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802 새음 고등부 수련회 설교(2)
2024 새음고등부 여름수련회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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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예수님의 한몸이다.
-나뉘어져 있는 이 시대
-외로움 가득한 사회
-우리를 부르신 본질(공동체를 ,사회를 주심)
-분열의 영
-한 몸을 귀하게 여기심
-교회로 불러주셨다
-함꼐 말씀을 듣고 신앙을 배우는 공동체
-귀하지 않은 지체는 없다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서론; 외로운 시대
여러분 먹방 좋아하시나요? 저는 먹방이라는 문화가 이렇게 잘 될 줄 몰랐습니다. 이제는 개인방송 시장에서 한 자리를 제대로 잡고 있죠.
제가 아는 형님은 히밥이라는 분의 유튜브를 주로 보시던데 저녁밥을 다먹고 양치도 하고 있다가 이분의 영상을 보면 자기도 모르게 야식을 주문하게 된다고 얘기했던게 생각이 납니다. 분명 밥을 먹었는데도, 그걸 보면 자기도 먹고싶어진다고 해요.
사람들은 주로 혼자 뭘하거나, 쉴 때, 차를 타고 이동할 때 이런 개인방송들을 켜서 심심함을 달래죠. 그러면서 배고픔도 같이 달래구요.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다보니까 이런 스트리밍들을 찾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방송들을 즐기죠. 이런 문화들은 이 시대의 개인주의와 정말 잘 어울리면서 또 한편으로는 정말 안어울립니다.
정말 잘 어울린다는 것은 혼자 뭘 할 떄 이런 방송을 켜고 있으면 너무 즐겁다는 거에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요. 너무 유용하죠.
여러분이 보시다시피 저는 음식에 은사가 없어서 많이 먹지도 못하고, 또 먹는거에 크게 관심이 없는데 아까 말했던 그 형님은 먹을 걸 너무 좋아하시고 또 혼자 사세요. 자주 먹방을 보시더라구요.
먹방 스트리머들이 방송을 하면 말없이 먹기만 하진않잖아요? 먹으면서 시청자들과 대화를 하죠. 소통을 하면서 어떻게 지내고 있다, 오늘 뭘했다 등등을 나눕니다.
저는 사람들이 먹방을 보는 이유가 먹는 걸 보려고 하는가보다 생각했는데 그거뿐만 아니라 그 스트리머들과 소통을 하는걸 좋아해서 본다고 하더라구요? 이 부분이 좀 어울리지 않는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혼자지내는걸 선호하면서 또 소통하는걸 좋아한다? 뭔가 말이 안맞지 않나요?
이 시대는 뭔가 외로우면서도 외로운 티를 안내려고 하는 것 같아요. 쿨한 척하는 그런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 생각이 가장 많이 드는게 인스타 스토리에요.
요즘은 게시글을 안올리고 스토리로 올리잖아요? 저는 스토리 기능을 알고 사용해본 게 이제 거의 2년 정도 된거 같아요. 23년도부터 스토리를 사용해봤는데 왜 이런걸 사용하지 하다가 아는 동생들이 요즘 이게 대세라면서 알려줘서 써봤어요.
근데 이걸 왜하나 싶은 생각이 계속들어서 안하게 되더라구요. 지금은 아내가 정한이 사진을 태그하고 그거 스토리에 다시 올리라고 얘기해줄때만 합니다. 여전히 어색하고 왜 하는건지 모르겠습니다.
스토리를 올리는 심리는 뭘까요? 스토리를 통해 내가 오늘 뭘했어, 누굴 만났어, 뭘 먹었어 이런 걸 업로드 하죠. 근데 이 스토리라는걸 보면, 굉장히 휘발성이 강합니다. 그래서 오늘 올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사라집니다. 타이밍이 되서 그 게시글을 볼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보지 못해요.
