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함께 고난 받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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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8 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우리는 삶의 흐름 가운데 살아가고 있습니다. 1년 365일 12달 30 또는 31일, 그리고 24시간, 계속된 흐름 가운데 살아가고 있죠. 그 흐름을 거스를순 없습니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 시간의 흐름으로 살아가고, 삶의 흐름에 살아갑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창조하셨습니다. 세상을 창조하면서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이 땅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의 흐름에 그냥 맡기고 살면 됐습니다.
왜냐면, 다스리기만 하면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는 이 세상을 하나님이 주셨기 때문입니다.
특별한 생각, 고민, 노력을 하지 않아도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부족함이 없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의 흐름에 흠집을 낸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정결한 세상에 일을 그르친 일이 있었습니다.
그 일을 한 사람이 바로 아담과 하와입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이 사건은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의 흐름에 흠집을 낸 사건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죄가 이 세상에 처음 들어온 사건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누릴 수 있게 만드셨는데,
그 사건으로 인해 이제는 하나님이 주신 온전한 은혜를 이제는 누리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하신 삶의 흐름에 그냥 맡기며 살지 않고,
충동적으로 일어나는 인간의 욕심으로 인해,
하나님 말씀을 저버리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삶의 흐름 가운데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우리는 삶의 흐름 가운데 정상적으로 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된 이유가 바로 하나님의 명령하신 뜻에 대한 불순종 때문입니다.
창세기 2:17
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은혜 가운데는 약속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면 누리며 사는 것이고,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으면 반드시 죽음이 있습니다.
결국 사람은 절제하지 못한 충동에 하나님과 약속을 어기게 되었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삶의 흐름에 따라서 죽음으로 갈 수 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원래의 뜻에서 벗어나는 삶,
평생을 누리는 삶에서 평생을 죄로 말미암아 고통받는 삶,
죽음을 마주하고 있는 삶,
그래서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은 죽지 않기 위해서 애쓰며 살 수 밖에 없는 삶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삶은 이제 죽음에서 벗어날 수 없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는,
그런 존재가 되었음을 봅니다.
그래서 지금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이 땅에서 살아가려면 어떻게해야 합니까?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에 흐름은,
반드시!
일해야합니다.
노력해야합니다.
공부해야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에서 최선을 다해야 노력해야 합니다.
오늘도 우리는 가정을 위해, 또는 우리 자신을 위해 생활을 전선에서 열심히 뛰고 열심히 애쓰며 살았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는 누릴 수 없게 되고,
아무것도 가질 수 없게 되고,
먹을 수 없게 되고,
비참하게 됩니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게 됩니다.
창세기 3:17
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하나님이 아담에게 하신 이 말씀은,
이 땅에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 됩니다.
평생에 수고하지 않으면 우리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세상의 흐름은 이렇게 바뀌었습니다.
하나님이 이 땅을 창조하시며 우리에게 처음 허락하신
그 누림의 은혜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게 되었고,
창세기 말씀처럼,
평생에 수고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
오늘 본문을 통해서
평생에 수고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삶의 흐름 가운데,
사도 바울과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전하는 편지를 통해서 발견할 수 있는 세상의 흐름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우리가 아는 디모데가 누구입니까? 사도바울과 2차 전도여행에 합류하여 마케도니아 지역을 함께 다녔던 디모데입니다.
역사적인 기록을 살펴보면 무려 13년의 시간동안 사도바울과 전도여행을 하며 지금으로 말하면
유럽을 바울과 함께 다닌 선교사로서 활동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사도바울과 함께 했으니 얼마나 많은 가르침을 받았겠습니까?
더불어 그 가르침을 잘 받아 이후에는 디모데가 에베소 지역을 섬기는 목회자로 사역을 했습니다.
사도바울은 3차 전도여행 이후 에베소 지역을 디모데에게 맡겼고,
이후 사도바울은 로마 지역인 마케도니아로 다시 가서 사역을 이어갔습니다.
