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806 새벽기도회: 이사야 3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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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하시겠습니다. 찬송가 301장 찬송하시겠습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도 저희를 새벽기도회 자리로 부르시고 말씀을 듣고 기도할 수 있는 은혜를 베푸심에 감사합니다. 하나님. 저희에게 그리스도라는 큰 선물을 주시고 그리스도를 알아가는 은혜를 베푸심에 참으로 감사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하나님이 저희를 위해 어떤 일을 행하시고 지금도 저희를 위해 일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게 하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그러므로 하늘을 올려다봐도 땅을 내려다봐도 항상 하나님을 생각하게 하시며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만물을 통하여 하나님을 찬송하는 저희가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우리의 모든 삶이 하나님이라는 생명수로 흠뻑 젖는 놀라운 은혜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하루도 그런 하루가 되게 하시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하루가 되게 인도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함께 읽을 하나님의 말씀은 이사야 30:1-7입니다. 제가 봉독하도록 하겠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패역한 자식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이 계교를 베푸나 나로 말미암지 아니하며 맹약을 맺으나 나의 영으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죄에 죄를 더하도다
그들이 바로의 세력 안에서 스스로 강하려 하며 애굽의 그늘에 피하려 하여 애굽으로 내려갔으되 나의 입에 묻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므로 바로의 세력이 너희의 수치가 되며 애굽의 그늘에 피함이 너희의 수욕이 될 것이라
그 고관들이 소안에 있고 그 사신들이 하네스에 이르렀으나
그들이 다 자기를 유익하게 하지 못하는 민족으로 말미암아 수치를 당하리니 그 민족이 돕지도 못하며 유익하게도 못하고 수치가 되게 하며 수욕이 되게 할 뿐임이니라
네겝 짐승들에 관한 경고라 사신들이 그들의 재물을 어린 나귀 등에 싣고 그들의 보물을 낙타 안장에 얹고 암사자와 수사자와 독사와 및 날아다니는 불뱀이 나오는 위험하고 곤고한 땅을 지나 자기에게 무익한 민족에게로 갔으나
애굽의 도움은 헛되고 무익하니라 그러므로 내가 애굽을 가만히 앉은 라합이라 일컬었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반갑습니다. 새벽기도회에 나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오늘도 말씀과 기도를 통해 하루를 거뜬히 살아가시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오늘도 말씀을 두고 먼저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오늘 말씀은 이사야 30장 말씀으로 애굽을 의지하고자 하는 남유다에게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남유다는 앗수르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고자 애굽을 의지하고자 하는데요. 이전에 남유다는 아람과 북이스라엘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고자 앗수르를 의지했지만, 이제 하나님께서 경고하신대로 앗수르에 의해 위협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남유다는 이제 애굽을 의지하고 있는데요. 한편으로 역사적인 모습으로 봤을 때 남유다는 약소국의 형태를 띄고 있습니다. 마치 우리나라가 구한말에 약소국이라는 위기를 벗어나고자 어떤 열강을 의지해야 하는지 고민했던 모습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남유다도 정치 외교적으로 위기를 벗어나고자 하는데요. 사실 남유다는 이 위기가 찾아온 이유와 그들이 진정으로 갖추어야 할 핵심적인 모습을 놓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남유다의 위기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된 것이며 그들이 진정으로 의지해야 할 것은 하나님이라는 것인데요.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애굽을 의지하는 것은 너희에게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음을 말씀하시면서 자신을 의지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1절부터 보시면 “패역한 자식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이 계교를 베푸나 나로 말미암지 아니하며 맹약을 맺으나 나의 영으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죄에 죄를 더하도다”
1절부터 등장한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합니다. 바로 애굽과 동맹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애굽과 동맹을 맺는 것은 패역한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남유다가 애굽을 의지하려는 것은 마치 이스라엘이 출애굽했던 시절로 역행하는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은 출애굽하면서 몇 차례 위기를 맞이하였습니다. 홍해를 만났을 때, 먹을 것과 마실 것이 없을 때 등등 위기를 맞이하였습니다. 그럴 때마다 이스라엘이 불평할 때마다 했던 말이 있습니다. 바로 “애굽에 그대로 있었다면 좋았을 것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고된 노역으로 고통받는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그들을 노예라는 신분에서 해방시켜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연약함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으로 가기 위한 제일 빠른 길이 블레셋 지방을 지나는 길이 있음에도 블레셋 지방으로 가지 않고 우회해서 가게 하십니다. 그 이유는 이 이스라엘 백성이 블레셋과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과거 이스라엘의 모습이 지금 남유다에게 오마주가 되는 것 같이 이들이 다시 애굽을 의지하고 애굽 밑으로 들어가려고 합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애굽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하셨다는 것을 그들이 알고 있었음에도 이들은 다시 애굽이 좋다고 가려고 합니다.
