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801 새음 고등부 수련회 설교(1) 가제 나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2024 새음고등부 여름수련회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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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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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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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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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설교(주제: 우리는 주님의 몸이다. 거룩하자)
설교(주제: 우리는 주님의 몸이다. 거룩하자)
서론: 전제없는 시대
서론: 전제없는 시대
이시대는 기준이 없습니다. 그래서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 그래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답이 없습니다. 그냥 맹목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따라, 쟤도 하니까 나도 해야지, 뒤쳐지면 안되지 라는 생각으로 살아가는게 이 시대의 국룰입니다. 남들 다 하는 거 나도 해야합니다.
이제 수능이 100일 꺾이기까지 얼마 안남았는데, 학원가에서는 D-100일 특강으로 수능을 준비시킵니다. 다른 친구들 모두 특강반에 들어가서 공부합니다. 나도 안할 수 없다 함께 합니다.
학교 마치고 새벽까지 공부합니다. 저녁먹을 시간도 없습니다. 하고나서 스카로 이동할 때 먹습니다. 그런 애들 붙잡고 너 왜 해 물어보면, 이유는 없습니다. 남들 다하니까, 공부해야 할 때니까 한다 이런식입니다.
왜 공부해야 하나 물어보면 답은 단순합니다. 좀더 좋은 대학 가야죠. 좀 다른 생각 갖고 있는 친구들은 빨리 돈벌어야죠. 좋은 일 얻어야죠 라고 하며 자격증을 따거나 시험준비를 합니다.
대학교에서 공부하거나 노량진과 같은 곳에서 공부하는친구들에게 왜 공부하나, 합격해서 뭐할껀데 물어보면, 그냥 행복하겠죠. 돈 열심히 모아야죠. 대게 비슷합니다.
이유가 없습니다. 물론 이유가 다 있죠. 근데 인생을 살아가는 진짜 이유가 없습니다. 좋은게 좋은거다 하고 그렇게 살아갑니다. ‘그걸해서 뭘할거다. 이유는 이거다.’이런식의 기준이없습니다. 전제가 없습니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좋은게 좋은 겁니다.
근데 좋은게 좋은거라고 하면서,왜 우리는 좋은 일을 하는데 행복하지않고, 늘 지치고 피곤하고 힘들까요? 그건 좋은게 아니자나요?
그럼 진짜 이게 좋은건지 아닌지 뭘로 구분하나요? 돈 잘벌면 좋은 일, 그렇지 않으면 안좋은일인가요?
사람들은 기준을 찾다가 이 시대에 딱 알맞은 기준을 찾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돈’입니다. 돈을 많이 벌수있다 그러면 그게 도덕적이든 부도덕적이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마음에 찔림이 약간있을지라도 합리화됩니다. ‘돈이 없어요’, ‘돈벌어야 해요’라는 식으로 합리화합니다.
그래서 돈때문에 부모자식간에 다툼이 일어나고, 형제들간에 살인도 일어납니다. 금품갈취, 소매치기 그런 일들을 포함해서 불법투기, 불법투자 등이 성행합니다. 자기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서는 남이 손해봐야 합니다. 누군가가 돈을 벌었으면 누군가는 돈을 잃는게 당연한 일이잖아요? 그러나 그런 건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내가 내돈가지고 하는데 무슨 상관이야 라고 생각하죠.
여러분들이 지금은 고등학교에 있어서 그래서 비슷한 친구들끼리 있어서 이런 것들을 못느낄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말이 달라집니다. 대학교에 들어가면 더 심해집니다.
돈을 잘 벌기 위해, 더 벌기 위해 라는 전제로 대학교를 좋은 성적으로 졸업해야 하고(지금은 예전보단 물론 덜합니다) 자격증시험, 영어시험 등등 남들보다 더 잘하기 위해서,함께 잘되기 보다는 나혼자만 잘되기 위해 배려보다는 이기적으로 행동하고, 내 것을 더 움켜지려고 합니다.
