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설교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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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을 찾아간 여인들
무덤을 찾아간 여인들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오늘 말씀은 예수님이 장사된 후 3일이 지나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간 두 여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비어 있는 무덤을 목격하고 천사로부터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믿기 어려운 소식을 듣었습니다.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난 사건은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어떤 종교에서도 말하지 않는 역사적 사건으로, 기독교를 다른 종교와 본질적으로 구별짖게 하는 놀라운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초대교회 성도들은 주님이 부활하신 매주 일요일마다 저녁에 모여서 부활을 기념하는 집회를 가졌습니다. 당시 일요일은 지금처럼 휴일이 아니었고,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은 로마제국의 통치하에서 엄청난 핍박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대교회 신앙인들은 고된 하루를 마치고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면서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고자 저녁에 모였습니다. 2,000여년 전의 예수님의 부활사건은 세계를 재패한 거대한 로마제국을 굴복시켰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기독교는 역사상 수 많은 핍박속에서도 소멸하지 않고 오히려 더욱 성장하여, 오늘 우리가 믿는 기독교를 존재하게 만든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오늘 이 엄청난 예수님의 부활사건을 가장 먼저 목격한 여인들을 통해, 지금 우리에게 예수님의 부활은 어떤 의미인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1절을 보십시오. 안식 후 첫날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예수님의 무덤을 보려고 갔습니다. 요한복음 20장을 보면, 그 때는 아직 해가 돋기 전이었습니다. 아직 어두운 새벽에 그것도 남자들도 가기를 꺼리는 무덤을 찾아 온 두 여인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막달라 마리아이고, 다른 한 사람은 마가복음 16장에 따르면 야고보의 어머니였습니다. 이들은 왜 어둠을 뚫고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 왔을까요? 다른 공관복음서에 따르면 그들은 향품을 준비해 예수님의 시체에 바르려고 왔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갈리리 사역을 섬기던 여인들이었습니다(막 15:41). 예수님께서 갈리리에서 귀신을 쫓아내시고, 문둥병자와 중풍병자를 고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는 놀라운 기적을 지켜보았고, 산상수훈의 말씀을 들었던 여인들이었습니다. 더군다나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이 자신으로부터 일곱 귀신을 쫓아내시는 것을 직접 경험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녀에게 있어 예수님은 악한 귀신의 노예가 되어 평생토록 고통스런 삶을 살던 자신을 해방시켜 주시고 새 삶을 선물로 주신 생명의 은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이 3일 전 두 강도와 함께 골고다 언덕 위에 십자가에서 처형되는 장면을 보고 너무도 큰 충격에 휩쌓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죽음이 믿겨지지 않았습니다. 늘 자신들과 함께 다니시며 연약하고 불쌍한 영혼을 돌보시며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셨던 예수님이 여전히 살아계실 것 같아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두 여인들은 너무도 큰 슬픔에 밤새 한 잠도 못자고 퉁퉁 부은 눈으로, 예수님의 시체에 향품이라도 발라드리고자 무덤을 찾아 온 것이었습니다.
2절-4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무덤에 도착할 즈음 큰 지진이 나고 하늘에서 주의 천사가 내려와 무덤을굳게 닫고 있던 돌을 굴려내고 그 위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들이 목격한 천사의 형상은 번개같이 번쩍였고 그 옷은 눈 같이 희어 무덤을 지키던 자들이 무서워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습니다. 저는 대학 4학년 시절 저의 진로문제를 놓고 새벽에 기도하던 중에 성령의 임재를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성령이 저에게 임하자 저는 온 몸에 힘이 다 빠져 땅바닥에 쓰러졌습니다. 저는 기도실 바닥에 꼬꾸라져 얼굴을 기도실 바닥에 데고는 죽은 자 같이 되었습니다. 다니엘서 10장과 요한계시록 1장에도 이와 비슷한 서술이 나옵니다.
