 사랑이 바로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요17:26절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그들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 라고 말하며 또한, 요17:21절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기록했습니다. 믿으면 되지 복잡하게 무슨 증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다면 오늘 본문 34절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4.그러나 나는 사람에게서 증언을 취하지 아니하노라 다만 이 말을 하는 것은 너희로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 주님에게는 사람의 증거가 필요 없지만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이 말씀을 하신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관계의 증거를 살펴보는 것이 우리에게 유익이 되는 것은 분명합니다. [헬라어 ‘스토르게’ 입니다. 이 사랑은 부모가 사랑때문에 자녀에게 자신의 전부를 보여주고 자녀도 사랑 때문에 부모의 전부를 따르는 것을 말합니다. ]
[본론]
예수님은 30절에 보면 스스로 심판이 의롭다고 하시면서 자기 증언을 하십니다.그러나 31절-32절에 자기가 자기를 증언하는 것은 참되지 않다고 하는 모순적인 진술을 합니다. 하나님은 증언이 필요하지 않으신 분입니다. 그분은 영원히 진리이시고 참되신 분입니다. 증언하는 자는 보통 중언을 받는 자보다 더욱 진실하고 믿을 수 있는 존재입니다. 성경에서 ‘증언하다’는 능동태 동사 ‘마르티레오’를 증언이라는 명사’마르티리아”보다2배나 더 자주 사용합니다. 총 76번 사용합니다. 증인과 증언은 신뢰성과 객관성이 중요합니다. 그렇기에 어떤 대상을 증언한다는 것은 그 대상보다 더욱 신뢰성과 객관성이 더욱 높을 경우에 타당하고 유효하다고 하겠습니다. 그것이 31-32절에 나오는 단어 ‘참’으로 번역된 ‘알레떼이아’ 곧 진리인 것입니다. 유대인의 율법에 의하면 신19:15 ‘사람의 모든 악에 관하여 또한 모든 죄에 관하여는 한 증인으로만 정할 것이 아니요 두 증인의 입으로나 또는 세 증인의 입으로 그 사건을 확정할 것이며’ 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리이신 예수님이 자신을 증언하는 증인을 변증함을 바로 신적인 권위를 내려 놓으심을 의미합니다. 30절 말씀이 맞지요! 그러나 31-32절로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수준에 맞추어 설명을 해주시기 위하여 자신을 낮추심을 봅니다. 그러면서 33-35절은
첫번째 증인으로 세례자 요한을 말씀하십니다. 그 당시 많은 유대인들이 세례자 요한을 알았고 믿었으며 그의 말을 옳게 여겨 세례를 받았습니다.그의 증언이 진리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그 요한이 예수님을 어떻게 증언하셨습니까?요1:29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 1:33-34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실 이 인줄 알라 하셨기에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중언하였느라 하니라’ 또 35절은 요한을 등불로 표현합니다. 등불은 헬라어 원어로 ‘뤼크노스’입니다. 제한적인 등불이고 빛을 드러내는 수단입니다. 4복음서인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빛으로 설명됩니다. 이는 헬라어 ‘포스’입니다.사도 요한은 빛과 등불을 구분하여 주의 깊게 단어를 사용하고 있음을 봅니다. 우리도 빛의 자녀라고 하고 빛이 되라고 하지만 우리가 빛은 아니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빛을 비치는 발광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두번째는 36절에 보면 예수님이 하신 일이 증언을 한다고 말씀하십니다.내게 주사 이루게 하시는 역사’ 예수님이 성육신 하셔서 그동안 보여주신 일들이 그것을 증거한다는 말입니다. 요한복음3:2절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찾아온 이유가 이것입니다 ‘요3:2 ‘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동안 수없이 많은 병자를 치료하시고 하나님 나라 복음을 선포하시고 제자들을 가르치셨습니다.요17:8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며 그들은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 주님만큼 이 세상에서 사신 성인이 있습니까? 어떤 종교의 창시자도 예수님 같이 온전한 삶을 살아간 사람은 없습니다. 그분이 하신 일들이 그분이 하나님이심을 증거합니다.