사람들은 스토리를 올리면서, 내가 뭘하고 있다고 나누고 싶지만 그러나 너무 깊은 관심은 부담스럽고, 내가 어떤 걸 하는지 알리고 싶지만 너무 많은 걸 보여주고 싶진 않는, 혹여나 다른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더라도 ‘그래 저 사람들은 타이밍을 놓쳐서 못본거야 내가 인기가 없는게 아니야’ 라는 식으로 위안을 삼을 수도 있는 그런 기능이 스토리에 담겨져 있는 거 같아요.
세상 쿨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 시대의 외로움과 외로움을 해소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단편적인 예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 사회의 가장 큰 아픔과 어려움은 외로움인거 같아요. 개인주의가 심해지면서 혼자 지내고 싶어하지만 소통을 원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죠. 그러나 어떻게 소통해야 할지 몰라서 집 옆에 사는 이웃들이랑은 인사도 안하면서 생전 처음 본 사람들과 오픈 채팅방, 라이브 방송을 통해 친밀하게 대화를 나눕니다. 사람들은 모두 쿨한 척, 안 외로운 척 하지만 사실은 너무 외롭죠. 누굴 만나고 싶죠.
우리가 이 외롭다고 느끼는 감정이 참 신기해요. 우리는 왜 외로움을 느낄까요? 언제는 혼자있는게 좋다가도 금새 함께 있고 싶어지잖아요? 누군가 함께 해줬으면 좋겠고 화장실 갈 때도 누군가 같이 가줬음 좋겠고 말에요.
사람의 고독이라는 문제는 해결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동아리를 하거나, 운동 크루를 하면서 외로움을 해결합니다. 그러나 그런 관계를통해서는 근본적인 외로움을 해결하지 못하죠. 관계를 통해서는 외로움만 더 쌓이는 것 같습니다. 어쩔 때는 누군가와 함께 있는데도 외로워. 소외되어 있어요. 슬프죠.
우리 삶속에서 맺는 관계들을 통해서는 이 외로움을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냥 외롭게 지내야 하는 걸까요?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걸까요?
저는 어제와 같이 오늘도 이러한 문제에 대해 성경에서 답을 찾고자 합니다.성경이 말하는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서 살펴보고 그리고 이 외로움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를 알아보고자 합니다.
제가 이렇게 접근하는 것은 성경이 이 시대의 외로움에 대해서 근본적인 해결책을 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며 이를 통해 개인화 되어가는 이 분열을 회복할 수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공동체
성경에는 최초의 공동체가 등장합니다. 아담과 하와죠. 하늘 아버지께서는 아담을 지으신 뒤 그가 혼자 있는 것이 좋지 못하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니 하늘 아버지께서 사람을 당신의 형상을 닮게 창조하시고 낳으셨는데 그리고 그 모습이 좋다고 말씀하셨으면서 이제는 좋지 않다니요?
여기서 ‘좋지 않다’는 말은 그 존재가 좋지 않다는 말이 아니라, 홀로 지내는 그 모습이 좋지 않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한가지 사실을 알 수 있죠. 아무리 잘 지어진 존재라 할지라도 완벽해 보이는 사람이라 해도 혼자 있는 모습은 불완전한 모습이다 라고 말입니다.
요즘 혼자 사는 것이 대세가 되면서 나이를 꽤많이 드셨지만 결혼을 안하시는 독신 분들이 참 많아요. 티비에도 나혼산 연예인들이 많이 나옵니다. 제 주변에도 그런 형님, 누님들이 많습니다. 그런분들이 그들이 힘들게 사느냐? 그렇지 않아요. 잘 삽니다. 외모도 괜찮고, 재정적으로도 어렵지 않게 지내세요. 잘 놀러다니시구요.바쁘게 사세요.
근데 그런 사람들을 들여다 보면 외로움이 많으세요. 그런 외로움을 감추려고 온갖 애를 다 쓰면서 바쁘게 사시지만 외로워하세요.
아담을 보시고도 혼자 있는게 좋지 않다고 말하셨는데, 다른 사람들은 오죽하겠습니까? 그래서 하늘 아버지께서는 아담에게 그의 단짝으로 하와를 허락하시죠.
