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습관을 바꿔나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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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습관을 바꿔나가는 법
[서론]
파리 올림픽이 한창입니다.
밤늦게까지 여러 종목들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자세히 보았습니다.
보니까 선수들이 항상 무엇인가에 집중하는듯 했습니다.
뭘까요?
바로 실수입니다.
배트민턴도, 수영도, 양궁도, 유도도 모두 실수를 조심하려 합니다.
한번의 실수가 메달 색깔을 바꿀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실수하지 않는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것입니다.
바둑에서도 지고나면 항상 하는게 복기라는 과정입니다.
자신이 왜 졌는지 살펴보는 것입니다.
운동선수들도 그렇습니다.
이번 파리 올림픽에서 수영의 황금시대가 열렸다며 많은 국민들이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너무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결승진출에 실패한 황선우 선수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아직 배워야 할게 많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내 수영 인생을 돌아보는 계기도 됐다’
우리 역시 실수나 실패가 많은 삶입니다.
매일 한번도 살아본 적이 없는 새로운 하루를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실수나 실패를 하지 않는게 아닙니다.
같은 실수를 줄이고 반복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 인간은 너무나 쉽게 똑같은 실수나 실패를 반복합니다.
오늘 말씀에 등장하는 사람들도 그렇습니다.
[본론]
앞서 바벨론에 의해 예루살렘이 멸망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는 일부 백성들이 남아 있었습니다.
바벨론은 그곳에 총독 그달리야를 세워 통치하게 했습니다.
이 때문에 전쟁을 피해 도망쳤던 사람들도 다시 돌아왔습니다.
하나님은 그 남은 자들을 통해 유다 땅에서 새롭게 시작하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러나 어느날 총독 그달리야가 유다 왕족인 이스마엘에 의해 암살당하고 맙니다.
그러자 남겨진 유다 백성들은 바벨론의 보복을 두려워 합니다.
바벨론이 세운 총독이 죽었으니 바벨론 왕이 분노하여 자신들을 모두 짓밟을 거라 여긴 것입니다.
이에 남은 유다 백성들은 예언자 예레미야를 찾아가 하나님의 뜻을 묻습니다.
예레미야는 백성들이 유다땅에 남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합니다.
이집트로 도망가게 되면 그곳에 재앙이 임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벨론 왕의 보복을 두려워한 백성들은 하나님의 뜻을 거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예레미야를 거짓 예언자로 몰아 세웁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처음부터 생각한대로 유다 땅을 떠나 이집트로 향합니다.
이때 예레미야와 그의 서기관인 바룩도 함께 끌고 갑니다.
이제 시간이 많이 흘러 이집트땅에서 살아가는 유다 백성들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그게 오늘 말씀인 예레미야 44장입니다.
이집트에 도착한 유다백성들은 많은 지역에 흩어져 살았습니다.
이집트 남쪽에도 정착했고, 북쪽에도 정착했습니다.
이때 갑자기 예레미야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다시 선포됩니다.
잠깐, 여기서 놀라운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집트에서도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이집트는 이방인의 땅입니다.
유대인들 생각에 따르면 하나님은 유다 땅에서만 말씀하셔야 합니다.
그 곳만이 거룩한 하나님의 땅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방인들이 사는 부정한 땅 이집트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 것입니다.
심지어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여 이집트에 정착한 것인데도 말입니다.
물론 여기서 하나님의 말씀이란 심판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심판의 말씀으로 경고하시는 것도 결국 그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지금이라도 돌이켜 회개할수 있는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사랑하시지 않는다면 그냥 내버려두시면 됩니다.
하나님의 유기가 하나님의 심판보다 더 무서운 형벌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기회가 있지만 하나님의 유기는 기회조차 없기 때문입니다.
흔히 부부가 싸우는 것도 애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애정이 남아있지 않으면 싸우지도 않습니다.
저는 한집에서 사는 부부인데 서로 남남처럼 사는 부부를 본적이 있습니다.
서로 아무 상관도 안하고 관심도 없습니다.
그런 것처럼 하나님이 이집트 땅에서까지 백성들에게 경고하시는 이유도 여전히 그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삶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자주 불순종합니다.
그 결과 슬프고 고통스럽고 견디기 힘든 때를 겪습니다.
그때 더 힘들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 나를 버리신 건 아닌지 의심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한가지 확실한 사실을 알수 있습니다.
어려움과 고난이 곧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다는 증거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 어려움과 고난은 하나님이 여전히 나를 사랑하신다는 증거입니다.
그 괴로운 시간을 통해 내가 회개하고 돌이키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순간에도 결코 자기 백성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유다 백성들을 보십시오.
비록 그들이 불순종하여 이집트로 이주했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그들의 삶에 개입하셔서 그곳에서도 하나님 백성답게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44장 1-14절 입니다.