세번째는 성부 아버지가 직접 증언하십니다. 마3:17’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오늘날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는 직접 듣지 못하지요! 말씀을 통해서 성령으로 역사하는 믿음으로 듣습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을 지난 시간에 말씀 드렸습니다. ‘성부하나님은 성자안에서 성령을 통해 일하시고 성자 하나님을 성부로부터 성령을 통해 일하시고 성령 하나님은 성부와 성령으로부터 일하신다’. 성부 하나님은 성자이신 말씀 안에서 성령을 통해 심비로 우리에게 새겨집니다. 그것이 신비입니다. 지금도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분은 강제하지 않으시죠! 우리가 눈을 감고 귀를 막고 그분의 말씀을 듣지 않습니다. 계3:20‘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네번째는 증언은 성경입니다. 이 당시에 성경은 70인역 입니다. 히브리어 모세오경 및 선지서 등을 헬라어로 번역한 성경입니다. 39-40절 입니다. 유대인들은 성경 연구의 대가들입니다. ‘쉐마’라고 하지요! 신6:4-9절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유대인들은 손목에 ‘테필린’이라는 경문을 매고 다녔습니다. 유대인은 4-13세에 토라(모세5경)을 암송하는 것으로 성인식을 대신합니다. 그들은 생명을 얻기 위하여 성경을 연구했습니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성경을 잘못 이해했습니다.이를 사보 바울은 롬10:2-3에’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성경을 제대로 이해했다면 딤후3:15 말씀처럼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되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위에서 언급한 4가지 증언들을 받지 않는 이유를 41-43절은 통해 말씀합니다. 첫째는 그들이 사람의 영광을 취하기 때문이고/ 둘째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은 예수님이 자기 이름이 아니라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유대인들은 사람의 영광을 구했습니다. 마23:5-7 ‘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나니 곧 그 경문 띠를 넓게 하며 옷술을 길게 하고 잔치의 윗자리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그래서 주님이 마23:3절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얼마나 엄중하고 뜨끔한 말씀입니까? 이 경고의 말씀을 주님의 말씀으로 듣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42절을 보면 주님이 그들이 사람에게서 영광을 취하는 이유의 근원을 명쾌하게 정리하십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사랑하는 대상의 영광을 추구합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의 영광을 추구하고 돈을 사랑하는 자는 돈의 영광을 추구합니다. 돈만 있으면 최고인줄 알고 쉽게 무시하고 그것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습니다. 명예를 사랑하고 쾌락을 사랑하는 자는 그것의 영광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곧 자신입니다. 그것이 사라지고 제약 받고 도전 받으면 불같이 화가 나고 참을 수가 없는 이유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발언은 유대인들에게는 정체성을 뒤흔드는 발언입니다. ‘쉐마’라고 해서 말씀을 손에 붙이고 이마에 붙이고 외우는 그들에게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들이라는 평가는 놀라운 것입니다. 우리 안에 어떠한 사랑이 있는지가 우리의 인생을 좌우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스스로 속이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속지 않으십니다. 43절을 보면 사랑의 결핍이 드러나는 행동은 배척입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도 자신과 의견이 다르면 배척하는 모습을 봅니다. 여론을 조장해서 자기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대립도 불사합니다. 인간의 마음이 부패한 증거입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없으면 세상의 것처럼 사람의 영광을 구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중요하고, 보여지는 것이 중요하고, 원하는 것이 충족되지 않을 때,화를 주체할 수가 없습니다. 편을 가르고 배척합니다. 세상에 이단과 경건하지 않은 자들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이름이 아니라 안산홍의 이름으로 문선명의 이름으로 이만희의 이름으로 와서 사람들의 추앙을 받고 있습니다. 이것은 모두 자기 욕망의 투사입니다. 44절 말씀은 그런 사람들의 결국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44.’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 이런 이들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께로 나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칼빈은 이런 허영속에 빠진 인간들을 ‘인생의 비참함을 모르고 감각이 마비된 무지의 존재’라고 말합니다.
45-47절은 마지막 증언자가 나옵니다. 바로 모세의 소환입니다. 유대인들의 급소를 치십니다. 고발자가 있는데 그가 너희가 보기를 원하는 모세라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모세가 자신들의 변호자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율법을 선포한 사람이고 그들은 모세오경을 달달 외우고 있는 율법학자들이기에 모세가 자신들이 옳다는 것을 증명해 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희망사항은 모세가 고발자라는 말로 산산 조각이 나버립니다. 우리도 예수의 제자라고 여기면서 제자답지 않게 스승의 말씀을 읽지도 않고, 심지어 모르고, 실천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전혀 상반된 행동을 (이웃사랑이 아니라 자기사랑)한다면 자칭 모세의 제자라고 하던 유대인들이 예수님의 정죄를 받았듯이 우리 또한 예수님의 제자가 아닐 가능성이 더 높지 않겠습니까?
[결론]
최근에 하버드 임상심리학 교수였던 조던 피터슨 교수의 유튜브 영상 ’당신이 그리스도인이라고? 를 보고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요지는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쉬운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단순히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고 믿는다는 것이 아니라 그 믿음대로 살아가는 것이 진짜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생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는 믿음을 자발적인 직면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데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이고 이것은 자신의 삶 전체를 거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펑범하고 안정적인 삶을 추구하는 사람은 결코 결단하기 쉬운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완전한 것, 모든 것을 벗은, 낮아지는 것, 박해를 받는 고난을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의미를 생각해 봅시다. 과연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를 수 있습니까? 이 질문에 ‘예스’라고 대답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이 그리스도인 입니다. 대답하지 못한다면 주님이 심판의 날까지 내버려 두는 염소일 뿐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언하는 5가지, 세례자 요한, 성경, 성부하나님, 모세, 스스로 하신 일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박해의 시기에 자신들을 표현하는 상징으로 물고기 그림인 ‘익투스’를 그렸습니다. 그 안에 글자는 5단어의 헬라어 알파벳을 모아서 읽은 것입니다. 화면을 보겠습니다. 번역하면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구주’ 입니다. 신앙의 고백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이것은 너무도 중요한 관계입니다. 하나님이 본질은 한 분 이시지만 세위격을 가지고 계시고, 성부 아버지,성자 예수님, 보혜사 성령님이 서로 사랑의 관계로 존재하며 그 사랑의 관계속에 우리를 초대하셨다는 것,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도 아버지 하나님 자녀됨의 권세로 그분과 연합되었다는 것, 이것이 복음의 핵심이고 이 가운데 자유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는 선언은 오늘도 우리에게 선포되어지는 유효한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우리 함께 말씀이 육신이 되어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을 찬양했으면 좋겠습니다. 말씀안에서 경외함으로 주께 나아갑시다. 말씀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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