친구 관계도 다 정리하거나 아니면 좋은 친구들, 즉 쓸만한 친구들을 사귑니다. 정확히 얘기해서 대학교 때는 친구를 사귄다기 보다 쓸만한 정보통을, 나에게 도움될만한 사람을 옆에 둔다, 도움받기 위해서 연락할 수 있는 사람을 가까이 둔다는 말이 더 맞을 것 습니다. 왜냐하면 대학교에 들어가는 이유 자체가 내가 더 잘되기 위해서 선택한 곳이거든요. 내가 더 잘나가기 위해서 대학교를 진학할 때 내가 나중에 보다더 잘 되기 위해서 지금 나에게 주어진 선택지 중에서 그나마 더 괜찮은곳 전도유망한 곳을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들어갑니다.
나는 대학에서 진정한 공부의 본질을 깨우치겠어, 나는 대학교에 가서 좋은 친구들을 많이 사겨야 겠어 이런 생각으로 대학에 가는 친구는 요즘 같은 시대에 한사람도 없을 겁니다.
대학교 입학의 전제가 이미 돈을 잘 벌기 위한 수단이 되니까 대학이라는 기관은 그저 잠깐 지나가는 곳, 간판, 내 스펙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닙니다. 그러니 당연히 인문계열 국문학과, 영문학과, 철학과, 사회학과 이런 학과들이 합쳐지거나 없어지거나 하는 거죠.
돈을 잘 벌기위한 전제로 살아가니 당연히 경쟁할 수 밖에 없습니다. 없는 사람들끼리 만나면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면서 잘 지낼 것 같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저 사람을 이겨야지 하는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다 내가 저 사람보다 돈을 많이 벌게 되었어요. 그러면 나는 그때부터 저사람은 아랫사람으로 봅니다. 낮은 사람 별볼일 없는사람으로 여기고 하대하죠.
이처럼 돈의 유무가 사람의 가치를 결정하는 이 시대는 사람의 생명이, 그 존재가 별 볼일 없어졌습니다. 돈이 되는 사람이어야 중요한 사람, 가치있는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교회에서도 돈 잘 버는 집사님 말이면 아 옳습니다, 이러고 돈이 없는 집사님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그런 시대가 되어버렸다는거에요.
유튜브나 sns에서 인기가 있다는 말은 즉 돈이 된다는 말이죠. 인기가 많아지면 광고가 붙습니다. 광고를 붙여주고, 돈을 줍니다. 인기있어지고 싶어해요. 잘생겨지고싶고, 예뻐지고 싶고 그렇습니다.
외모지상주의가 핫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돈이 되니까 입니다. 연예인들 중에 외모가 잘 생기고 예쁜 사람들만 가득합니다. 그래서 성형을 합니다. 외모가 잘 나야 사람들에게 관심을 조금이라도 더 끕니다. 성형을 하고 잘 꾸미는 이런 트렌드가 당연히 대중들에게도 영향을 줘서 외모지상주의, 잘 생기면 다다, 예쁘니까 용서된다 이런 식의 가치관을 만들어 냈습니다.
결국 돈많은 사람이 와따다, 잘생긴 사람이 와따다 이런 가치들이 와따다 라고 말하는 이 시대 정말 행복하고 건강한 좋은 시대가 맞습니까?
자살율, 이혼율, 출생율 전부다 최고 또는 최저치로 안좋은 쪽으로 1등을 달리고 있는 이 대한민국 사회 정상입니까? 문제가 있다고 계속 말하지만 어느 누구하나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해주지 못합니다.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하는데, 언제까지 아파야 하냐고요, 답이 없습니다. 노답이에요.
이시대를 표현하는 다른 말로는 자유의 시대라고도 합니다. 자유의 시대란 곧 절대적인 기준이 없는, 기준을 들이밀면 무시하는 거부하는 시대입니다.
