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조류에 휩쓸리지 않는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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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
2 천사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하지 아니함이 공정한 보응을 받았거든
3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4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의 뜻을 따라 성령이 나누어 주신 것으로써 그들과 함께 증언하셨느니라
서론
서론
당시 히브리서의 저자는 유대인들 사이에서 널리 퍼졌던 ‘천사 숭배 사상’에 대해서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 주된 내용이 1장에서 다뤄지고 있습니다.
당시 천사숭배 사상은 천사를 신으로 여기는 그런 사상이 아닙니다.
구약에서 천사들이 묘사되는 그런 영적으로 고귀한 것 같은 모습, 혹은 그들이 맡은 직책의 중요성 이런 것을 보고 “내가 천사처럼 되고싶다”라는 마음에 숭배하는 것이었습니다.
구약의 천사들은 하나님과 아주 가까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이사야 6장의 모습이나, 유대인들의 믿음의 선조들에게 계시를 전달해주는 그런 모습이었기 때문에 나도 그런 모습이 되고싶다라는 생각 때문에 천사를 숭배했던 것입니다.
이런 사상은 사람들이 뭔가 영적으로 아주 고귀한 모습, 지고한 수준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하게 합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죠.
어떤 사람이 경험한 신비한 체험이나 삶에서 경험한 특별한 신앙적 경험들을 지나치게 사모하게 되면 우리는 본질을 잃게 됩니다.
그것들이 신앙의 전부인 것처럼 살아가게 되는 것이죠.
이에 대해 히브리서 기자는 1장에서 우리의 신앙의 본질은 바로 천사보다 뛰어나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점을 익히 알려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천사보다 모든 면에서 뛰어나며, 그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이땅에 오셨으니 천사숭배와 같은 것은 어리석은 일인 것이죠.
이렇게 유대인들이 잘못 믿고 있던 부분을 정확히 되짚고, 예수님을 올바르게 믿게 하기 위한 내용이 1장에서 그려지고 있습니다.
본론
본론
그러한 배경 가운데 오늘 본문인 히브리서 2장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이러한 상황 가운데 유대인들에게 어떤 삶을 살아야하는지 잘 알려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1. 우리는 흘려 떠내려갈 수 있니다.
1. 우리는 흘려 떠내려갈 수 있니다.
먼저 히브리서 저자는 독자들에게 강력히 경고하고 있습니다.
독자들이 놓인 상황은 언제든지 “흘려 떠내려갈 수 있는 상황”이라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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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13 vs 133의 신화를 써낸 인물 누군지 아십니까? 바로 이순신 장군이죠. 그리고 그 전투는 우리가 영화로도 잘 알려진 “명량해전”입니다.
이순신 장군은 명량해전에서 비록 수세에 몰렸지만 13척의 배로 100척 정도를 완파 혹은 반파시키고, 일본군은 약 30척 정도의 배만이 후퇴할 수 있었습니다.
이 명량해전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바다의 조류”입니다.
이순신 장군은 시간대 별로 변하는 바다의 조류를 잘 파악하고 있었고, 그 조류를 이용하여 전략을 짜서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조류가 그만큼 강력하잖습니까?
제가 이 얘기를 왜 하냐면, 오늘 본문 1절을 보십쇼
히브리서 2:1 (NKRV)
1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
여기서 쓰인 이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이라는 표현이 파랄레오 라는 동사인데 이게 항해 용어입니다.
선착장에 배를 고정시키지 않으면 조류에 따라 그냥 흘러가지 않겠습니까?
그 표현이 바로 이 표현이죠.
히브리서 저자는 이 편지를 읽는 수신자들에게 마치 고정되지 않은 배처럼, 조류를 알지 못하고 이순신의 수에 말려들었던 일본 배처럼 흘러 떠내려가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그러면 유대인들을 흘려 떠내려가게 할 만한 조류는 무엇일까요? 그게 바로 그들의 사고를 지배하고 있던 천사숭배 사상입니다.
히브리서 저자가 이렇게 강력하게 권하는 이유는 뭘까요? 그만큼 어떤 사상이라는 것은 사람들이 휩쓸리게 하는 큰 힘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천사숭배사상을 가진 사람들은 복음을 왜곡해서 이해하게 되어있습니다. 그 사상에 휩쓸리기 때문이죠.
사상에 휩쓸린다는 것은 곧 색이 칠해진 안경을 쓰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색칠해서 이해하게 되는 것이죠.
천사숭배 사상이라는 색 칠해진 안경을 쓰고 복음을 이해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들에게는 구원의 지혜를 주는 복음을 갈구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구원을 주는 방식이나 방법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아니라, 천사와 같은 모습을 갖추어야 한다고 왜곡해서 이해하게 되지 않겠습니까?
