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사람들, 그리스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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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예전에 화장실에 가면 좋은 글귀를 많이 붙여 놨었습니다.
기억 나는 글귀가 있습니까?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은 눈물만은 아닙니다.”
아름다운 사람에 대한 글귀가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
화장실은 개인적인 장소 이면서도 동시에 공공장소 입니다.
공공 질서를 잘 지키는 사람은 아름답다 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깨끗히 써라 그말 입니다. 공공질서를 잘 지켜서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사람은 아름 다운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질서 잘지키면 좋지만 선량한 사람이지만 아름다운 사람일까요?
사람들이 모인 모습
-군대가 질서 있게 사열하는 모습을 보면, 일사분란/ 질서정연
그런데, 군대가 사열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름답다고 느끼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불특정 다수가 모였는데도 우리의 기억 속에 아름답게 기억되는 모임이 있습니다.
그곳에는 아주 특별하게도 서로를 위해주고 질서가 있고 선한 모습이 자발적으로 나타날때 입니다.
2002년 거리 응원.
경기 끝나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뒷정리
아름다운 사람들
분명 사람이 많이 모인 것은 같지만
어느 곳에서는 사람들이 참 아름답게 느껴지지만
어느 곳에서는 사람들이 소름 끼치도록 싫게 느껴진다.
아무리 많이 모여도 아름 다운 사람은 그들만의 특징이 있다
아름다운 사람들이 모인 곳에는 꽃과 잔디가 죽지 않고 오히려 생명이 심겨진다. 선하고 따뜻한 열매가 풍성하게 맺습니다.
1세기 안디옥 교회에는 아름 다운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사람들은 그들을 “그리스도인” 이라고 불렀다.
어떤 이들은 그들의 특이하고 유별난 모습을 조롱하려고 그렇게 불렀고 어떤 이들은 그들의 새롭고 아름다운 삶의 방식을 칭송하기 위해 그렇게 불렀다.
오늘날 기독교인 이라는 명칭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습니까?
오늘 우리는 아름다운 의미로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 생각해보시는 시간 되시기를 바랍니다.
1.관용과 일치의 성도들
2. 선한 위로의 아들
3.이름 없는 전도자들