그래서 이땅에 인류 최초의 공동체를 허락하셨습니다. 그들은 함께 살며, 그들의 외로움을 극복하고, 그들에게 맡기신 사명 이 땅을 다스려라 통치하라는 사명을 더 잘 수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가정을 통해 사람의 제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게 된 것이지요.
요즘 시대는 결혼을 굉장히 필요없는 것, 피곤한 것으로 여깁니다. 또 돈이 많이 들어간다고 해서 하고 싶지 않게 만듭니다. 결혼식을 시작으로 신혼여행, 집을 구하는 문제, 함께 맞춰가는 문제들은 사람들에게 너무나 힘든 일, 버거운 일, 저런 것까지 해야해? 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일로 인식됩니다.
그러나 하늘 아버지께서는 결혼을 통해서 사람이 이 땅에서 사람으로서, 하늘 아버지의 자녀로서 허락하신 기능과, 역할을 백퍼센트/이백퍼센트 감당할 수 있게 하셨어요.
자신이 누군가로부터 확실한 사랑과 관심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서 도저히 해결할 수 없었던 외로움의 문제를 해결하게 되고 그보다 더 가치있는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된 것이죠.
사람의 거의 모든 관심사가 초점이 외로움을 해결하는 것에 맞춰있잖아요. 자매들보다 형제의 경우 좀더 그렇고, 형제 중에서도 저의 경우에는 더 그렇습니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 혼자 지내게 되면서 사람에 대한 외로움이 컸어요. 그래서 사람 만나고 싶고 사귀고 싶고 그랬어요. 그래서 제 학창시절을 생각하면 아내에게 정확한 수를 얘기하진 못했지만 많은 사람들과 교제를 했어요. 제 마음의 초점이 그런데 맞춰져서 다른 일을 잘 할수가 없는거에요.
근데 아내를 만나고 결혼을 하면서 저는 너무 자유해졌습니다. 제마음에 안정감이 생기고 다른 일들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되었어요.
그곳에 우리는 모든 열과 정성을 쏟는데 그곳에 들이는 노력을 다른 곳에 사용할 수 있으니 효율적입니까? 물론 이 관계를 얻기까지 꽤나 힘들 수 있지만 결혼과 가정을 이루는 일에는 그런 어려움을 뛰어넘는 가치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청년들에게 종종 농담 반, 진심 반으로 얘기합니다. 결혼 일찍하라고 너무 좋다고 우리 고등부 친구들에게도 하고 싶네요. 일찍 하시기 바랍니다. 졸업하고 얼른 결혼할 상대를 찾아서 그분과 아름다운 가정을 이뤘으면 좋겠어요.
하늘 아버지께서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가정이라는 사회를 이루게 하신 것은 사람의 연약함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 관계를 통해 하늘 아버지의 자녀로서 이 땅에서의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타락, 분열
그러나 이 관계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죄로인해 하늘 아버지와 사람의 관계가 깨어지고 난 뒤, 이 관계는 사람에게도 영향을 줍니다. 그래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깨집니다. 가장 가까워야 할 형제 가인과 아벨의 관계가 깨져버리는 것이고, 그것으로 아담의 가정이 풍비박산 납니다.
다 아는 것처럼 가인은 아벨을 못마땅하게 여겨서 그를 죽여버렸죠. 그리고 그는 아버지의 집에서 도망나오듯 쫓겨나며 홀로 생활하게 됩니다. 그가 떠나고 아담의 가정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슬픔이 가득했겠죠? 너무나 힘들었을 것입니다. 자녀에 대한 트라우마도 생겼을 것 같습니다.
사람의 죄로인해 깨져버린 하늘 아버지와의 관계는 사람에게까지 영향을 미쳤고 더이상 바른 관계, 이전에 누리던 부부로서 관계, 형제로서의 관계를 누리지 못하고 분열과 다툼이 생겼습니다.
