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리고성을 통한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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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6:1 “1 이스라엘 자손들로 인하여 여리고는 굳게 닫혔고 출입하는 자 없더라 2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붙였으니 3 너희 모든 군사는 성을 둘러 성 주위를 매일 한번씩 돌되 엿새 동안을 그리하라 4 제사장 일곱은 일곱 양각나팔을 잡고 언약궤 앞에서 행할 것이요 제 칠일에는 성을 일곱번 돌며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 것이며 5 제사장들이 양각나팔을 길게 울려 불어서 그 나팔 소리가 너희에게 들릴 때에는 백성은 다 큰 소리로 외쳐 부를것이라 그리하면 그 성벽이 무너져 내리리니 백성은 각기 앞으로 올라갈찌니라 하시매”
안녕하세요!
오늘은 이번주 중고등부 공과인 믿음으로 무너뜨린 여리고성인데요.. 말씀을 묵상하다가 같이 교훈을 받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어습니다.
방금 읽은 말씀은 우리가 너무나 잘알고 있는 부분의 내용입니다.
출애굽하고 홍해바다를 거너고 40년동안 광야의 길을 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죠 그리고 가나안에 들어서기 전에 무엇을 건넜습니까?
요단강을 건넜습니다. 그리고 나서 처음 넘어서야 하는 관문인 바로 무엇입니까? 여리고성이라는 곳입니다.
6장의 내용의 첫부분이 이렇게 시작을 합니다.
이스라엘 자손들로 인하여 여리고는 굳게 닫혔고… 이렇게 시작하는 것입니다.
여리고성이 큰 성 입니까? 작은 성입니까? 아주 큰 성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무기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무기를 가지고 있지 않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리고성은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굳게 닫혔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왜 닫았을까? 한번 고민을 해보겠습니다.
이미 이스라엘 백성에 대해서 들었다는 것입니다. 무엇을요..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를 잘 들었습니다.
보고 듣고 이스라엘 백성이 무기는 들지 않았지만 무서웠을 것입니다. 이길 승산이 없기에 무엇만 하고 있습니까? 방어만 하고 있죠..
이 것을 보면서 우리가 전도할 대상들이 떠올랐습니다.
어떻습니까?
우리가 어떤 영혼은 많은 말을 건넸습니다. 하지만 반응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을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어서 그러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해보니깐 너무 강력한것들이 안에 들어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0:4–6 “4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5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6 너희의 복종이 온전히 될 때에 모든 복종치 않는 것을 벌하려고 예비하는 중에 있노라”
모든 이론과 모든 생각에 사로 잡혀 있는 분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고집들, 아집들, 사상들 그런것들을 무너뜨려야 하는데 어렵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싸움은 어떠한 싸움입니까?
에베소서 6:12 “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우리가 싸워여 하는 것들은 보이지 않은 것 들과의 싸움이라는 것입니다
여러가지의 싸움중에 가장 큰 싸움은 우리 학생들은 무엇일까요? 구원에 대한 싸움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구원에 의심이 왜 생길까요?
두가지로 압축할수 있을것 같습니다.
정말로 구원을 받지 않아서, 두번째는 생활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구원은 어떻게 받는 것인가요?
딛3장1-3
그리고 중요한것은 생활의 변화입니다. 생활의 변화는 순종에 있습니다. 그리고 회개에 있는것입니다.
그리고 그다음의 싸움은 잘못된 사상인것 같습니다.
우리교회가 이단이라는 말하는 것들이 무엇이 있습니까? 우리교회만 복음이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원만 말한다가고 말한다고 합니다.
어떻게 말을 해야 할까요?
오늘은 우리들의 싸움을 어떻게 이길수 있을까에 대해서 여리고 성을 넘어뜨리는 것을 통해 교훈은 받을려고 합니다.
*넘어뜨릴수 있는 방법*
그럴때 주님은 우리에게 명령을 하십니다. 그러한 사람을 넘어뜨릴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한번 살펴 보겠습니다.