이 사회의 문제들은 정치로도 해결할 수 없습니다. 표면적인 것들만, 눈에 보여지는 것들만 해결할 뿐이죠. 출산율이 낮아진다고 출산지원금을 늘려준다? 그럼 애를 낳을까요? 지원금보다 더 돈이 드는데 왜 낳으려고 하겠습니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것들을 해결해야 합니다. 진정 중요한건 뿌리입니다. 잡초의 뿌리를 제거해야지 안그러면 계속 자라납니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기준이 없거나, 잘못된 기준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해결책은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고 기준 우리가 계속 반복하는 전제를 가지는 것입니다. 진정한 기준/전제가 필요하며, 그것들이 흔들림없이 든든해야 한다. 의지할 수 있어야한다 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다면 무엇을 기준으로 삼을 것인가? 무엇이 우리 인생의 기준이자 전제가 되겠습니까? 분명한 건 우리 눈에 보이는 것으로는 불가능하다. 세상이 얘기하는 것들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껴야 합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에게 성경이라는 기준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물론 이 기준을 받아들이거나 그러지 않거나 는 여러분의 선택과 함께 어떤 특별한 일이 있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제가 여기서 제시하는 기준은 세상에서 제시하는 눈에 보기에는 맛있어보이지만 결국에는 배탈이 나고 문제가 나는 그런 음식이 아닌 웰빙, 건강식, 우리를 건강하게 해주는 음식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볼 때 성경의 순서는 굉장히 큰 의미가 있어요. 이게 아무 의미없이 나열된 게 아닙니다. 기록된 시대 순서도 아니고, 가나다 순은 더욱 아니죠. 물론 구약성경 마지막 부분으로 가면 하씨 성을 가진 선지자 분들이 많이 등장하지만 가나다 순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떤 이유로 이렇게 나열되었는가? 아버지의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이렇게 나열되었습니다.
그 중에서 창세기는 시작의 책입니다. 성경의 문을 열며, 성경의 대전제 기준을 제시합니다. 그 첫기준 무엇입니까?
‘태초에 여호와께서 온 우주를 창조하셨다.’
그리고 그 아래에 소전제로 ‘하늘 아버지께서 사람을 당신의 형상으로 창조하셨다.’ 사람의 존재가 어떤 존재인가? 돈으로 규정되는 존재, 또는 외모가 어떠함에 따라 규정되는 존재 그런 낮은 수준의 존재가 아니라 하늘과 땅, 온 우주를 지으시고 다스리시는 하늘아버지의 형상을 닮게 창조된 존재, 하늘 아버지의 자녀로 이 땅에 태어난 존재다라고 선포하고 있는거에요.
보라, 사람의 존재는 이토록 위대하다. 만물이 그의 발 아래 있다라고 선포하고 있어요. 사람의 가치는 하늘과 같이 높다 라고 말합니다.
이것을 알려주기 위해 창세기가 성경의 맨 첫부분에 위치한 거에요. 사람들은 그저 여호와께서 진짜 계세요? 창조하신거 맞아요? 진화론 아니에요? 6일만에 모든 걸 만드셨다고요? 그걸 믿으라고요? 거짓말이죠? 이런 의미없는 말장난에만 갇혀서 진짜 중요한 메세지는 보지 못하고 있어요.
창세기를 통해서 특별히 1-3장의 말씀을 통해 하늘 아버지께서는 우리에게 알려주고자 하시는 것은 바로 기준입니다. 삶의 전제입니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알려주고 계신거에요.
사람이 하늘 아버지의 자녀다 라는 말씀에 따르면 우리의 존재는 하늘 아버지의 대리통치자입니다. 이건 우리가 이해하기 쉽게 표현하자면 왕자, 국무총리, 대통령입니다.
