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약속 아브라함의 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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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2:1–3 NKRV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창세기 -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총회 설립 60주년 기념 성경주석 (2. 아브람에게 내린 세 가지 약속들(12:1–3))
이제 아브람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아브람과 함께 계시역사는 새로운 장을 연다. 이전의 역사는 심판의 역사였고, 땅을 잃어버리는 역사였다. 그런데 이제 계시역사는 심판이 아닌 구원의 역사로, 그리고 땅을 잃는 것이 아니라 땅을 얻는 역사로 전환된다. 그러나 단지 땅뿐만이 아니었다. 땅과 함께 자손에 대한 번성과 복에 대한 약속도 주어졌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를 이룰 것에 대한 약속이기도 하다(‘제4장 서론’을 참조할 것). 아브람에게 세 가지 약속을 주심으로써 아담 언약에서 이루어지지 못하였던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위하여 다시 새로운 출발을 하고자 하신다.
12:1-3의 부름의 언어는 병렬, 운율, 키아스미스 등 많은 시적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아브람을 가리키는 대명사 "너/너의"(카)와 하나님을 가리키는 일인칭 동사 "내가 ..."가 반복된다는 점입니다. 2인칭과 1인칭의 상호작용을 병치함으로써 아브람은 받는 사람으로, 주님은 약속하시는 분으로 나타납니다. 히브리어에는 또한 "스스로 가라"(12:1a)는 뜻의 렉 라카(lēk lĕkā)가 있는데, 여기서 명령은 재귀 대명사에 의해 강조됩니다. 다음 세 구절은 아브람이 자신의 삶에서 남겨야 할 영향력의 영역을 광범위한 영역에서 구체적인 영역으로 구분합니다: [민] "너의 나라"[ʾereṣ], "너의 백성"[몰레데], [민] "네 아버지의 집"[베트 ʾāb]으로부터. 각 구의 머리에는 "~로부터"[민]가 등장하여(NIV에는 없음)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요구하신 분리의 명령을 강조합니다.
1) 첫째 약속: 땅에 대한 약속(12:1)
아브람에 대한 기사는 먼저 땅을 주겠다는 약속으로 시작하신다. 이 땅은 원래 그가 살던 고향인 갈대아 우르가 아니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명령하신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12:1). 창세기 본문에서는 그가 명령을 받은 곳이 어디인지 밝히지 않는다. 단지 이 본문만 보면 아버지 데라와 함께 오랫동안 머물렀던 하란일 수 있다. 그러나 사도행전에 의하면 아브람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포타미아(갈대아 우르)에 있을 때에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이 명령을 하였다고 증언한다(행 7:2). 또 창세기 15:7에서도 이것을 뒷받침한다.
특히 스데반의 설교인 사도행전 7장에서는 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나신 것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스데반의 설교 주제는 성전이었다. 성막 혹은 성전은 하나님 임재의 장소이다. 그 하나님 임재의 시작을 메소포타미아에 있는 아브람에게 나타나신 것으로 시작하는 것이다. 갈대아 우르에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신 사건은 성막개념의 시발점이며, 또 새로운 계시역사의 출발점이 된다. 노아 이후 10세대(世代)가 지나는 동안 하나님은 침묵하셨다. 드디어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나타나시고 또 말씀하심으로서 새로운 역사의 시작을 알리신다.
창세기 12:1에서 하나님은 고향을 떠나 새로운 땅으로 갈 것을 명령하셨다. 여기에 땅을 주겠다는 말이 직접 나타나지 않지만, “… 땅으로 가라”는 말 속에 땅을 기업으로 주겠다는 약속이 내포되어 있다. 그것은 15장의 말씀에서 확증된다: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니라”(창 15:7). 하나님이 새로운 땅으로 가라고 하신 것은 바로 그곳을 그의 소유로 주겠다는 말과 동일시된다. 아브람에게 땅을 주겠다는 약속은 앞으로도 반복적으로 나타난다(창 12:7; 13:15, 17; 15:7–8, 18; 17:8; 24:7).