여호수아6:2-5절 말씀을 읽어 보며 5섯가지를 말씀하십니다.
모든 군사는 성 주위를 6일 동안 매일 한번씩 돌아라
제사장 일곱은 일곱 양각나팔을 잡고 언약괘 앞에서 나아가라
일곱째 날에는 그 성을 일 곱번 돌며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어라
그 나팔소리가 들리면 백성들은 다 큰 소릴로 외쳐 부르라
백성은 각기 앞으로 올라가라
-믿음-
이렇게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행동하기 전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신 말씀을 잘 생각을 해봐야 합니다.
2절에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붙였으니.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붙였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미 완료 되었다고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아직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리고 성에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이미 승리 할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보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수아가 여리고를 볼때 어떻습니까? 이미 굳게 닫힌 견고한 성이지 않습니까?
우리가 볼때는 견고한 성이지만 그 성은 무너질 성인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 하셨기에 반듯이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에 대해서 먼저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믿음은 눈에 보이는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 하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7 “7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로라”
지금 현재는 몸에 거하기 때문에 주님을 얼굴로 대면해 볼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로라’는 말씀처럼 보는 것을 좇아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인은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전투는 우리가 알고 있는 방법을 벗어날 때가 많습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서보면
이길수 있는 싸움입니까?
아니죠 절대로 우리의 상식으로는 이길수 없는 싸움이지요!
어떻게 작은 돌맹이로 이길수 있냐는 거에요. 하나님의 힘을 의지하고 나아갈때 승리할수 있었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공격하는 방법은 우리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해 할수 없는 부분들인것입니다.
요단강을 건널때 어떻게 건넜습니까?
홍해 바다는 주님이 모세에게 지팡이를 내밀어라 하니깐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냥 열려 버렸죠..
요단강은요!
여호수아 3:8 “8 너는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요단 물가에 이르거든 요단에 들어서라 하라”
요단강에 발을 데니깐 어떻게 되었습니까? 물이 갈라졌죠..
그리고 베드로의 마음이 움질일때는 어떻습니까?
깊은데로 가서 고기를 잡아라. 그 말에 깊은데서 그믈을 던지니 어떻게 되었습니까?
고기가 많이 잡히게 되었지 않습니까?
지금 여러것을 말씀을 드렸습니다 .
주님은 마음을 여시는데.. 마음을 움질일때 우리의 생각으로는 말도 되지 않은 행동이지만 주님의 말씀대로 할때 어떻게 됩니까?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우리가 보지 않습니까?
이것으로 보아 한 영혼의 마음이 움질때. 여리고성을 무너뜨릴때 무엇이 필요합니까?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반듯이 구원받을것이라는 믿음, 그리고 하나님이 말씀하셨으니깐 무너질것이라는 믿음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이 지으셨다는 것을 안다.
믿음으로 말씀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되었다는 것을 안다.
믿음으로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사실을 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수많은 약속을 안다.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으로 현재를 산다. 즉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한 약속의 말씀을 믿고 사는 것이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내세에 소망을 두고 현재를 사는 것이다.
믿음은 보이는 것을 따라 행하는 것이 아니다. 즉 보이지는 않지만(이루어지니는 않았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사는 것이다.
하나님이 말씀에 어떤한 약속을 하셨나요?
사도행전 16:31–32 “31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고 32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주예수를 믿으라 그리고 하면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는 주님의 약속의 말씀이 있죠..
정말로 이루어 질까요? 네 이루어 집니다. 단 우리가 전해야 야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냥 이루어질거야 그렇게 만 생각하고 있다면 이루어지지 않지만 모든 사람에게 전하면 구원을 얻을수 있다는 것입니다
-순종(부분순종과 온전한 순종)-
이 것처럼 믿음은 무엇이 수반이 됩니까? 행동이 수반이 되는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순종인것입니다.