가장 가까운 관계가 그렇게 됐는데 다른 관계들을 어떻게 될까요? 어제 얘기했던 것처럼 돈으로 친구를 사귀고, 술로 사귀고, 도움의 한 방편으로 관계를 맺고, 외로움을 달래고자 사람을 만나는 그런 관계를 맺게 되었습니다.
그런식으로 해소하려고 하지만 해소할 수 없는 외로움이 우리를 어렵게 합니다.
-관계의 회복; 예수 그리스도
이런 외로움을 우리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애배소서 2장은 하늘 아버지께서 에베소 교회 안에 있던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의 관계를 회복시킨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벌레보듯이 취급했던 사람들입니다. 밥을 같이 먹지도 않고, 대화를 나누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4장을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이방인들의 땅이었던 사마리아로 가고 싶어하지 않아했던 것을 알수 있죠.
그러나 하늘 아버지께서는 사람의 깨어진 그 관계를 회복시켜주시고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셨습니다. 참 예수님은 만능열쇠같으세요.
우리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한 일은 바로 ‘화목’입니다. 두 사람간의 관계를 회복시켜주셨어요. 먼저는 하늘 아버지와 사람 사이의 관계를 회복시켜주셨죠. 에베소서2장의 표현을 빌리면 ‘중간에 생겼던, 둘 사이를 갈라놓았던 담을 십자가를 통해 허물어 주시고, 원수되었던 것을, 그 관계를 소멸하셨다’ 아예 없애주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서 교인들을 향해, 그리고 그 교회 안에 있는 이방인들을 향해서 ‘이제 너희들도 동일한 성도다, 자녀다’ 라고 말합니다. 유대인만 자녀가 아니라, 유대인이라도 하늘 아버지의 자녀가 아니다. 오직 예수님을 믿어 그 십자가 피를 믿어 의롭게 된 자들만이 하늘 아버지의 자녀다 라고 선포합니다. 이 조건은 혈통이나 학벌, 그런 것으로 되지 않고 오직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모두 아버지의 자녀가 되는 은혜를 주세요.
그래서 에베소서2장22절 우리가 함께 고백한 찬양의 가사처럼 예수님 안에서 건물처럼 서로 연결되어 성전이 되고, ‘함께 지어져 가는’, 함께 자라가는 몸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함께 지어져간다 건물이면 마무리가 있어야 하는데, 계속해서 함께 성장해 간다라고 말합니다. 큰 의미가 담겨져 있는데 우리 몸이 계속해서 자라는 것처럼 교회로 한 몸된 우리들이 이 관계속에서 서로 부딪히며 다투며, 또 사랑하며 기뻐하며 함께 자라나간다고 하는거에요. 너무 놀라운 말씀이죠.
어제는 우리가 각자가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말했다면, 바울은 이 관계를 확장해서 너희 각자가 그리스도의 몸이고, 그분의 지체가 되어서 한 몸이라고 말하고 있어요.
누구는 손이고, 누구는 발이고, 누구는 코고, 누구는 목이라고 하시는거에요. 각자 다양함을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하나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한 몸을 이룬다고 말씀하세요. 누구나 다 눈일 수 없고, 누구나 다 발일 수 없습니다. 모든사람이 다 내 입맛에 맞을 수 없고 함께 관계맺어 가는것입니다. 우리가 오전과 오후 계속해서 서로에 대해 알아가고 또 우리가 한 몸이라는 의식을 갖고 오늘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전에는 그런 생각해보지도 않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을지 몰라요 하지만 우리가 이번 수련회를 통해 기억했으면 좋겠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자녀가 되었음에도 이 사실을 잊어버리면 행하는게 쉽지 않은거 같아요. 우리에게 남아있는 죄성은 혼자지내는게 편하고, 혼자 다 하는게 쉽고 그래요.
그래서 맘에 안들면 걍 무시하고 내가 알아서 나혼자서 해야지 그런 마음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오전에 새끼발까락을 찾으면서 공동체 훈련을 했는데 혼자 할수없었죠. 다같이 해야했죠. 그러는중에 답답한 것들도 있었을 것이고 아쉬운 부분도 있었을 거에요.
