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의 지혜롭고 은혜로운 용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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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은 형제들을 용서하기 전에 그들의 잘못을 깨닫게 하는 과정을 거쳤고, 진정한 용서를 통해 하나님 중심의 큰 구원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가르침과 같이 용서는 섣불리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회개할 때 가능하며, 용서의 완성은 행동의 변화로 나타납니다. 요셉의 용서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함으로써 우리는 용서의 본을 따라야 하며, 신앙생활에서 용서는 선택이 아닌 필수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요셉은 형제들에게 자신을 밝혔습니다. 요셉이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그동안의 설움이 한번에 폭발해서 얼마나 크게 우는지 사람들을 다 나가라고 명령했지만 바로의 궁중에 울음소리가 울려펴졌습니다.
그만큼 요셉이 형제들을 다시 만난 것은 큰 감동을 주는 것과 동시에 그동안 억제했던 감정이 폭발되는 사건이었습니다. 요셉은 형제들에게 끔찍한 복수를 선사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관대한 용서를 베풀었습니다.
요셉은 용서의 본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용서는 정말 쉽지 않습니다.

쉬운 용서

간혹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처럼 용서해야 한다는 신앙적 당위 앞에서 종종 너무 빨리, 너무 쉽게, 너무 많이 용서합니다. 하지만 섣부른 용서는 가해자에게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손상된 관계를 올바로 회복하는 데 도리어 방해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을 잘 알고 있었던 요셉은 첫 번째 형제들을 만났을 때 충분히 형제들을 용서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시므온을 옥에 가두고 형제들을 보냈습니다.
주님은 아주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자매]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만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누가 17:3-4)
1) 경고하고 : 엠피티마오 – 책망하다, 꾸짖다
그러므로 잘못한 사람들에게 무조건적인 용서는 오히려 상황을 안좋게 만들뿐이다. 예수님은 용서의 롤모델이시지만 모든 사람을 무조건적으로 용서하신 것은 아니다. 심지어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들에게 심한 말까지 하시면서 엄하게 꾸짖으셨다. 용서하기 전에 먼저 상대방에게 잘못에 대하여 책망하고 꾸짖어야 한다. 이때에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 사람의 잘못을 공론화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기의 잘못을 깨닫게 하는 것에 목적이 있다.
그래서 요셉도 형제들의 잘못을 바로 용서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잘못을 깨닫게 하기 위해 여러 절차를 거치고 시간을 보냈다.
1) 42:7 엄한 소리로 그들에게 말하여 – 상대에게 경고할 때 목소리나 톤도 중요하다
2) 42:17 다함께 삼 일을 가두었더라
3) 42:19 한 사람만 목에 갇히게 하고...
42:21~22 이때 1차로 그들이 잘못을 깨닫는다. 요셉이 이 말을 들었지만 여기서 멈추지 않고 계속 일을 진행한다.
4) 양식자루에 돈을 다시 넣어두고, 은잔을 베냐민의 자루에 넣었다.
단순하게 요셉을 애굽에 판 것만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미움과 시기에 대하여 깨닫게 하기 위해서 더 깊은 회개로 유도하였다.
5) 유다의 반응을 보고 드디어 자기를 밝히고 용서한다.
누가복음 17:4에서 ‘회개하거든’이라고 할 때에 이것이 바로 ‘마음을 고쳐먹다’는 의미의 회개이다.
1) 회개하거든 – 메타노에오 : 마음을 고쳐 먹다
형들이 자기들의 잘못을 입으로 말하거나 잘못했다고 말하는 수준에서 용서가 이루어지면 그들의 잘못과 실수는 반복된다. 그러므로 마음을 고쳐 먹을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으면 가장 좋고, 그게 어렵다면 그렇게 되기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 그것이 상대방을 진정으로 용서한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내 마음의 변화가 먼저

그런데 아무리 머리로 용서하려고 해도 절대 용서할 수 없는 일이나 사람들이 있다. 이것은 마음의 문제이기 때문에 내가 머리로는 용서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도 결코 마음이 허락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요셉도 그러했을텐데 어떻게 형제들을에게 관대한 용서를 베풀 수 있었을까?
골3:13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엡 4:32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우리가 다른 사람을 용서할 수 있는 마음과 능력의 발원지는 하나님의 용서이다. 먼저 내가 정말 형편없는 사람이라는 사실과 하나님께서 그런 나를 용서하시고 먼저 은혜를 베푸신 사실을 깊이 경험하면 경험할수록 우리는 나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할 수 있게 된다.
마태복음 18장에 용서할 줄 모르는 종의 비유가 나온다. 그는 만달란트라는 천문학적인 빚을 지게 되었다. 1달란트가 약 6억원정도라고 했을 때 약6조정도 되는 빚이다. 주인이 그가 빚을 갚을 능력이 안되자 자기의 몸과 아내와 자식들과 그가 가진 모든 소유를 팔아서 갚게 하라고 했는데 종이 주인에게 빌기에 불쌍히 여겨 그의 빚을 모두 탕감해주었다.
기쁜 마음으로 주인의 집에서 나온 종이 곧장 향한 곳은 자기에게 100데나리온을 빚진 사람이었다. 100데나리온은 약 천만원정도 되는 금액이다. 그는 가서 그 사람의 목을 잡고 돈을 내놓으라고 말했다. 그 동료가 친구에게 엎드려 간청하며 갚을테니 기다려 달라고 했다. 그런데 이 친구는 기다려주지 않고 그 동료를 옥에 가두었다. 이 일을 들은 주인은 다시 종을 불러 그가 한 행동과 똑같이 그를 옥에 가두고 빚을 갚게 하였다고 한다.
물론 서민들에게 천만원은 꼭 받아야 하는 큰 돈이다. 그러나 자기가 6조나 되는 돈을 탕감받았다면 천만원도 탕감해줄 수 있는 것이다. 자기가 탕감받은 금액이 크면 클수록 우리도 남에게 빚을 더 많이 더 쉽게 탕감해줄 수 있는 것이다.
요셉은 노예생활을 하며 그동안 자기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아버지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형제들의 사정을 헤아리지 못하고, 어리석에 채색옷을 자랑하며 형제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말했던 자기의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그렇게 형편없는 자신에게 하나님은 꿈을 통하여 애굽의 총리가 될 미래를 예견하셨다. 그 은혜를 깨닫고 나니 형제들을 충분히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이 형성 된 것이다.
하나님은 자격이 되어서 우리를 부르시고 용서하시고 구원하신 것이 아니다.
롬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도 요셉과 같이 먼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충만하게 경험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용서한 사람의 반응

