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을 이기는 방법

요한복음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2 views
Notes
Transcript

대학청년예배 8/4
요한복음 6:16–33 (NKRV)
요한복음 6:16–33 NKRV
저물매 제자들이 바다에 내려가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가버나움으로 가는데 이미 어두웠고 예수는 아직 그들에게 오시지 아니하셨더니 큰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나더라 제자들이 노를 저어 십여 리쯤 가다가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 배에 가까이 오심을 보고 두려워하거늘 이르시되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신대 이에 기뻐서 배로 영접하니 배는 곧 그들이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 이튿날 바다 건너편에 서 있던 무리가 배 한 척 외에 다른 배가 거기 없는 것과 또 어제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그 배에 오르지 아니하시고 제자들만 가는 것을 보았더니 (그러나 디베랴에서 배들이 주께서 축사하신 후 여럿이 떡 먹던 그 곳에 가까이 왔더라) 무리가 거기에 예수도 안 계시고 제자들도 없음을 보고 곧 배들을 타고 예수를 찾으러 가버나움으로 가서 바다 건너편에서 만나 랍비여 언제 여기 오셨나이까 하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 그들이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그들이 묻되 그러면 우리가 보고 당신을 믿도록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 하시는 일이 무엇이니이까 기록된 바 하늘에서 그들에게 떡을 주어 먹게 하였다 함과 같이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모세가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떡을 준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참 떡을 주시나니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들어가는 서론
할렐루야! 우리 서로를 돌아보면 함께 이렇게 인사 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를 믿는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이제 수련회가 얼마 안 남았습니다. 여러분 기대하고 있으시죠? 히11:6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로 충만한 시간이 될 것입니다. 우리 기대하고 기도로 준비합시다. 특별히 이번 수련회는 사귐의 교회 유병휘 목사님이 말씀 전해주실 것인데 정말 큰 은혜를 하나님이 부어 주실 것을 믿습니다. 목사님과 전화 통화 했는데 여러분과 만남을 정말 기쁨 마음으로 기대하면서 말씀을 준비하고 있으시다고 합니다.
지난 주에 이어서 오늘도 요한복음 6장을 살펴 보겠습니다. 지난주 요한복음 필사를 하면 선물을 준다고 했는데 시작한 분 혹시 있나요? 여러분 필사도 하시고 요한복음을 꼭 읽고 오시기 바랍니다. 강해설교를 하지만 모든 본문을 다루지 못하고 30분 남짓 하는 설교에서 내용을 전달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꼭 예배 전후에 말씀을 읽고 묵상을 하시길 예수님 이름으로 권면 드립니다.
요한복음에는 7번의 표적만 나옵니다. 이미 2장에서 가나의 혼인잔치에 물로 포도주를 변화시킨 일과 4장 가버나움에서 왕의 신하의 아들을 치료함, 5장, 예루살렘에서 안식일에 38년 된 병자를 치료해 주신 일을 살펴 보았습니다. 그리고 6장에는 두번의 표적인 나오는데 첫번째는 지난 시간에 살펴본 오병이어의 표적이고 두번째는 오늘 우리가 함께 읽었던 본문 바다 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신 예수님의 표적입니다. 요한복음의 표적 들은 예수님의 신성을 드러내는 표적입니다.주로 공관복음에 없는 표적 들이 기록되었는데 6장에서 드러나는 표적은 공관복음에 있음에도 중복되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공관복음에 기록된 표적들의 의미를 요한이 다르게 해석한 부분이 있거나 이미 복음서에 기록 되었지만 너무도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요한이 다시 기록 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오병이어는 우리의 먹고사는 문제를 ,바다를 걸어 오신 예수님은 두려움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두가지 문제는 어찌보면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가장 몰입하는 문제, 그리고 인생에서 가장 해결되기를 갈망하는 문제들 입니다. 본문은 그 문제의 답이 예수 그리스도임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두려움 가운데 있으신 가요? 선택의 두려움 (배우자, 학교,전공,직장) / 변화의 두려움 ( 현재와 미래의 변화) / 죽음의 두려움 ( 소멸, 상실,기억되지 않음) / 평가의 두려움 (타인의 시선과 인정), /심판의 두려움 ( 하나님의 공의) 공황과 우울증 질병들의 그 기저에는 두려움이 깔려 있습니다. 상담의 핵심은 직면인데 그 직면을 가로막는 것이 바로 두려움 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그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은 샬롬 입니다.