이 놀라운 권한을 받은 사람은 그 권한을 가지고 맡겨진 일을 행하면 됐어요. 하늘 아버지께서 세운 대통령답게, 국무총리 답게, 좀더 친근하게 표현해볼까요? 반장답게, 학생회장 답게 행동하면 됐어요.
근데 어느날 갑자기 자기가 스스로 반장이 되었다며 자신이 잘났다고 생각하고, 스스로 잘나서 학생회장이 되고, 대통령이 되고, 국무총리가 된 것처럼 행동하는 거에요. 다 필요없다. 내가 짱이다. 내가 잘나서 그렇다. 나 알아서 한다. 다들 조용히 해라 이런 식으로 행동하며 자기를 세워준 하나님을 외면하고 없다고 말합니다.결별선언을 해버린 것이죠.
그게 바로 선악과를 먹고 죄를 짓게된 사건이에요. 자기 스스로를 잘난 존재라 생각하고 하나님을 외면해버린 사건이죠.
이 사건으로 사람은 타락해버렸죠. 자기의 모든 권한이 박탈 당해버렸어요. 이제 죄로인해 생각과 모든 행동이 어두워져서 하늘 아버지를 알지 못하고, 안다고 해도 믿지 않는 그런 삶을 살게 되었어요.
로마서1장에는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어요. 이 땅이 지어질 때 아버지의 능력이 그가 만드신 모든 만물에 기록되었다 증거처럼 새겨져 있다라고 말입니다.
당연한 것이죠. 만드신 분의 능력이 드러나는게 당연하잖아요. 컵하나에도 연필하나에도 메이드인 코리아 하면 안심하고 쓰는데, 전자제품 뒷편에 메이드인 차이나 적혀있으면 지금은 좀 덜하지만 예전에는 아주 맘에 안들어 했습니다. 중국의 생산능력이 매우 낮았기 때문에 그들이 만들어낸 제품에 그 능력이 드러나는 거에요.
이처럼 이 땅을 지으신 분의 능력이 그 지은 피조물에 드러나는 거에요. 나무를 보세요. 풀들을 보세요. 광합성을 하고, 산소를 내고 이산화탄소를 먹고 양분을 먹기 위해 뿌리를 내리고 그곳으로 물과 영양분을 먹고 가지와 줄기가 자라나고 꽃이 피고, 꽃의 구조는 너무나 놀라운데 꽃들마다 생김새도 다달라, 열매도 다달라, 너무나 놀랍지 않습니까?
가장 놀라운 건 다들 옆을 바라보세요. 한마디 합시다. ‘와 신기하네, 와 대박이네, 어떻게 이렇게 생겼..'거기까지.그만큼 경이롭다는 거죠. 능력이 드러나 있는데,
근데 이것을 보고 하늘 아버지의 존재를 핑계하지 못하게 하셨는데 사람들은 죄로인해 감사하지도 않고 알면서 믿지도 않고, 오히려 지어진 피조물들을 보며 숭배하고 신이라고 하고 있다.
또 그들의 욕심이 불일듯 일어서 지으신 자연스러운 질서를 따라 살아가지 않고 남자가 남자를 사랑하고, 여자가 여자를 사랑하며, 또 살인하고, 분쟁하고 탐욕적인 삶을 살고 있다. 죄가 가득차서 전혀 지식없이 살아가고 있다 말합니다.
하늘 아버지의 자녀의 권한을 잃어버리고 죄 가운데 살아가는 삶 그래서 서두에 오래 얘기했던 것처럼 뭐가 기준인지도 모른채 자기 생각에 옳은대로 맞는대로 좋은게 좋은거다 하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좋은게 좋은 것이 되지 못했고, 기준도 찾지 못한 채로 살아갔죠. 이런 사람의 삶을 불쌍하게 여긴 존재는 다름 아닌 하늘 아버지셨습니다. 그들을 창조한 부모님이 그들을 불쌍하게 안타깝게 여겼습니다. 그들에게 준비된 것은 사망 죽음 뿐이었기 때문이죠.