용서했다고 하면서도 행동에 아무런 변화가 없는 사람도 있다. 용서의 완성은 행동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요셉은 형제들을 용서했을 때 어떻게 행동했을까?
1) 4절 : 가까이 오소서
용서한 사람은 잘못한 사람을 가까이 합니다. 우리가 흔히 나에게 잘못하여 미운 사람을 원수라고 표현한다면 원수를 가까이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눈만 마주치거나 얼굴만 보아도 그 때 일이 생각나고 미운 마음이 올라오기 때문에 가까이 하기를 싫어합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용서한 사람의 첫 번째 반응은 용서한 사람을 가까이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상호작용이기 때문에 용서받은 사람이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또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용서의 완성 단계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용서하심으로 인하여 우리와 늘 함께하십니다. 하나님과 멀어진 사람은 하나님의 용서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거나 하나님을 미워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자기에게 잘못한 사람도 용서할 수 없습니다.
2) 5절 : 근심하지 마소서
용서한 사람은 용서받은 사람으로 하여금 근심하지 않게 합니다. 입으로만 용서하거나 조건부 용서를 한 사람들은 용서받은 사람들로 하여금 근심하게 합니다. 요셉이 형제들에게 용서한다고 말했지만 여전히 엄한 말투로 그들을 대하며 그들의 행동에 대하여 예민하게 대한다면 형제들은 결코 요셉을 편하게 대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형들에게 근심하지 않도록 한 방법은 바로 그들이 가장 미안해하는 그 부분에 대하여 먼저 말해주는 것입니다.
형제들은 요셉을 판 일에 대하여 죄책감이 아직도 남아있었습니다. 그것을 잘 알고 있었던 요셉은 형제들이 자기를 판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기를 먼저 여기로 보내셨다고 이야기 해주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형제들의 잘못이 하나님의 섭리로 해석되는 것입니다. 형제들의 잘못이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형제들의 근심을 덜어주기 위한 행동입니다.
3) 7절 : 하나님의 큰 구원으로
용서한 사람의 가장 중요한 반응은 세상을 내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으로 본다는 사실입니다. 용서할 수 있는 사람은 먼저 하나님의 용서를 경험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을 때 개인의 문제 해결이나 마음의 평안 등을 바라고 믿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신앙이 깊어지고 하나님에 대해 알아갈수록 우리의 생각과 마음이 변화되고 비로소 거듭남을 경험하게 되면 세상의 중심이 나에서 하나님으로 변하는 순간이 옵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더 이상 나의 구원만을 바라보는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의 큰 구원을 바라보고 기대하고 기도하는 성도로 변화되게 되는 것입니다.
요셉의 인생은 혼자만 호의호식하는 인생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큰 구원을 이해했기 때문에 거기에서 자기의 역할과 소명을 바르게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온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큰 구원의 계획을 실행하기에 앞서 벌써 약20년 전에 요셉에게 꿈으로 그 사실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계획대로 일을 실행해가셨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서 형제들을 통해 요셉을 종으로 보내신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요셉은 자기가 종이 된 것도 자기가 애굽의 총리가 된 것도 하나님의 큰 구원의 일부라는 사실을 기억합니다. 그래서 가난하다고 구차하거나 안주인과 타협하지 않았고, 부자가 되었다고 교만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사랑과 정의로 많은 사람들에게 양식을 나눠주었으며 생명을 살리는 일에 앞장섰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엉망진창으로 깨어졌던 야곱의 가정을 하나 될 수 있게 한 것은 ‘용서’였습니다. 용서는 신앙생활에 있어서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은혜받고 은사 받는 것들 그리고 성공하는 것은 선택입니다.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습니다.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됩니다. 그러나 용서는 필수입니다. 용서는 회개로 가는 관문이며 중생으로 성결함으로 가는 관문입니다. 용서에서 막히면 모든 것이 다 막힙니다.
그렇므로 오늘 말씀을 함께 나누는 우리 성도여러분들의 마음 가운데 아직 용서하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오늘 요셉을 묵상하며 지혜롭게 또 은혜롭게 용서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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