이렇듯 두려움은 정말 인생의 큰 문제입니다.우리가 생각하는 모든 문제의 배후에는 두려움이 깔려 있습니다. 우리가 만약 두려움만 극복한다면 우리 인생이 지금과는 차원이 다른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위대한 삶을 살아간 이유는 이 두려움과의 싸움에서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두려움은 믿는 그리스도인 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들에게도 강력한 힘을 발휘합니다. 성경에 두려워하지 말라고 365번이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는 날마다 두려움과 싸우라는 뜻이 아닐 까요?
ex) 저는 높은곳에 올라가면 공포와 두려움을 느낍니다. 에버랜드 놀이기구를 즐기는 분들을 존경합니다. 그 분들은 너무도 위험한 그것이 안전하다는 믿음을 가지기 때문에 즐기는 것이지요? (삶의 의미,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한 고민) 스카이 다이빙을 한 적이 있습니다. 40대 후반인데 그때는 정말 죽으면 죽으리라! 는 마음으로 올라갔습니다. 갈라디아서 2:20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 믿음에서 정말 살고 싶었기 때문에 그렇게라도 죽음의 공포 직전까지 다가가보고 싶었습니다. 신앙과 믿음도 어찌보면 그와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두려움을 느낄 만한 상황이 해소되어서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것이 아니라 상황은 그대로 일찌라도 모든것을 통제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믿음으로 걱정과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것 말입니다. 상황을 보지 말고 하나님을 보고 믿으라는 것입니다.
풀어가는 본론
오병이어의 기적이 있은 후 무리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삼고자 하였기에 예수님은 서둘러 제자들과 무리들을 분리하여 배를 태워 가버나움으로 보내시고 산으로 기도하러 올라 가십니다. 오병이어는 먹는 문제를 해결한 놀라운 사건입니다.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한 것입니다. 우리도 한번 생각해 봅시다. 우리의 평생 먹고 쓸것을 해결해 준다는 사람이 지금 우리 옆에 있다면 어떻게 할건가요? 그 사람 옆에 딱 붙어서 떨어지지 않을 겁니다. 직장생활 하시는 분들은 이런 말 들어 보셨어요? “월급이 깡패다” 무슨 말인가요? 그만큼 먹고 사는 문제가 우리를 사로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도 참아낼 수 있도록 말입니다.누구도 이 부분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어는 정도를 벌면 경제적으로 자유롭게 될 것 같습니까? 지출을 초과한 수입이 있으면 괜찮을까요? 거지에게는 거지의 고민이 있고 재벌에게는 재벌의 고민이 있다. 또 나름 다른 문제가 다가옵니다. 소유의 많고 적음에 자유 함이 있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만 자유 함이 있습니다. 요즘 교회에 세상적인 가치관으로 기웃거리는 기독교인이 너무도 많아서 문제입니다.
두려움은 인생의 모든 골목마다 매복하고 있다고 합니다. 알 수 가 없고 불확실하기 때문에 두려움이 찾아 옵니다. 현재는 잘 살고 있지만 아무 문제가 없지만, 앞으로도 그럴지 우리는 알수 가 없기에 불안하고 두렵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런 우리에게 말씀 하십니다. 마태복음 6:34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제자들은 갈릴리 호수를 밤에 건너 갑니다. 갈릴리 호수는 동서로 10km, 남북으로 25km 입니다. 동남중간쯤에서 북서쪽으로 이동합니다. 바람이 불어 밤새 노를 저어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같은 자리를 맴돕니다. 요한복음 6:16–18저물매 제자들이 바다에 내려가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가버나움으로 가는데 이미 어두웠고 예수는 아직 그들에게 오시지 아니하셨더니 큰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나더라