“고향”의 메아르체카(מֵאַכֶרצְךָ)는 직역하면 ‘너의 땅으로부터’이다. 그가 속한 땅은 바로 그의 고향이 된다. “친척”의 모레테트(מוֹלֶדֶת)는 ‘출생지’를 의미하며, ‘친족’이라는 의미도 가능하다. “아버지의 집”은 아브람의 가족이 함께 살던 곳임을 지적한 것이다. 하나님은 그곳을 떠나라고 명령하신다. 아브람에게는 육신적으로 볼 때에 쉽게 움직일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그 고향은 ‘메소포타미아’(행 7:2)이며, 또 ‘갈대아’(7:4)이다. 그곳 메소포타미아는 계시역사가 시작한 곳이었고, 고대 문명이 발달한 곳이었다. 이런 문명이 뛰어난 고향을 떠난다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니다. 더욱이 미지의 땅으로 간다는 것도 불안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곳이 반역(바벨탑 사건)과 우상숭배의 장소(수 24:2)가 되었다. 따라서 하나님은 그곳을 버리셨으므로 하나님을 섬기는 아브람은 미련 없이 떠나야 하였다. 아브람이 떠난다는 것은 계시역사의 중심이 메소포타미아에서 새로운 땅(가나안)으로 옮겨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자기의 고향을 주저함 없이 떠났다. 순종한 것이며, 이것은 그의 믿음을 보여주는 행위였다.
“가라(레크, לֶךְ, 원형הָלַךְ의 명령형)”라는 명령은 순종을 요구한다. 아브람은 그 명령에 순종하여 출발하였다. 신약의 히브리서는 약속의 땅을 향하여 출발하는 아브람의 행동을 그의 믿음으로 본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11:8). 히브리서 구절을 이해하는 데에 오해가 있다. 혹자는 아브람의 믿음을 어떤 땅으로 가는지도 모르고 무조건 순종하고 나선 것에서 찾는다. 막연한 출발, 정처 없이 말씀에 순종하여 무조건 출발하는 것이 믿음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창세기를 자세히 살펴보면 가야할 곳을 모른 막연한 출발이 아니다. 창세기 11:31에는 “데라가 아브람과 롯과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 우르에서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라고 말한다. 데라와 아브람은 자기들이 가야할 곳을 확실히 알고 출발했는데, 그것은 바로 가나안이라는 땅이었다. 12:1에서도 “… 내가 네게 보여줄(라아, רָאָה) 땅으로 가라”고 하셨다. 하나님이 지정하신 그 가나안은 그가 가서 보고 만질 바로 그 땅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은 구체적이었고, 확실히 볼 수 있는 땅이었다.
그러면 히브리서 11:8에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다”는 말은 무엇인가? 그것은 당시의 상황에서 어떻게 가야할지, 얼마나 먼지도 모르고 그 험난하고 어려운 길을 나섰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아브람은 갈대아 우르(지금 이라크 남부 혹은 쿠웨이트 지역)에서 여행을 시작하였다. 때는 주전 2000년 전후이다. 그 당시는 사람들의 왕래가 쉬운 때가 아니다. 갈대아에서 가나안까지는 너무나 먼 거리이며, 또 그 사이에는 사막이 가로놓여 있다. 사막을 우회하기 위해 빙 둘러가야 한다. 그러한 낯설고 먼 길이지만 하나님이 지정하셨고, 또 보여주신 그 확실한 땅을 목표로 아브람이 출발한 것이다.