왜 안타깝게 여겼을까요? 부모라면 자식의 불행을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안타까워하고 어떻게든 구해주고자 하지 않겠습니까? 하늘 아버지의 심정이 그랬던거에요. 의로우셔서 그들의 잘못을 벌해야 하지만, 또한 너무나 자비로우셔서 그들의 죽음을 가만히 지켜볼 수 없으셨던 거에요.
그래서 자신의 존재가치를 잊어버리고 잃어버린 그들을 회복시켜주시고자 하늘 아버지의 벌을 감당할 수 있는, 그러면서 동시에 사람인 존재를 우리에게 보내주셨죠. 그분이 바로 예수님 우리 주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모든 죄를 용서해주셨어요. 그리고 그 부활의 은혜를 예수님을 믿는 자녀들에게 주셨어요.
이 부활의 은혜는 정체성의 회복입니다. 전제의 회복입니다. 우리가 죄로인해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였으나,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통해 다시 하늘 아버지의 자녀가 되었다. 죽음을 넘어갈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기준이 회복되니까 이 땅의 가치들이 더이상 하늘아버지의 자녀인 우리를 얽매지 못하는 것이죠. 우리는 이제 영원한 가치를 품고, 영원한 전제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우리가 성령의 전, 부활의 능력으로 가득 찬 성령의 성전, 거룩한 집이 된 것입니다.
이는 달리 얘기하면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믿어 그 말씀이 우리 안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말씀이신 예수님, 그 말씀이 우리 안에 들어왔다는 것은 오늘 GBS 본문으로 다뤄졌던 요한복음15장의말씀처럼 우리도 그안에 거주하게 되었다, 살게되었음을 말합니다. 성전 안에 살게되었다는 말은 곧 주님의 몸 안에 살게 되었다는 것이며, 우리가 주님의 몸이 되었음을 말합니다.
본론: 우리는 주님의 몸
본론: 우리는 주님의 몸
이 말씀이 참 놀랍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몸이 되었다니요. 이는 우리의 몸이 거룩해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변한게 없습니다. 여전히 우리의 몸은 죄로 인해 더럽고, 우리의 생각도 지저분합니다. 그런데 달라진 것은 우리의 신분이 달라졌습니다.
죄인에서 의인이 되었고, 탕자에서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선물과 같이 우리에게 허락된 은혜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죄가 남아 있지만 하늘 아버지께서는 그것을 보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묻은 예수님의 피를 보시고 깨끗하다, 의롭다, 죄가 없다라고 말씀해주십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우리가 회복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해서 하늘 아버지의 자녀가 되었다고 칭해주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더러 그의 몸에 속해 있는 존재, 몸이라고 말씀해주십니다. 머리는 예수님이시요, 그의 몸에 한 부분이 되게 해주신 거에요.
거룩하신 예수님의 몸으로 살게 해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구별됨입니다. 거룩함이란 예수님과 더 가까이하게 될 때 나타나는 모습입니다. 예수님과 가까이하다가 예수님과 한 몸이 되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몸에 부정함이 있을 수 있나요? 그럴수없다. 요한복음15장3절 내가 너희를 이미 깨끗하게 했다 그렇기에 너희는 부정하지 않다. 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부어주신 은혜로 자연스럽게 죄와 구별된 삶, 더 나아가 단절된 삶을 살 수 있게 된 거고 그렇게 살아낼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 거에요. 심지어 그렇게 사는게 기뻐진 거에요. 왜 기쁩니까?? 우리를 구원하신 은혜, 죄 가운데 허망하게 돈을 좇고 외모를 좇고 평생 그렇게 살아갈 수 밖에 없는 허망한 인생을 구원해주시고 참 진리, 진짜 기준, 진짜 인생의 목적과 가치를 알게 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말씀을 받아들이기 전에 누렸던 것들, 즐겼던 것들 재미없어하고 마음이 자연스럽게 멀어집니다. 그래서 유명한 찬송가죠. ‘주예수보다더 귀한 것은 없네’ 가사에는 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라는 가사가있어요. 어떻게 그런 고백을 할 수 있나?