1.관용과 일치의 성도들

베드로는 고넬료를 전도 하여 회심 시키고 성령을 받도록 돕습니다.
고넬료는 이방인 이었다는 것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이방인과 상종하여서는 안된다는 율법을 어겼기때문 입니다.
당시 예루살렘 교인들은 은혜는 받았으나, 여전히 율법 아래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사람을 나누는 구분이 존재했고
그것은 할례자냐 무할례자냐 였습니다.
이것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나누는 가장 확실한 기준 이었습니다.
베드로가 한 선교활동에 대해 성도들은 비판을 합니다.
사도행전 11:2–3 NKRV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에 할례자들이 비난하여 이르되 네가 무할례자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었다 하니
교회에서 이와 유사한 일이 벌여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에서는 보수적인 사람, 개방적인 사람 등등 다양한 생각과 가치관이 공존 합니다.
그럴때, 진정성 있는 설득과 경청이 필요 합니다.
어느날 교회 건물 지하에 나이트 클럽이 생겼습니다.
새벽 예배를 드리러 건물에 들어가다 보면 술에 취한 사람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새벽, 분명 술에 취한 것 같은 여성이 교회당에 들어와 앉아 있었습니다.
은혜가 안되니 내보내자고 목사님에게 말씀을 드렸는데 도무지 목사님이 들어주지 않고 그냥 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자칫, 분란이 일어날까봐 그냥 그 권사님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참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렇게 몇날 며칠을 같은 시간에 와서 한참을 울다가더라는 것입니다. 나중에 보니, 그 자매가 회개하고 예수 믿고 신앙생활을 아주 잘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지하 나이트 클럽에서 디제이를 하던 한 청년은 요즘 유명한 찬양팀으로 예람월쉽의 리더가 되었다고 합니다.
교회는 문턱이 높으면 안됩니다.
그리고 갈등이 있을때 가장 중요한 것은 일단 들어주고 용납하여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깊히 묵상하고 차분하게 대처해야 합니다.
예루살렘의 성도들은 베드로의 행동을 받아들일 수 없어 비난 했습니다.
하지만 그리고 혹시라도 하나님의 뜻에 거스를까 두려워서 베드로의 말을 들어주었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이 고넬료를 만나러 가기전 체험한 환상과 하나님의 잡아 먹으라는 명령의 메세지와 가이사랴에서 체험한 성령의 역사에 대해 있는 대로 가감 없이 보고 합니다.
사도행전 11:17 NKRV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하더라
베드로는 당시 가장 권위 있는 예루살렘 교회의 리더 였습니다. 하지만 그도 어기면 안되는 것이 유대교 전통과 율법 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에서는 단 하나의 권위만이 인정 됩니다. 그것은 성삼위 일체 하나님 입니다.
베드로가 율법을 어겼다는 것은 비난 받아 마땅하지만,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면 그 누구도 막아서는 안된다는 일치된 의견과 신앙이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11:18 NKRV
그들이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
곧 비난을 하던 성도들은 잠잠하여 집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의 이방인을 향한 뜻을 믿음으로 받아들입니다.
교회가 이방인 선교에 대해 받아들일 준비가 된 것입니다.
이렇듯, 교회에는 갈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모든 갈등이 다 싸움이나 분열로 결론 지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진정 아름 다운 사람들의 특징은 첨해한 갈등 속에서 옳은 길을 찾고 화합의 길을 모색 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잠깐 자기 생각을 내려놓고 경청 합니다.
싸움을 붙이고 이간질 하는 것은 사단의 역사 입니다. 작은 불씨를 키워 큰 화마가 되게 하는 것이 악한 영의 역사 입니다.
교회에서도 별일 아니고 차분하게 대화해보면 풀릴 문제를 아주 극단적인 문제로 만들어서 누구 하나는 나가야 하는 일로 만들어 버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성도는 관용하고 차분하게 경청하고 되도록이면 일치로 이끌려고 노력합니다.
나의 생각과 가치관에 맞지 않는다 하여도 다시 한번 기도해보고 입밖으로 비난을 내뱉기 전에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사람이 아름다운 그리스도인의 옳바른 태도 입니다.
사회생활에서도 앞에서 서서 논쟁을 주도하고 일이 되게 하는 사람도 필요 하지만 옆에서 조율하고 화합하게 조용히 일하는 사람도 꼭 필요 합니다.
존중 없이 하는 비난은 관계를 무너뜨리지만 경청과 화합은 앞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예루살렘 교인들이 아름다운 그리스도인이었다는 증거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비난 하던 자들이 차분하게 들어보고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는 것을 깨닫자 곧 잠잠하여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이방인에 대한 오랜 편견을 버릴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이성적이거나 합리적이어서가 아닙니다. 이 모든 것은 그들이 가진 신앙적 인품이 아름다웠기 때문 입니다.
이런 아름다운 인품 가지시기를 축원 합니다.