이 환상을 나 다니엘이 홀로 보았고 나와 함께 한 사람들은 이 환상은 보지 못하였어도 그들이 크게 떨며 도망하여 숨었느니라
그러므로 나만 홀로 있어서 이 큰 환상을 볼 때에 내 몸에 힘이 빠졌고 나의 아름다운 빛이 변하여 썩은 듯하였고 나의 힘이 다 없어졌으나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이 세상에서 아무리 강한 자도, 아무리 높은 자도 거룩하신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영광을 보게되면, 두려움으로 힘이 빠지고 죽은 자같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
천사가 여자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는 무서워하지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복음서의 저자인 마태는역사상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첫 증인으로 여인들을 언급하였습니다. 이것은 매우 놀라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당시 로마제국과 유대사회에서는 여자들은 매우 하찮은 존재였습니다. 그들은 물건처럼 취급되어 매매의 대상이 되었고, 법정의 증인이 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부활의 첫 증인으로 두 여인을 언급한다는 것은 최고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예수님의 부활 사건을 조작하려고 했다면, 법정에서 증인으로도 설 수 없는 여자들을 증인으로 세웠을까요? 물론 아닐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만이 이 놀라운 일을 계획하신 것이 분명하며,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역사적 진실임을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왜 예수님의 부활사건의 첫 증인으로 여인들을 허락하셨을까요? 그것은 복음역사에서 여인들이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를 의도적으로 보여주시려고 한 것은 아닐까요? 예나 지금이나 교회에서 여인들은 정말 소중한 존재입니다. 8월이면 제가 사랑하는교회에 온 지 1년이 됩니다. 저는 우리교회에서 많은 여인들이 교회 요소요소에서 봉사하는 것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주방에서, 카페에서, 교사로, 목자로, 독거노인 음식봉사로, 각종 행사와 수련회에서, 뿐만 아니라 모든 예배에서 기도의 헌신자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저는 지난 주 제주도에서 개최된 청소년부/청년부 연합 여름수련회에 참석했습니다. 거기서 저는 새벽 5시에 일어나 밤 11시까지 70명 여명의 많은 인원들을 위해 식사와 간식을 섬기는 여집사님들의 섬김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무더운 여름에 에어콘도 없는 작은 주방에서 뜨거운 불과 씨름하며 일하시는 그분들은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분들은 온 몸이 땀범벅이 되어 있었고 근육통을 앓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얼굴에는 다음세대를 세우는 이 귀한 사역에 대한 기쁨과 감사함이 넘쳐났습니다. 이 분들의 사랑과 충성과 섬김이 사랑하는교회교회를 든든히 세워가는 원동력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저는 이 시간을 통해 우리 권사님들과 여집사님들에게 진심어린 감사를 표현하고 싶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주님의 역사를 섬기시는 여러분들을 귀하게 여기신다는 사실을 확신합니다.
5절과 6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천사가 여자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는 무서워하지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이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첫째 교훈은, 신자들이 때로는 좋은 의도와 열심으로 일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때로는 우리가 너무 정신없이 살다가 예수님이 친히 하신 말씀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기도할 때도 자주 이런 현상이 나타납니다. 우리는 정성을 다해 열심으로 기도하지만 기도응답을 받지 못하는 것을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과 다른 기도를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직장에서 이런 저런 자리로 승진을 시켜 달라고 요청하고, 응답이 되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겠다고 기도합니다. 개발호재가 있는 부동산이나 유망한 주식에 투자해 놓고,하나님 이번 한번만 대박이 나게 해 주시면 교회에 헌금을 크게 하겠다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열심을 다해 기도하지만 그 기도가 응답을 받지 못하는 것을 경험합니다. 하나님은 다른 사람 기도는 잘 들어주시면서 왜 내 기도는 들어주시지 않느냐고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만약 이 기도가 응답이 되면, 그것이 그 사람에게 유익이 되고 복이 되기보다는, 독이 되고 문제가 되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를 허용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약속과 위배된다면, 우리가 아무리 정성과 순수한 마음으로 구한다 할지라도 응답받기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우리에게 유익이 되는 것을 하나님이 아시기 때문입니다. 이 여인들이 새벽에 향품을 정성껏 준비해 예수님의 무덤에 이르렀을 때 예수님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둘째, 예수님의 십자가는 믿지만 부활을 믿지 못하면 우리는 여전히 슬픔과 절망과 한계에 갇힌 삶을 살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무덤을 찾아간 여인들은 분명히 예수님의 갈릴리 사역을 섬기면서 예수님이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과 신적인 능력으로 수많은 병자들을 고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신 것을 목격하였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흘리심으로 모든 인간의 죄를 용서하기 위해 대신 죽으신 것도 이해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여전히 슬픔과 근심, 절망과 좌절, 무기력과 한계에 갇혀 있는 것일까요? 주의 천사가 여인들에게 한 말을 보십시오. 5절을 보십시요.