예수님의 몸이 되면서 그 몸이라는 정체성으로 살아가는게 정상인게 되었고, 그것이 기뻐진거에요. 머리의 명령을 따르는 몸이 된거에요.
예수님의 몸으로서 이 땅의 가치가 아닌 그분의 말씀과 뜻을 따라 살 수 있게 된것입니다. 그분의 말씀이 가리키는 거룩이라는 방향을 따라 우리는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아가게 된 거에요.
이 기준, 이 은혜를 받아들이게 된 자들에게 나타나는 모습은 돈이 전부가 아님을 알게되고, 그것에 목매달아 살아가고, 그것을 얻기 위한 과정들을 밟는 것이 아니라, 그 보다 더 높은 가치인 예수님의 뜻을 바라보며 살아갈 수 있게 되었어요.
외모도 우리는 감사할 수 있게 됩니다. 예전에는 이 따위 얼굴로 뭐해, 이렇게 낳아주시다니 라고 불평하고 욕을 했다면, 이제 우리의 외모는 하늘 아버지의 형상임을 모습임을 깨닫고 감사할 수 있게 됩니다.
컴플렉스? 그건는 여전히 우리에게 있죠. 하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시야를 다르게 해주십니다. 없애고 싶은 부위가 아니라 감사할 수 있는 부위로 보게 해주세요.
술이나 담배, 도박과 같은 문화도 우리는 자연스럽게 멀어집니다. 진정으로 말씀이 우리 삶에 들어와 있다면, 그래서 예수님의 은혜로 그분과 가까워졌다면, 우리는 단언컨데 그런 유흥의 문화와 멀어집니다.
특별히 이 세대는 술이나 담배, 마약과 같은 것들에 굉장히 개방적입니다. 당연히 할 수 있는 것이고, 가벼운 음료정도, 기호식품으로 생각합니다. 성경에서도 마시지 말라는 말이 없지 않느냐고 말하며 자신의 행동에 당당한 크리스천들이 있습니다.
저는 그러나 단호히 말합니다. 그 마시는 동기가 무엇이냐, 술을 마시는 동기, 담배를 피는 동기에 거룩한 요소가 있을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중학생때부터 술 담배를 피셨는데 그 모습을 평생 본 제가 아는 바로는 그것들이 자기의 삶과 늘 함께 하는,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우울할 때나 행복할 때나 언제든지 마치 주님같아요. 임마누엘이에요. 이것을 달리 얘기하면 우상아닌가요?
최근에 트럼프 대통령 후보의 가족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의 친형은 담배와 술 마약에 절어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그 중독에서 해어나오지 못하고 이른 나이에 죽었다고 합니다.
미국에서는 술과 담배를 뭐라고 부르냐면 , drug gate 라고 부릅니다. 마약으로 가는 길이죠. ‘에이 술과 담배가 무슨 마약으로 연결되나요. 너무 과하신 거 아닌가요?’ 쾌락 욕심을 절제할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저는 그런 친구가 있다면 술을 마시라고 말합니다. 너가 마시면서 정말 주님의 거룩한 몸으로서 아버지의 사랑을 사람들과의 관계속에서 나타낼 수 있다면 마셔라 근데 그런 사람 한사람도 없습니다. 술마시면 판단력이 흐려집니다. 자기 몸도 못가누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을 돌봅니까?
술마시지 말란 말이 없고 취하지 말란 말만 있으니 취하기 전까지만 마신다? 무슨 어불성설입니까? 그냥 마시고 싶으니까 변명거리를 찾게 되는 것이죠.
