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도쉬-내가 여기 있나이다!

구약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5 views
Notes
Transcript
카도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교독하여 읽겠습니다: 사6 :3-10]
3.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4.이같이 화답하는 자의 소리로 말미암아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성전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5.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 6.그 때에 그 스랍 중의 하나가 부젓가락으로 제단에서 집은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7.그것을 내 입술에 대며 이르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8.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9.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10.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하시기로
[인사말-도입]
인사하겠습니다. 당신은 거룩한 성도입니다. 제가 얼마전에 깜짝 놀란 사실을 알았습니다. 성도님들이 설교 제목을 모르고 예배에 온다는 사실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저도 불과 1년전 그랬다는 사실을 깜박 잊어버렸다는 것입니다.설교제목을 보면 ‘카도쉬’라고 써 있을 겁니다.거룩함의 히브리어 단어가 ‘카도쉬’ 입니다. 옆에 계신 성도님 얼굴을 한번 보시고 서로 이름 아시죠! 이렇게 인사한번 하겠습니다. “카도쉬 000 집사님, 권사님”
좀 오래된 일이지만 여러분도 잘 아는 친한 권사님 한 분과 가깝게 지내다 보니 가끔 싸웠던 적이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제가 곤란함을 겪게 되는데 그것은 그분이 제가 기억도 못하는 예전의 일로 저를 책망하는 것입니다. 요즘 같아서는 내가 얼마나 지금 잘해 주기에 10년도 더 오래전 이야기를 끌어 올 수 밖에 없을까? 하고 내 자신에 대하여 감탄을 하겠지만 그 당시에는 매우 마음이 상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얼마나 잘해 주는 것이 많은데 그것들은 모두 잊어 버리고 티끌 같은 허물을 붙잡고 그러냐~참 감사할 줄 모르는구나! 정말 독한 집사 만나서 고생 좀 해봐야 정신차리지” 속으로요~ 여기서 저는 두가지를 생각합니다. 첫째, 은혜를 기억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예배는 구원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제가 웃픈 이야기로 전해 드렸지만 우리는 얼마나 빨리 하나님의 은혜에서 멀어지는지 모릅니다.예배는 첫사랑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둘째, 우리는 대부분 자신에게 관대합니다. 보편적으로 자신을 괜찮은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으세요? 그래서 관계에서 갈등이나 다툼이 있을 때 대부분 자신이 억울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분은 은혜 받은 분입니다.아내에게 “내가 해준 게 얼만데 고맙게 생각안하고 불만만 가지고 있다고 생각 안해보신 남편분들 계신 지요?” 혹은 남편에게 “내가 더 사랑하는 게 억울하다, 힘 빠지면 보자!” 이런 분 계십니까? 세상은 항상 상대적입니다. 비교하고 상대적으로 무게를 달고 경쟁을 하고 평가를 합니다. 그러다가 오늘 본문의 이사야처럼 하나님을 만나면 그 삶이 변하게 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5절이 이렇게 말합니다. 같이 읽어볼까요?. 5절:.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하였더라’ 오늘은 이사야의 소명과 부르심을 통해서 오늘날 교회인 저와 여러분 에게도 말씀하시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본론]