제가 7살 때 실제로 겪었던 일인데, 동네에 교회가 있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까지만 해도 주변 교회에 성경학교를 하면 친구들이 막 데리고가고, 가서 놀고 했었거든요.
저도 그냥 휩쓸리듯이 성경학교같은걸 했던 것 같습니다.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은데요.
그런데 정말 정확히 기억이 나는 사건이 하나 있습니다.
그때 갑자기 그당시 그 부서를 담당하던 목사님이겠죠? 그분이 사다리에 올라가서 전구를 고치신다는겁니다.
그런데 그분이 사다리에서 떨어진거에요. 그러고는 어떤 교사 분인지 마이크를 잡고 지금 목사님이 죽으신 것 같으니까 같이 하나님께 목사님을 살려달라고 기도하자고 하시는 겁니다.
그러자 제 주변에 있는 아이들이 다 눈을감고 기도하는거에요. 그러면서 선생님들이 울면서 기도하니까 애들도 따라서 울면서 기도하는거에요.
시간이 좀 지나니까 목사님이 움직이는 겁니다.
이게 사실 웃을 일은 아니죠. 당연히 연기였을 겁니다.
이게요 여러분 제가 그 교회를 비난하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이 얘기를 왜 하냐면, 만약에 그때 그런 경험을 했던 아이들이 자라면 어떻게 될까요?
그 아이들의 생각 구조에는 뭔가 엄청난 일이 발생했을 때 열심히 기도하고, 진심으로 기도하면 그 일이 해결된다는 심지어 죽은 자가 생겨도 살릴 수 있다는 생각이 심겨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의 신앙에 계속해서 영향을 미치겠죠.
분명히 그 교회에서는 아이들에게 간절히 기도하는 그런 교육의 의도가 있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경험으로 인해 왜곡된 색 칠해진 안경이 끼워지면 진정한 복음을 왜곡할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이 죽은 자를 살리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하는 자의 열심을 따라 살리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의 뜻에 따라 살리십니다.
그런데 왜곡된 시선으로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면, 열심히 기도하면 다 이루어질거야. 그리고 만약 기도가 안 이루어지면 내가 열심히 기도 안 한거야.
이런 잘못된 복음의 이해 방식이 들어오게 되는 겁니다.
여러분 성경 저자가 1절에서 왜 경고하고 권면하는지 이제 아시겠습니까?
앞으로 히브리서를 계속 보면 복음에서 떠나지 말라는 경고가 계속해서 나옵니다.
올바른 복음을 이해하는 것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현대에 복음을 왜곡하는 많은 사상들이 있습니다.
특히 청년들하고 교제를 하다보면 여러가지 사상이 많은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교회 외부의 사상 중에서 많은 영향을 주는 사상은 단언코 ‘물질주의적 사상’이죠. 이건 청년들 뿐만 아니라 모든 현대인들이 오늘 본문 표현대로 “흘러 떠내려가고 있는” 사상입니다.
모든 부분에서 돈의 논리로 손익을 따지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조차도 신앙을 얘기하지만 결국 그 안에 깊은 물질주의적 사고방식이 자리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교회 외부의 사상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제가 교회 내부적으로 교회 안에서 자라온 청년들을 만나면서 그들에게 가장 영향을 많이 주는 사상적 배경이 뭐냐면 율법주의적 사고방식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받아온 가정과 교회에서의 교육 속에 은연 중에 녹아있는 율법주의적 방식이죠.
시험을 망쳤는데 기도를 안 해서 그런가?
내가 열심히 신앙 생활을 안 하는 것 같은데 나 구원 안 받은거 아닐까?
혹은 반대로 뭔가를 열심히 잘하고 있는 상황이 되면 역으로 누군가를 정죄하고 판단하게 되는 이런 사상입니다.
은연 중에 우리는 이런 사상에 휩쓸려가는 존재들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상들 속에서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해야합니다.
그러면 히브리서 저자는 어떻게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권면하고 있을까요?
2. 우리는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올바른 복음에 더욱 유념해야 합니다.
2. 우리는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올바른 복음에 더욱 유념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흘러 떠내려가지 않을 수 있는 방식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2:1 (NKRV)
1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하라고 얘기합니다.
여기서 유념하라라는 말은 프레세코라는 단어인데 이것 또한 항해 용어입니다.
이 용어는 항로를 유지하거나 닻을 내리는 행위를 말할 때 사용합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흘러 떠내려갈 위험이 있다고 경고합니다. 그것은 그들의 사상을 많이 지배하고 있던 천사숭배 사상이었죠.
그러나 위험이 있으면 대책도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의 배에 항로를 벗어나지 않으려면 조타를 붙잡고 올바른 항해로를 따라 가도록 항해해야 합니다.