다시 말합니다. 우리 삶의 모든 것들은 전제/기준이 중요합니다. 어떤 기준으로 살아가느냐. 크리스찬으로서 중요한 문제입니다. 크리스찬이 세상사람들과 구별될 수 있는 중요한 차이점은 인생의 전제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살아가는 모습이, 드러나는 모습이 다르게 보이는 것이죠.
과연 세상 사람들과 별 다른 차이없이 살아가고 있다면 진지하게 오늘 이시간 고민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신앙은 전제입니다. 누구와 더 가까이 하십니까? 누구와 더 함께 하십니까? 누구 안에 있습니까? 누구의 몸입니까? 여러분이 주님의 몸이라고 생각한다면, 여러분이 거룩한 주님의 은혜를 받아 주님께서 거하시는 성전이 되었음을 믿고 감사한다면 우리는 이 땅의 문화에 휩쓸리는 것이 아니라 분명한 가치를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선다면, 우리의 삶은 달라질 것입니다. 적용할 거리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 땅의 음란하고 퇴폐한 문화들? 외모지상적인 문화, 탐욕적이고 소비지향적인 문화들? 그리고 내일 함께 보게 될 개인주의적인 문화 등등 적용할 거리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조별 활동하며 우리는 예수님의 몸으로서 어떤 모습으로 살수있을까 나눠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거룩한 주님의 전이자 예수님의 몸입니다.
마지막으로 한가지만 집고 넘어간다면, 거룩하고 구별됨이란 세상과 떨어져서 지내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1세기 유대 사회로 들어가서 생활하셨습니다. 그 당시의 문화 안에서 사시며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도 다 누릴거 누리셨네 이 말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구별된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몸이 어떤까요? 하늘 아버지의 아들로서 영광스러움이 드러나지 않겠습니까? 거룩함이 드러나지 않겠습니까? 몸은 보여지는 것이죠.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이 전제를 받아 들여서 예수님의 몸임을 믿게 된다면, 그리고 내가 거룩한 삶 구별된 삶을 살아야겠다 다짐하다면 우리의 삶은 절과 같이 산으로 들어가고, 수도원으로 들어가서 생활하는 그런 모습이 되어서는 안된다. 예수님께서도 분명히 말씀하셨죠.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 빛이라. 우리의 모습도 예수님의 몸으로서 이 땅의 문화 속으로 들어가되 똑같이 흡수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닌 그 가운데서 구별된 삶을 살아갈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서 그 곳에서 아버지의 거룩하심을 나타내며 사람들에게 구별된 모습을 보여주고 복음을 증거하는 삶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님의 몸입니다. 몸과 머리가 따로 놀수없습니다. 교회에서만 주님의 몸이었다가 세상에는 다른 몸으로 바꿔끼우는 마치 호빵맨 머리 바꾸듯 살아갈 수 없습니다. 주님으로서 거룩한 삶을 살아갑시다. 이것이 우리의 삶이고 사명입니다. 삶속에서 구별된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가 됩시다.
기도제목 및 찬양
기도제목 및 찬양
1.주의 보좌로 나아갈 때에
말씀을 기억하며 함께 기도합시다. 전제가 없는 시대 이 땅과 동일하게 내가 살았음을 회개합시다. 다를 것없이 삶의 쾌락을 좇아 살아갔습니다. 주여 용서해주십시오.
2. 주님 뜻을 따라 살아가고 싶습니다.
예수님이 우릴 위해 죽으셨고 부활하심으로 우리가 새생명을 얻었고, 이 땅이 줄 수 없는 인생의 답을 주셨습니다. 이 답을 가지고 살아가고자 합니다 주여 내가 아버지의 뜻을 따라 살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잘 되지 않습니다. 주님 연약한 우리의 영혼을 불쌍히 여겨주세요. 거룩한 삶, 구별된 삶을살아갈 힘을 주세요. 함께 우리의 상태를 주님께 토로하며 기도합시다
3. 세상의 거룩함을 나타내는 몸이 되게 해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