그러고 보면 바울의 삶은 쉼이 없어보입니다. 상황에 따라서, 어느 한 지역에 머물며 시역할 법도 한데,
하나님이 인도하심을 느끼면 그냥 그대로 가는 것을 봅니다.
자신의 어려움을 생각하는 것보다 사명이 우선 된 것을 봅니다.
디모데후서 4:5–8
5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6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사도 바울도 말합니다. 이건 고난이다.
디모데에게 에베소를 맡기며 목회자로서 살아가는 것,
그 직무가 결코 쉽지 않음을 이야기 합니다.
이제 곧 삶을 다하여 죽음을 얼마 앞둔 상황에서 자신의 사역을 물려주는 디모데에게…
좋은말로 응원해줘도 어려운 일인데,
가감없이 명확하게 말합니다. 이것은 고난의 일이니까,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우리가 지난 2년간 사도행전을 담임 목사님을 통해 살펴본 것처럼,
바울에게 참으로 많은 고난의 길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니라 하면 막힌 것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막으심으로 다른 길로 간 것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사도바울은 자신에게 맡겨진 일들에 멈춤이 없었습니다.
그 고난의 길을 다 받았습니다.
우리가 여름 선교를 국내외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번주면 모든 여름 선교를 마치게 될 것입니다.
아직 진행중인 성도님들도 있지만,
다녀오신 분들은 어떠셨습니까?
휴가 다녀온 것처럼 편하셨습니까?
행복하셨습니까?
(반응에 따라서)
역시 우리 성도님들은 모든 상황을 기쁨으로 여기는 훌륭하신 분들입니다.
가기전에는 기대함이 있었지만,
막상 가보면,
사서 고생이라는 것이 더 많습니다.
선교 지역에 따라서,
먹는 문제나, 자는 문제나, 또 언어 문제도 있을 수 있고요,
여러 상황들이 다 부딛치는 문제들입니다.
특히 휴양지로 여행을 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에게 특별히 서비스를 해주는 것도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여름 선교를 가면 결코 쉽지 않았음을 느끼고 옵니다.
이 모든 상황들을 생각해보면 고난입니다.
그런것만인가요?
우리 일상으로 돌아와서 생각해보면요.
아침에 눈을 떠서 밤에 잠이 들때까지의 하루의 삶을 보면,
참으로 치열하게 살고 있는 것을 봅니다.
마치 전쟁터에 나아가 싸우고 돌아오는 것처럼,
각자의 위치에서 정말 치열하게 살고 돌아옵니다.
가정에서는 평안하십니까?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것도 전쟁이고,
아침에 밥 먹이는 것도 전쟁이고,
저녁에 자녀들 샤워시키는 문제도 전쟁입니다.
모든 것이 전쟁과 같은 고난입니다.
제가 조금 과한 표현으로 고난이다, 전쟁이다 표현을 했는데요.
왜 이렇게 고난으로 느껴질까요?
갑자기 떠오르는 말씀이 있지요?
오늘 설교에 앞서 서두에서 말씀해드린 것처럼,
하나님이 아담에게 했던 말,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우리의 모든 상황이 전쟁이고 고난인 것은,
우리의 인생에 모든 것은 수고하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서두의 말을 연결해서 말씀드리면,
우리 인생의 고난이 곧 우리 삶의 흐름입니다.
다시말해,
이 땅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삶의 흐름은 당연히(?) 고난입니다.
디모데 전후서를 쓴 사도 바울은 어땠습니까?
여러분이라면 사도 바울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까?
제가 생각하기엔 고난도 이런 고난이 없습니다.
1차 전도여행만 대략 2000km
2차 전도여행도 대략 2500~3000Km
3차 전도여행에 대략 3000~3500Km
3차 마치고 로마로 전도여행을 떠난 1500Km를 다녔으니,
이것만 합쳐도 대략 1만~1만 2천km정도를 다녔습니다.