하지만 협력해서 새끼 발가락을 찾았어요.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그들 또한 귀중한 새끼발가락이며, 우리가 찾은 것은 다른 사람의 새끼 발가락이 아니라 우리의 새끼발가락이다. 우리 또한 연약한 지체다. 상대방을 사랑하지 못하고 불편해하고, 한몸이라는 것을 배웠지만 그렇게 살지 못하는 내가 연약한 지체다 내가 새끼발가락이다 라는 사실을 꺠닫게 되는거에요.
그렇지만 우리 주님은 그런 새끼발가락을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귀중하다’ 귀중한 지체다. 우리 몸에 그 어느 부위도 귀중하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몸이라면 어떻겠습니까? 더 그렇겠지요.
새끼발가락이든 어디든 각자에게 허락하신 역할이 있고 그에 맞는 달란트를 모두 주셨어요. 다양한 은사를 주신이유는 그 은사를 통해 달란트를 통해 하나되게 하기 위함이세요.
달란트를 받아서 자기만 마싯는거 먹고 땡이 아니라, 함께 사먹고 함께 나눠먹고 그러기 위해서 주는겁니다. 오늘 집회 마치고 또 함께 간식을 먹게 될텐데 그때는 우리가 이 말씀을 기억하며 함께 나눠 먹어봅시다. 함께 조별로 모여서 같이 받은 달란트를 함께 나눠먹는거에요.
서로서로가 힘을 모아서 받은 달란트를 자기를 위해 자기만 높이며 살아가라고 주신게 아니라, 서로 하나가 되라고 한 몸인 교회로서 살아가라고 그런 달란트들을 주신 거에요.
-한 몸이 되어야 하는 이유
한 몸이 되어서 한 교회로서 살아가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가 어제 말했던 것처럼 우리는 혼자 살아갈 수 없고, 혼자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생각하며 믿음을 가지고 살아갈 수가 없어요.
그래서 우리를 한 공동체로 부르셨고, 태초에 아담과 하와를 두셔서 그들에게 맡기신 사명인 아버지의 자녀라는 기준을 가지고 그런 정체성을 가지고 이땅을 살아가라. 세상은 알 수 없는 알지 못하는 그런 거룩하고 구별된 가치를 보여줘서 이것이 진정한 이 땅의 기준임을 알려주라고 우리를 공동체로 불러주신 거에요. 이런 귀한 사명이 저와 여러분이 모인 새음 교회, 그리고 새음 고등부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다른 교회의 친구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생각을 더 넓혀 이 땅의 교회가 한 몸임을 기억하며 함께 이 땅 가운데서 진정한 전제/기준, 영원한 가치를 붙잡고 살아가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교회가 바로서야 이땅이 바로섭니다. 교회가 바로서기위한 첫단계는 내가 그리스도의 몸임을 기억하며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고, 두번째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으로 하나되었음을 믿으며, 한 몸으로서 서로를 위하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며, 서로 사랑하며 우리 안에서 하늘 아버지의 뜻이 이뤄지길 바라며 실천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뤄질 때 확신하건데 우리가 사는 마을이, 이 지역사회가, 이 나라가 진정한 가치로 올바르게 세워질 것입니다.
교회가 무너지고, 사회로부터 지탄을 받으며 개독교라 욕을 먹고, 안티 크리스찬들이 늘어나며 더이상 세상이 교회에게 선한 영향력을 기대하지 않게 될 때 이 사회는 무너지게 됩니다.
분별력없고 기준없는 자유는 망해가는 길일뿐입니다. 성별의 자유, 권위의 자유 등등 이런 자유들이 만들어낸 결과물들이 어디있습니까? 동성애문제와 어른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아이를 존중하지 않는 그런 사회가 되어버렸죠. 이밖에도 너무 많죠.
