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이 삶의 목적이 되어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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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유다의 남은 자여 이제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만일 애굽에 들어가서 거기에 살기로 고집하면
너희가 두려워하는 칼이 애굽 땅으로 따라가서 너희에게 미칠 것이요 너희가 두려워하는 기근이 애굽으로 급히 따라가서 너희에게 임하리니 너희가 거기에서 죽을 것이라
무릇 애굽으로 들어가서 거기에 머물러 살기로 고집하는 모든 사람은 이와 같이 되리니 곧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 죽을 것인즉 내가 그들에게 내리는 재난을 벗어나서 남을 자 없으리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나의 노여움과 분을 예루살렘 주민에게 부은 것 같이 너희가 애굽에 이를 때에 나의 분을 너희에게 부으리니 너희가 가증함과 놀램과 저주와 치욕거리가 될 것이라 너희가 다시는 이 땅을 보지 못하리라 하시도다
유다의 남은 자들아 여호와께서 너희를 두고 하신 말씀에 너희는 애굽으로 가지 말라 하셨고 나도 오늘 너희에게 경고한 것을 너희는 분명히 알라
너희가 나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보내며 이르기를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고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우리에게 전하라 우리가 그대로 행하리라 하여 너희 마음을 속였느니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사 너희에게 명하신 말씀을 내가 오늘 너희에게 전하였어도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도무지 순종하지 아니하였은즉
너희가 가서 머물려고 하는 곳에서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 죽을 줄 분명히 알지니라
안전이이 목적이이 되는 삶
안전이이 목적이이 되는 삶
삶에 위험이 많을수록,
삶에 아픔과 고난과 슬픔이 많을수록
사람은 점점 안전에 집착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요하난과 백성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안전하고 싶었죠.
그 어디에도 안전하지 못할 것 같은 상황 속에서
너무나 불안해서 예례미야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물었습니다.
자신들이 생각하기에 그나마 가장 안전한 방법은
애굽으로 도망가는 것인데,
그것이 안전한 길이 맞는지 확인하고 싶었을 것이고,
혹시 그것보다 더 안전한 길이 있을까
알고 싶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은 분명하게 하나님의 뜻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나의 노여움과 분을 예루살렘 주민에게 부은 것 같이 너희가 애굽에 이를 때에 나의 분을 너희에게 부으리니 너희가 가증함과 놀램과 저주와 치욕거리가 될 것이라 너희가 다시는 이 땅을 보지 못하리라 하시도다
하나님은 애굽으로 도망하지 말라 하시고,
애굽으로 가면 망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들이 생각하는 그 길이 틀렸다고 하시고,
자신들이 가장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바로 길을
하나님께서 안전하다고 말씀하시는데
그들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이든
그 말씀대로 하겠다고 전제해놓고
예레미야에게 하나님께 기도까지 해달라고 했음에도
하나님의 뜻을 알았으나 그대로 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그들의 삶의 목적이 ‘안전’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전하는 메세지는
안전이 목적이 된 삶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삶이 아닐수도 있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예수님을 믿는다면,
적어도 ‘안전하기 위해서’ 살아가서는 안된다는 겁니다.
안전보다 중요한 삶의 목적이 분명히 있기 때문입니다.
안전하기 위해서 살아간다는 것은
살아남기 위해서 살아간다는 것이니
사실 삶의 목적이 없는 것이겠죠.
“안전”을 목적으로 삼는 삶보다
의미없고 가치 없는 삶은 없는것 같습니다.
안전하기 위해서 사는 삶의 끝은?
안전하기 위해서 사는 삶의 끝은?
이처럼 삶이 팍팍한 시대 가운데,
살아남는 것만으로도 버거운 이 시대에,
‘안전’이 아니라면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목적 삼아서 살아가야 할까요?
생존 이외에 다른 것을 삶의 목적으로 삼아도
사람은 망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요?
안전을 삶의 목적으로 삼지 않는다면 도태되거나 망하지는 않을까요?
요하난과 백성들이 그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그나마 가장 안전해 보이는 애굽으로 도망치려고 했습니다.
살아남는 것 외에 다른 목적 따위를 생각하다가
홀연히 망하는게 아닐까? 라는 두려움이
요하난과 백성들에게 있었던 겁니다.
그러나 사실은 가장 위험한 삶이
‘살아남기 위해서 살아가는 삶’이요,
안전을 목적 삼는 삶이라는 것을 우리가 기억할 수 있기 바랍니다.
그 삶은 언제나 불안하고 언제나 두려워서
삶을 편안하게 살아갈 수가 없고,
행복과 기쁨과 감격을 누릴 수도 없더라구요.
어떻게 잘 아냐구요? 제가 그랬거든요.
그 삶에는 반드시 전쟁과 기근이 따라다닙니다.
위험요소들이 더 많이 들러붙는다는 겁니다.
안전하고자 하고, 살아남고자 하지만
안전과 생존이 결코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음을,
많은 시간이 지나서 후회하며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럼 어떤 삶은?
그럼 어떤 삶은?
그럼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매우 어려울 수도 있고,
어쩌면 매우 쉬울 수도 있는 삶입니다.
예례미야는 하나님의 음성을 전달했습니다.
그들이 싫어할 줄 알면서도,
그들이 싫어할 바로 그 하나님의 뜻을
있는 그대로 전달했습니다.
예레미야는 고난과 어려움을 자초하는 듯한 삶을 산 것 같습니다.
예레미야는 왜 그렇게 살았을까요?
‘하나님의 음성’이 에레미야의 삶의 의미였기 때문입니다.
에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살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기 위해서 살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외치기 위해 살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살아야 하는 가장 바른 삶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운명을 거는 삶’입니다.
살고싶다면,
그리고 인간답게 살고 십다면,
한걸음 더 나아가 성도다운 풍성한 삶을 살고 싶다면,
안전이 아니라 하나님께,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의 삶을 다 걸아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그 삶이 위험해 질 것 같지만,
실제로 위험과 고난에 봉착하기도 하겠지만,
망하지 않고 죽지 않는줄로 믿습니다.
오히려 반드시 살아나고 생존하고, 회복을 누릴 줄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그 삶을 살리는 능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신앙 안에서는 죽으려 하면 살고
살려고 하면 죽는다는 사실을 우리가 기억할 수 있기 바랍니다.
살기 위해서 하나님도 이용하려 하고
하나님의 말씀조차도 이용하려하면 반드시
죽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듣고 순종하기 위해서 죽기를 각오한다면
반드시 그 인생은 하나님께서 책임지시고
살리시는 인생이 될 줄을 믿음으로 고백합니다.
나는
나는
나의 모습을 돌아봅시다.
어떤 삶의 모습으로 하나님께 내삶을 드리고 있습니까?
이 시간 말씀 앞에 우리의 인생을 하나님께 내어드리길 소망합니다.
결단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