천사가 여자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는 무서워하지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천사는 여인들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찾는 줄을 안다고 하였습니다. 여인들은 무덤에서 부활하신 예수가 아닌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죽으시고 여전히 무덤에 누워있는 예수를 찾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살아 생전에 제자들에게 자신이 고난받고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가르치셨습니다. 마가복음8:31을 다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
여인들은 분명히 예수님을 통해 또는 그의 제자들을 통해 예수님이 장차 부활할 것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시고, 나인성에 사는 과부의 딸을 살리시고 나사로를 무덤에서 일으킨 사건도 직접 목격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모든 일련의 부활 사건들이 지식으로만 머물렀을 뿐 자신들의 믿음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몇 년을 예수님을 직접 따르며 섬겼던 여인들이었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을 때 그들은 여전히 예수님을 잃은 슬픔으로 절망하고 낙담하며, 미래의 삶에 대해 근심에 쌓일 수 밖에 없덨던 것입니다.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요? 꽤 많은 성도님들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자신의 죄를 용서받았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여전히 무기력하고 슬픈 신앙생활을 하는 경우를 목격하게 됩니다.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다가 어느 순간 보이지 않습니다. 일터에서 일을 잘 하다가도 조금만 일이 힘들어지고 인간관계에서 갈등을 겪으면 쉽게 절망하고 자기 세계 속으로 숨어 버립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슬픔에서 벗어나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어떻게 사망이 쏘는 무기력과 허무, 절망에서 벗어나 생명력이 넘치는 소망의 삶을 살 수 있을까요? 그것은 본문에 나오는 여인들처럼, 부활하신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깊이 만나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의 주님이 될 때 가능합니다. 담임 목사님은 새가족들과 첫 면담에서 꼭 물어보시는 질문이 있습니다. 당신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습니까? 우리 모두 이 질문에 아멘으로 응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6절을 보십시오.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심으로 모든 성도의 부활의 든든한 보증이 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분명히 죽음에서 부활하셨습니다. 나사렛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되셨다가 살아나신 사실은 역사적으로 증명되고 확정된 사건입니다. 역사가 타키투스가 기록한 줄리어스 시저의 이야기를 역사적 사건으로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 것처럼, 예수님의 사건은 분명한 역사적 근거를 갖고 있습니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이 기록한 복음서나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목격한 사람들의 기록은 역사적 문건으로 인정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은 비유나 상징이 아닙니다. 그것은 실제입니다. 예수님은 수많은 대적들과 제자들이 다 보는 중에 숨을 멈추었고, 무덤으로 내려갈 때는 운명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싸늘하게 굳어 있던 예수님의 팔다리는 다시 생명으로 따뜻해졌고, 온 몸이 생명으로 충만해져서 영광이 가득한 모습으로 바뀌었습니다. 그 부활한 손으로 제자들에게 빵과 고기를 나누셨고, 그 부활하신 입으로 식사를 같이 하셨습니다. 그의 손을 내밀어 말씀하시기를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의 못자국을 만져보라”고 하셨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그는 유령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친히 말씀하시기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기 전과 같은 모습으로 부활 후에도 완전한 인간이셨습니다. 또 이 땅에 계실 때와 마찬가지로 현재도 완전한 인간으로 영광중에 계신 것입니다. 자신의 제자들에게 “와서 먹으라”고 하신 동일한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몸으로 실제로 죽으셨고, 실제로 부활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믿고 있는 진리입니다. 우리는 이 진리가 항상 분명하게 선포되는 것을 들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믿기는 해도 항상 깨닫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 우리가 깨닫는다 해도 다시 들어서 마음에 확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부활은 다른 역사적 사실처럼 문자 그대로 사실인 것입니다.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 기록을 살펴보면,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셨을 때 무덤에서 다시 사셨을 뿐 아니라, 그는 지금 하늘에 올리셨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영광중에 계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무덤의 문빗장을 깨뜨리시고 일어나셨을 때, 주님은 이제 원수들의 손이 미칠 수 없는 곳에 계셔서 원수들이 더 이상 주를 상하게 할 수 없고 지금도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제자들에게는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주님은 지금 이 땅에 더 이상 이 땅에 계시지 않습니다. 