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으로 살다 ④ 하나님 자녀의 고난과 영광 (롬 8: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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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으로 살다④ 하나님 자녀의 고난과 영광(롬 8:18-25)
부제 : 고난에 대한 성도의 태도와 고난을 이기는 방법
<서론>
<image 낙인> 「낙인」은 가축의 주인을 표시하시위해 찍는 인증입니다. 어떤 분이 그리스도인이 받는 고난을 「십자가 낙인」에 비유하여 의미 있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양들은 모두다 십자가로 낙이 찍혀 있다. 털에만 찍힌 것이 아니라 살 속에까지 깊이 찍혀있다.」
우리 성도들은 그리스도 예수 때문에 고난이라는 낙인이 찍힌 사람들입니다.
세상은 다른 이유 필요 없이,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다는 것 하나 때문에, 우리를 경계하고 미워하고 핍박합니다.
그렇다면 이 고난은 그저 우리 성도들을 불편하게 하고 괴롭히는 낙인으로 끝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성경은 「성도가 당하는 고난의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17下)
뜻을 분명히 하기 위해, 원문에 가깝게 직역한다면 이렇습니다. ‘만일 우리가 그분과 고난을 받으면, 그렇다면 분명히 영광도 받는다’
성경은 고난의 이유를 역설적으로 말합니다. No cross, No crown!(고난 없이 영광은 없다!)
따라서 우리는 고난을 피하려고만 하지 말고, 오히려 고난을 이겨서 영광을 얻어야 합니다.
이 시간 성도에게 오는 고난의 의미를 상고하며, 그 고난을 헤쳐 나가는 지혜를 얻기를 원합니다.
<본론>
1. 하나님 자녀는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 받습니다(17).
먼저, 그리스도인의 고난의 의미는 「그리스도와 함께 받는 고난」이라는 사실입니다.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예수님은 세상에 계실 동안 끊임없이 고난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이 고난 받으신 것은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이유 하나 때문이었습니다.
사람들의 눈에 예수님은 너무 초라했습니다. 배경도 신통치 않았고, 가문도 보잘 것 없어 보였으며, 가난한 목수의 아들에, 촌구석 나사렛 사람에, 아비도 없는 보잘 것 없는 청년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당신을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이것이 무슨 시 덥지 않은 말인가 여겼지만, 예수님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이 행하는 이적들을 보며,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일 수 있겠다고 살짝 기대도 해봤습니다.
그래서 다윗의 왕권을 가지고 군마와 군대를 동원하여, 로마로부터 자신들을 해방해 주기를 바랐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겨우 어린 나귀 한 마리 얻어 타고, 초라하게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이내 사람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메시아가 아니라고 판단하고, 고개를 내저으며 빈정댑니다. “그의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마 27:43)
「하나님의 아들이라며! 그런데 이게 뭐야!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을 했으니 죽어 마땅하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 때문에, 세상과 사람들에게 외면당하고 고난 당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 예수의 구속사역과 성령의 인침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가 「고난 받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이 받은 고난을 똑같이 받을 수밖에 없고, 예수님이 겪은 반대를 그대로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고난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당하는 고난」이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녀이면...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17) 성도의 고난은 너무나 당연하다고 말합니다.
「왜 나에게만 고난이 와!」 라고 할 것이 아니라, 「주님이 고난 받으셨으니 나도 고난 받는 것은 당연하다!」라고 고난을 해석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바울은 18절에서 성도가 당하는 고난의 성격을 이렇게 말합니다.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18) 이라고 말합니다.
「현재」는 단순히 「지금만」이 아니라, 예수님이 부활승천하신 그때부터 시작하여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재림까지의 시간을 다 포함하는, 2000년전부터 지금까지 계속되는 현재 진행형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예수를 주님과 구원자로 믿어 성화를 시작하는 그 순간부터, 죽어서 하나님 앞에 서는 영화의 순간까지, 「계속 현재진행형으로 고난」받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신앙생활 잘하려고 한다면, 동시에 일생동안 고난당할 각오도 해야만 합니다.