혹은 우리의 신앙의 배가 조류에 휩쓸려가지 않으려면 닻을 굳게 고정해야합니다.
사람들을 흘러 떠내려가게 하는 위협 속에서 안전하게 하는 것은 “들은 것을 더욱 유념하는 것”입니다.
들은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그들에게 구원을 주는 복음입니다.
그 복음에 더욱 유념하는 것입니다.
복음이라는 조타를 굳게 붙잡고 살아나가고, 복음의 닻을 내려 흘려 내려가지 않도록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천사숭배 사상 속에서 휩쓸리던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복음 이야기의 주인공을 잊고 복음 이야기의 주인공을 천사로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천사숭배 사상에 의해 천사의 모습을 자신들이 갖추면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복음을 왜곡해서 이해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을 흘러 떠내려가게 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복음을 왜곡해서 이해하는 잘못된 신앙에 대해서 이렇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2 천사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하지 아니함이 공정한 보응을 받았거든
3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우리에게 큰 구원을 주는 것은 복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구원을 주기로 약속한 그 복음을 듣고 믿어야 합니다.
그러나 세상의 조류에 휩쓸려 복음을 등한시하면 보응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신앙 생활을 하면 사실 피곤해질 수 있습니다.
믿음이 없는 자들은 세상의 사상들, 그 조류에 휩쓸려 살아가게 되는 자들입니다.
조류의 특징은 내가 특별한 노력이 없어도 그 조류의 흔들림에 맡기면 흘러가는대로 가게 된다는 것이죠.
그러나 복음을 믿는 신앙을 가지게 된 자들은 그 신앙생활이라는 항로를 유지하기 위해선 끊임없는 노력을 요구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그것을 들은 것에 유념하라고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유념하라는 동사의 시제가 현재 부정사입니다. 이 현재 부정사는 계속적인, 반복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 부정사는 아직 완료되지 않은 동사를 얘기하는 겁니다.
그러면 들은 것에 유념하라는 말은 곧 복음을 믿게 된 자들이 그 복음을 한번 유념하는게 아니라 계속 유념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해나가는 방향이 올바른 방향인지 계속 유념하고, 체크하고 확인하는 겁니다.
아직 완료되지 않은 계속되는 일이기 때문에 세상의 조류가 나를 휩쓸려고 할 때도 정신을 차리고 조타를 잡고, 복음의 닻을 내리고 복음에 유념하며 살아야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신앙의 삶의 여정을 신학적으로 “성화”라고 얘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미 복음을 듣고 믿게 됨으로 거듭나고 의롭게 된 것은 완료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성화는 진행되어가고 있습니다. 점진적으로 우리는 거룩함이 장성한 그리스도의 분량이 이르기까지 거룩해져가는 과정을 겪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세상의 사상에 흘러 떠내려가지 않고 들은 것에 유념하는 삶이 바로 성화의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물론 우리가 말씀을 읽고 순종하는 삶, 기도에 열중하고 하나님과의 교제에 집중하는 삶을 살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거나, 잃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얻은 구원을 가지고 거룩해져가는 과정 중에 있습니다.
그러는 중에 우리는 복음에 유념해야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서 구원받았다는 사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서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되었다는 사실
여러분 이것이 복음인데, 이것을 유념하는 삶은 복음을 말하고 있는 말씀을 항상 붙들고, 주님과 끊임없이 교제하는 삶입니다.
단순히 성경을 많이 읽고, 많이 기도하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우리를 흘러내려가게 하려는 사상들에 대하여 복음의 안경을 쓰고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는 삶입니다.
현대에 교회 내외부적으로 우리를 위협하는 얼마나 많은 사상들이 있습니까?
그리스도로 인하여 구원을 얻었다는 사실에 대해 속이고 왜곡해서, 다른 것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처럼 속이는 사상들은 모두 잘못된 가르침입니다.
돈이 우리에게 구원을 가져다주지 않죠.
신앙적 열심이 구원을 주는 것도 아닙니다.
세상 학문의 가르침이 우리에게 구원을 주지도 않습니다.
오직 예수만이 구원을 줍니다.
그 예수님만이 구원을 주실 수 있다는 사실이 명확히 기록된 성경 말씀을 끝까지 붙드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항상 하나님과 기도로 교제하며 그 관계가 더욱 깊어지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신앙의 배를 타고 성화라는 항해 속에서 복음에 유념하는 삶입니다.
결론
결론
말씀을 맺겠습니다.
조병진 집사님 요로결석
이민세 성도님은 수술이 잘 되었다고 합니다 내일 아침에 주치의로부터 자세한 상태를 들으신다고 합니다
강예기 권사님 허리뼈가 부러지셔서 수술하하심(골다공증이 아주 심하심) 기도해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