이때 제자들은 매우 두려워서 떨었을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이 처형된 이후에 오병이어 기적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순식간에 지도자를 잃는 상황을 옆에서 바라 보았기에 그들은 상실에 대한 두려움이 심적으로 가득한 상황에서 예수님도 없는데 풍랑이 일어 배가 같은 자리를 맴도는 상황이니 얼마나 힘든 상황일지 상상이 됩니다.바다가 원래 두려운데 밤바다는 어지간한 선원들도 두려워 합니다. 저는 배를 타는것을 싫어합니다. 수영도 잘 못하지만 배멀리를 심하게 하고 파도가 심한 경험을 해본적이 있는데 거의 기도가 절로 나옵니다. 여기서 17절에 예수님은 ‘아직’ 오시지 아니하셨다는 재미있는 표현이 나옵니다. ‘아직’오실 것인데 아직 때가 되지 안되었다는 표현입니다. 현재를 사는 그리스도인도 이와 같은 상황입니다. 이미 구원을 받았지만 아직 구원의 완성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이땅에 재림하시는 그날 구원이 완성됩니다. 배안에 있는 제자들이나 현재 우리나 믿음으로 아직 오시지 않았지만 반드시 오실 예수님을 소망하고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의 부재는 의도적이라고 봅니다. 이는 예수님이 제자들만 배를 태워 보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에게 가르침을 주기 위한 것입니다. 여러분 살다보면 참 어려움들이 많이 찾아 옵니다. 특히 악재는 혼자오지 않습니다. 사업을 하다보면 어려울 때는 누구도 도와주지 않습니다. 사업이 잘될 때는 돈을 쓰라고 싸가지고 오다 가도 어려워 지면 돈부터 마릅니다. 배를 인생이라고 본다면 파선의 위기 들이 자주 찾아 옵니다. 여러분도 앞으로 많이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저의 첫파선은 대학원 시험에 3번이나 떨어지고, 5년정도 사귄 여자친구에게 이별을 통보받고, 취업하고자 하는데마다 떨어지는 20대 중반에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그때 예수님이 제 배에 올라 타셨습니다. 오늘 본문 21절 말씀이 일어난 것입니다. 요6:21 그렇습니다. 인생의 배에 예수님이 승선하시면 그래서 선장이 되시면 누구든지 평화와 안식을 얻습니다. 예수님은 만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 이시기에 그렇습니다. 인생의 위기는 때때로 우리에게 예수를 마음의 보좌에 믿음으로 모시라고 지시하는 신호등과 같습니다. 고난의 때에 예수를 부르면 그는 반드시 우리를 건지십니다.
로마서 10:13 NKRV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오늘 본문 19절에 보면 예수님이 제자들이 어려움을 보시고 바다를 걸어서 배로 다가 오십니다. 풍랑이 이는 바다를 어떻게 걸으시는지 상상이 잘 안되지만 예수님은 신적인 능 력을 보이시면서 바다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십니다. 마태는 그들이 유령인줄 알고 놀라서 소리쳤다고 기록합니다. 마14:26. 저라도 그랬을 것 같습니다. 안 그래도 죽을 것 같 은 두려움과 공포속에 있는데 바다 위를 사람이 걸어온다? 이것은 상식적으로 사람으로 생각하는게 정상이 아닙니다. 나중에 제자들은 예수님이 부활 하신 후 성령이 오신 다음 에서야 그분이 하나님의 독생자 성자 하나님임을 알게 됩니다. 그런 제자들에게 두려움은 비로소 사라집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입니다. 예수님을 아는 지식이 두려움을 좌우 합 니다.
마태복음 14:26 NKRV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 지르거늘
20절 말씀은 “이르시되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신 대‘에고 에이미’가 나옵니다. ‘나다’ 즉각적으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을 밝히십니다. 그리고 두려워 말라고 명령하십니다. 이것은 두려움의 대상보다 더 강하지 않으면 누구도 내릴 수 없는 명령입니다. 이 명령은 예수님이 두려움을 일으키는 모든 상황보다 더 크신 분이라는 사실, 즉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드러냅니다. 두려움을 없애는 방법은 그 두렵게 만드는 외부 상황을 제거하는 것이 하나고, 다른 하나는 두려움의 대상이 있더라도 그 두려움에 우리의 마음이 호응하지 않으면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사도 바울은 그래서 두려움은 마음의 문제라고 말합니다. 딤후1: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그럼에도 우리가 두려움을 느낀다면 무엇이 문제 일까요? 이것은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주님의 명령에 대한 우리 마음의 불응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냉랭해지면 두려움이 짙어지고 관계가 뜨거우면 두려움도 사라집니다. 주님과 가까이 있으면 두려움은 사라집니다.