2) 둘째 약속: 자손에 대한 약속(12:2)
창세기 12:2에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라고 말씀하신다. 자손이 번성하겠다는 말씀이다. “민족”의 고이(גּוֹי)는 ‘나라’ 혹은 ‘백성’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이방나라를 가리키는 용어이지만, 때로는 하나님의 백성에게도 사용된다. 본 절에는 ‘민족’으로 번역하는 것이 좋다. 자손에 대한 약속은 족장 기사에서 또 하나의 큰 주제이다(창 12:2, 7; 13:15, 16; 15:4–5; 16:10; 17:7, 8, 9, 10, 13, 16, 19; 21:12; 22:17, 18; 24:7; 26:3, 4, 24; 28:13, 14; 32:12; 35:12; 48:3, 4 등).
자손에 대한 약속은 두 가지를 내포한다. 첫째로 자손이 번성할 것과, 둘째로 그 자손이 언약의 상속자가 된다는 것이다. 자손이 번성할 것에 대하여는 때로는 하늘의 별과 같이(창 15:4–5), 때로는 바닷가의 모래 같이(창 13:16) 많을 것임을 비유적으로 말한다.
아브람은 자기 집안의 사회경제적 생존력을 제공했던 아버지의 땅을 떠남으로써 가장 강력한 가족적 유대를 끊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관대함의 진실성을 신뢰했고 하란에 머물렀을 때보다 더 많은 것을 받았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아브람의 집안은 하란에서 야곱을 통해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낳은 나홀 가문의 라반(31:1)으로부터 원래의 몫과 더 많은 것을 받게 됩니다(자매들과 그들의 첩들).
3) 셋째 약속: 복에 대한 약속(12:3)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12:2하–3).
복(바라크, בָּרַךְ)은 창조기사에서 처음 등장하였다. 창세기 1:28에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라고 했으며, 또 창세기 2:3에 하나님은 안식일을 복주시고 거룩케 하시기도 했다. 인간은 첫 출발부터(창조 때부터) 복 받은 존재였다. 그러나 타락 이후 하나님은 이 복을 거두어가셨다. 이제 본문에서 하나님은 아브람을 통하여 다시 복의 회복을 시작하신다. 그 이후에 이 복은 계속 약속으로 주어진다(18:18; 22:18). 그리고 이 복의 약속은 후손들에게 계속 이어질 것이다. 이 복의 약속은 이삭에게서 다시 주어지고(26:3, 12–14), 야곱과(35:9–12; 48:3) 그 후손들에게서도 확인이 된다(48:16, 20).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주신 복에는 여러 가지 특징이 있다. 그 특징들은 다음과 같다.
① 이 복은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을 다 포함한다. 첫째로 이것은 영적인 복이다. 하나님이 아브람을 자기 백성으로 선택하여 계시역사의 주체로 삼으신 것 자체가 복이다. 그리고 그 후손들이 아브람의 약속 반열에 참여하는 것이 바로 복이다(창 27:27–36; 28:4; 32:26–28; 48:16, 20 등등). 신약에서 이 영적인 복이 강조되었다. 갈라디아 3:9, 14에 믿음의 백성이 아브람의 복을 나누어 가질 것이라고 진술함으로써(9절), 아브람의 복이 갖는 영적인 면을 취급한다. 바울은 그 복을 “성령의 약속”과 같다고 하였다(14절).
둘째로 물질적인 복이다. 성경은 우양과 같은 재산이 늘어나며 부자가 되는 것을 복이라고 말한다.
여호와께서 나의 주인에게 크게 복을 주어 창성케 하시되 우양과 은금과 노비와 약대와 나귀를 그에게 주셨고(24:35).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노복이 심히 많으므로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26:12–14).
이상의 구절은 물질적인 복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영적인 복과 물질적인 복이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 물질적인 복은 영적인 복의 확증이다.
② 아브람이 복의 근원이 될 것이며, 이방인도 이 복에 참여한다. 먼저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너는 복이 될지라”(개역성경, “복의 근원이 될지라”)라고 말씀하셨다(12:2하). 아브람이 복 자체가 된다. 그런데 이 아브람을 통하여 복은 이방인에게까지 넘어간다. 바로 아브람을 축복하는 자를 하나님이 복 주시고, 그를 저주하는 자를 저주할 것이기 때문이다(3절 상). 그리하여 하나님은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3절 하). 아브람 자신이 복을 받을 뿐만 아니라, 다른 민족에게도 복을 나누어주게 된다. 땅의 모든 족속이 아브람을 통하여 복을 얻게 될 것이다.