이제 원수들의 손이 미칠 수 없는 곳에 계십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되지 않습니까? 왜냐하면 주님의 부활은 그를 따르는 우리 모두에게 부활의 보증이 되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우리의 육체 부활의 모든 근거는, 한 가지 질문에 달려 있다는 것을 논증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죽음에서 부활하셨는가?” 라는 질문입니다. 주님이 부활하셨다면, 그를 따르는 모든 자들에게도 부활은 보장이 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부활은 모든 인류를 대표하는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부활하셨는가?” 하는 질문에 답할 수 있다면, 그의 형상을 가지고 그 안에 거하는 우리의 부활에 대한 명백한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나아가,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성도의 부활의 든든한 보증임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바울은 예수님의 부활이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다고 말합니다. 그는 죽은 자들을 왜 잠자는 자들이라고 표현했을까요? 제 아내는 참 잠자는 것을 좋아합니다. 아니 사랑한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습니다. 우리는 왜 잠자는 것을 이렇게 좋아할까요? 그것은 다시 깨어날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성도의 죽음을 다시 깨어날 소망이 있는 잠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왜 죽음을 두려워할까요? 그것은 죽음이 내 존재의 소멸을 의미하고, 다시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볼 수 없고, 다시는 깨어날 소망이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Elizabeth Quibbler Ross(1926-2004)라는 사람은 스위스 출신으로 죽음과 죽어감에 대하여(On Death and Dying) 연구한 미국의 유명한 심리학자입니다. 그녀는 죽기 전 사람들 천여명을 인터뷰한 결과 다음의 5 가지 단계를 거치며 이 세상을 떠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출처] 죽어감을 수용하는 과정 [죽음과 죽어감, On Death and Dying]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청미, 1969|작성자 solotraveler
1단계(Denial, 부정) 뭔가 잘못되었다고 죽음을 부정합니다 내가 왜 죽어 하면서...
2단계(Anger, 분노) 화를 냅니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성실하게 살았는데 하나님도 무심하시지 나를 데려가신다고?
3단계(Bargaining, 협상) 잠시 절대자와 협상을 시도하며 삶의 연장을 기대합니다. 막내 시집갈때까지만... 미국 간 우리 아들 박사학위 받을 때까지만... 이유들을 대면서
4단계(Depression, 우울) 죽음이 임박하면 지나간 것과 다가올 상실감으로 우울해 합니다.
5단계(Acceptance, 수용) 이제는 할수 없구나하며 모든 것을 수용하고 마지막을 준비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성도들에게 죽음은 잠시 잠자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마지막 나팔소리가 울려 퍼질 때, 우리는 다시 깨어나 영원한 빛과 의와 평강과 희락이 넘치는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 나라에서 우리를 위해서 죽기까지 하신 예수님을 왕으로 섬기며,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 영원한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수년 전에 나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사랑하는 자녀가 있습니까? 그의 육체도 다시 일어날 것입니다. 그 자녀도 감았던 눈을 뜨고 저 하나님 나라에서 영광중에 계신 주를 보게 될 것입니다. 당신의 음성을 마지막으로 들었던 그 귀도 다시 살아서 천상의 음악소리를 듣게 될 것입니다. 돌처럼 차갑게 굳어 버렸던 심장은 새 생명을 얻고 뛰기 시작할 것입니다. 천사장의 나팔소리와 하나님의 음성이 들릴 때, 모든 성도들의 육체는 다시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 자신은 물론 우리의 친구에게도 동일하게 이 부활은 일어날 것입니다. 우리는 더이상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죽음이 무엇입니까? 무덤은 우리의 몸을 씻는 욕실과 같습니다. 죽음은 그 욕실에서 하는 목욕과 같아서 목욕 후에 향유를 바르고 향료를 뿌려서 몸을 향긋하게 한 후에 영광중에 오실 주님을 맞이하는 것과 같습니다. 지금 우리의 육신은 작업복과 같다면, 부활한 우리의 몸은 주일 예배 시 입는 깨끗한 옷과 같을 것입니다. 부활이 이렇게 아름다운 옷으로 갈아입고 주님 앞에 서는 일이라면 우리는 죽어 잠드는 것도 두렵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성도들에게 주시기로 약속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부활의 소망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또 하나 우리가 위로 받을 수 있는 더 중요한 사실은 주님은 이 땅에 계시지 않고 하늘에 오르셔서 우리의 대변자가 되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늘에서 우리의 변호사 역할을 하십니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바로 그분이 계십니다. 그는 우리를 위해서 천국에서 자리를 예비해 두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대적은 우리를 고소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데, 우리를 위해서 변호하시며 그 고소자를 침묵케 할 분을 하늘에서 대면하게 되리라는 것은 기쁜 소식이 아닙니까? 