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할 수 있겠다, 권위 있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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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ke 4:31–37 NKSV
예수께서 갈릴리의 가버나움 동네로 내려가셔서, 안식일에 사람들을 가르치셨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의 가르침에 놀랐으니, 그의 말씀이 권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때에 그 회당에 악한 귀신의 영이 들린 사람이 하나 있었는데, 그가 큰 소리로 이렇게 외쳤다. “아, 나사렛 예수님, 왜 우리를 간섭하십니까? 우리를 없애려고 오셨습니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 압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거룩한 분입니다.” 예수께서 그를 꾸짖어 말씀하셨다. “입을 닥치고,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그러자 귀신이 그를 사람들 한가운데다가 쓰러뜨려 놓고 그에게서 떠나갔는데, 그에게 상처는 입히지 않았다. 사람들이 모두 놀라서 서로 말하였다. “이 말이 대체 무엇이냐? 그가 권위와 능력을 가지고 악한 귀신들에게 명하니, 그들이 떠나가는구나.” 그리하여 예수의 소문이 그 근처 모든 곳에 퍼졌다.
오늘 말씀은 수평적 인간관계를
중요하게 여기는 요즘 시대에는
별로 반가워하지 않는 단어가 등장할거에요
‘권위’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권위를 세우고 싶어합니다.
라고 말하면
엥? 저는 권위 그런거 필요 없는데요
저는 모두가 친구인 수평적 인간관계를
가장 중요하게 여겨서 그런거 필요 없어요.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분명 있을거에요.
그러나 사람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누구나 권위를 세우고 싶어합니다.
권위라는 단어를 들었을때
윗사람이 가지고 있는 꼰대력,
나이 많은 사람이 부리는 자존심
정도로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권위는 굉장히
선하게 사용될 수 있는 단어입니다.
권위의 진짜 의미와 가장 비슷한 말을
찾아본다면 그 단어는
‘영향력’입니다.
권위의 사전적인 뜻은
누군가가 나를 따르게끔,
누군가가 나를 인정하게끔
만드는 힘입니다.
저의 청소년 시절을 돌아보면
저는 계속 그렇게 권위를
세우고 싶어했던 것 같아요
누군가가 나를 따르게끔,
누군가가 나를 인정하게끔
하기 위해서 애를 쓰는 삶을 살았던 것 같아요.
때로는 힘으로 권위를 세우려고도 했고,
때로는 말빨로 권위를 세우려고도 했던 것 같아요.
학창시절은 그렇잖아요?
진짜 논리적인 것보다는
그냥 입김이 쎄면 말빨이 센거
저는 그걸 즐겼던 것 같아요.
그랬던 제가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깨닫게 된 것이 있어요.
권위는 의도를 가지고
내가 직접 세우려고 하면
삶이 참 추해진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냥 내 안에
선한 것, 옳은 것,
좋은 것이 넘쳐난다면
굳이 내가 의도하고 드러내지 않아도
사람들이 알아서 알아보는데,
저는 저의 존재감을 어떻게든
드러내고 싶어서
스스로 권위를 세우려고
참 부끄러운 행동들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여러분도 동의할겁니다.
나 권위 있는 사람이야! 하면서
나의 능력을 자랑하고 떠들고
설치고 다니는 사람이랑
드러나지 않더라도
묵묵하게 자신의 일을 하면서
내가 살아가는 공동체에
선한 영향력을 자연스럽게 끼치는 사람이랑
누가 진정으로 권위있는 사람이 될까요?
그래서 오늘 말씀을 전하는 내내
제가 사용하는 권위라는 단어는
영향력이라고 바꿔서 생각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진짜 권위는 어떤 것인지,
우리가 왜 그 권위를 가지고 살아야 하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이라는 동네로 내려가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셨어요.
그때 사람들이 그 가르침을 듣고 놀랐죠.
32절 말씀 함께 읽어봅시다.
Luke 4:32 NKSV
그런데 사람들은 그의 가르침에 놀랐으니, 그의 말씀이 권위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그 가르침에 놀란 이유는
다른 어떤 이유도 아닌
‘권위’가 느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권위란? (무엇을)
권위는
윗사람이 가진 힘, 권한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온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당연히 그 말씀에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권위가 느껴졌을 겁니다.
32절, 권위, ἐξουσία 에크수시아. eksousia, power, authority, right, jurisdiction, liberty, strength, 권위, 마(Mt) 7:29, 권능, 마(Mt) 9:6, 관활에, 눅(Lk) 23:7, 자유, 고전(1Co) 8:9, 권세들, 엡(Eph) 6:12, 권한, 히(Heb) 13:10.
그런데 성경에서 사용된
권위의 의미는
또 다른 의미가 숨어있습니다.
바로 ‘자유’를 의미합니다.