그래서 사실 이 남유다는 하나님으로부터 새로운 말씀을 받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단지 자신들이 이미 받은 말씀에 순종하기만 하면 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죄는 그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을만큼 너무나 끔찍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죄인데, 애굽을 의지하려고 하니 죄에 죄를 더하는 짓이라고 하나님께서 지적하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은 2절에서도 안타까운 마음, 분노하는 마음으로 나타내십니다. “그들이 바로의 세력 안에서 스스로 강하려 하며 애굽의 그늘에 피하려 하여 애굽으로 내려갔으되 나의 입에 묻지 아니하였도다”
바로 “왜 너희는 출애굽을 했음에도 애굽을 의지하려고 하느냐? 내가 출애굽을 시켜주었음에도 왜 나에게 묻지도 않고 왜 나를 의지하지 않느냐?”라는 너무나도 안타까운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그렇기에 이제 하나님께서 남유다에게 하실 말씀은 단 한 가지입니다. 애굽을 의지하는 것이 얼마나 무익하고 헛된 것인지, 그리고 애굽을 의지하는 것은 수치를 당할 뿐이라고 말입니다. 그 내용이 3절부터 7절 상반절까지 이어집니다.
특별히 애굽을 의지하는 것이 얼마나 무익한 것인지 5절에서 가장 잘 나타나는데요. 5절을 보시면 “그 민족이 돕지도 못하며 유익하게도 못하고 수치가 되게 하며 수욕이 되게 할 뿐임이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애굽은 타인을 도울 형편이 도무지 되지 못하였습니다. 애굽의 왕은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바로, 파라오입니다. 이때 파라오는 토종 애굽인이 아니었습니다. 애굽인이 아니라 애굽과 적대 관계였던 누비아라는 지방의 누비아인이었습니다. 이 당시 애굽의 국력은 너무나도 약해진 상태여서 다른 누군가를 보호하는 건 고사하고 자신의 지도자를 자신의 나라 안에서 배출할 힘조차 없었습니다.
그리고 애굽도 앗수르와의 전쟁에서 아주 수치스러운 패배를 맛보았습니다. 애굽은 본토에서 약 970km나 원정을 온 앗수르 군대에게 패배하여 애굽 국경에서 160km나 패주를 한 경험이 있습니다. 앗수르가 엄청난 장거리 원정을 왔으나 아주 수치스러운 패배를 하였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이 있음에도 남유다는 계속 애굽을 의지하려고 합니다. 남유다가 얼마나 급박한 상황이면 이렇게까지 하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이 보시기에 이런 남유다의 모습은 미련하기만 합니다. 그리고 남유다도 애굽과 마찬가지로 수치를 당하기만 할 뿐입니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이 애굽과 동맹함으로 의지하려는 남유다의 모습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는 무엇입니까? 7절에서 “애굽의 도움은 헛되고 무익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멀리 떨여저서 제3자의 입장만 되고 봐도 지금까지 살펴본 정세가 이러한 하나님의 평가는 너무나 정확하지 않습니까?
이렇게 애굽을 의지하는 것에 대한 하나님의 결론은 “내가 애굽을 가만히 앉은 라합이라 일컬었느니라”입니다. 여기서 라합은 여리고 성에서 이스라엘 정탐꾼을 도왔던 그 라합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라합은 전설 속에 등장하는 잘 알려진 바다 괴물입니다. 욥기 26장에서도 이 라합이 하나님께서 “바다를 잔잔하게 하시며 지혜로 라합을 깨뜨리신다.” 할 때 등장합니다. 그러면 이 라합이 왜 여기에서 갑자기 등장한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왜 라합을 말씀하신 걸까요?