마태복음 10:28 NKRV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잠언 24:12 NKRV
네가 말하기를 나는 그것을 알지 못하였노라 할지라도 마음을 저울질 하시는 이가 어찌 통찰하지 못하시겠으며 네 영혼을 지키시는 이가 어찌 알지 못하시겠느냐 그가 각 사람의 행위대로 보응하시리라
누가복음 12:5 NKRV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
하나님 만이 유일한 두려움의 대상 이십니다.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것을 제외한 두려움은 마음의 질병입니다. 원수들은 이것을 활용하여 우리를 올무에 빠트립니다. 두려움의 피부는 매우 민감합니다 주님을 향한 시선의 각도가 조금만 틀어지고 우리의 눈이 그에게서 살짝만 멀어져도 두려운 감정이 예민하게 반응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두려움은 우리의 관찰과 분석과 분별과 판단을 지배합니다. 마귀가 그 틈을 이용하여 우리의 인생을 지배 하려고 합니다. 이 마귀를 대적하기 위해서 우리는 범사에 주님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니 이 말씀을 붙잡으십시오! 로마서 8:31–34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요한복음 6:21이에 기뻐서 배로 영접하니 배는 곧 그들이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 말씀에서 ‘영접 ‘하다는 헬라어 ‘람바노’ 로서 모시다’라는 뜻인데 이는 믿는다는 뜻과 같이 사용했습니다. 요한복음 1:12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의 ‘영접하다’와 같은 의미로 쓰였습니다. 믿음으로 예수님을 우리 인생의 승객이 아니라 선장으로 모시면 가려던 땅에 순조롭게 도달할 수 있습니다. 믿는 우리 인생에 왜 자주 고난이 다가오는 지 아십니까? 이것은 우리가 다 아는 비밀인데요 하나님이 우리를 훈련 시키고 단련 하기 위해서 입니다. 이말은 훈련이 끝나면, 우리가 온전히 우리 인생의 선장으로 예수님을 모시게 된다면~~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이후 22절~25절은 예수님을 통해 오병이어 표적을 경험하여 예수님을 자신들의 왕으로 삼고자 했던 욕망에 불타는 무리들이 디베랴 근처에서 예수님과 제자들을 발견하지 못 하자 배를 타고 가버나움까지 쫓아 오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무리의 관심은 예수님이 아니라 빵 이였고 그의 신적인 정체성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자신들의 위장을 채우는 것 이었습니다. 빌립보서 3:19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사람들은 누구나 생계를 위해서 식량을 얻고자 합니다. 이것을 잘못되었다고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양식을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삼는 것을 예수님은 문제로 삼으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 학생들은 공부가 수단이고 목적은 하나님 영광을 위해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공부를 해야한다는 것입니다. 돈을 버는 것은 잘 쓰기 위함입니다. 다양한 곳에서 알바를 하는 이유는 가난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고 오히려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기 위한 것이 목적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무리 들에게 예수님은 26절과 32절에서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을 교정해 주십니다. 요6:26
요한복음 6:26 NKRV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요한복음 6:32 NKRV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모세가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떡을 준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참 떡을 주시나니
진실로 진실로, 이것은 아멘! 아멘 이라고 강조하는 요한복음 에서만 나오는 예수님이 독특한 표현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표적은 신적인 모습인 예수님 자신을 의미합니다. 무리가 예수님을 찾는것은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을 보고 찾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욕망을 채워줄 욕심으로 찾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잘 생각해 봐야 합니다. 현세적인 축복을 얻기 위해서 예수님 앞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까? 아니면 길이요 진리요 생명 되신 예수님과 그분의 나라를 구하려고 이 자리에 나왔는지요? 요한복음 6:27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
무리들이 예수님께 묻습니다. 요6:28, 예수님의 가르침에 무리들도 영원한 생명의 양식을 얻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들”을 하겠다고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일들 을 “행하기 위하여” 자신들이 무언가를 “하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선하고 도덕적인 일들의 목록을 알려 달라는 말입니다.