하나님은 왜 예루살렘이 멸망하게 된 것인지 생각해보라고 말씀하십니다.
3절입니다.
예루살렘이 멸망한 근본적인 이유는 우상숭배로 하나님의 진노를 샀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의 사람들에게 동화되어 풍요의 신들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러면 망한다고 수많은 예언자들을 통해 계속해서 경고하셨습니다.
그렇지만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계속해서 불순종했습니다.
그만큼 풍요에 대한 욕망이 너무나 컸기 때문입니다.
이런 예루살렘의 멸망을 옆에서 직접 목격한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살아남은 사람들, 즉 남은 자들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예전처럼 살아서는 안됩니다.
그런데 그들은 또다시 안전과 풍요에 미혹돼 이집트를 선택했습니다.
그러니 이집트에 가서도 똑같이 우상숭배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과 우상들을 함께 예배하는게 문제입니다.
그것은 언약을 맺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행위입니다.
결혼한 배우자를 속이고 간음한 것과 같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심판의 말씀으로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면 예루살렘에 일어난 비극이 이곳 이집트에서도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하십니다.
그럼 도대체 이스라엘 백성들은 왜 동일한 죄를 짓는 것일까요?
한번 망했으면 정신을 차려야 할 거 아닙니까?
왜 일까요?
9절입니다.
하나님이 강조하시는 단어가 있습니다.
‘잊었느냐’입니다.
과거의 실수와 실패에서 배워야 현재의 모습, 미래의 모습이 달라집니다.
그런데 그들은 과거 역사에서 제대로 배우지 못한 것입니다.
철저히 죄를 회개하고 죄를 반복하지 않기로 작정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때를 놓친 것입니다.
그냥 과거를 흘려보낸 것입니다.
어쩌면 고통스러운 실패의 기억이기에 잊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다 잊고 그냥 새출발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과거의 상처는 잊더라도 과거의 교훈만큼은 마음에 새겼어야 했습니다.
무엇때문에 실패한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그 실패를 반복하지 않을지 철저히 깨달았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실패했습니다.
이런 백성들을 하나님은 매우 안타까워 하십니다.
7-9절을 보십시오.
모두 수사의문문입니다.
하나님이 계속해서 질문하십니다.
뭔가 몰라서 물어보시는게 아닙니다.
그 질문 속에는 하나님의 한숨과 탄식이 담겨있습니다.
7절의 ‘어찌하여’, 8절의’왜’9절의 ‘잊었느냐’
모두 하나님의 감정이 짙게 묻어 있습니다.
유다 백성들은 이집트에서 새출발하기를 원했습니다.
고향땅으로 다시 돌아갈 기대와 소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거기서도 예루살렘과 똑같은 비참한 운명에 처하게 됩니다.
이처럼 과거에서 배우지 못한 사람은 같은 잘못을 반복합니다.
이전의 익숙한 생각의 습관, 몸의 습관으로 쉽게 돌아가 버립니다.
그럼 또 실패합니다.
아무리 환경을 자주 바꿔봐도 똑같이 실패합니다.
내가 바뀌지 않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그럼 우리를 변화시킬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우리에게 과거란 무엇입니까?
바로 어제입니다.
어제를 돌아보지 않으면 삶에서 배우지 못합니다.
어제를 복기하지 않으면 더 나은 현재와 미래는 오지 않습니다.
어제를 복기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영성일기를 쓰는 것입니다.
내가 겪은 일상의 여러 일들과 관계속에서 잘못한 것들을 돌아봐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한 부분은 없었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묵상도 결국 말씀에 비춰 나를 돌아보는 일입니다.
묵상이 말씀을 이해하는데서 그쳐서는 안됩니다.
말씀에 비춰 내가 불순종한 부분이 있다면 회개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그러므로 영성일기를 쓰지 않거나 묵상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은 절대 변화되지 않습니다.
그럼 돌이킬 기회를 주신 하나님의 경고에 대한 유다백성들의 반응은 어떨까요?
44장 15-30절입니다.
그들이 이집트에서 섬기는 대표적인 우상이 있습니다.
별과 달을 상징하는 하늘 여신, 아스다롯입니다.
전쟁과 풍요를 담당하는 여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유다백성들의 최애 우상이던 바알의 배우자로 알려진 우상입니다.
19절입니다.
빵과 술을 만들어 하늘 여신에게 바치는 사람이 아내들입니다.
아내들은 이런 사실을 남편들도 모두 알고 있다고 말합니다.
우상숭배가 얼마나 가정 깊숙히 파고들었는지 알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경고를 들었지만 유다 백성들은 그것을 부정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예레미야에게 항의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내세운 변명이 참 어이가 없습니다.
17-18절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늘 여신을 섬길때 잘 살았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이 여기서 말하는 때가 므낫세 왕 때입니다.