보통이 아닙니다.
게다가 로마에 투옥을 당하기도 했지요.
억울하게 박해 받고 재판도 받았지요.
그러다보니 그 인생 대략 60세 전후로 마감했다고 여러 자료들에 기록되어 있는데,
어떤가요? 행복한 삶이었겠지요?
저는 사도 바울의 삶을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사도행전을 따라 쫓아가며 읽는 것만해도 숨이 찹니다.
이제 좀 돌아왔다 싶으면 나가고, 돌아왔다 싶으면 또 다른 지역으로 갑니다.
그 고난을 저에게 해보라고 한다면, 저는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사도바울은 가능했습니까?
사도 바울은 그것을 소명, 하나님이 부르신 명령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 소명인데 참으로 고통스럽습니다.
이 순간 또 떠오릅니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했던 말,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하나님의 일을 했던 사도 바울도 평생의 수고였고, 고난이었습니다.
사도 바울만 소명입니까?
우리의 삶도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살아가는 삶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도 평생의 수고이고, 고난입니다.
우리는 평생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고난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디모데에게 편지를 쓰며
그렇게 고생스럽고 고난스러운 일들을 통해 깨달은 바를 적은 내용이 있습니다.
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8 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디모데가 앞으로 사역을 해 나가야하는 것 무엇입니까?
고난입니다. 평생의 고난입니다.
고난을 생각하면 어떻습니까?
두렵습니다. 걱정이 됩니다.
우리는 두려움이고 고통인데,
사도바울은 이것이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사도바울은 디모데에게
하나님이 주신 마음은 두려움이 아니다.
너에게 고통을 통해 두려움을 주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마음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능력 = 이것을 권능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사랑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절제를 말합니다.
여기서 절제는 옳고 그름을 구분하는 것, 분별하는 능력, 통제하는 능력 등을 말합니다.
고난을 경험하고 있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하나님은 두려움을 주신 분이 아니라
능력과 사랑과 절제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고난이지만, 그 고난 가운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고난의 형태인 고통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고,
우리에게 사랑을 허락하시고,
우리에게 통제할 수 있는 능력, 절제를 허락하십니다.
그러면서 8절에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자 된 나를 부끄러하지 말고”
내가 전한 복음을 기억하고,
바울이 지금 감옥에 갖힌 상태에서 이 편지를 쓰고 있기 때문에
이런 가시적인 모습 때문에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무엇입니까?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말합니다.
복음과 함께 사역해라~
힘든 일이 있다. 고통스러운 일이 있을 것이다. 또 에베소 동네에 소요가 있을 수도 있다.
또 사람들이 너를 괴롭힐 수도 있다.
그럼에도 복음과 함께 계속 사역해라.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가지고요?
하나님의 능력, 권능을 가지고,
사랑을 가지고,
그리고 하나님으로 부터 절제의 능력을 받고,
복음과 함께 거침없이 사역해라!! 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고난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그것은 이미 창세기에서 우리가 확인했습니다.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우리는 고난으로부터 자유로울 방법이 없습니다.
그럼 그 고통 어떻게 해야 합니까?
받으라는 것입니다.
너에게 닥치는 일들? 피하지 말고, 받아라.
세상의 흐름? 거스르지 말고 받아라, 지나가라는 말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어떤 상황이든, 감옥에 갖히는 상황이든, 억울하게 누명을 쓰든,
내게 어떤 아픔이 있든, 내가 어떤 병이 있든지….
거침없이 나아가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삶에서
‘세상의 흐름’을 거스를 순 없습니다.
코로나 어땠습니까?
우리가 코로나를 비켜갔습니까?
우리에게 국가 전염병이었던 코로나,
정통으로 마주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번씩을 다 걸리고 그랬습니다.
그것이 2020~2022년 사이에 흘러왔던
‘세상의 흐름’입니다.