요한복음 6:28 NKRV
그들이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예수님이 그런 무리들 에게 답하십니다. 요6:29. 믿음과 하나님의 일을 동일시 합니다. 제가 지난주에도 복음에 대하여 설명하며 강조했습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해서 구원을 얻는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말입니다. 그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선언 하신것에 우리가 더 할 것은 쌀 한톨도 없습니다. 그것이 은혜이고 복음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자랑할 일도 없지만 죄책감을 가질 일도 없습니다.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 이십니다. 우리를 위해 죽으실 뿐만 아니라 다시 사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 이시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는 분이십니다. 믿는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믿음에 관하여 중요한 요절을 읽어 드리겠습니다. 로마서 10:9–17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그들이 다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였도다 이사야가 이르되 주여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나이까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요한복음 6:29 NKRV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30-31절에 무리들은 다시 원론으로 돌아가 그럼 믿을 수 있도록 표적을 보여 달라고 합니다. 모세는 광야에서 40년동안 만나로 우리를 먹여 주었는데 당신은 단지 한번만 우리를 먹여준것 밖에 없으니 우리에게 모세와 같은 표적, 즉 우리의 인생을 배부르게 하라는 요구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보면 믿겠다는 것입니다. 불신의 상황이 마음속의 일이 아니라 외부 상황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32절 말씀을 통해서 모세가 만나를 내려서 먹여 준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너희가 요청하지도 않고 불평 불만을 토해낼 때에 하나님의 결정으로 주어진거라고 그들의 지식을 수정해 주십니다. 요6:32
요한복음 6:32 NKRV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모세가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떡을 준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참 떡을 주시나니
하나님의 빵은 하나님이 하늘에서 베푸시고 동시에 하늘에서 내려오십니다. 요6:33
요한복음 6:33 NKRV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여기서 베푸시고 라는 헬라어 동사로 ‘디도신’ 으로 현재형으로 사용 되었습니다. 빵을 베푸시는 일이 지금도 진행되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구약 에서는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먹이셨고 신약에서는 예수를 통해서 그 택하신 백성들을 먹이십니다. 그런데 신약의 경우는 예수 자신이 양식을 베푸시고 먹이시는 주체도 되시면서 주어지는 그 양식도 되신 다는 것이 특이합니다. 그러므로 생명의 양식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 가운데 오신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우리 모두는 생명의 양식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부지런히 먹어야 하겠습니다.
맺고 정리하는 말
먹고 사는 문제는 우리의 큰 고민이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살펴본것과 같이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양식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빵이시기에 식량의 고민을 영원히 없애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빵으로 받는 자에게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두려움은 믿음의 문제이다. 잠언 말씀은 악인에게는 두려워 하는 것이 의인에게는 그 바라는 것이 이루어 진다고 말씀합니다. 잠언10:24
인생은 격동하는 풍파속에 떠 있는 배와 같다. 그러나 그 배에 예수님이 선장으로 올라 오시면 두려움과 결별하고 가고자 하는 곳에 도착하게 됩니다. 두려움은 언제나 ‘내가 어떤 문제를 스스로 극복할 수 없다는 생각”을 전제로 합니다. 스스로 대처할 수 있는 문제를 두려움의 대상으로 여기는 사람은 없습니다. 내니 두려워 말라는 말씀은 두려움을 우리가 혼자서 마음을 굳게 하여 극복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주님이 함께 하시니 두려워 말라는 것입니다. 결국 주님이 함께 하심을 믿음으로 보는 것입니다.
두려움은 우리에게 묻는 질문합니다. “네 자신이 너와 네 인생의 주인이냐?” 여러분은 이 질문에 어떻게 대답 하시겠습니까? “예수님이 우리 인생에 주가 되십니다”이렇게 대답 하시겠습니까? 아멘! 그런 답을 가지고 살아가는, 그래서 인생의 두려움을 너머 하나님 나라를 향해 달려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 드립니다.
우리 함께 찬양하고 기도하겠습니다.
아무것도 두려워 말라! 주 나의 하나님이 지켜 주시네! 놀라지 마라! 겁내지 마라! 주님 나를 지켜 주시네! 내 맘이 힘에 겨워 지칠찌라도 주님 나를 지켜 주시네! 세상의 험한 풍파 몰아칠때도 주님 나를 지켜 주시네! 주님은 나의 산성 , 주님은 나의 요새, 주님은 나의 소망,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
주님이 없는 배안은 광풍과 거센 파도와 바람으로 두려움이 가득차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배안에 예수님이 없으면 이와 다들바가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가 어려움과 어둠속에 있을지라도 즉각적으로 말씀 하십니다. 내니 두려워 말라~ !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고 네가 모태에서 조성되지 전에 내가 너를 알았고 너를 위해 내가 이 땅에 와서 십자가에서 죽었다. 너를 향한 나의 마음은 재앙이 아니요~ 생명과 평안이니라! 강하고 담대 하라! 내가 너와 함께 할것이다.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어 줄 것이다. 우리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주님 앞에 어떻게 우리의 마음 중심을 드리고 나아가지 않을수가 있겠습니까? 이 시간 내가 너와 영원히 함께 하겠다는 주님 앞에 감사합니다. 주님! 제가 믿음으로 주님 앞으로 나아갑니다.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생명수를 부어 주시고 마르지 않는 생명의 떡을 내게 주셔서 예수님 한분만으로 만족하는 인생 되게 저의 삶을 변화 시켜 주시옵소서! 간절함으로 주님 이름 한번 부르고 기도 하시겠습니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