그는 하늘 여신을 지독하게 열심히 섬겼던 왕입니다.
그의 통치때 우상숭배가 매우 심했습니다.
성전에까지 우상을 들여놨고, 자식을 불태워 드리는 제사를 드리던 때입니다.
경제적으로는 매우 부유했고, 나라도 평안했습니다.
유다왕들 중에서도 가장 오랜 기간, 즉 55년을 통치한 왕입니다.
그러나 백성들의 평가와 하나님의 평가는 다릅니다.
하나님이 보실때는 최악의 왕입니다.
반대로 자신들이 하늘 여신을 섬기지 못할때가 있었습니다.
바로 므낫세의 손자인 요시아 왕때입니다.
요시아 왕은 종교개혁을 실시해서 우상들을 모두 제거한 왕입니다.
요시야 왕 때는 나라가 어려움에 처했습니다.
요시야 왕 역시 오랫동안 통치하지 못하고 어느날 전쟁에 나가 갑자기 죽고 말았습니다.
그 뒤 나라는 위기에 빠지게 됩니다.
결국 그의 아들 시드기야 왕을 끝으로 유다왕국은 멸망하게 됩니다.
그러니 백성들은 그의 때부터 나라의 불행이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도 그렇게 평가하실까요?
하나님이 보시기에 요시야왕은 좋은 왕입니다.
이처럼 백성들의 평가와 하나님의 평가가 다릅니다.
평가 기준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기준은 잘 살았는지 못 살았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그들은 그 원인을 하늘 여신때문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25절입니다.
하나님은 하늘 여신에게 충성을 맹세한 그들의 모습을 굉장히 어이없어 하십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은 한번도 제대로 지키지 않던 백성들입니다.
그런데 아무 말도 못하는 우상과 한 맹세는 철저히 지키겠다고 고백한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배신감이 드시겠습니까?
우상숭배를 열심히 하는 바람에 망한건데 오히려 우상숭배를 열심히 안해서 망했다고 믿는 것입니다.
이처럼 진단을 엉망으로 하니 백약이 무효한 것입니다.
왜 이러는 것일까요?
결국 이유는 자기 자신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삶의 주인이 여전히 자기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자기 기준에서 모든 것을 평가하는 것입니다.
내가 변화되지 않으면 아무 것도 변하지 않습니다.
욕망의 뿌리에서 맺은 열매인 생각의 습관과 몸의 습관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내 욕망이 변하지 않으면 신앙생활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아무 것도 변하지 않습니다.
때로 ‘수십년 신앙생활한 사람이 왜 저러지?’ 할 때가 있습니다.
맨날 예배드리고 기도하는 사람인데 왜 변하지 않지?
놀랄 때가 있습니다.
이유는 여전히 삶의 주인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럼 어떻게 변화될수 있을까요?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며 나를 죽이는 수 밖에 없습니다.
말씀을 통해 내 생각과 내 욕망을 조금씩 바꿔가는 수 밖에 없습니다.
작은 변화일지라도 생각의 방향이 바뀌면 삶의 모습도 바뀌게 됩니다.
26절입니다.
변명하는 유다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 등장합니다.
하나님은 더이상 자기 이름으로 맹세하지 못하게 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무시했기 때문에 더이상 그들의 하나님이 되지 않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은 어떻게든 유다 백성들이 행복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불순종하고 떠난 이집트 땅에서도 그들을 지켜보시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지켜보시는 이유가 심판하시기 위해서 입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 보여주시기 위해 표징도 주십니다.
30절입니다.
이집트의 왕이 암살되는 사건을 통해 심판도 반드시 일어날 것을 알려주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이집트에 사는 유다 백성들에게 원하시는 것은 안전이나 부요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거룩하게 구별된 백성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 백성답게 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보다 더 나의 행복을 원하시는 분이 하나님이라고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부지런히 말씀 묵상을 해야 합니다.
그 말씀을 마음에 새겨 내 욕망을 성형해야 합니다.
생각의 습관, 몸의 습관을 바꿔 나가야 합니다.
아무리 환경이 바뀌어도 내가 바뀌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내 욕망은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라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나의 욕망을 조정해 나가는 과정이 묵상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이집트보다 더 많은 우상들이 존재합니다.
그 우상들은 나를 더 잘 섬기고 따르면 너는 행복해질거야라며 가스라이팅합니다.
그러나 우리를 더욱 멸망의 길로 인도할 뿐입니다.
내 안의 우상을 쉽게 제거할수 없습니다.
내가 할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을 가까이 할수는 있습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우상은 설 자리를 잃게 됩니다.
하나님이 내 삶의 주인이 될 때 우상은 밀려납니다.
다시 힘을 내서 묵상에 힘을 쏟을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