이사야는 유대 예루살렘에서 활동한 선지자로서 우리가 잘 아는 대선지서인 이사야서를 기록한 선지자입니다. 이사야서는 구약의 복음서라는 별명에 맞게 예수님의 사역과 관련되어 신약에서23번이나 언급된 선지서 이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말씀을 하나만 살펴보자면 53:5-6 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6장은 이사야의 소명장이라고 합니다. 특이하게도 대부분 선지서를 보면 글의 시작부터 자신의 소명을 밝히는데 이사야서는 특이하게 6장에 와서야 소명이 나옵니다. 6장 이전에 1,3,5장은 심판을 2,4장은 회복을 선포하는 메시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사야서는 크게 보면 회개의 촉구와 심판 그리고 구원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즉 우리의 부정함과 죄를 회개하라고 촉구하면서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이고 회개를 하면 하나님의 구원과 회복이 은혜 가운데 이스라엘에게 임한다는 메시지입니다. 특히 ‘이스라엘의 거룩한자’ 라는 말은 구약에 총 31회 나오는데 이사야서에만 25회 나옵니다. 본문 3절에도 반복되어 나옵니다. 3절.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하나님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함을 선포합니다. 이 말씀은 신약 요12:41‘이사야가 이렇게 말한 것은 주의 영광을 보고 주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 우리 하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입니다. 그 거룩함 앞에 우리가 설 수가 있나요? 네! 설수가 있습니다. 어떻게요? 거룩하지 않은 나의 모습을 인정할 때입니다.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하나님 앞에 인정하고 회개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은혜로우신 성품을 따라 그분 앞에 설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역설의 신비입니다. 1-5장까지 이사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과 그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 그리고 회개하면 하나님이 회복을 주신다고 백성들의 죄악을 신랄하게 지적했습니다. 그런데 5절 말씀 후반부 거룩하신 만군의 여호와를 보게 되자 자신이 죄인이고 부정한 자라는 것을 고백하고 있지 않습니까?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의 공통점은 자신의 죄를 보게 되면서 타인의 죄와 허물을 정죄하지 않고 안타까워 하게 됩니다.
제가 글로벌 컨설팅 회사에 근무할 때였습니다. 학력과 경험도 미천하고 영어도 능통하지 못한 제가 어떻게 그 회사에 들어갔는지 지금도 이해가 안됩니다. 35세에 첫 임원이 되어 그 당시 잘나가던 컴퓨터 회사에 보드 미팅에 가서 프로젝트 브리핑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담당 글로벌 CHRO가 미국인인데 프로젝트의 질적 성과에 대하여 공개적으로 비판을 하는 것입니다. 2000년초만 해도 컨설팅 산업의 전성기여서 컨설턴트에게 고객사에 절대 잘못을 인정하면 안된다는 교육을 받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프로젝트의 오류에 대하여 시인을 합니다. 그리고 오류가 시작된 부분에서 다시 수정하여 보고를 하겠다고 솔직하게 말합니다. 그 고객은 여전히 저와 메일을 주고 받으며 제가 커리어를 이어가는 동안 레퍼런스 체크를 해줍니다. 세상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데 두려움을 가집니다.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역설적으로 솔직하게 잘못을 인정하는 사람을 사람들은 좋아하고 함께하려고 합니다. 그것이 제 직장생활의 비결이었습니다. 그런데 저의 이런 태도가 어디에서 나왔겠습니까? 여전히 실수 투성이고 육체를 따라 덕이 되지 않은 죄의 습성을 지니고 있는 연약한 사람이지만 로마서5:8절’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복음의 말씀이 내 안에 와서 뿌리내리자 담대한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로마서8:31-34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죄인은 그분의 진노를 감당할 수 없어 소멸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본능적으로 심판에 대한 두려움을 지닙니다. 죄인에게 두려움은 거짓과 회피를 낳습니다. 하나님 앞에는 의인만 설 수 있는데 하나님을 반역한 아담의 원죄로 모든 인류는 하나님과 분리되어 사망의 심판에 놓이게 됩니다. 오늘 이사야는 그런 형편에서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서게 되었으니 5절의 탄식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이는 존재론적 탄식인 것입니다. 죄인으로서 하나님 앞에서 소멸될 운명에 처한자의 탄식이 흘러나옵니다. 그때 6~7절의 반전이 나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6.그 때에 그 스랍 중의 하나가 부젓가락으로 제단에서 집은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7.그것을 내 입술에 대며 이르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하나님의 은혜로 사죄의 선포와 회복이 일어납니다. 오늘날도 그렇습니다. 