이것이 지나가면 더 이상 고난이 없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이 또한 지나가고 또 계속 오리라고 각오해야합니다.
그렇다면 이 시대 대한민국에서 사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당하는 고난은 무엇일까요?
지금 우리에게는 조선말기와 일제강점기 그리고 6.25때나 공산치하의 북한처럼, 예수 믿기 때문에 죽음을 각오해야하고 감옥에 가야하고 집과 재산을 몰수당하는 극단적인 고난은 없습니다.
그러나 사탄은 교묘하게 세상을 이용하여 성도인 우리를 핍박합니다.
저는 여동생만 네 명이 있습니다. 그 중에 연년생인 동생은, 본인이 첫째가 아닌 것과 남자가 아닌 것을 지금도 억울해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얘는 본인이 조금만 불리하면 저에게 하는 말이 있습니다. 「목사가 그러면 돼!」 저는 우리 집안에서 이 말 한마디면 꼼짝도 못합니다.
삶의 현장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절제되고 바르게 살아가는 이점이 있는가 하면, 예수 믿기 때문에 억울한 일, 분한 일, 손해 보는 일을 많이 당합니다.
신앙생활 때문에 시부모나 남편에게 책 아닌 책을 잡혀서 수모를 당하고 심지어 학대당하는 자매들이 이 시대에도 많습니다.
직장에서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신앙양심이 허용하지 않는 것들; 예를 든다면 부정이나 비리에 협조하지 않는 것, 세상의 놀이나 유흥문화에 함께하지 않는 것 때문에 압력과 불이익을 받습니다.
경제활동에서도 성경과 신앙이 허용하는 정당한 부동산 취득이나 주식 투자를 넘어서기에, 뻔히 이익이 있는 줄 알면서도 투기를 하지 않아서 상대적으로 손해 보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이렇듯 우리는 예수 믿는 것 때문에, 세상의 모든 일상에서 반대와 고난을 겪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래서 세상은 다른 이유 필요 없고, 자기들이 싫어하는 하나님 믿는;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 성도를 끊임없이 핍박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세상은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를 십자가라는 낙인을 찍어 놓고 반대하고 핍박합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주님이 나를 위해 지신 은혜의 십자가이고, 나에게 지게하신 사명의 십자가임을 기억하십시오.
나만 고난당한다는 생각에 원망하고 불평하기 보다는, 나는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는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예수와 함께 고난 받는 것을 더 기뻐하는 우리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영광을 바라보며 참고 기다려야합니다.
두 번째로, 지금까지 고난을 어떻게 볼 것인지를 생각했다면, 이제 고난을 어떻게 이겨내야 할지를 오늘 본문은 말합니다.
우리가 고난을 이기는 위해서, 고난과는 비교할 수 없는 영광을 바라보며 참고 기다려야합니다.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18)
그렇다면, 우리 성도가 고난을 이기고 얻게 될 영광이 얼마나 크기에 포기하지 말라는 것일까요?
바울은 영광의 크기는 “비교할 수 없도다”고 말합니다.
19절에서 22절은, 우리 성도가 받을 영광이 얼마나 크고 광대한지, 단지 우리 성도 한사람에게만 미치는 것이 아니라 모든 피조물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는 우주적인 것이라고 말합니다.
“피조물”, 하나님이 만드신 우주만물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 성도가 하나님의 친 아들딸의 위치로 돌아오는 것을 “고대ἀποκαραδοκία ”한다(19); ‘머리를 쭉 내밀고 바라 본다’, 학수고대(鶴首苦待)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담의 불순종(창 3:17–18)으로 말미암아, 지금 모든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20)하여 “썩어짐의 종노릇”(21)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연이 오염되고 해와 달과 별들이 쇠퇴하고 떨어지는 것은, 우리 인간의 타락의 결과입니다. 아담이 범죄 하자, 사람뿐만 아니라 온 우주도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이 부활하여 영광의 몸을 입고 다시 나타날 때에는 모든 피조물도 탄식과 고통에서 “해방”(21)되어 영광의 자유를 얻습니다.