권한과 힘과 권능을 통해
이뤄낼 수 있는 건 ‘자유’입니다.
내가 나 스스로 자유할 수도 있을거에요.
그러나 그 힘으로
누군가를 자유하게끔 만들어줄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지고 계셨던 권위는
사람들에게 군림하고
사람들을 억압하는 권위가 아니라,
오히려 모든 사람들을 자유하게 만들어주며,
무너져 있는 인생을 일으켜주는
사랑의 권위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놀랐던거에요.
그 말씀에 권위가 넘쳐날 뿐더러
그 권위로 사람들의 삶에
이 세상에서는 줄 수 없는
자유함을 선물해주셨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권위에 놀랄 수밖에 없었던 거죠.
권위가 필요한 이유? (왜)
이렇게 모두를 자유하게 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니까
말씀을 듣고 있던 사람 중에서
귀신 들린 사람이 발작을 하기 시작합니다.
33절 말씀부터 읽어볼까요?
Luke 4:33–35 NKSV
그 때에 그 회당에 악한 귀신의 영이 들린 사람이 하나 있었는데, 그가 큰 소리로 이렇게 외쳤다. “아, 나사렛 예수님, 왜 우리를 간섭하십니까? 우리를 없애려고 오셨습니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 압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거룩한 분입니다.” 예수께서 그를 꾸짖어 말씀하셨다. “입을 닥치고,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그러자 귀신이 그를 사람들 한가운데다가 쓰러뜨려 놓고 그에게서 떠나갔는데, 그에게 상처는 입히지 않았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면서
귀신아 물럿거라!! 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니까
귀신이 이렇게 말합니다.
“왜 우리를 간섭하십니까?”
“나 당신이 누군지 압니다.”
“그러니까 내 삶에 간섭하지 마십쇼!”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들의 삶에 아주 깊숙히
간섭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냥 지식적으로
공부하는 학문 정도의 수준이 아닙니다.
여기서 귀신이 말한
내가 당신을 ‘압니다’
이 말을 원어 성경으로 보면
οἶδα (오이다)
그냥 지식의 조각을 모으다,
지식의 종합체 정도밖에 안됩니다.
이런거에요
저는 BTS를 압니다.
여러분도 알죠?
그런데 BTS와
인격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이 여기 있나요?
성경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안다’, ‘알고 있다’라고 하실때 쓰이는
단어는 ידע 입니다 (야다)
야다는 간섭하다,
삶에 깊숙히 들어와 있다를
의미합니다.
무너져 있는데 무너진 줄도 모르는
사람들의 삶에 깊숙히 개입해서
그 삶을 생명력이 넘치는 삶으로
회복시켜주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귀신이 발작을 한겁니다.
악한 영들의 목적은 단 하나입니다.
어떻게든 여러가지 다양한 형태로
그 삶을 억압하고 속박을 해야합니다.
여러분이 아이돌에 미쳐있든,
공부에 미쳐있든,
남자친구, 여자친구에 미쳐있든,
뭐든 상관 없어요.
여러분이 하나님과 멀어지기만 하면
오케이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에게
권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니
이 삶이 억압된 것으로부터
자유함을 얻고 생명력이 넘치는 삶을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의 삶을 자유롭게 하는
권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삶에 깊숙히 들어올때
일어나는 일입니다.
꼭 귀신의 형태가 아니더라도
내 삶을 자유롭게 살아갈 수 없게끔
방해하는 모든 것들과
하나님의 말씀은 충돌하게 됩니다.
혹은 나를 짓누르고 억압하는 현실이
하나님의 말씀을 자꾸 거부하게 만들고
못 믿게끔 만들기도 하고요.
내 안에 있는 상처, 부정적인 자아가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오는 순간
발작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악한 영들은 우리 삶에 있는 것들 중에서
귀신의 형태가 아닌 다양한 갖가지 방법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자유함을 얻는 것을 방해합니다.
악한 영들은, 어둠의 세력들은
내 안에 있는 쓴뿌리가 해결되는 것을
내 안에 있는 상처가 해결되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아요.
그래서 어떻게까지 하냐면요,
35절 말씀 읽어봅시다.
Luke 4:35 NKSV
예수께서 그를 꾸짖어 말씀하셨다. “입을 닥치고,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그러자 귀신이 그를 사람들 한가운데다가 쓰러뜨려 놓고 그에게서 떠나갔는데, 그에게 상처는 입히지 않았다.
굳이 굳이 사람들 한 가운에다가
쓰러뜨려놓기도 합니다.
나의 삶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회복될만 하면,
은혜를 받을만 하면
자꾸 나에게 창피를 주는 일들을 만들어냅니다.
제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살아가겠다고 결단하고
신학의 길을 걷게 되었을때,
저에게 닥친 가장 큰 문제가
바로 이 문제였어요.