2.선한 위로의 아들

이 모든 일련의 사건들은 연결 되어 있습니다.
스데반의 순교-흩어짐-이방선교
사도행전 11:19 NKRV
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베드로의 순회목회- 룻다- 욥바- 가이사랴
고넬료 라는 이방인 전도- 이방선교에 대한 예루살렘 교회의 승인
이 흐름은 안디옥교회 라는 이방선교에 있어 아주 중요한 교회의 설립으로 이어집니다.
예루살렘 교회에서의 논쟁은 사실 안디옥 교회를 세우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 이었습니다.
이방선교로 선교의 방향을 확장 시켜 가는 것은
목회자 한 명이 밀어 붙여서 될 일이 아니었습니다.
교회 전체의 합의와 승인이 있어야 가능 한 일이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승인의 결과는 바나바를 안디옥에 파견 하는 일이있습니다.
사도행전 11:22 NKRV
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예루살렘 교회는 전에 사마리아에 베드로를 보냈듯이, 안디옥에 바나바를 파송 합니다.
구브로, 즉 사이프러스 섬 출신의 레위지파로 이름은 요셉이고 바나바 라고 불리는 사람이었습니다. 바나바의 의미는…
παρακλήσεως, 파라클레세오스
“위로의 아들”, 권면의 아들, 권위자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11:24 NKRV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선하고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
바나바의 됨됨이에 대해 본문은
“선하다” 라는 말을 먼저 합니다.
관대하고 훌륭한 인품을 표현한 것입니다.
덛붙여서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 이라고 설명 합니다.
바나바의 선함은 단지 인품이 좋다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과 믿음이 충만 했습니다.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세상에 선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람 좋고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종종 남을 돕기도 하는 사람들 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의 부탁을 거절 하지 못해서 항상 손해 보는 사람도 우리는 사람 착하다 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선한 사람은 그저 호인을 말하는 것이아닙니다.
성령으로 선한 사람, 믿음으로 선한 사람은 세상의 선한 사람과 다른 결과를 낳습니다.
그것은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라는 구절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선하고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 -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그리스도인들이 사회 생활 하다보면, 별나다 하는 평가를 받을때도 있습니다. 남들 하는 대로 하지 않을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알고보면 그 사람들이 사회를 위해 남몰래 봉사하고 기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선함은 선한 열매를 맺기 나름 입니다.
잭 안드라카 라는 중학생이 평소 친하게 지내던 친구의 아버지가 췌장암으로 갑작스럽게 돌아가시자 췌장암은 왜이렇게 고치기 힘들고 발견하기는 더 힘들까 고민 하다가 인터넛 서치와 논문 조사를 통해 검진용 탄소 나노튜브를 개발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 소년은 기존의 장비 보다 26000배 저렴한 3센트로 췌장암 검사를 할 수 있고 5분이면 검사가 가능하고 정확도가 거의 100%에 가깝다고 하여 세계 과학 경진 대회 최고상을 수상 합니다.
이 소년은 천재 였겠죠? 네 천재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천재성과 성실함이 만나기 힘들고 이것들과 함께 선한 마음까지 갖추기란 더욱 힘듭니다. 단지 천재성으로 표현하기에는 그 소년이 가진 선함의 열정이 남달랐습니다.
200여개가 넘는 대학실험실에 메일을 보내서 실험을 할 수 있게 실험실과 장비를 빌려달라고 요청 했지만 거절 당하기 일수 였습니다.
결국 199번의 거절 끝에 한 대학의 승락을 얻고 7개월 동안에 약 4000번의 실험을 한 결과 라는 것이 이를 증명 합니다.
바나바의 선함은 그저 마음씨가 선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관대함과 사랑 함께 그 사랑을 증명하는 신실함과 열정 그리고 포기 하지 않는 수고와 희생이 있어야 합니다.
바나바는 안디옥 교회를 섬김에 있어 선한 마음으로 성령의 지시에 따라 믿음으로 행했습니다.
우유부단하거나 손해를 볼까 전전 긍긍하지도 않았으며 자존심을 세우거나 자신을 높이지도 않았습니다.
이것이 주님 보시기에 선한 사람의 성품이고 믿음 입니다.
그래서 그의 설교는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낙망한 형제에게 위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삶은 권위가 있었습니다.
현대의 기독교 교회를 보면 자신의 이름을 내려고 애쓰는 목회자와 성도를 많이 보게 됩니다.
교회를 위해 오랜 수고와 헌신은 하나님이 기뻐하실만 한데 자꾸만 자신의 이름을 내고자 하고 조찬기도회다 뭐다 하여서 정치인들과 연합하려는 목회자 장로들을 보게 됩니다. 조금만 자신을 내려 놓고 겸손했다면 오히려 성도들이 그의 노고와 헌신을 알아줄텐데 아쉽다 싶은 사람들이 종종 보입니다.
바나바의 이 선함과 성령충만한 믿음은 안디옥 교회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해지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또한 그의 선함은 자신의 이름을 내기 보다 합당한 사람을 세워 감당하게 하는 일도 꺼리낌 없이 행합니다. 그것은 사울을 불러다가 교회에서 가르치는 사역을 하도록 자리를 마련해주는 일이었습니다.
사울처럼 강하고 대쪽 같은 사람과 함께 일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리더쉽과 추진력이 강하고 지식과 체험이 있는 사람을 세운다는 것은 자신의 리더쉽을 어느정도는 양도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 합니다. 하지만 바나바는 교회와 복음의 전파를 위해 과감히 자신의 옆자리를 내어줍니다.
바나바와 같이 선한 사람은 가는 곳에 사람들이 은혜를 받고 모여들고 결신하는 사람들이 늘어납니다. 또한 사람이 세워집니다.
바나바와 같이 성령으로 충만한 믿음의 선한 사람이 되시기를 축원 합니다.