그래서 지금, “피조물”, 우주만물이 우리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22) 으며, 우리 성도가 영광을 얻게 되는 날을 목을 빼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잃어버렸던 한 마리 양을 온 천하에 비유(마 18:12~14)하셨던 것처럼, 우리 성도가 고난을 이기고 얻게 될 영광은 온 천하 만물에게 영향을 줄 정도로 크고 놀라운 것입니다.
온 우주와 만물이 기뻐할 정도로 엄청나게 큽니다. 따라서 24절 25절은 말합니다.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24, 25)
우리가 「소망하여 얻은 구원」은 사람의 생각으로 도저히 상상할 수 조차 없는 엄청난 소망이라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소망은 소망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미 보이는 것을 소망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따라서 만일 우리가 그토록 보이지 않을 정도의 엄청난 영광을 소망한다면,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겪고 있는 고난은 무엇입니까? 그 고난이 너무 커서 절망스러우십니까?
그렇다면, 그 큰 고난과는 비교도 안 되는, 장차 얻게 될 더 큰 영광을 소망하십시오!
끝이 보이는 고난에는 소망할만한 가치가 적습니다. 오히려 끝을 알수 없는 고난의 뒤에는 그 보다 더 큰 영광이기에 소망할 가치가 있습니다.
이렇게 현재 받는 고난과 장차 받을 영광을 비교하면 고난을 이길 수 있습니다.
지금의 고난이 아무리 커도, 장차 받을 영광에 비하면, 일시적이고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습니다.
예수 믿기 때문에 차별받고 손해보고 피박받는 고난, 돈 건강 관계 심지어 생명의 문제로 다가오는 고난조차도, 주님이 주시는 영광만큼 크지 않습니다. 그래서 참고 기다릴 가치가 충분합니다.
바라기는 현재 받는 고난 다음에 주님이 주실 비교불가의 영광을 소망하며, 참고 기다림으로 고난을 이겨내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을 믿었으니, 주님이 나의 모든 고난을 짊어지셔서, 나는 아무런 어려움이나 힘든 것 없이 부자로 건강하게 평안히 살다 천국 간다는 믿음은 기복신앙에 불과합니다.
설교 서두에서 말씀드렸듯이, 세상은 「십자가 고난」이라는 낙인을 찍고 우리 성도를 핍박합니다.
그러나<image 브랜드> 「고난의 낙인」은 고난으로 끝나지 않고, 장차 비교불가의 큰 「영광의 브랜드」가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브랜드가 무엇입니까? 목동들이 찍었던 낙인이, 훗날 사업자가 다른 업체와 구별을 위해 사용하는 표지로 발전한 것이 「브랜드」입니다.
십자가가 무엇입니까? 고난의 상징입니다. 성도는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예수님이 당하신 고난을 그대로 받습니다. 차별을 각오해야 하고, 손해를 감수해야합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고난입니다.
십자가가 무엇입니까? 영광의 상징입니다. 역설적이게 십자가는 영광입니다. 요한복음에서 주님은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요12:2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십자가를 영광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십자가에서 고난 받으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시며 승천하심으로, 우리 인간을 위한 구원사역을 완성하시고, 당신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복귀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명품 브랜드의 옷과 가방을 들고 다닌다 한들, 예수님이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 입혀주신 「구원」이라는 명품 옷만은 못하다는 것을 믿으십시오!
지금 우리가 아무리 힘든 고난을 겪는다 할지라도, 장차 주님으로부터 얻게 될 「영광」은 온 천하보다 귀한 명품 브랜드인줄 믿으십시오!
바라기는 ‘내가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이 땅을 사는 동안 계속, 주님과 함께 고난 받는다는 사실을 인정하며, 고난 뒤에 있을 비교불가의 영광을 소망하여, 참고 기다림으로 고난을 헤쳐 나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