여리고성을 어떻게 하라고 주님이 명령하십니까?
여호수아 6:3–4 “3 너희 모든 군사는 성을 둘러 성 주위를 매일 한번씩 돌되 엿새 동안을 그리하라 4 제사장 일곱은 일곱 양각나팔을 잡고 언약궤 앞에서 행할 것이요 제 칠일에는 성을 일곱번 돌며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 것이며”
6일동안 매일 한반퀴씩 돌으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여리고성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7일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던것입니다.
그리고 하루에 1바퀴씩 돌아야 하는 것도 있는 것입니다.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여리고성의 둘레가 어떻게 될까요?
둘레는 600m정도 되는 길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몇명이 될까요?
출애굽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이 60만명이었습니다. 장정만요. 40년 광야 시대가 지난 시점이긴 하여도 약 200만명정도 될것이라고 추산을 하고 있습니다.
600미터를 200만명이 돌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까요?
처음 선두인 제사장 일곱 앞에 무장한 자들이 앞장을 서고 진행을 했는데요.
600미터정도면 성인이 보통 걸음으로 30분이면 갈수 있는 거리 입니다. 그리고 200만명이 다 돌아야 하니깐 시간은 처음 걸었던 분과 마지막으로 걸은 분은 오랬동안 있었을것입니다.
어떤 학자가 계산을 해보았는데 60만명이 한바퀴 돌때 걸리는 시간은 최소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고 합니다.
그리고 언약궤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요?
약 100키로 정도 된다고 학자들이 말을 하고 있습니다. 최소의 무게입니다.
절대로 가벼운 무게는 아닌것입니다. 4명이 같이 들어도 25키로 되는 무게를 감당하며 한바퀴를 도는것입니다.
이것을 몇일을 해야 합니다. 6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보기에는 쉬어 보여도 쉽지는 않았을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원하는 것은 지속적인 순종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정확하게 6일째는 한바퀴를 돌아야 하는 것이고
7일째 되는 날은 7바퀴를 돌아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돌다가 실증이 난다고 돌지 않으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 날까요?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것입니다.
우리가 한 영혼의 마음을 열려고 할때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전도를 하는데 그 여는 과정이 쉬울까요? 어려울까요? 어렵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나가는데도 불구하고 여렵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것입니다.
언제까지 순종하는 마음으로 해야 할까요? 끝까지 해야 한다는것입니다.
여리고성이 무너지는것은 13바퀴를 다돌아야 하며, 7일동안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이 정한 시간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전도하고자 하는 그 영혼은요! 우리 반 아이들의 영혼은요?
그 시기를 우리가 알수 있습니까?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리고성을 보면 13바퀴를 도니깐.. 반듯이 그 성은 절대로 무너지지 않을것 같은 그 성이 무너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끊임없이 두들야 하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챙겨야 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것이 온전한 순종인것입니다.
하고 싶은면 하고 하기 싫으면 하지 않고, 자기의 마음에 드는 것만 순종하고, 그렇지 않은 것은 행치 않은 것은 온전한 순종이 아닌것입니다.
성경의 인물중에 어느정도만 순종하고 그 나머지는 순종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는데요.
대표적으로 사울이 있습니다.
아말렉을 진멸을 하는데 남녀 노소와 모든 가축까지 진멸하라는 말씀을 듣고 출전 했습니다.
아말렉을 쳤습니다. 진멸은 했습니다. 그런데 온전히 다 진멸을 했습니까? 아니죠..
자기가 판단해서 질 좋은 것을 남겨두고 아말렉 왕 아각을 살려 두었습니다.
사무엘상 28:18–19 “18 네가 여호와의 목소리를 순종치 아니하고 그의 진노를 아말렉에게 쏟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오늘날 이 일을 네게 행하셨고 19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너와 함께 블레셋 사람의 손에 붙이시리니 내일 너와 네 아들들이 나와 함께 있으리라 여호와께서 또 이스라엘 군대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 붙이시리라”
결국 부분적인 순종의 결과 사울의 최후는 방금 읽은 말씀처럼 블레셋 사람과 전투할때 치명상을 입고 죽게 되었을때 자결하는 선택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것을 원하십니까?
