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하나님 나라를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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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views당시 도덕적으로, 영적으로 폐허가 되었지만 그 가운데 믿음을 지키며 살아가는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
Notes
Transcript
# 서론
# 서론
아무리 좋은 것도 가치를 아는 자에게만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복음의 가치를 아는 자의 행동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 마 13:44,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당연한 반응이겠죠.
이와 같은 원리로, 바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해 이렇게 비교&대조하여 설명합니다.
⁃ 고전 1:23-24,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이렇듯 복음은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소망이지만, 그렇지 아니한 자에게는 되레 심판의 근거가 됩니다.
# 본론
# 본론
오늘 본문도 이를 그대로 보여 줍니다. 17절에 대놓고 드러낸 주제, 바로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을 언급하는 본문은 결국 종말론적으로 바라봐야겠지만,
본문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더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당시 배경과 무엇을 목적으로 원 독자에게 기록되었는지를 가능하면 자세히 살펴야 합니다.
이사야가 본격적으로 사역할 당시, 북이스라엘은 이미 앗수르에게 멸망 당했고,
남유다 또한 한창 전성기를 맞고 있던 앗수르에 의해 풍전등화의 현실을 살아내고 있었습니다.
이사야 당시 히스기야 왕이 그나마 하나님의 뜻 안에 있던 왕이었지만,
그가 죽고 난 이후 아들 므낫세가 왕이 되었을 때,
그간 히스기야가 했던 선한 것들을 다 철폐하고 더 악한 행위로 하나님을 배반합니다.
이를 잘 드러내고 있는 열왕기하 21장을 살펴보면 그는
❶ 이방의 가증한 일을 따라 행했다고 합니다.
❷ 다시 산당을 세우고 바알 제단 쌓고 아세라 목상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❸ 일월성신 경배하고 성전 마당에 일월성신을 위한 제단 쌓았다고 합니다.
❹ 심지어 그의 아들을 인신 제사로 드렸다고 합니다.
어느 공동체든 리더를 따라간다고, 므낫세의 악함은 개인을 넘어 남유다를 완전히 파멸의 길로 내몹니다.
⁃ 왕하 21:9, 이백성이 듣지 아니하였고 므낫세의 꾐을 받고 악을 행한 것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멸하신 여러 민족보다 더 심하였더라
이제는 왕이 아니라, 그의 백성 즉 이스라엘조차 여러 이방 민족들보다 악하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그 당시 현실이었습니다.
그러니 그 당시 신앙을 지키며 살던 하나님의 백성들은 어떠했겠습니까?
엘리야 시대 때, 엘리야는 자기 혼자만 남았다고 하나님께 울부짖었었는데
그들 또한 같은 마음으로 어딘가에서 부르짖고 있지 않았을까요?
그들에게 현실은 지옥이었을 겁니다.
그들에게 남아 있는 유일한 소망은 그저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순간 외엔 전연 없었을 겁니다.
바로 그들을 향해 이사야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언급하며 소망을 심어주고 있는 겁니다.
오늘 본문 17절에 이렇게 시작됩니다. ‘보라!’ 바로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라는 겁니다.
그런데 원어를 보면 ‘개역 개정’에서 놓친 표현이 하나 있습니다. ‘왜냐하면’입니다.
정리하면, ‘왜냐하면~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라!’ 어떠한 것을 기반으로 보라는 뜻이죠.
이에 대해 신학자 오스왈트는 그 앞단의 내용이 이사야 56:1부터 시작되는 모든 내용이라 합니다.
⁃ 사 56:1,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정의를 지키며 의를 행하라 이는 나의 구원이 가까이 왔고 나의 공의가 나타날 것임이라 하셨도다
자, 이 흐름을 정리하자면, 악하디 악한 왕 므낫세로 말미암아
영적으로 지옥과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던 남은 자들, 바로 그들에게 구원과 공의가 나타날 것이다!
그게 바로 새 하늘과 새 땅이라는 겁니다. 바로 이를 설명하는 게 오늘 본문인 거죠.
본문에서 말하는 새 하늘과 새 땅은 어떤 곳입니까?
❶ 이전에 있던 아픔과 고통, 죽음이 없는 곳이라 말합니다.
❷ 하나님과의 풍성한 교제 가운데 있다고 말합니다.
❸ 풍성한 열매가 있을 거라 말합니다.
❹ 평화가 가득할 것을 선포합니다.
어떠합니까? 아까 말했던 이스라엘의 현실과는 정반대 아닙니까?
새 하늘과 새 땅의 이미지가 당장 누군가에게는 그림의 떡으로 생각될지 몰라도,
그 당시 하루하루 위기 가운데 살고 있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정말 큰 위로가 되었을 겁니다.
여러분들도 경험해 보셨을 겁니다.
당장 내 심령이 가난할 때, 정말 갈급할 때는 그저 따뜻한 말 한마디, 작은 한마디면 충분하다는 것을.
그런 점에서 오늘 본문의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이 예언은
그 당시 의인들을 향한 아버지의 따뜻한 메시지이자, 마치 지푸라기와도 같은 마지막 끈이 되었을 겁니다.
이후 남유다는 당장 앗수르는 잘 넘어갔다 해도, 결국 바벨론에 의해 멸망 당합니다.
그렇게 포로가 되어 바벨론으로 끌려가 타지에서 살아가게 됨을 알고 있으실 겁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가운데에서도 그의 백성을 버리시지 않으시고,
때가 되었을 때 귀환케 하셔서 성전, 그리고 성민, 마지막으로 성벽을 짓게 하시며 회복시키십니다.
이러한 포로 귀환의 역사, 회복의 역사가 비록 온전치 못하다 할지라도
오늘 본문에 대한 1차 응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런 점에서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주제는
이스라엘에게 결코 허공에 떠다니는 구름과 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이고,
이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동일합니다.
# 결론
# 결론
왜냐하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 또한
이미 왔지만, 아직 오지 않은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산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주와 함께 동행하는 삶, 이것이 현존하는 하나님 나라를 사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자주 고백하는 찬양에도 이를 정확히 말합니다.
찬송가 438장, 내 영혼이 은총 입어 2절 가사입니다.
주의 얼굴 뵙기 전에 멀리 뵈던 하늘나라 내 맘속에 이뤄지니 날로 날로 가깝도다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사함 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바라기는 오늘도 주님과 함께 걸어가며 이후 우리가 최종적으로 누릴 완전한 하나님 나라,
새 하늘과 새 땅을 고대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