전염병 앞에 한없이 연약함을 발견했습니다.
그 고통을 우리는 받았습니다.
그 고난을 정면으로 받았습니다.
어떻게 했습니까? 두려워서 도망갔습니까?
도망가지도 못했습니다. 그냥 정면으로 받았습니다.
그렇게 고난은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예배는 멈추지 않았고,
하나님 앞에서 붙들려 살았습니다.
그래서 두려우셨습니까?
고난은 받았지만 두려움은 우리 몫이 아니었습니다.
사도바울이 말한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려움을 허락하시지 않았습니다.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은
우리에게 이 상황을 잘 버틸 수 있는 능력을 주시고,
우리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땅을 사랑할 수 있도록 허락하시고,
우리에게 여러 갈등과 충동이 있을 수 있지만,
통제할 수 있는 능력, 절제를 허락하셨습니다.
———-
imf 때 어땠습니까?
우리가 피해갔습니까?
세상은 지금의 상황에 있는 스스로의 모습을 보며,
이겨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어떻게 했습니까?
그 고난 정면으로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때 가장 크게 일어난 일이 무엇인줄 아십니까?
대학생 부흥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각 대학 노천 극장에는 부흥의 물결이 흐르는 찬양과 예배가 공개 집회로
누구도 편협한 종교 행사라고 하지 못할 정도로 크게 열렸습니다.
예배가 위로였고, 희망이었고, 회복할 수 있는 힘이었습니다.
그것도 수시로 열렸고 대학 뿐만 아니라 각 지역에서도 공개 예배 자리가 많이 열렸습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허락하신 것이 아니고,
능력(권능), 사랑, 절제를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경험한 것이 무엇입니까?
아… 우리 삶의 고통,
피할 것이 아니구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는 일들이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진행되는 일들이고,
하나님이 분별하는 능력과 절제하는 능력을 주시는 일로 이뤄지는 것이구나.
사도 바울이 평생을 사면서
1만km넘게 다니면서 온갖 모욕과 고통을 받으며, 심지어 옥살이를 통해 고통을 받았으면서도
이 일을 디모데에게 하라고, 권유하며 인도한 것은 무엇입니까?
이 일에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능력이 있었고,
하나님으로 부터 받은 사랑이 있었고,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절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가 무엇입니까?
모든 것을 누릴 수 있게 해주신 은혜,
우리가 죄로 인해 타락한 그런 모습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충분히 살아가는 은혜,
그런 은혜를 허락하신 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삶의 흐름은 무엇입니까?
서두에 제가 계속 부정적인 말로 삶의 흐름을 이야기 했었는데,
이제는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의 흐름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됩니다.
이번 주간 담임 목사님 통해서 빌레몬서를 마무리하며 우리에게 주신 말씀이 기억나느데요.
시작도 은혜요 끝도 은혜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시죠?
우리는 우리의 삶의 흐름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있어야,
고난도 받을 수 있습니다.
일하러 갈때도, 공부하러 갈때도, 일상의 고난 가운데서도
모든 상황 속의 고난을 받을 수 있습니다.
나의 아픔도, 고통도,
혹여나 나에게 병이 찾아왔더라도,
지금의 순간을 고난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는 사도바울의 말처럼,
우리는 지금의 아픔도 복음과 함께 받을 수 있습니다.
마무리 합니다.
우리 인생의 ‘삶의 흐름’을 거스를 순 없습니다.
각자의 삶은 다를 수 있지만,
각각의 고난은 누구에게나 존재합니다.
그 고난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고난으로만 끌고 가시겠습니까?
아니면 고난과 함께 복음으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사랑으로,
하나님의 절제로 덮으시겠습니까?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가 아니라,
피할 수 없는 ‘삶의 흐름’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사랑으로,
하나님의 절제로 덮는 여러분들 되시길 소망합니다.
그러면 9절 말씀대로,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여러분들의 삶은 은혜로 시작해서 은혜로 마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