이 복의 약속은 신약에까지 적용된다. 바울은 이 구절을 지적하면서, 그것을 복음과 동일한 것으로 놓으려 한다.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은 현재 이방인들이 구원에 참여하고 있는 것은 바로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라는 창세기 구절에 근거하고 있음을 말한다: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니”(갈 3:8).
바울은 계속 이방인이 어떻게 아브라함의 복에 참여할 수 있는가에 대하여 진술해 나간다. 그것은 바로 아브라함이 가졌던 것과 동일한 ‘믿음’을 가짐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다(창 15:6; 갈 3:7, 9). 아브람의 믿음은 언약을 확고히 하려는 그 어떤 인간적인 의지나 노력을 포기해야 하며,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실 것임에 맡기는 것이다. 아브람에게 주신 복의 약속은 이스라엘 민족들의 구원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온 세계를 향한 구원에 그 목적이 있다.
이상의 세 가지 약속(땅, 자손, 복)은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한 기본적 요소이다. 나라를 이루기 위해서는 세가지 요소가 있어야 한다. 땅(영토)와 백성, 그리고 통치권이다. 복은 하나님의 통치권과 관련이 있다. 이것은 모세의 언약에서 확증될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목적은 복지국가이며, 이것이 바로 “복”이라는 약속에 담겨져 있다. 통치권자가 자기 백성에게 주는 복지인 것이다. 이 아브람에게 주어진 이 세 가지 약속은 앞으로 아브라함의 언약에서 확증될 것이며, 모세의 언약에서 그 성취될 길이 열리며, 다윗 언약에서 완성될 것이다.
교훈과 적용
1. 히브리서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갈 바를 알지 못한 상태에서 약속을 붙들고 출발한 것에서 찾는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가야 할 목적지가 확실치 않는 곳을 향하여 간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이 분명이 밝혀 말한 확실한 땅인 가나안을 향하여 간 것이다. 우리의 믿음도 불확실한 것을 붙드는 것이 아니라 확실성 있는 것을 향하여 나아가는 것이어야 한다. 2000년 전에 예수님이 탄생은 아우구스투스가 호적하라고 명령한 확실한 역사적인 사실 속에서 일어났으며, 태어난 베들레헴, 자라난 나사렛, 배를 타고 갔던 갈릴리, 가르치셨던 가버나움의 회당, 그 회당 터 등은 우리가 가서 걷고 보고 만질 수 있는 확실한 땅이다. 주님이 부활하신 것도 사람들이 보고 만질 수 있는 확실한 것이었다. 앞으로 우리가 재림 때에 들어 가야할 저 천국, 그것이 지금은 희미한 것과 같으나 앞으로는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확실한 것이기에 우리는 주저 없이 그것을 믿고 이 그곳을 향하여 나서는 것이다. 그 목표지점까지 길이 멀고, 험하고, 또 어려워도 우리는 아브라함처럼 담대히 출발하는 그 믿음을 가져야 한다.
2. 아브람에게 주신 두 번째 약속은 그의 후손이 약속의 후사가 되며, 또한 번성한다는 것이다. 이 후손에 대한 약속은 신약시대에 없어진 것이 아니다. 현재 이스라엘이 더러는 완악하여 넘어져 있지만, 그러나 언젠가는 다수의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을 것이다(롬 11:24–25). 그날을 위해 우리는 이스라엘에게 열심히 복음을 증거해야 할 것이다.
3. 신약시대에 이방인인 우리가 구원을 얻은 것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세 번째 약속(복에 대한 약속)에 근거한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겠다는 복음을 창세기에서 이미 주셨다. 오늘 이방인이 우리도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가질 때에 이 세 번째 복에 참여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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