주님이 여기 계시지 않고 하늘에 계신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우리는 이 땅이 아닌 하늘에 진정한 소망을 두어야 할 것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하늘에 진정한 소망을 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매주마다 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기념하는 예배를 드렸습니다. 무서운 핍박 속에서도 모여 예배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그러다가 잡혀서 말할 수 없는 모욕과 모진 고문을 당하였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다라는 그 한 마디 말만하면 풀려나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한 마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부활신앙으로 충만했습니다. 사탄이 쏘는 최대의 무기는 사망입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은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사탄을 굴복시켰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실제사건으로 믿었고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을 누가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대학 1학년 한 선교단체가 주관하는 여름수련회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통해 거듭남을 체험하였습니다. 이후 선교단체에서 7년을 형제들과 공동생활을 하며 영성훈련과 제자훈련을 받았습니다. 졸업 후 하나님은 저를 직장 선교사로 부르셨습니다. 저는 다른 직원들보다 한 시간 일찍 출근해서 직장에서 기도로 하루를 준비했습니다. 직장 복음화를 위해 직장 신우회를 만들어 매주 한 번 점심 때 그룹성경공부를 인도하고, 한 달에 한 번은 증권단선교회를 섬기시는 목사님을 초대하여 직장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증권단선교회와 연합하여 증권맨들의 복음화를 위해서 일하였고, 직장인성경공부모임에도 나가 일터사역을 위한 훈련을 받았습니다. 한편, 직장에서도 인정을 받아 부장으로 승진하였고 신우회장을 맡아 직장 복음화를 위해 일했습니다. 그러던 중 저는 임원으로 승진하면 더 영향력 있게 직장 선교사로 섬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저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즈베키스탄 재무부에 자본시장 전문가로 파견을 받아 우즈베키스탄 선교를 할 수 있는 길을 열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이 계획은 회사 최고경영자인 사장님이 약속하시고 여러 직원들에게도 말하고 다니실 정도로 가능성이 높았지만 하나님은 이 길도 막으셨습니다. 그리고 이상한 말씀으로 제게 응답해 주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나타나셔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을 물으시며 베드로와 사랑의 관계를 회복한 후에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하신 바로 그 말씀으로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하나님은 우즈베키스탄 파견을 위해 기도할 때마다 이 말씀으로 응답해 주셨습니다.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나를 데려가신다니 이건 뭐지.... 아브라함이 갈 바를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갈 때의 그 두려움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기도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저에게 마침내 목회자의 길을 결단할 수밖에 없도록 저를 인도하셨습니다. 새로운 교회를 찾기 위해 새벽기도를 하던 중에 성령님은 저에게 환상을 보게 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가시관을 쓰시고 얼굴은 피범벅이 되신 예수님께서 저를 내려다 보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위해 수치와 조롱과 모욕과 멸시와 천대와 핍박을 당하고 너를 위해 죽었다.” 이어서 강한 힘이 저를 꼭 껴안아 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는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을 수가 없었고 저의 가슴은 주님이 부어주시는 사랑으로 요동쳤으며, 주님의 마음을 알지 못하고 내 뜻과 계획을 고집하며 높아지려고 했던 저의 교만을 회개하였습니다. 이런 환상과 체험은 새벽기도를 드리는 3일 동안 반복되었습니다. 제가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세 번 확증해 주셨습니다. 저는 두 가지 기도의 응답을 통해 나를 당신의 종으로 쓰시고자 부르시는 주님의 부르심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 부르심에 순종하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고자 순종한 아브라함에게 번제할 양을 예비해 두신 것처럼 하나님은 일사천리로 모든 것을 예비하시고 인도하셨습니다. 담임 목사님을 만나게 하시고 짧은 기간이었지만 장신대 신대원 입학시험에 합격할 수 있도록 지혜를 부어주셨고, 사랑하는교회의 전도사로 임명되어 새가족부와 목장 사역 등 여러 사역들을 섬길 수 있게 하셨습니다. 저를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신 우리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드립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님은 무덤에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습니다. 그는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습니다.
무덤에서 부활해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통치하시는 우리 주 예수님은 어제도 오늘도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이십니다. 이 영광의 예수님이 우리 모두에게 영원히 함께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