자신이 괜찮은 사람이고 완전하지는 않더라도 부분적으로 괜찮은 면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거록하신 하나님을 만나게 되면, 그의 속사람, 깊은 곳에 있는 영의 탄식을 통해 회개의 길로 나아가게 됩니다. 오늘 이 밤에 저와 여러분에게 카도쉬 하나님! 그분을 만나고 내 안에 부정함과 더러움과 하나님을 대적하여 높아진 자아를 발견하고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는 착각의 선수들입니다. 오늘 우리가 수요예배로 모였지 않습니까? 주님의 은혜로 우리가 이 자리에 있음을 믿습니다. 주님의 부르심 가운데 우리가 여기 예배자의 자리에 서 있음을 믿습니다. 스스로 자랑할 것이 있습니까? 내 힘으로 한 것이 있어야지 자랑하지요! 맞습니까? 주님이 부르시고 붙들어 주시기 않으시면 우리는 예배자가 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우리의 구원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예배입니다. 이스라엘 예배의 목적은 그들의 구속자 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언약을 기억하는 것이었습니다. 출19:5-6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여기서 나오는 거룩한이 ‘카도쉬’ 입니다. 이것이 이사야서의 중심 단어이고 핵심
주제입니다. 구별된 자, 이것이 믿음안에 있는 우리의 정체성입니다. 누가 거룩한 백성입니까? 거룩한 하나님을 만나고 자신의 부정함 때문에 절망하는 자입니다. 부정한 백성들 가운데 있으면서 자신의 부정을 고백하는 자입니다. 자신의 불가능을 탄식하는 자입니다. 이것이 거룩의 역설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사야 개인이 소명을 받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지만 사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아갈 길을 보여 주는 것이고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 가운데 부르심을 받은 모든 성도들의 길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오늘날 성도의 부르심에는 두가지가 함께 있습니다. 출애굽기 19장 말씀속에서도 거룩한 백성으로 부름 받은 이스라엘 백성이 제사장 나라로 나아가야 하듯이 성도들에게는 구원으로의 부르심과 제자로의 부르심이 같이 공존합니다. 이것은 구분은 되지만 분리는 안됩니다.(칭의와 성화)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면 반드시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살아가야 합니다. 8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8절.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오늘 이사야가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나고 자신의 부정함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후에 하나님이 물으실 때 ‘내가 여기 있나이다’ 외치듯 저와 여러분도 외쳐야 합니다. 아담 이후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뜻을 온전하게 순종하여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이룰 때까지 / 인류의 역사는 실패의 역사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의 승리가 우리의 승리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고 이루신 일에 우리는 동참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사야가 ‘내가 여기 있습니다. 나를 보내소서!’ 할 때 그 길이 평탄한 길인지 고난의 길인지 살펴보고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어떤 길이든 하나님이 가라 하시는 그 길에 선하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 지리라는 믿음으로 일어났습니다. 실제로 하나님은 9-10절 말씀에 선지자를 보내면서 사람들이 네 말을 듣지 않을 거라고 말씀하십니다. 한번 9-10절 말씀을 읽어 보겠습니다. 9.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10.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하시기로’ 참 이상합니다. 선지자를 백성에게 보내면 그들이 말을 듣고 회개하고 돌이키라고 보내는 것이 상식이 아닌가요? 그런데 하나님은 사람들의 마음을 둔하게 하고 귀를 막고 눈을 감기게 한곳에 이사야를 보내서 말씀을 선포하게 하십니다. 그러자 이사야가 하나님에게 때를 묻습니다. 하나님 어느때까지 이들의 눈과 귀를 막고 마음을 둔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13절에 거룩한 씨가 이 땅에 그루터기라 하시며 그리스도의 도래를 예언하게 하십니다.