부분순종을 원하십니까 온전한 순종을 원하십니까?
온전한 순종을 원하십니다.
만약에 여리고성을 한바퀴만 돌게 하셨다면 순종이라는 단어를 쓸수 있을까요?
아니라는 것입니다.
한번의 순종이 상황을 바꾸지 않는다. 그러나 온전한 순종은 반드시 상황을 바꾼다 -칼빈-
우리는 매일 매일을 주님께 순종하면서 끝까지 하는것이 우리에게 필요한것입니다.
그리고 이해가 되지 않아도 순종하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여리고도 마찬가지이지 않습니까? 절대로 이해가 되지 않은 상황이지만 순종하라고 말씀으로 우리에게 알려 주고 있는것입니다.
그리고 성경 찾겠습니다.
예레미야 32:44 “44 베냐민 땅과 예루살렘 사방과 유다 성읍들과 산지의 성읍들과 평지의 성읍들과 남방의 성읍들에 있는 밭을 은으로 사고 증서를 기록하여 인봉하고 증인을 세우리니 이는 내가 그들의 포로로 돌아오게 함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유다의 임박한 멸망의 상황에서 아나돗에 있는 숙부의 땅을 구입하라고 여호와가 말씀하셔서 에레미야는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시대적으로 예루살렘은 이미 바벨론에 의해 포위된 상태이고 본인은 시위대 뜰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레미야에게는 어떠한 믿음이 있었습니까? 다시 이스라엘이 회복될거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그 땅은 하나님의 명령의 의해 샀습니다.
우리는 이해가 되지 않은 상황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만 믿음으로 이겨 내야 합니다.
-각자의 위치와 역활에 충실-
행군의 순서를 정해 주셨습니다.
여호수아 6:7 “7 또 백성에게 이르되 나아가서 성을 돌되 무장한 자들이 여호와의 궤 앞에 행할찌니라”
여호수아 4:12–13 “12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는 모세가 그들에게 이른 것 같이 무장하고 이스라엘 자손들보다 앞서 건너갔으니 13 사만명 가량이라 무장하고 여호와 앞에서 건너가서 싸우려고 여리고 평지에 이르니라”
여호수아 6:9 “9 무장한 자들은 나팔 부는 제사장들 앞에서 진행하며 후군은 궤 뒤에 행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며 행하더라”
르우벤 -> 갓 -> 므낫세 반 지파 -> 제사장 -> 언약궤 -> 후군
이러한 순서로 여리고성을 돌았습니다.
제사장은 언약궤를 메고, 일곱 제사장은 양각 나팔을 잡고 불면서 행진을 했습니다.
그리고 군사들은 성을 도는 동안에 외치지 말고 음성을 들레지도 말고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성을 돌았습니다. 7일째 7바퀴 다 돌고 신호에 맟추어서 외쳤습니다.
이렇게 순서와 각자의 자리와 위치 역활이 있는것입니다.
여기 계신분들은 어떠한 위치와 역활을 지니고 있습니까?
로마서 12:4–8 “4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직분을 가진 것이 아니니 5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6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7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8 혹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사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우리는 가르치는 자로 이자리에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에베소서 4:11 “11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목사와 교사로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이 무엇일까요?
가장 중요한것이 자기 자리를 지키는 것입니다.
여리고성을 무너뜨릴때 행군위치를 분명히 주님이 정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제사장의 일곱나팔 중에서 한 나팔 부는 사람이 자리를 비웠다. 나 힘들어서 하지 않을래 그렇게 한다면 여리고성이 무너질수 있을까요
무너 질수 없을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안에서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를 고수해야 하며, 내가 해야 할 역활을 잘 수행해야할것입니다.