이 라합은 히브리인들이 자신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애굽을 정복하신 하나님에 대해 말할 때 사용한 하나의 문학적 장치였습니다. 바로 이 라합은 애굽을 뜻하며, 7절에서도 하나님께서 애굽과 라합을 동일시하고 계십니다. 따라서 가만히 앉은 라합이라는 것은 애굽이 남유다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그저 가만히 앉아있을 뿐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애굽과 동맹을 맺고 애굽을 의지하는 것이 얼마나 무익하고 헛된 것인지를 남유다에게 알려주고 계십니다. 그러나 인간의 죄는 그러한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을 정도로 너무나 심각합니다.
이 말씀을 오늘 우리에게 비춘다면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요? 바로 하나님 외에 다른 것들을 의지하는 것은 무익하고 헛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의지하는 것은 결국 수치만 안겨줄 것이며 언젠가 그것은 내가 기대한 대로 되지 않고 배신할 뿐이라는 겁니다. 인간이 가장 보편적으로 많이 의지하는 돈을 한번 생각해봅시다. 돈만 있으면 우리는 내 삶이 윤택하고 탄탄대로의 길만 걸을 줄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돈은 더 큰 돈을 부르게 되고 많은 돈을 가졌다고 해서 우리의 삶은 행복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돈이 없어지지는 않을까, 이 돈을 어떻게 유지해야 할까 라며 더 전전긍긍하게 됩니다. 또 엄청나게 많은 돈을 가졌다고 해서 만족이 생기지 않습니다. 세상에 있는 많은 부자들을 한번 보십시오. 그들은 사람들이 동경하고 부러워하는 그 많은 재산을 가졌음에도 왜 만족하지 못하고 명예나 권력을 탐하고 심지어 범죄까지 저지르는 것일까요?
그리고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제일의 가치인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연인에 대한 사랑, 자녀에 대한 사랑, 부모에 대한 사랑 등등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만족과 행복을 얻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것을 그들이 어느정도는 줄 수 있을진 몰라도 완벽하게 줄 수 없습니다. 내가 아무리 그들을 향해 사랑받고 싶고 행복하고 싶지만, 나에게 찾아오는 것은 마음 한켠의 공허함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가 원하는 것을 줄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갈망하고 하나님께 찾는 것이야말로 우리에게 유익하며 헛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할 때에만 우리는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구원은 단순히 우리의 영혼이 천국가는 것 그 이상입니다. 구원은 나를 얽매고 속박하는 그 모든 것으로부터의 해방입니다. 돈에 대한 욕심, 맹몽적인 사랑에 대한 갈구 등등에서 말입니다. 우리를 영적인 앗수르에게서 구원해줄 수 있는 것은 애굽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삶은 매순간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출애굽이라는 더 좋은 것이 있음에도 우리는 자꾸만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미 구원해주셨음에도 우리는 우리가 예전에 추구하던 것으로 돌아가고자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매일의 삶 속에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의지해야 될 대상은 오직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으시며 하나님의 도움만이 헛되지 않고 유익합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며 매일의 삶, 그리고 남유다와 같이 위기의 순간이 찾아왔을 때도 다른 것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참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시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오늘 이 말씀을 두고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것이 저희에게 유익이 된다는 것을 저희가 배우게 됩니다. 다른 것을 의지하는 것은 헛되고 무익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저희를 구원하실 수가 있고 하나님만이 저희에게 만족과 행복을 주실 수 있으십니다. 저희가 이것을 기억하며 매일의 삶, 그리고 위기의 순간에도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저희가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저희는 자꾸만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의지하려는 연약함이 있습니다. 이 연약한 의지를 꺾으시고 강한 능력을 주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의지하오니 성령 하나님께서 언제나 도와주시옵소서. 오늘 하루도 지켜주실 줄 믿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