신약성경에서 ‘보다’ 라는 단어로 334회 쓰여진 단어가 있는데 헬라어 ‘에이돈’ 입니다. 여기서 ‘보다’ 는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보다’ 는 의미를 가집니다. 오늘 본문에 이사야가 5절에 하나님을 ‘보았다’ 가 헬라어 70인역경에 ‘에이돈’ 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이사야가 카도쉬, 거룩하신 하나님을 보고 자신의 부정함을 알고 탄식하며 회개할 때 하나님의 구원과 은혜가 임했듯이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고 말씀을 귀로 듣고 눈으로 볼 때 구원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베푸신 은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행하신 은혜를 여전히 이스라엘에게 그 분의 섭리가운데 지연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오늘 이렇게 말씀을 듣고 이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받아서 믿고 아멘 한다는 것이 놀라운 하나님이 은혜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결론]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이사야 6장 말씀을 통해 몇가지 우리가 적용해야 할 점을 보겠습니다. 첫째, 우리는 성도임을 기억합시다! 우리의 거룩은 거룩하신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는 것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누구에게도 여러분의 정체성과 자부심을 빼앗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구원은 이미 왔지만 여전히 완성되지는 않았듯 우리가 죄의 습성과 지배와 싸우고 있지만 ‘카도쉬’ 거룩하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로 붙잡으심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롬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둘째, 공동체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성도는 이웃을 위해 나라를 위해 교회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 입니다.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만 기도하면 우리가 세상 사람들과 무슨 구별이 있겠습니까? 오늘부터 우리는 남의 잘못을 비판하고 손가락질 하는 자가 아니라 그것을 나의 죄로 묻고 하나님 앞에 나라와 교회를 위해, 선교와 함꿈 공동체를 위해 기도하시길 권면 드립니다.
셋째,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시다. 주의 목소리를 듣고 두려움과 절망 가운데 탄식하던 이사야가 은혜를 받은 후 주의 목소리를 들을 후 이렇게 말합니다. “주여! 내가 여기 있습니다. 나를 보내소서” 숨지도 거짓말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구약에서는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전하셨다면 종말의 시대 신약에 와서는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가 선포되고 전해집니다. 우리가 교회입니다. 우리가 있는 가정에서 자녀에게 부모에게 아내에게 남편에게 그리고 직장에게 만나는 관계된 모든 사람들에게 학교에서, 다른 어떠한 관계속에서도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예수님을 이야기하고 증거합시다. 그들의 마음이 둔하고 귀가 막히고 눈이 감겨 있어도 그리스도의 사랑을 열심히 전합시다.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는 고백이 흘러 나오는 저와 여러분 되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권면 드립니다.
기도 하시겠습니다. 거룩하신 주님! 우리의 거룩함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를 거룩한 백성 삼아 주시고 제사장 나라 세워 주심을 감사 드립니다. 이스라엘이 실패한 율법의 의가 아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 선포하신 은혜의 언약을 의지하여 나아갑니다. 주님 다시 오실 그날까지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전하는 제자의 삶 살아가게 하소서! 하나님 나라 이루는 일에 주님 제가 여기 있사오니~ 저를 보내소서! 고백하는 함꿈 성도님들 다 될 수 있도록 은혜 더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우리 함께 찬양 드리고 기도 하겠습니다. “주님 내가 여기 있사오니~~”
기도하겠습니다.
(1)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여러분의 모든 죄를 고하시고 위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예배는 우리를 구원하신 분을 기억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을 부르신 하나님을 기억하셨는지요? 그분에게 돌릴 영광을 돌리셨는지요? 오늘 이 시간 성령님이 우리에게 깨우쳐 주시는 모든 것들을 주 앞에 고백하고 긍휼하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겠습니다. 주여! 한번 부르고 기도하겠습니다. 주여!
(2)공동체를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이 땅의 한국 교회를 주님 긍휼히 여기소서! 우리가 죄인입니다. 우상숭배와 주의 이름이 땅에 떨어져 밟히는 이 시점에 깨어 기도하지 않고 나만 의로운 듯 손가락질 했습니다. 주님 우리 교회를 불쌍히 여기시고 회복 시키시옵소서! 남 기흥 이곳에 함께 꿈꾸는 교회를 세우신 주님! 우리가 이웃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우리의 것을 손해보았는지요? 우리로 인해 우리 이웃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는지요? 아니면 여전히 우리끼리만 모여 할렐루야 하며 즐거워 하는지요? 주님! 우리의 둔한 마음을 새롭게 하시고 눈을 여시고 귀로 듣게 하사 하나님 나라를 위해 우리가 손들고 나아가게 하소서! 주여 은혜를 주옵소서! 우리 한번 크게 외치고 기도하겠습니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