<여호수아 6:11 “11 여호와의 궤로 성을 한번 돌게 하니라 무리가 진에 돌아와서 진에서 자니라” >
삿9:7-15 이말씀은 요담의 나무 비유에 대한 말씀입니다.
읽어보면 4가지의 나무가 나옵니다.
3가지의 나무의 반응과 1가지의 나무의 반응을 살펴 보면 내가 어떠한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 알수 있을것입니다.
3가지의 나무 감람나무, 무화과나무, 포도나무는 하나 같이 자기들의 열매 맺는 위치를 버리고 나무들 위에 요동하는 길을 택하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의 나무는 가시나무인데요.. 여기서는 아비멜렉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
무엇이라고 합니까? 똑같이 우리의 왕이 되리고 할때 가시나무는 그렇겠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가시나무 밑에서 쉬라고 말을 하고 있는것입니다.
좋은 나무들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이 자신들에게 주신 위치를 알고 그 위치를 고수하려고 요동하는 길을 택하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는것입니다.
주님이 나에게 주신 직분을 잡겠다라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이 가시나무 처럼 우리도 우리의 자리를 지키지 않고 이탈을 하게 되면 않되는 것입니다.
최초로 자기 위치를 이탈한 자가 있었습니다. 누구 입니까? 바로 마귀인것입니다.
유다서 6 “6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 누구입니까? 아침에 아들 계명성이지 않습니까? 이사야14:12-14
그레서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지옥을 주님이 마련해 두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자기 위치를 떠난 자 가 있습니다.
바로 고라당입니다. 고라당의 직무는 레위인으로서 성막에 관한 일을 하였는데요! 자기가 하는 일이 너무 작은 일로 여긴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반란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느냐! 땅이 갈라져서 삼켜버렸죠..
자기의 자리를 지키고 자기의 위치를 지키는것이 중요하다는것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팥죽하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죠.. 에서죠.. 에서는 무슨 위치를 버린거죠.. 장자의 위치를 버린것이죠..
우리는 주님이 주신 직분은 내가 하기싫다고 버리고 하면 않된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주신 직분을 묵묵히 수행해야 할것입니다.
그리고 요담 좋은 나무의 특징이 또 있습니다.
감람나무에서는 가장 좋은 것이 바로 기름입니다. 그런데 이 기름으로 누굴 영화 롭게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포도나무에서는 가장 좋은 것은 열매이기도 하지만 이스라엘에서는 술입니다. 누굴 기쁘게 합니까?
사람과 하나님입니까? 하나님과 사람입니까?
누가 먼저 입니까? 내 맞습니다. 하나님이 먼저 인것입니다.
이것으로 우리는 누구의 중심으로 살아야 겠습니까?
하나님의 중심으로 살아야 할것을 말하고 있는것입니다. 자기중심적으로 한 나무는 바로 가시나무 인것입니다.
우리가 구원받기전의 모습을 보면 지극히 개인주의적 사상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나만을 위해서 살았지요. 하지만 구원받은 후에는 어떻게 바뀝니까?
제일 먼저가 하나님이고 두번째가 타인이고 그 다음 세번째가 자신임을 알지 않습니까?
갈라디아서 2:20 “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구원받은 후에는 하나님과 사람앞에서 기쁘게 하고 그리고 영화롭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함을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결론-
여리고성을 통해서 여러가지를 알아 보앗습니다.
믿음이 있어야 된다는것을 말씀을 드렷습니다.
그리고 믿음에는 순종이 따른다 말씀을 드렷습니다.
순종은 부분순종이 아니라 온전한 순종을 해야 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기위치를 묵묵 지켜야지만 여리고성이 무너진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무너뜨려야 여리고 성들이 많이 있습니다. 묵묵히 자기의 위치를 지키며 묵묵히 온전한 순종을 한다면 그 여리고성은 반드시 무너집니다.
기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