3. 이름 없는 전도자들

이 시대의 아름다운 사람들 즉 아름다운 기독교인들의 부류 중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그저 만족함과 기쁨으로 복음을 전한 전도자들 입니다.
사도행전 11:19–20 NKRV
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이름 없는 전도자들 중 첫번째 부류는 예루살렘에서 흩어져서 베니게와 구브로 섬(키프로스)과 안디옥 까지 유대인에게 말씀을 전한 그룹 입니다.
다른 그룹은 구브로와 구레네의 몇 사람인데, 이들은 안디옥에서 헬라인들에게 말씀을 전한 사람 입니다.
이 모두 안디옥 교회의 기초를 세운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의 기록의 공통점은 주체가 미상으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의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것에 우리는 궁금하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어떤 마음일까요?
조금은 서운 할 수 있지만 그리 개의치 않았을 것같습니다. 왜냐하면 진정 아름 다운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의 상급과 사람들의 인정보다 하늘에서의 상급을 더 귀하게 여기기 때문 입니다.
영국 BBC 방송에서 아주 오래전에 “That’s life”라는 프로그램을 방영 한 적이 있었습니다.
공개홀에는 670명의 사람이 초대 되어 앉아 있었고 그들 중 한 사람만 그곳에 모인 이유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는 2차 세계대전 중에 체고의 유대인 수용소에서 유대인 아이들을 구출하였고 심지어 사비를 털어 몸값을 치루고 어떨때는 나치장교에게 거액의 내물을 주면서 까지 그일을 진행 합니다. 그 결과 669명의 아이들이 안전하게 영국으로 입양 되었습니다.
네 맞습니다. 그때 아이들이 감사의 뜻을 전하기 위해 모였던 것입니다.
이 방송이 비밀리에 진행된 이유가 있습니다.
니콜라스 윈턴 경은 이 엄청난 일을 하면서도 가족에게 조차 알리지 않았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시간이 아주 오래 지나 그의 아내가 다락방에 숨겨져 있던 일기장을 찾으면서 이 아름다운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의 선하고 아름다운 사람의 우직함이 묵직한 감동을 줍니다.
마태복음 6:3–4 NKRV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선하고 아름다운 사람은 들내거나 요란하게 하지 않습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입니다.
내가 복음을 받고 구원 받았으니 나도 그 복음의 증인이 되어 이방에 이 복음을 전하자 했던 사람들이 예루살렘의 흩어진 성도들이었습니다.
또한 구브로와 구레네의 이름 없는 전도자들이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요란하게 봉사하고 선행을 하는 사람은 이미 상을 받은 것이라고 예수님은 말씀 하십니다.
마태복음 6:5 NKRV
또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초대교회들 뿐만 아니라, 우리의 기독교의 역사에는 수많은 이름 없는 순교자와 전도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 중에 본이 되게 하기 위해 역사에 기록으로 남겨진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여기 모인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심지어 이유 없는 모함이나 고난을 받는다 하여도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사도바울은 이렇게 증거 합니다.
빌립보서 1:18 NKRV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이렇든 저렇든 예수 그리스도만 전파된다면 나는 기쁘다 고백합니다.
이 이름 없는 전도자들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로 돌아왔습니다.
사도행전 11:21 NKRV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결론

1세기 지중해 지역에는 그리스도인 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새로 생겨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전혀 새로운 유형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유익보다 가난한 형제와 병든 사람들, 과부와 고아, 나그네를 섬기는 따뜻하고 아름다운 선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당시 예루살렘 교회는 큰 규모가 아니었는데도 정기적으로 돌보는 사람의 수가 1200명이 넘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우리는 기독교인 입니다.
우리는 아름다운 기독교인 입니까?
성령의 충만한 믿음과 선함을 갖고 살고 있습니까?
에베소서 2:2 NKRV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믿기 전의 성품과 말씨와 생각과 삶을 버렸다고 자부하십니까?
나는 혹시 아직도 세상의 풍조를 따르고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에베소서 2:10 NKRV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우리는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들 입니다.
본래 선한 존재로 창조 되었습니다. 이제 죄에서 자유하여 선한 존재로 성화 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어둠을 밝히고
불의한 땅에 의를 세우고
억울한 자들을 대변하고
가난한 자들에게 빵을 주고
최종적으로 그들을 구원에 길로 인도하는 삶을 살라고 구원 하셨습니다.
오늘 이런 삶을 살려고 애쓰고 힘쓰며 몸부림 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은총이 넘치게 있어
아름다운 성도라
아름다운 하나님의 자녀라
아름다운 그리스도인 이라 인정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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