더이상 무엇이 기준인지, 무엇이 바른 삶인지, 세상은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주일 예배를 통해 그리고 주중에 부모님이나 선생님들을 통해 말씀을 들으며 찔림이나 고민이라도 할 수 있지만 세상 사람들은 그럴 기회조차 없어요. 그냥 이 땅의 가치들을 좇아 그렇게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그런 안타까운 처지에 있는거에요. 세상은 외로움을 다른 식으로 해결할 수 없는 방식으로 채우려고 하나 우리는 진정 바르고 합당한그리고 가장 좋은 방식인 예수님을 믿어 그분을 통해 경험한 하나됨으로 세상 그 어떤 것보다 강하고 하나된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므로 아 저게 진짜 공동체구나, 저 모습이 부럽다, 저 모습이 참 좋다,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 나도 저렇게 한 공동체를 경험하고 싶다라고 느끼게 해줘야 합니다.
우리들끼리만 잘 지내자 그런 수준을 넘어, 세상과 다른 가치로 살아가서 세상 속에서 거룩함을 보여주는 그런 수준에까지 이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기억합시다. 우리가 교회입니다. 믿음은 훈련입니다. 믿음을 허락하시고 우리는 그 믿음을 따라 성장해나가야 합니다. 이런 의식을 우리는 늘 가지며 살아갑시다. 수련회가 마지막을 향해 달려갈수록 지치고 힘듭니다. 피로해집니다. 우리가 끝까지 정신차려서 우리가 하나임을 기억하며 사랑합시다.
고린도 전서12장에서 예수님께서 여러 은사를 주셨고 그것을 통해 교회를 하나되게 하셨다 라고 말한 뒤 이 내용을 마무리지으며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받은 은사 중에 그 무엇보다 귀한 것이 있다. 이것을 너희에게 알려주겠다. 이것이 무엇이냐? 사랑이다. 라고 말하며 그 유명한 고린도 전서 13장 사랑장의 포문을 엽니다.
우리에게 가장 부족한 사랑, 그러나 누구에게나 주신 사랑, 이 사랑은 우리에게 허락하신 믿음이라는 은혜만큼 귀하고 값진것입니다. 아버지께서 보여주신 것이고 선물로 우리 마음에 새겨주신 신성의 한 부분입니다. 어떻게 서로를 사랑할 수 있을까요? 사랑할 수 없었던 자들이 예수님의 사랑을 통해 우리가 사랑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고귀한 은사입니다. 믿음도 훈련이듯이 사랑도 훈련입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합시다. 한몸임을 기억하며 하나되기를 힘씁시다. 사랑합시다.
사도 요한은 우리가 나누는 이 사랑을 통해 세상이 하늘 아버지를 보게 되리라 말씀하십니다. 서로 사랑함으로 하나되고 하늘 아버지의 뜻을 세상에 나타내는 우리 새음 고등부 친구들이 되길, 여기 모인 모든 친구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제목
-찬양 함께 지어져 가네
1.분열을 일삼는 자입니다. 하나되려 하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내 안에 이기심이 가득합니다. 용서해주세요. 회개합니다. 제게 사랑이 없습니다. 하나되기 보다 나혼자 지내려하고, 친한 사람끼리만 있어서 다른 친구를 소외시켰습니다. 나의 마음을 용서해주시고 나의 마음을 열어서 하나될 수 있는 마음을 주세요.
2.주님께서 우리를 한 몸이 되게 하시고 우리 함께 지어져 가게, 자라가게 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며 모든 몸이 소중하듯 서로를 소중히 여기는 우리가되게 해주세요. 하나되게 해주세요.
-찬양 교회를 교회되게
3. 우리가 하나되어 이 땅에서 진정한 연합을, 진정한 하나됨을 세상에 보이게 해주시고 이를 통해 세상이 하늘 아버지의 뜻을 알게 해주세요. 주님의 몸인 우리를 통해 주님의 뜻이 드러나게 해주세요. 교회가 교회되게 하시고 이 일에 저를 써주세요. 우리를 써주세요
4. 한 몸임을 잊지 않게 해주시고, 수련회 이후에도 이 일들을 힘써 해나가는 우리되게 해주세요.
-찬양 기대
함께 원을 그리며 손잡고 찬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