친구가 굉장히 많았습니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는게
제 스스로의 권위를 세우려고
안간힘을 쓰고 살았으니까요.
힘도 있었고 나름대로 머리도 똑똑한 편이었고,
사람들하고 관계도 잘 하고 지냈었기 때문에
친구들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믿음의 친구들은 없었습니다.
그런 친구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로
살아가겠다고, 그리고 너희들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너져 있는 삶이
회복되어야 한다고 선포하는 순간
그때부터 친구들이 저를
뒤돌아서게 되었고,
오히려 저에게 쪽을 주는 친구들이 더 많아졌어요.
하나님의 말씀이 내 삶에 선포되고,
다른 사람들의 삶에 선포되면,
내 삶이 온전하게 회복될 줄 알았는데,
사람들 한 가운데 풀썩 쓰러져서
온갖 관심과 비난과 조롱은 한 몸에
받게 되었던 것이죠.
저 새끼는 예수쟁이래,
지가 어떻게 살았는지도 모르나봐
갑자기 하나님 말씀 전하면서 산다고 하면
지가 살았던 과거가 다 없어지는 줄 아나봐?
이런 말을 많이 듣게 되었어요.
실제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삶에 선포되는 순간
벌어지는 일들입니다.
악한 영이 자꾸 나를
사람들 한 가운데다가 쓰러뜨리고
넘어뜨립니다.
그런데 그 시간들이 지나고
깨달은 것이 하나가 있어요.
그렇게 넘어지는거
그 당시에는 내 인생에
큰 타격이자 흠이라고 느껴지는데
생각보다 내 인생에는
그 어떠한 타격도 흠도 남아있지 않다는 겁니다.
35절에 나와 있죠.
개역개정 말씀으로 읽어볼까요?

35 예수께서 꾸짖어 이르시되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귀신이 그 사람을 무리 중에 넘어뜨리고 나오되 그 사람은 상하지 아니한지라

권위가 넘치는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었기 때문에
이 삶은 망가질 수가 없습니다.
잠깐은 망가지는 것 같아 보이고
무너지고 쓰러지는 것 같아 보이고
온갖 쪽은 다 당하는 것 같아도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된 삶은
오히려 자유함을 얻고
회복되고 생명력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그런 힘이 있습니다.
내 삶을 짓누르는
불가능, 포기, 무기력함,
내 삶의 한계
이런 것들을 완전히 무너뜨릴 수 있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자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힘이 있다는 것은
우리를 어떻게든 억압하고 속박하려는
악한 영과 불가능, 포기, 무기력함, 한계라는 존재에게
아주 큰 재앙의 소식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에게는
진정한 사람다운 삶,
진정으로 기쁜 소식이자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자유함이 선포되는
일생일대의 사건을 만들어주는 것이
하나님의 권위이자,
그 말씀이 지닌 힘, 파워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권위있는 말씀으로
우리의 삶을 자유롭게 하셨듯이
우리에게도 이 권위가 필요합니다.
쥐뿔 뭣도 아닌데
내가 가진 힘과 능력을 다른 사람에게
과시하는 권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자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여
모두가 자유함을 얻는
그런 권위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 권위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John 20:21–23 NKSV
[예수께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낸다.” 이렇게 말씀하신 다음에,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시고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 죄가 용서될 것이요, 용서해 주지 않으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를 자유하게 하신 것처럼
우리도 누군가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권위있는 자로써 살아간다는 건
내가 가진 어떤 힘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꼰대력을 키우며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삶에 자유를 선포해야하고,
그 삶에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쁨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는
삶의 기회를 선물할 줄 알아야 합니다.
마무리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작든지 크든지 영향력을 미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들입니다.
그로 인해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을
권위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그 권위는 내가 가진 것으로
내가 의도를 가지고 스스로 세우려고 하면
더 추악해지고 파멸을 향해 걸어갈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러나 나의 권위가 아닌
하나님의 권위를 선포하며 살아간다면,
우리의 삶은 더욱 아름다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살아간다는 건
여러분에게 꼭 전도사님, 목사님이 되라고
강요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 계신 목자님들을 보세요.
각자의 삶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며 살아가고 계십니다.
내가 어떠한 형태의 삶을 살아가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것에 책임이 따르긴 할거에요.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는데,
그 말씀대로 내가 행동하지 못하고
그 말씀대로 내가 살아가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오히려 권위를 잃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거룩히 살아갈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로는 내가 연약하고 부족해보일지라도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며 살아갈 수 있게끔,
하나님을 전하며 살아갈 수 있게끔
말씀으로 우리를 회복시켜주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의 삶을 자유하게 만드는 하나님의 권위를
온 세상에 드러내고 선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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